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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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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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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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아니래도 소용없어(3)

DUMMY

찾는다고는 했는데, 항상 그래왔듯이 말처럼 매끄럽게 되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첫째, 생김새를 알아야했다.

그리고 난 반 랜드레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고 있었다.


둘째, 예상되는 장소를 알아야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두번째부터 막히냐고.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엄청 엄청 넓은 프리실라의 집을 돌아다니며 몇몇 방을 들여다본 것 뿐이었다.

이곳은 분위기가 참 묘한 것이 겉보기나 방 안은 대저택 같은데 그 외 복도나 회랑은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앙상해보였다.


남의 집 평가나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어떻게 중간까지라도 가면 실마리라도 잡을텐데 이건 매듭으로 따지면 끝 꽁지가 너무 짧아 손으로 꼬집어 잡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혹시 잘라낸다면 모를까.


그래, 차라리 잘라낼까?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따지고 보면 반 랜드레이를 우리가 없애버린 것도 아니고 지가 오자고 해놓고서 지 혼자 홀랑 사라져버린 걸 굳이 이쪽에서 걱정해줄 필요도 없었다.

원래도 혼자 다니는 거 좋아하고 뭐 하나라도 거치적 거리면 성깔부터 부리는 대단한 용사님이신데...


"레이크."


거기까지 생각했을즈음 레샤가 날 불렀다.

올려다보는 표정이 영 개운치 못한 것이 뭔가 불만이 있거나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는 거 같았다.


"왜?'


"근데 지금 뭐하는 겁니까...?"


뭐하는 거냐니.


"으응? 반 랜드레이 찾잖아. 혹시 요 머리에 구멍이 나서 내용물이 새나?"


난 장난삼아 레샤의 꽁지머리를 위로 들췄다.


"...밖에서 없어진 사람을 왜 안에서 찾는데요?"


레샤의 눈빛에서 '레이크는 바보에요?' 같은 말을 참은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레샤의 뒷머리를 놓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살 두드려 원래대로 만들었다.


"왠지 안에 있을 거 같지 않냐?"


"그냥 찾기가 싫다고 해요. 아무도 뭐라 안하니까."


"아니 농담하는 게 아니라. 왠지 안에 있을 거 같아."


진심이었다.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암만 그래도 저건 그 반 랜드레이라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닌데요...?"


레샤가 가리킨 건 저만치 앞에서 커다란 궤짝 뒤지고 있는 야우라였다. 아까부터 하는 짓이 저거뿐이라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사람 찾겠다고 할 짓이 아니긴 했다.

남의 집에서 할 짓이 아니기도 했고.


"너 뭐하냐 아까부터?"


나는 몸을 숙여 궤짝 바닥을 뒤지고 있는 야우라의 옷깃을 뒤로 잡아당겼다. 야우라는 아아앜, 하고 목 졸리는 소릴 내며 주륵 따라와 바로 섰다. 그 손에 무언가 걸려있긴 했다.


"봐."


야우라가 그걸 내밀며 말했다.


"주사위."


과연 그 말대로 육면주사위였다. 보통의 것보다 조금 큰, 주먹 반토막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난 툭 던지듯 되물었다.


"그냥 주사위라고. 왜 구박을 하고 그러냐?"


퍽 서운해진 것인지 야우라는 주사위를 도로 궤짝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이 집 사람들한테 들키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정탐을 하고 있었다고 해야지."


남의 집을 뒤지는 녀석 치고는 꽤나 당돌한 답이었다.


"정탐같은 소리하네. 너희 집도 한 번 정탐해주랴?"


"아니야. 여긴 뭔가 있어!"


"뭐가 있는데."


"아무튼! 뭔가 있어. 뭔가가 내 방랑자로서의 감각을 건들고 있다고!"


결국 재밌어보인다는 의미 같았다.

자신있게 소리친 야우라는 다시 평소처럼 돌아와서는 손등으로 내 어깨를 툭쳤다.


"그리고 나도 건들면 안 될거 같은건 눈치껏 안 건들고 있다구."


