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5>
“넌 또 뭐냐?”
다 된밥에 뭐가 끼어 들었으므로 우용현은 왠지 짜증이 밀려들어 왔다.
이끄는 수하도 없이 달랑 혼자인데다가, 행색을 보아하니 그리 대단한 인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마교 인물은 아닌 듯하고...어디 문파 출신이냐?”
위현룡은 속으로 청성파를 떠올렸으나 굳이 대꾸 해주지는 않았다.
그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우용현은 혀를 끌끌 찼다.
문파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뜨내기가 어쩌다가 패망한 마교에 값싸게 영입되어 간 것으로 짐작했던 것이다.
“마교도 급하긴 급했군. 아무리 세력이 부족하기로서니 아무나 다 받아들이다니...“
우용현이 거들먹거리면서 코웃음을 치는 순간, 위현룡은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몸을 날려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위현룡의 검이 다섯 개로 변화하면서 눈앞까지 치켜 들어왔다.
“헉!”
기겁을 한 우용현은 검으로 막으며 뒤로 일장이상 물러나서야 겨우 공격을 피해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쫙 흘러내렸다.
(방심하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상대가 녹록치 않은 고수임을 인식하게된 우용현은 얕보던 마음을 싹 버렸다.
그리고 늘 하던 식으로 수하들을 먼저 앞에 내세웠다.
워낙 얍삽한 위인인지라 약간의 위험부담이라도 감수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공격하라!!”
허혜린에게 공격했던 것처럼 협공이 시작되었다.
“조심하세요! 차륜전을 쓰는 거예요!”
허혜린이 소리쳐서 주의를 주었다.
위현룡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번갈아 가면서 공격을 받았다.
우용현은 조만간 위현룡이 힘이 빠질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그러나...
협공한지 이백여 초가 넘어가는데도 위현룡의 얼굴에서는 도무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명과 대적할 때와 여러 수십 명과 대적할 때 느껴지는 피로도는 몇 배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쳐서 검의 속도가 느려지고 허점을 드러내야 할 것인데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악착같이 버텨내고 있었다.
위현룡은 차륜전이 시작되자 절대 공격하지 않고 막거나 피하기만 하여 귀혼내력을 아꼈다.
어차피 협공하는 자들의 수가 많다 하더라도 한꺼번에 검을 휘두르며 공격해 올 수 있는 인원은 네 다섯 명에 불과했다.
상대들이 고수라면 몰라도 고수에 근접하는 수준의 무사들이 벌인 협공이란 체력이 받쳐주는 이상 못 버틸 것도 없었다.
참으로 불가사의 한 놈이라고 생각하게 된 우용현은 보다못해 직접 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아까 사검귀천의 외침도 들었던 지라 시간을 너무 끌면 적들이 몰려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협공이 사라지고 우용현이 직접 나서자 위현룡은 긴장하면서 귀혼검초의 조합을 머릿속에 떠 올렸다.
귀혼검법 변초들을 적합하게 배합시켜 보는 것이었다.
현재 위현룡의 무공은 예전보다 약간 진일보한 상태였다.
그 동안 그는 계속해서 최고라 불릴 수 있는 강적들과 상대를 해왔다.
흔히 실전이라는 것은 수련보다 더한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니던가.
몇 수를 붙어보니 우용현이 고수임에는 틀림없지만 흑사린이나 궁벽 그리고 화무룡등에 비하면 많이 못 미치는 실력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사실은 위현룡에게 강한 자신감을 덧붙여 주기에는 충분하였다.
비록 귀혼심법이 겨우 6성에 머물러 있어서 그 위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 아쉽지만 말이다.
우용현은 공격력을 7할까지 끌어올린 상태에서도 위현룡이 대등하게 덤벼들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 놈이 보통 놈은 아니었구나!!)
위현룡의 괴상망측한 검초를 받아 내고 있던 우용현의 생각이었다.
우용현은 즉시 전력투구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용현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위현룡은 한층 더 빠르고 강맹해진 그의 검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약 십장(대략 30m)이상을 밀리며 고전하던 사이 우용현의 검이 그의 옷자락을 다섯 번 이상이나 찢고 지나갔다.
참으로 위험천만이 아닐 수가 없었다.
위현룡은 이를 악 물고 대항했지만, 귀혼내력이 불과 3성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뼈저리게 느껴질 뿐이었다.
우용현은 회심의 일격이 몇 번이나 빗나가자 쓴 입맛을 다셨다.
“생각보다 운이 좋은 놈이구나!”
슬슬 약이 오른 그는 바짝 붙어서 사선으로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왼쪽으로 움직였다.
위현룡의 다음 행동을 미리 계산하고 행한 움직임이었다.
빠르게 날아오는 검공을 가까스로 틀어막았으나 측면에서 터져 나오는 우용현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나직한 비명을 지른 위현룡은 얼른 신형을 아래로 던지면서 그대로 흙바닥을 굴렀다.
“이 놈이! 잘도 피하네!!”
우용현은 기세를 줄이지 않고 바닥을 구르고 있는 위현룡에게 일검을 휘둘렀다.
자세를 제대로 잡지도 못했기에, 위현룡은 우용현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또 다시 뒤로 자빠졌다.
그때 낯익은 음성이 위현룡의 귀청을 파고들었다.
[아! 편히 잘 잤다!! 엉? 으악!!]
잘 자고 일어나서 막 기지개를 피려던 홍후인은 눈앞에서 번뜩이는 우용현의 칼날을 보자 그만 기겁을 하였다.
정신을 수습하고 보아하니 저쪽에는 허혜린이 바닥에 주저앉아 몇 십 명의 괴한들에게 포위가 되어 있었고 위현룡은 목숨이 풍전등화와도 같았다.
