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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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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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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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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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10

DUMMY

1년이 지났다.

여전히 무공은 찾을 방도가 없어 보였지만 몸이 차츰 건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는 것이 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배급받는 식사도 점점 질이 좋아졌다. 몸을 단련하면 단련하는 만큼 버틸 수 있는 양의 음식이 주어졌다. 그는 거의 예전의 신체를 되찾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련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금을 탔다. 본래 익숙했던 금이고, 오히려 금을 탈 시간이 너무나 많았기에 오히려 밖에 있을 때보다 더 실력이 느는 것만 같았다. 견딜 수 없어질 때 금을 타면 마음이 가라안곤 했다.

정말 좋은 금이었다. 아무리 자주 만져준다 한들 어느 정도의 관리는 필요한 법인데, 아무 도구가 없음에도 금은 처음의 소리를 결코 잃는 법이 없었다. 좋은 금 정도가 아니라 금이 낡지 않는 어떤 비술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금을 탈 때 특히 가족 생각이 났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 그의 친구들. 모든 것이 평화롭고 행복했을 때, 그 때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미어졌다.

물론 천화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조만간 다시 찾아올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무척이나 오래 그 곳에 오지 않았다. 아예 그를 잊으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어쩌면 정말로 그 곳에서 평생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전에 비해 자신감이 붙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주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마음을 다잡는 것. 그게 태공가의 신념이지 않았는가. 수십 번이나 미칠 뻔했던 과거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찾아온 것은, 그도 그녀를 거의 잊어갈 무렵이었다.

그녀는 큰 소쿠리에 무언가를 가득 담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반가운 마음까지 들어서 자신을 몹시 자책해야했다. 그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오랜만이오.”

“들어가도 되겠느냐.”

“언제 허락을 받았소.”

그녀가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자, 그는 이제까지 그녀의 미색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할 수 없겠다는 아름다움이, 한층 더 성숙해져 있었다. 여려 보이는 외모는 그대로이되, 꽃봉오리가 막 꽃을 만개하려는 것처럼 터질 것만 같은 아름다움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많이 자랐구나.”

그녀가 그의 몸을 보며 말했다. 거의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어조였다.

“소저도 그렇소.”

“고맙구나.”

천화는 기뻐하는 것 같더니 다시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 생각머리는 그대로겠지.”

“비급을 말하는 거라면, 나는 같은 답을 줄 수 있을 뿐이오.”

“여전히 어리석은 도련님인 건 변함이 없군.”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가져온 소쿠리를 뒤집었다. 역시, 술병들이 가득하니 떨어졌다.

“옛날 생각이 나지 않느냐.”

“별로 오래된 것도 아니외다.”

그녀가 말없이 그에게 병을 건넸다. 그는 조금 주저하다가, 그것을 마셨다. 그가 마시는 것을 보자 그녀는 눈에 띄게 좋아하고는 자신도 병을 땄다.

그가 먼저 병을 비운 것을 본 그녀는 또 다른 병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만족스럽게 방울을 핥고는 말했다.

“어제 네 연주를 들었다. 전보다도 더 좋아진 것 같더구나.”

“암습이라도 하려 하셨소.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내가 네가 알 정도로 기척을 숨기는데 어설플 것 같느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가위와 재봉도구 같은 것이었다.

“이게 무엇이오?”

그녀는 대답대신 그의 머리를 만졌다.

윤기가 흐르던 머리카락은 세월이 지나 푸석하여 빛이 사라져 있었다. 조금 기르긴 했으나 주기적으로 자르던 머리는 여인처럼 자라 땅에 늘어져 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무슨 짓이오.”

“머리가 길구나.”

“당연한 것 아니오.”

“가만히 있거라.”

그녀가 가위를 손에 들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각, 사각. 무언가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동안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그녀의 향이 코끝에서 맴돌았다.

“손을 내밀거라.”

그녀의 보드라운 손이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이윽고 또각, 하는 소리와 함께 길게 자란 손톱이 버려졌다.

손톱까지 다 자르자 그녀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훨씬 낫구나.”

“화장이라도 시켜주지 그러오.”

정신을 차렸을 때, 후각을 마비시키던 꽃향기는 물러나고 없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어지러진 머리카락과 손톱을 치우고는 다시 술병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만져 보았다. 여전히 긴 머리였지만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이건 무슨 변덕이오.”

“네게 해로울 게 없는 마음이니라.”

그는 그녀의 주위에 널린 병 중 하나를 잡아 직접 병째 마시기 시작했다. 하나, 둘 수없이 마시기 시작하니 취기가 올라왔다.