꼭 칭찬해달라고 하는 뉘앙스가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렇다고 하니 달리 할 말도 없었다.


"아유. 잘했다, 잘했어."


"그래에에 내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말괄량이는 아니다, 이거야."


그리고, 하며 야우라가 말을 이었다.


"뭔가 수상쩍은 점도 발견했어. 여기 장난감 같은게 어엄청 많아. 내가 괜히 아까 그 주사위를 보여준 게 아니라니까? 누가 게임할 때 그렇게 큰 걸 쓰겠어?"


내가 잘은 몰라도 그게 틀린 말이 아닐거란 것은 얼추 알 수 있었다. 야우라의 말대로 여긴 장난감이 많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봤었던 옷 더미 만큼의 장난감이 또 어딘가에 쌓여있겠지.


"왜 이런 걸 모으는 걸까?"


궤짝을 닫기 전에, 야우라가 말했다.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걸 모으는 거지? 장난감 파는 사람인가? 아니면 아직도 이런 걸 좋아하나?"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시는 거 같던데요?"


에반젤린이 말했다.


"애들이랑 놀아주려고? 대단한 사람이네. 엄청 부자인가봐. 나도 뭐 하나만 사달라고 할까?"


"아줌마가 애야?"


그 기똥찬 희망에 나는 찬물을 끼얹던 나는 얼른 팔을 들어 예정된 공격에 대비했다.


"너 뭐라고 했어!"


야우라의 주먹말이다. 팔을 번쩍 들었던 야우라는 휘둘러보기도 전에 내가 막고 있자 손만 부들부들 떨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그러는 너야말로 징그럽게 큰 놈이 어린애마냥 곱게 받아먹고 있더라?"


그리고는 내 의표를 찔렀다.


"그럼 주는데 어떡해. 안 먹어? 너도 먹었잖아. 아아아주우우 좋다고."


"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거든? 거기서 안 먹는다고 하면 완전 이상한 사람 되는거잖아!"


"잡혀들어온 순간부터 이미 이상한 사람이지 뭔 소릴 하는거야!"


하여튼 말이 되는듯 말도 안되는 소리는 세상에서 제일 잘했다. 가끔씩은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자,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에반젤린이 나서 싸움을 중재했다. 늘 있었던 일을 해내는 것처럼 가벼운 투였다. 에반젤린은 팔짱을 끼고 서는 나랑 야우라 사이에 서서 번갈아가며 주의를 주었다. 아주 약간 엄해진 눈빛만으로 말이다. 이건 경험에 의한 학습일지도 모르겠다. 사제님에겐 덤비지 말고 적당히 말 들으라는 그런 학습.


그건 그렇고 학습이라니. 슬리체가 했던 말이 잠깐 떠올랐다.

여전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속한 것처럼 우리가 다툼을 멈추자 에반젤린은 손바닥을 맞대고 빙긋 웃었다.


"지금은 힘을 합쳐서 반 랜드레이 형제님을 찾아야죠."


"아니야."


야우라가 말했다.


"에반젤린은 프리실라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안 궁금해?"


"네? 어... 글쎄요? 다른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좋은거지만... 그게 꼭 정답은 아니지 않을까요?"


"난 부자들만 보면 무슨 일을 하는지 꼭 궁금하더라."


"그럼 물어봐. 가서 좀 물어보라고."


듣다 못한 내가 한 소리를 덧붙였다.


"아니지. 부자들이 자기가 부자가 된 비법을 그렇게 쉽게 알려주겠어? 알고 싶으면 스스로 찾아야지."


참 남의 집 물건을 뒤지는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어... 뭔가 이상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알아봐야한다는 마음가짐은 정말 좋은 거 같아요."


"그래에. 호기심이 죄는 아니잖아. 그치? 그치그치?"


야우라는 보란듯이 내게 힐끔힐끔 눈길을 주며 에반젤린과 히히덕 대었다. 그러다 건수 한 번 잡히면 어쩌려고 저럴까.


"그러니까 이 상자도 한 번 열어볼게."


