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6>
"마교 무사들은....어찌...되었느냐! 혹시...나를 구하러 온 것이냐?"
단중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마교 무사들의 안위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홍후인이 혀를 끌끌 차면서 한마디하였다.
[설마 마교에서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단중이 마교 인사들을 너무나 좋게 보고 있군.]
이때 위현룡이 조용히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교무사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중입니다. 그보다 단대인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합니다."
위현룡은 단중의 심신(心身)을 먼저 안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가급적 현 마교의 상황을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럴 것 없다. 이미 늦었느니라."
"아닙니다! 치료하면 반드시 완쾌되실 것입니다."
위현룡은 단중의 말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음성은 매우 또렷했고 정신도 말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큰 부상 때문에 일시적으로 의지가 약해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위현룡은 부지런히 내력을 주입하는 동시에 단중의 몸을 열심히 주물렀다.
보고 있던 홍후인은 쓴 입맛을 다시며 먼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현룡아...."
단중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위현룡을 바라보더니 부드럽게 불렀다.
"네. 단대인."
"교주께서 생전에 너를 무척 마음에 담고 계셨다. 비록 너와 긴 만남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주께 너는 특별한 사람이었단다."
위현룡은 침울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제가 어찌 교주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단중이 위현룡의 손을 힘없이 잡았다.
위현룡도 떨리는 단중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아 주었다.
"현룡아...부디 거성(巨星)이 되거라."
단중의 이 말은 위현룡의 마음을 무거운 돌로 짓누르듯이 고통스럽게 했다.
마치 저승길로 떠나는 나그네의 마지막 유언처럼 들려왔던 것이다.
"소인은 미천하기 그지없습니다. 어찌 꿈에라도 거성이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자리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이 세상에 몸을 맡긴 채 하얀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래..."
단중은 짧은 신음소리만 냈다.
그가 왠지 피곤해 보인다고 생각한 위현룡은 확신에 찬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단대인, 조금만 쉬었다가 이곳을 벗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제가 단대인을 모실 것입니다."
그러나 단중은 위현룡의 말에 담담한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어떤 기대나 희망도 보이지 않았기에 위현룡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단대인께서 많이 약해지셨구나...)
"현룡아...네게 소교주를 부탁한다."
위현룡은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몸서리를 쳤다.
"소교주는 무사하십니다. 꼭 제가 아니라도 소교주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허나 단대인은 지금 혼자이십니다. 저는 단대인을 반드시 구할 것입니다."
"현룡아...교주께서는 너를...너를...우욱."
순간 단중이 고통스런 표정과 함께 끔찍한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뜻밖의 변고에 위현룡은 사색이 되었다.
"단대인!"
기적적으로 단중을 살렸다고 생각하여 한숨 놓고 있었는데, 눈앞에 일어난 상황이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평온하던 그의 숨소리가 다시 거칠어지고, 동공에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선배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어서 도와주십시오!!"
위현룡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면서 단중의 몸에 귀혼내력을 다시 불어넣기 시작했다.
단중은 정신을 잃어 가는 와중에서 위현룡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의 말라 가는 손등에는 시퍼런 핏줄이 보기 흉하게 튀어나왔다.
"단대인!! 정신 차리십시오!! 정신을 놓으시면 안됩니다!!"
위현룡은 내력을 주입하고 몸을 주무르는 기초적인 응급처치를 반복하면서 그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단중의 몸은 이내 힘없이 늘어져버렸다.
끝내 숨을 거두고 만 것이었다.
위현룡은 강한 충격으로 머릿속이 공허해졌다. 귓가에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느낌이었다.
"단대인!!!!"
몸을 부르르 떨던 위현룡은 주검이 된 단중을 끌어안고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홍후인은 이미 결말을 예견했다는 듯이 씁쓸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단중을 진단할 때부터 이미 회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단중은 위현룡의 내력에 의해 정신을 차린 것이지만, 그것은 그저 임종 전에 잠깐 일어나는 회광반조(廻光反照)(사람이 죽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 한번 맑은 정신상태를 가지게 되는 것.)를 극대화시킨 것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위현룡은 단중의 품속에 얼굴을 묻은 채 엉엉 울어댔다.
홍후인은 예상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그리 기분이 좋지 못했다.
단중이 비록 자신과 철천지 원수지간이긴 하나 위현룡이 저렇게 슬퍼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그의 죽음이 안타깝기만 느껴졌던 것이다.
[빌어먹을...단중... 내가 널 죽일 기회도 수 차례였으나 꾹 참고 살려주었지 않느냐! 기껏 살려주었으면 오랫동안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위현룡이 불쌍해진 홍후인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지로 자제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반시진이 흘렀다.
