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4>
“참모! 이제 어찌 해야 한단 말이오?”
허운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검귀천이 맥빠진다는 듯이 물어왔다.
“청봉산을 무사히 넘어가나 했더니만 오히려 큰 봉변만 당했소이다.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오“
십년감수했다는 사검귀천의 어투에 허운의 얼굴에도 깊은 수심이 드리워졌다.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불안해진 단대인이 마교 무사들을 이끌고 협철곡으로 진입할 것이고, 그렇게 협철곡 안에서 포위를 당하게 되면 이하민의 척살 명령과 함께 마교 무사들은 모조리 일망타진 될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던 허운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든지 협철곡을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건 알고 있소만 어떻게 벗어나는가 말이오?”
허운은 잠시 눈을 감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했다.
(이하민이 분명 협철곡 출구 쪽으로 많은 무사들을 집중배치하고 있을 것이다. 단대인께서 무사대를 이끌고 오게 되면 이하민은 그들이 협철곡 깊숙이 들어갈 때까지 대천마교 무사들을 절대로 움직이지 않겠지. 이미 단대인과 약속한 시간은 훨씬 지나버렸고,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어둠을 틈타 단대인이 움직일 공산이 크다. 만약 사검귀천이 협철곡 출구 부근까지 접근할 수만 있다면, 단대인이 협철곡 출구 쪽으로 접근할 때 합세하여 대천마교 무사들의 포위망을 뚫고 협철곡을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허나 그 전에 협철곡 출구까지 도달하려면 수많은 난관을 뚫어야 한다. 아....운좋게 단대인과 시간만 맞아떨어진다면 불가능도 아닐텐데...)
그러나 이제 남은 기회란 이것뿐이었다.
심사숙고한 허운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사검귀천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허운의 설명을 들은 사검귀천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협철곡 출구까지 도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오. 여기서 협철곡 출구까지의 거리가 꽤 먼데다가 우리들은 너무 지쳐 있소.“
그때 갑자기 허운이 이런 말을 꺼냈다.
“현재 우리들 앞에 놓인 난관은 돌파하기가 어려워 마치 철옹성과 같습니다만, 이하민의 꼼꼼한 성격덕분에 꼭 불가능만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이하민이 소교주의 목숨을 해하지 않는 것은 단대인이 홀로 들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단대인이 무사들을 움직이지 않고 일단의 무사들만 이끌고 들어와 소교주의 상태를 확인 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만약 소교주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단대인은 협철곡안으로 들어오지 않을테니, 그렇게 되면 이하민이 원하는 일망타진은 물 건너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교 무사들이 협철곡 안으로 모조리 들어올 때까지 소교주의 신변은 절반쯤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는 대천마교 무사들이 소교주와 사검귀천을 전력을 다해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고, 그런 점에서 협철곡 출구까지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음...그래서 궁대협이 우리를 추격하지 않은 것이오?”
“아마 그럴 것입니다. 궁대협의 목적은 우리들이 청봉산을 넘지 못하게 지키는 임무만 완수하면 되는 것 일테니까요. 허나...역시 상책은 단대인이 들어오기 전에 빨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조건 해지기 전까지 출구에 도달해 있어야합니다!“
“그러다가 단대인이 그 시간보다 빠르거나 늦게 도착하면 어쩌오?”
사검귀천의 걱정에 허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물론 시간상 단대인과 엇갈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늘에 맡겨야할 운명입니다. 다만 제가 당부할 말은 만약 협철곡 출구쪽의 방비가 허술하더라도 단대인이 이끄는 세력과 합류하지 않는 한 절대로 나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쪽으로 대천마교의 무사들이 매복을 하고 있을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단대인과 힘을 집결시켜 단번에 뚫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참모의 뜻을 잘 알겠소. 그런데 지금 이 상태로는...”
사검귀천중 한 명이 갑자기 뒷말을 누그러뜨리자 분위기는 약간 어색하게 흘렀다.
그러자 총명한 허운이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을 예상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소교주는 한시진 안에 깨어나실 것입니다. 허나 경공을 펼칠 수 없는 저와 부상당한 위대협이 동행한다면 큰 방해가 될 터이니...우리들은 그냥 두고 떠나십시오.“
사검귀천이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허운이 담담하게 해주고 있었다.