[앗!! 저 놈은 우용현이 아닌가!!!]
홍후인은 상대가 마교에서 쟁쟁한 우용현임을 알아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도대체 어쩌다 이놈과 대적하고 있는 지 알 수는 없었으나 분명한 것은 우용현은 위현룡이 쉽게 감당해 낼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 놈아!! 왜 내 허락도 없이 이런 강적과 전투를 벌인단 말이냐!!]
홍후인이 답답한 심정에 소리를 버럭 질러봤으나 위현룡은 우용현의 후속공격에 대비하느라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다.
우용현은 위현룡의 신형이 균형을 잡지 못하는 기회를 잡고 무섭게 몰아쳤다.
[계집에게 검을 하나 더 던지라고 하거라!!! 어서!!]
홍후인의 일갈이 끝나자마자 위현룡은 소리질렀다.
“검을 던져 주십시오!”
허혜린은 연이어지는 위급한 상황에 가슴이 철렁하고 있다가 그의 외침을 듣자마자 포위하고 있는 적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주워 공중으로 힘껏 던졌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포위하던 적들은 움찔하여 막으려 했으나 검은 이미 위현룡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죽어라!!”
우용현이 길게 검을 뻗으면서 몸통에 위치한 전중혈을 찔러왔다.
순간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힘껏 솟구친 위현룡은 다른 손으로 허혜린의 검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단전에 모아져있는 귀혼내력을 왼팔로 흘려보냈다.
[됐다!! 이제 본때를 보여주자!]
“미친 놈...이젠 별 짓을 다하는구나!!”
우용현이 비웃음을 보였다.
격전 중 공중에 머무른다는 것은 죽기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강하고 있는 위현룡에게 우용현의 마지막 일격은 더욱 가속되었다.
“위대협! 위험해요!”
이미 막아내기는 늦었다고 생각한 허혜린은 차마 볼 수가 없어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때 우용현의 검공을 홍후인의 검이 급히 차단하고 있었다.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방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절정의 고수가 와도 힘겨운 일일 것이다.
“헉! 이 놈이!!”
상대의 교묘한 방어에 경악을 하던 우용현은 홍후인의 막강한 힘에 밀려 두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위현룡은 지면에 발이 닿자마자 그 틈을 이용해 긴급히 공격해 들어갔다.
청성파 검법의 특징으로 배합한 귀혼검법 변초식이 다섯 차례 터져 나왔다.
우용현은 이미 기세를 빼앗긴 터라 어쩔 수 없이 방어를 하였는데 갑작스럽게 얌전히 있던 위현룡의 왼손 검이 다섯 개의 검영(劒影)을 일으키며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 위력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여 전신에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확실히 홍후인이 내지르는 귀혼검법은 위현룡의 것과는 뭐가 달라도 한참 달랐다.
혼비백산한 우용현은 급히 보법을 밟으면서 홍후인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런데 이번엔 위현룡의 오른손 검이 왼손 검과 똑같이 다섯 개의 검영을 휘날리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홍후인의 검공도 아직 다 막지 못한 상태였다.
우용현은 얼굴이 핼쑥해지면서 피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목숨을 구하려면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으윽!”
우용현은 가슴과 팔에 검상을 입고 뒤로 비틀거렸다.
귀혼검법의 여파로 제복은 난자되어 있었고 그 틈으로는 붉은 선혈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우용현은 즉각 부상의 정도를 진단했다.
다행히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오른 팔의 검상은 경미했다.
허나 이미 위현룡의 무위를 경험한 우용현은 싸우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난 후였다.
그의 수하들은 뜻밖에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어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위현룡과 우용현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대치하였다.
[빌어먹을! 내가 귀혼검법을 시전하면 너보다 훨씬 많은 내력을 소모시킨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구나! 현룡아! 귀혼내력이 모조리 소진되었으니 이젠 어쩌면 좋단 말이냐...]
홍후인의 말대로 위현룡도 그다지 좋은 상황이 못 되었다.
그나마 우용현이 지레 겁을 먹고 함부로 덤벼오지 못하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만약 그가 다시 공격해 온다면 이미 내력이 바닥난 위현룡의 목숨은 파리목숨이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우용현은 가쁜 숨을 헐떡이면서 재공격의 기회를 엿보았다.
[앗! 저 놈이 공격개시를 하려나 보다! 큰일났네!!]
홍후인이 안절부절못하며 소리쳤다.
이때 위현룡은 지체없이 앞으로 한발자국을 내디뎠다.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내력이 고갈된 위현룡이 용감하게 내딛은 이 일보(一步)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즉 나는 너보다 공격할 의사가 더 강하고, 이길 자신도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 적절한 위현룡의 행동은 우용현의 기(氣)를 단번에 꺾어 버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순간 움찔한 우용현은 위현룡의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번민(煩悶)에 휩싸였다.
(젠장...나는 이미 기운이 빠져 가는데 저 놈은 끄덕도 않고 있다. 내 수하들과 협공을 가한다 해도 승산은 절반도 안 되겠구나....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던 중 우용현에게 마침 좋은 수가 하나 떠올랐다.
“항복하라! 안 그러면 소교주는 죽는다!!”
우용현이 택한 방법이란 다름 아닌 치졸한 협박이었던 것이다.
그의 수하들은 장단에 맞춰 얼른 허혜린의 목에 검을 가져다댔다.
[저런 치사한 놈...]
무림인으로써 유난히 자부심이 강한 홍후인은 그의 비열한 행동에 분노가 솟구쳤다.
위현룡도 명색이 대천마교 고수인 자가 설마 저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으므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망설이기만 했다.
그가 머뭇거리자 우용현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어서 검을 버리고 항복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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