은근슬쩍 옆의 궤짝을 연 야우라는 그대로 깊은 바닥에 손을 뻗기 위해 반접히듯이 그 위에 걸쳤다. 눌리는 배가 아프긴 아픈건지 괴악한 소리를 내며 손을 젓던 그 애는 어느 순간 펄떡 일어나 손끝에 건진 병을 보았다.


"으아!"


그리고는 비명을 지르며 병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병은 바닥을 굴러 레샤의 발치에 닿았고 레샤는 눈치를 잠깐 보다가 그 병을 주워들었다.


"이거."


한 뼘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유리병 안을 들여다 본 레샤가 말했다.


"머리카락... 인데요...?"


"머리카락이라고?"


내가 묻자 레샤는 아예 병을 내 눈앞까지 들이밀었다. 빈 병에는 흰 끈으로 묶여있는 털뭉치가 들어있었다.


"그냥 동물털 아니야?"


머리카락인지는, 솔직히 확신할 수 없었다. 잘린 털뭉치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끈에 묶여있다고 해서 그게 사람 머리칼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닙니다. 동물털하곤 질감이 달라요. 딱 보면 몰라요?"


"아니. 사람 머리카락을 왜 여기다 둬."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간지할 수야 있지만 그런 걸 이런 구석 방의 궤짝안에 쳐박아두는 사람은 정신 상태의 문제를 제기해 볼 법했다.

즉, 이게 만약 진짜 머리카락이라면 전혀 다른 의미의 머리카락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근데 안 놀라네? 웬일이셔."


"레이크는 제가 놀라 자빠졌으면 좋겠죠. 그죠!"


레샤가 내 옆구리를 푹 찔러 때렸다.


"그리고 이 정도는 별 거 아니라고요? 거뜬하단 말입니다."


특별히 그런 의도로 말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 들릴 수도 있었다. 또 놀릴 의도가 아예 없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으... 그럼. 사람 머리카락이 왜 여기 있는데."


난 옆구리를 살살 문질렀다.


"글쎄요..."


레샤는 그것까지는 짚이는 것이 없는지 말끝을 흐렸다.


"뚜껑을 열어볼까?"


내가 제안했을 때.


"안 돼!"


야우라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질색했다.


"절대 열면 안 돼! 절대로!"


그 기세가 더 호들갑스럽고 살벌할 수 없어 우리는 도리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야우라는 아예 레샤에게서 병을 빼앗았다.


"이런 거 열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니 말도 안 돼. 그게 무슨 짓이야?"


"뭐...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말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절대, 절대로! 머리카락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머리카락엔 그 사람의 영혼이 담겨 있는거라고."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너 저번에 내 머리 잘라줬잖아. 그럼 그건 내 영혼을 잘라버린거냐? 고향에서도 자주 했다며.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거야."


"그건 잘라서 보내준거잖아. 땅으로 돌아간거잖아. 여행을 떠났다가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오는 거란 말이야! 근데 이건 달라! 여기에 무슨 짓을 했을 줄 알고 이걸 버린다는 거야! 그런 짓을 한 사람은 평생 먹을 복이 없을거라 그랬어. 난 그건 못 참아."


그게 대체.


"뭔 소리야. 좀 알아듣게 말해봐."


"그런거야! 모르겠으면 그냥 그런 줄 알아! 아무튼 이건 못 건드려. 적어도 다른 사람이 하게 만들어야 해."


"레샤 네가 할래?"


나는 장난삼아 가볍게 물었다.


"그걸 왜 저한테 그래요...!"


그래, 레샤의 이런 과민한 반응이 재밌으니까 하는 것이다.


"뭐 어때. 별 거라고. 묵혀둔 게 있다면 버려서 잊어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수도 있지. 안 그래?"


"그건 레이크가 영혼을 타락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하는 소립니다."


"영혼을 타락 시키는 방법? 어... 에반젤린 넌 알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에 나는 왠지 이야기에 어울릴 법한 에반젤린에게 물었다.