“참모...정말 미안하오! 허나 소교주의 존재는 마교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위대협께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들은 고개를 돌려 죽은 듯이 누워있는 위현룡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목숨 건 조력(助力)이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
이에 사검귀천은 냉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마교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오. 위대협이 비록 소교주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하긴 했으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오!“
참으로 쌀쌀맞기 그지없는 어투였으나 소교주에 대한 과한 충정에서 나온 말이므로 허운은 씁쓸한 미소만 띄울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검귀천은 곧바로 자리에 앉아서 운기조식을 취했다.
협철곡을 벗어나기까지 수많은 적들과 대항해야 했고, 그렇기에 내력이 고갈된 지금 적게나마 내력을 충당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었다.
한식경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곧바로 일어났다.
한 명이 허혜린을 등에 짊어졌다.
“참모! 시간이 없으니 바로 떠나겠소. 참모와 저 사람의 희생을 마교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오!“
“어서 가보십시오...”
“그럼!”
짧은 인사말을 남긴 채 그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갔다.
허운은 쓸쓸한 모습으로 동굴로 돌아와 위현룡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미안합니다. 위대협...”
그는 위현룡이 부상당해 정신을 놓고 있는 틈을 타고 멋대로 결정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금지 못했다. 어느 누가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곳에 남겨진 이상 소교주가 빠져나가든 못 빠져나가든 조만간 대천마교에 발각되어 죽음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땅거미가 짙게 깔리기 시작하면서 저 멀리서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어둠 속에 묻힌 자신의 그림자를 보던 허운은 몸을 일으켰다.
대략 네 시진(8시간)정도 지난 것 같았다.
동굴에서 나온 그는 이제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별들이 수놓아져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교주와 사검귀천은 어떻게 되었을까...지금쯤 단대인과 접촉하여 협철곡을 빠져나가기 위해 대천마교 무사들과 격전을 치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만약 실패한다면...)
희망보다도 불안한 번민(煩悶)만이 머릿속을 사납게 뒤흔들었다.
그 순간 뒤쪽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듯한 인기척이 들리므로 허운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위대협!!!”
대천마교의 무사들이 들이닥친 줄 알았으나 다행히 위현룡이 다가오는 소리였다.
“소교주와 사검귀천이 잘 빠져나갔을까요?”
그가 대뜸 이렇게 물어오므로 허운은 순간 멍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사검귀천과 자신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모두 듣고 계셨습니까?”
“들리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위현룡은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눈만 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허운은 왠지 죄스러워 고개를 떨구고 물었다.
“제게 화가 나시지 않으십니까? 제가 위대협을 버리고 가라고 사검귀천에게 멋대로 제안했는데 말입니다.”
“참모님도 같이 남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참모님께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상심 마십시오.”
오히려 위로를 건네는 위현룡앞에서 허운은 더욱 몸둘 바를 몰랐다.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제가 어떤 용서를 구한다해도 위대협에게는 뻔뻔한 자(者)의 변명으로 비쳐질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참모님!”
그때 위현룡은 허운의 말을 중도에서 잘라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참모님과 저는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모님께서 소교주를 구해내고, 마교를 재건해야 하는 소임이 있으신 것처럼 저 역시 반드시 살아서 지켜야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금부터 참모님과 제가 힘을 합쳐 어떻게든지 협철곡을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곳을 벗어난 후에 참모님께서 제게 용서를 구하신다면 그때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받을 것입니다.“
위현룡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가늠하더니 힘껏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피가 범벅이 되어 있는 검을 잘 닦아 허리에 찼다.
허운은 감히 입을 열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부상은....“
“거의 다 나았습니다.”
순간 허운의 눈가에 의혹이 스치고 지나갔다.
“거의 다 나았다니요? 제가 의술은 잘 모르나 그 정도 상처면 최소한 열흘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 없이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허운은 뭔가 이상하여 위현룡의 몸 상태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정말 그의 말대로 겉만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 몸은 완전 정상인과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심각하게 여겼던 다리에 깊이 패인 상처까지 말끔히 아물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나 연이어 위현룡이 내뱉는 말은 청천벽력이 되어 더욱 허운을 놀래 켰다.
“내력도 모두 회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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