아직까지도 비탄에 잠겨 있는 위현룡을 홍후인은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의 눈물이 메마를 무렵, 무거운 음성으로 힘들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가도록 하자. 여기는 아직 적지이고 지체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
위현룡이 자리에서 휘청거리면서 일어났다.
그 짧은 시간동안 위현룡은 흡사 백년의 인생풍파를 겪은 것처럼 초췌해져 있었다.
그는 움직이기도 힘든 몸을 억지로 움직여 단중을 등에 업으려 했다.
[이놈아! 지금 뭐 하는 거냐!! 설마 시신을 가지고 이 곳을 탈출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위현룡은 목쉰 소리로 말했다.
"단대인을 이곳에 버려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모시고 가겠습니다."
[뭐? 잠깐! 우선 진정해라. 시신을 업고 어떻게 이 곳을 벗어난다는 것이냐!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단중도 네 행동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현룡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홍후인은 그런 위현룡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단중의 죽음이 큰 충격이 되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 저 쪽에서 먼지구름이 일어나 위현룡쪽으로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빌어먹을...설상가상이라더니...적이다!]
위현룡은 단중을 업고 몇 발자국 내딛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몰려오는 적들을 노려보았다.
단중이 다시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혀졌다. 그리고 위현룡은 검을 뽑아 들고 다가오는 적들을 기다렸다.
홍후인은 그 뒷모습이 왠지 섬뜩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맨 앞으로 흑의를 입은 건장한 사내가 당도하였고 그 주위로 수하인 듯한 무사들 이십여 명이 공세를 취했다.
위현룡은 남아있는 귀혼내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내력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죽더라도 힘껏 싸워 가슴에 응어리진 분노를 풀고만 싶었다.
그런데 흑의인은 검을 겨누는 대신 뜻밖의 물음을 해왔다.
"단대인께서 돌아가신 것이오?"
위현룡은 그 자를 정면으로 노려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단대인만큼은 살리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것만...이미 늦어버렸구나..."
분명 대천마교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단중을 살리러 왔다고 말하고 있었다.
흑의인은 살기를 머금고 있는 위현룡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누여있는 단중에게 큰절을 하였다. 그의 이런 의외의 행동에 위현룡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고 단대인과는 어떤 관계시오?"
위현룡의 물음에 흑의인은 깊은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난 하후산이라고 하오. 단대인은 마교시절부터 흠모하고 있었소이다."
놀랍게도 이 흑의인은 참모 이하민의 직속 수하이며, 대천마교 정보기관인 비영사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하후산이었다.
"내 비록 어쩔 수 없이 명에 따라 계략을 성사시키긴 했소만, 단대인만큼은 살릴 수 있다고 장담하였소. 그런데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다니...아...내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단대인께서 저리 되시지 않았을 것을...내 실수가 크오."
하후산은 괴로운 음성으로 이렇게 자책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 괴로워했던 사람은 위현룡이었다. 그 역시 조금만 빨리 왔더라면 하는 후회에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위현룡은 아무런 말없이 하후산의 언행을 주시하다가 검집에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단중을 들쳐업으려 하는데 갑자기 하후산이 물어왔다.
"어쩌려는 것이오?"
"단대인을 모시고 협철곡을 벗어날 것이오."
"잠깐 기다리시오! 단대인이 돌아가신 것은 안타깝소. 허나 당신을 이대로 보내줄 수는 없소이다. 나는 대천마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고 당신은 마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오. 즉 우리는 서로 적이란 뜻이오. 그러니 순순히 포박을 받으시오."
하후산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수하들이 위현룡을 둥글게 포위하였다.
순간 위현룡의 신형이 우뚝 멈춰서지면서 차가운 한마디가 떨어졌다.
"내 앞길을 막으면 죽을 것이오."
"단대인의 임종을 지켜줘서 고맙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소. 적들을 소탕하는 것이 내 임무이니 말이오."
하후산이 검을 뽑아들자 위현룡도 힘껏 검을 뽑았다.
[젠장...이 놈은 그렇다 치고 이 놈이 데려온 수하들의 수가 너무 많다. 고수들로 보이는데 힘에 부치겠구나. 내력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홍후인의 말대로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귀혼내력이 온전한 상태라면 모르되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그때 위현룡은 주저하지 않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하후산은 위현룡이 마교 고수가 아닌 단중을 곁에서 모시는 일개 중급 무사정도로 짐작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밀고 들어온 공격속도는 자신의 움직임보다 반박자나 빨랐다.
하후산은 깜짝 놀라 황급히 방어초식을 내질렀다.
순간 위현룡은 그가 물러나는 틈을 노리고 성난 범과도 같이 난폭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매우 살벌하기 그지없는 검초인지라 하후산은 경악하며 뒷걸음치기에 급급하였다.
(이 자(者)는 고수(高手)중에 고수(高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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