"어... 글쎄요? 성당에 찾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거 같기도 하고. 음..."


아무래도 흔한 속설은 아닌가 싶었다.


"있습니다, 그런 사상이. 인간의 성장은 여행을 떠났던 영혼의 조각이 돌아오면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거라고."


"너희 까뮤 할머니가 그러셨어?"


"아뇨. 저희는 특별히 안 그랬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요. 그러니까 버려지기 전의 머리카락은 아직 영혼의 조각이기 때문에 그걸 오염시켜 되돌린다면 그 사람의 영혼마저 타락할수도 있다. 그런 얘깁니다."


"그거... 진짜야?"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거죠. 집 문 앞에 침을 뱉는 게 행운을 기원하는 거라고 하는 곳도 있어요."


아니 세상 그런 말도 안되는 풍습이 어디있단 말인가. 미크로셀에서 그랬다가는 대판 싸움이 나도 열 두번은 날 것이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봤습니다."


"어디서."


"어디겠어요...?"


하긴 달리 어디라고 할 것도 없었다.


"너 내가 이상한 책 보지 말라 그랬지."


나는 레샤의 정수리를 잡아 손가락 끝으로 눌렀다.


"아야야야이이, 이상한 책 아니라니까요...!"


"어쨌든!"


그 중간에 야우라가 크게 소리쳤다.


"이건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아버지의 엄마의 사촌의 조상님의, 아무튼 엄청 오래전부터 있던 얘기니까. 그렇다면 그런거야. 알겠어?"


"답지않게 웬 조상님 타령."


"으! 예전에 장난치다가 스렌 머리카락 태워먹어서 일주일이나 저녁을 못 먹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살이 떨려! 일주일이라고 일주일, 알아?! 칠일!"


나는 사정없이 튀겨지는 침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잘못했고만 뭘.


우리가 그런 시답잖다면 시답잖고,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이해 못하겠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집중한 나머지 방의 문이 열렸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난처한 표정으로 듣기만 하던 에반젤린조차 모를 정도로 조용히 등장한 그 사람은 주먹으로 벽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쿵 쿵.

도무지 그런 소리로는 들리지 않을정도로 커서 그걸 아는데도 좀 더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무슨 일이시죠."


텐더라고 했던 그 거구의 남자는 지나치게 낮아 알아듣기 힘든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게 웬 소란이냐는 말로 들렸다. 우리가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럽게 굴고 있었으니까.


"아! 거기 아저씨! 이 머리카락. 버려줘."


야우라는 아주 당당하게 그렇게 말했다.


"야! 넌 아까 저주가 어쩌니 저녁밥이 어쩌니 해놓고서 뭔 부탁을 하는거야."


"귀신은 귀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겐 오지 않는다고 하잖아."


그러니 불운도 믿지 않는다면 오지 않을거란 말이었다.

뻔뻔함이 아주 극에 달해 있다.


"이건. 머리카락이 아닙니다."


텐더가 말했다.


"코울로라고 불리는 동물의 털로 아주 고약한 향이 나지만 독특한 요리에 쓰이기도 하죠."


하며, 텐더는 병의 뚜껑을 열어 우리에게 한 번 냄새를 맡게 해주었다.

맡자마자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냄새였다. 그 뭐랄까. 그 어떤 구린내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오묘한 향이었다.

에반젤린과 레샤도 소매로 코를 가렸고 야우라는 저만치 도망가더니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주방장이 다 떨어졌다고 했는데, 남은게 여기 흘러들어와 있었나 보군요. 이건 제가 오그리에게 돌려주겠습니다."


텐더가 이제 막 방을 나서려고 할 때 코를 쥐고 고통스러워하던 야우라가 대뜸 그 사람을 불러세웠다. 텐더가 다시 뒤를 돌아보자 야우라는 코맹맹이 소리를 물었다.


"저기, 대단히 실례지만. 프리실라는 뭐하는 사람이야?"


물어보라고 했더니 정말로 물어보고 있었다.


"프리실라 님은... 달리 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텐더는 담담히 그렇게 말했다.


