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6>
한편 장손무는 위현룡의 무공이 설마 이 정도로 고강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이길 생각은커녕 어떻게든 버티는 데만 주력하였다.
아군의 수가 월등했으므로 그들이 마교인들을 모두 제압하고 나면 한꺼번에 위현룡을 협공하여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계산했던 것이다.
[현룡아! 아무래도 서둘러야겠구나!]
홍후인은 오랜 경험상, 수적 열세에 처했을 때 느끼는 불안감과 압박감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녹무군을 비롯한 사검귀천이 선전을 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배나 많은 적들에게 저항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위현룡은 더욱 거세게 장손무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장손무는 악착같이 버텨내며 기회를 기다렸다.
(큰일이다!!)
귀혼내력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위현룡은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녹무군이 이끄는 마교무사들이 적들에게 점차 밀리는 형국이 뚜렷해지자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지금까지 위현룡이 고수들과의 숱한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경시(輕視)때문이었다.
즉 무명소졸(無名小卒)인 위현룡을 얕잡아 보고 다소 성급한 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현란한 귀혼검법으로 싸움을 지배하여 적을 일시에 거꾸러트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허나 장손무는 너무나도 신중했다.
과감한 공격을 자제하면서 안정적인 방어만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장손무의 무학을 보더라도 그가 방어에 심혈을 기울인다면 그를 제압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이 쥐새끼 같은 놈...도무지 공격을 안 해오네!!!]
검법에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은 상대가 공격을 가할 때 가장 많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홍후인은 장손무의 쫀쫀한 성격에 치를 떨면서도 내심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안되겠다! 검을 하나 더 잡거라!]
다급했던 홍후인은 최후의 수단을 써보기로 작정하였다.
자신이 검 하나를 조종하여 쌍검으로 장손무를 공격할 생각인 것이었다.
그의 의중을 파악한 위현룡은 얼른 땅에 떨어져있는 검을 하나 주워들었다.
"선배님! 귀혼내력이 4할대로 떨어졌습니다!"
위현룡과는 달리 홍후인이 귀혼내력을 받아 검을 휘두르게 되면 상황에 따라 엄청난 내력이 소비되었다.
그래서 위현룡은 홍후인이 혹시나 그 사실을 잊고 있지 않았나 하는 노파심에 귀혼내력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야만 했다.
[걱정 말거라! 어떻게든 귀혼내력이 딱 1할만 소모되도록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선배님께서는 단 일 초식밖에는 사용하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위현룡이 잠시 공격을 멈추고 있자 장손무는 쌍조도로 온 몸을 철통같이 방비한 채 슬쩍 눈치를 살폈다.
(도대체 저 놈이 뭐라고 시부렁거리는 거야...)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장손무인지라 위현룡이 왼손에 검을 잡으면서 뭐라 중얼대고 있는 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만 잔뜩 들었다.
(설마 쌍검(雙劍)으로 해보겠다는 것인가?)
무림에 쌍검을 쓰는 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수들과의 싸움에서 쌍검을 쓰게되면 정신이 분산되고 민첩한 몸놀림에 많은 제약을 받아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장손무는 위현룡의 쌍검을 보면서 매우 괴이쩍게 생각하였다.
[난 준비됐다!! 공격하거라!!]
홍후인의 주문을 받은 위현룡의 신형이 곧장 땅을 박차고 장손무에게 날아 들어갔다.
태산과도 같은 귀혼검초를 쌍조도로 막아낸 장손무는 자신도 모르게 위현룡의 왼손에 들려있는 검에 눈길을 보냈다.
(분명 왼쪽 검(劒)도 같이 공격해오겠지....)
하지만 두 번의 검공을 막아낼 동안 왼쪽 검은 꿈쩍도 않고 있었다.
또한 느껴져 오는 기도도 오른쪽 검에 모조리 몰려 있을 뿐, 정작 왼쪽 검에는 아무런 위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자식이 무슨 꿍꿍이인지...)
신중함이 도가 넘어선 장손무는 자꾸만 왼손에 들려있는 검(劒)에만 집착을 하였다.
(분명 저 검이 갑자기 암습(暗襲)을 해 올 것이다!!)
그때 위현룡이 자신의 배후로 부드럽게 돌아서면서 검을 뻗어왔다.
순간 장손무는 왼손에 들려있는 검이 슬쩍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다.
(온다!!)
장손무의 근육들이 암습에 대비하기 위해 실룩거렸다.
위현룡은 그의 신경이 분산된 것을 알고 갑자기 공격력을 증가시켜 그의 우측에 집중적으로 검을 휘둘러댔다.
장손무의 왼쪽 팔뚝이 검에 베어져나가면서 피가 터져 나왔다.
졸지에 부상을 입은 그는 얼른 위현룡의 공격권에서 몸을 빼내 물러나갔다.
"이런!!".
예상과는 다르게 왼쪽 검은 공격해오지 않은 상태였다.
"어딜 가느냐!!"
그를 쫓아간 위현룡은 바짝 붙어서 귀혼변초 이초식을 연달아 휘둘렀다.
장손무의 쌍조도가 방어를 위해 움직였다.
이때 장손무는 또 다시 위현룡의 왼쪽 검이 미동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
무의식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졌던 장손무는 위현룡의 변화무쌍한 검초에 당황해 또 다시 허리 쪽에 작은 검상을 입고야 말았다.