"없어? 아무것도 안해?"


야우라가 다시 물어도 그렇다고 할 뿐이었다.

거짓말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 일도 안 한다는 것이다.


"아... 알았어. 고마워."


물었던 야우라가 괜히 더 머쓱해질 정도였다.

텐더가 나가고나자 야우라는 어떡해어떡해어떡해를 남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잘됐다. 레이크."


그러고선 대뜸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왜?"


또 무슨 소릴 하려나. 난 퉁명스레


"세상에 너만 그런 게 아니었어."


아,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수 있었다.

그래서 세상 얄밉게 실실거리는 야우라의 머리통을 단숨에 낚아체 팔사이에 끼우고 꽉 눌러버렸다.


"아아! 아아아아! 아파! 진짜 아파! 아파파팦팦파!"


"안 아프겠냐 그럼?!"


쿵 쿵.

한창 응징을 하는 와중에 또 벽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텐더가 문을 열고 머리의 일부만 안으로 들이고 있었다.

나는 구속하고 있던 야우라를 슬쩍 풀어주었다. 암만 눈앞의 녀석이 얄밉대도 그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좋다고 아무한테나 보여줄 순 없었다.


"레이크 아이힐데른 군."


군이라. 오랜만에 듣는 낯뜨거워지는 경칭이었다.


"프리실라 님이 찾으시는데 괜찮으십니까."


아주 잠깐, 나는 아주 잠깐 눈치를 살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나는 프리실라에게 가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 지금 괜히 에반젤린에게 기대하고 있는 걸 보면 싫은 것이 분명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에반젤린은 왜 그러냐하는 듯 날 빤히 보며 고개를 살짝 까닥였다.


"다녀오세요.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봐요."


에반젤린은 되려 날 떠밀었다.

믿고 있던 쪽에 발등을 찍히게 된 나는 별 말 없이 텐더를 따라나섰다.


그래. 그게 맞지. 아무래도 지금 상황엔 그게 맞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대접해준 집주인이 찾는데 할 얘기 정돈 들어주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지.


텐더를 따라서 방을 빠져나와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른 나는 이윽고 다른 방앞에 도착했다. 텐더는 기별도 없이 문을 열더니 들어가보라고 내게 손짓으로 말했다.


이래도 되는건가 싶으면서도 시키니 별 수 없는 그런 얼떨떨한 기분으로 나는 방 안에 들어갔다.

방은 거대한 침실이었다. 그것도 훨씬 더 큰. 내가 쓰는 침대를 여섯개 정도 합치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커다란 침대 위에 프리실라가 앉아있었다.


그 사람은 날 보더니 반갑기 그지없게 밝은 얼굴로 내게 손짓했다.


"어서 와. 여기 앉아보겠니?"


그리고는 침대 위 제 옆자리를 탁탁 두드리며 날 불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난 그런 우스갯 소리를 혼자 속으로 해버렸다.


작가의말

저는 미처 확인을 못했었는데 지난회가 200회였습니다

와 짝짝 짝짜라작짝짜

여태 읽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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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34. 헛것이야(8) +1 18.10.02 168 6 20쪽
188 34. 헛것이야(7) +2 18.09.29 177 4 19쪽
187 34. 헛것이야(6) +2 18.09.25 182 5 19쪽
186 34. 헛것이야(5) +1 18.09.18 172 5 20쪽
185 34. 헛것이야(4) +2 18.09.09 183 4 21쪽
184 34. 헛것이야(3) +2 18.09.06 186 6 20쪽
183 34. 헛것이야(2) +1 18.09.03 178 9 19쪽
182 34. 헛것이야(1) +2 18.08.30 194 7 15쪽
181 33. 헛것이 아니야(5) 18.08.28 203 8 20쪽
180 33. 헛것이 아니야(4) 18.08.27 146 9 13쪽
179 33. 헛것이 아니야(3) +1 18.08.21 181 7 17쪽
178 33. 헛것이 아니야(2) +1 18.08.18 195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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