(빌어먹을!! 또 안 움직였잖아!!)
그제야 장손무는 위현룡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일검(一劒)을 휘두르던 자가 난데없이 쌍검식을 취했을 때 미리 눈치를 챘었어야 했다고 뼈저리게 후회하였다.
상대에게 두 번의 검상을 입힌 위현룡은 세 번째 공격에 들어갔다.
이번엔 장손무의 하체를 노리고 다소 느린 공격을 택했다.
이때 장손무는 한꺼번에 두 가지를 보게 되었다.
하나는 왼손에 들려있는 검이 또 움찔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현룡이 몸을 낮추면서 기어 들어올 때 보이는 허점이었다.
순간 장손무는 쌍조도를 잡은 손아귀에 힘을 꽉 주었다.
(또 속을 줄 아느냐!! 왼쪽 검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그는 위현룡이 왼쪽 검을 가지고 또 다시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왼손 검이 주는 교활함에 휘말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위현룡의 허점을 놓치게 된다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이 놈!! 죽어라!!!"
아까부터 방어만 취하던 장손무가 대뜸 공격초식을 이끌어냈다..
그의 쌍조도가 허공을 가르면서 위현룡의 머리통을 부술 요량으로 힘껏 내려쳐졌다.
순간 위현룡의 몸이 비상식적으로 꺾이더니 검으로 내려오는 쌍조도를 힘껏 찔렀다.
-치잉!
병장기의 날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날카로운 소음을 생산해 냈다.
장손무가 멍한 눈을 꿈뻑였다.
위현룡의 검날이 양쪽으로 갈라진 쌍조도의 날 틈바구니 속으로 끼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위현룡이 장손무의 쌍조도를 검으로 꺾어 못 움직이게 밀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선배님!"
귀혼내력이 빠르게 위현룡의 왼쪽 검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잠잠하던 왼손 검이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납게 울부짖었다.
[오냐!! 기다렸다!!!]
일진광풍이 사방에 몰아치면서 엄청난 위력의 섬광이 왼손 검으로부터 펼쳐져 나왔다.
"허헉!"
난생 처음으로 경악할 살기(殺氣)를 체감한 장손무는 얼굴 색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확실히 위현룡이 시전하는 귀혼검법과 홍후인이 시전하는 귀혼검법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홍후인의 귀혼검법에는 악랄함이 있었고, 자비가 없었다.
이 때문에 귀혼검법은 마치 제 주인이라도 만난 듯 최고의 위력을 뿜어내면서 장손무의 숨통을 옥죄었다.
홍후인의 검이 당황해하는 장손무의 전중혈을 노리면서 곧장 찔러져갔다
하지만...아직은 장손무의 수명이 다하지 않았던 탓일까.
겁에 질린 장손무가 허우적대면서 뒷걸음질을 치던 중, 때마침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대막천궁 무사 한 명이 손에 걸리자 얼떨결에 그를 방패삼아 앞으로 내밀었다.
"으악!"
대막천궁 무사를 꿰뚫은 홍후인의 검이 어긋나면서 장손무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젠장!!]
회심의 일격이 빗나가자 홍후인이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그 순간 위현룡이 경직되어 있던 장손무의 다리를 좌각(坐脚)으로 차 균형을 무너트리는 동시에 얼른 아랫배 부근에 있는 천추혈(天樞穴)을 검병(劒柄)으로 후려쳤다.
"우욱!"
허리가 꺾인 장손무가 고통스러운 표정과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틈을 타 위현룡은 얼른 그의 혈도를 눌러 사로잡아 버렸다.
이때 홍후인이 얼른 외쳤다.
[어서 장손무를 대막천궁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던지거라!!!]
위현룡은 영문을 몰랐으나 더 생각하지 않고 얼른 장손무를 붙잡아 마교 측과 대막천궁 측이 싸우고 있는 전장 한복판으로 내던졌다.
얼마 남지 않은 마교무사들을 끝장내려던 대막천궁 무사들은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져 내려오고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수장인 장손무라는 것을 알자 기절초풍할 뻔하였다.
장손무가 처참한 몰골로 땅바닥에 푹 처박혔다.
갑작스런 상황을 맞이한 대막천궁 무사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 싸움을 멈춘 채 그저 얼음 기둥처럼 굳어져 있었다.
"또 누가 상대할 것이냐!!"
위현룡이 무서운 음성으로 일갈을 하였다.
대막천궁 무사들은 뜻밖의 재앙에 얼굴에 두려움을 드러내면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장손무가 대막천궁에서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이긴 위현룡에 대해 알 수 없는 공포감과 경외감이 생긴 것이다.
마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허혜린과 사검귀천도 설마 이렇게 빨리 장손무가 패할 줄은 몰랐던 지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위현룡만 쳐다보고 있었다.
"물러가면 목숨을 살려줄 것이다!"
위현룡의 입에서 묵직한 최후통첩이 흘러나왔다.
기가 죽은 대막천궁 무사들은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장손무를 살살 살피면서 주춤거렸다.
그러자 위현룡이 검을 땅에 힘껏 내리꽂았다.
순간 겁에 질린 대막천궁 무사들은 수장이고 뭐고 내팽개친 채 허겁지겁 모두 달아나 버렸다.
Comment '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