취기가 눈을 가리니 그녀가 몽롱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는 더욱 심한 것 같았다. 벌써 열 병을 넘게 비웠다. 그녀의 어깨가 흔들거리더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라앙.......”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많이 취하셨소.”

그녀는 어깨를 좌우로 들썩이더니 말했다.

“너와 있으면, 좋다.......”

“.......”

“짜증나는 정세도, 복잡한 세상도. 너는.......너는 다 잊으라 하지 않았느냐.”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소.”

“라앙.......”

그렇게 말하는 그녀가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는 입을 달싹이면서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지나치게 취한 탓이었다. 그러면서도 새 술병을 까려고 하니, 보다 못한 그가 술병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의 입에 털어 넣었다.

그것을 보는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우음.......”

“무슨 말이오. 그게.”

천화는 안간힘을 쓰는 듯 혀꼬인 소리로 말했다.

“천랑.......비그읍.......”

그러면 그렇지. 공랑은 그녀를 타박했다.

“주사도 꼴불견이구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비그읍만 있으면.......나 안 이래도 댄다.......”

“누가 모르오.”

“그래도 비그블 내노지 않으려나.......”

“기대도 마시오.......어깨에 기대지도 마시오.”

어느새 그의 곁으로 온 그녀였다. 그는 그녀를 조금 힘을 주어 밀어냈다.

“그러엄 나도 수가 있다.......”

천화가 해끅대며 말했다.

“너어, 자꾸 비그블 안 내노면.......나랑 혼인하는 거다아........”

“뭣, 뭣이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헛소리로 흘려듣기에도 심한 말이었다. 그가 정색하니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에헥. 농이다. 농. 사내녀석이, 발켜서........”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몸은 점점 불안해지더니, 눈을 반쯤 감기게 했다. 그렇게 감은 눈은 서서히, 무겁게 내리 앉았고, 그녀는 결국 그의 무릎으로 고꾸라졌다.

“.......”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천연덕스럽게 그의 무릎을 베개처럼 만들어 누운 그녀는 정말로 잠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

금방 눈을 뜰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간신히 멈추었다.

그 독기 어린 모습은 어디가고, 그렇게 가냘퍼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도도했던, 사람 깔보는 것이 특기였던 그녀. 그는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이 올바른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렇게나 무방비상태인 소녀.

지금이라면, 급소를 노려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다고 한들 이렇게 자고 있는 상태에서는 한낱 소녀일 뿐이다.

목숨을 끊지 못한다면, 치명상이라도.......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성적인 이유 때문도 아니었다. 차마. 차마 그녀가 악녀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 평화로운 모습은 순진무구한 아이와 같았다.

실은 악녀의 모습은 가면일 뿐이고, 본성은 아픔에 떠는 소녀에 불과하다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는 그것이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녀의 금을 타고 있으면. 자꾸 생각이 났다. 계속, 멈출 수 없었다.

‘아니다.’

그는 애써 부정했다.

‘나를 가두고, 고문하고, 풀어주지 않는 여자다.’

그는 그의 무릎을 베고 새근새근 잠든 그녀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엑!”

그녀가 일어난 것은 거의 한나절이 지나서였다. 그는 무릎이 무척 아프다고 생각했다. 소피도 마려웠다.

“세상만사 다 잊은 것처럼 편히 주무시더구려.”

“뭐, 뭐냐! 네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자기가 마시고 멋대로 뻗었으면서 말 지나치시오.”

숙취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붉어 보였다.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며 소리쳤다.

“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느냐!”

그녀가 황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것을 본 그는 혀를 찼다.

“그렇소.”

“정말이냐!”

“내가 소저를 죽인 들, 인질로 잡은들 무슨 득이 있겠소. 나는 이곳의 지리도 모르고 내 편이라고는 없는데. 무공도 거의 전부 폐해진 몸으로 간수 한둘이나마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가 침착하게 설명하자 그녀는 더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그런 뜻이 아니........”

당장이라도 도망갈 곳을 찾는 고양이 같았다. 그녀는 허겁지겁 문으로 향하고는 다시 외쳤다.

“굳이 말하겠는데, 네가 요만큼의 살기가 있었더라도 나는 당장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 아니다. 네가 내 몸에 조금이라도 해코지할 생각만 있었어도! 나는 바로 알아차리고 네놈의 경을 쳤을 것이다!”

“사람 마음을 읽는 술법이라도 있소?”

그가 침착하게 말하자 그녀는 더욱 당황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 오냐오냐 해 주었더니 기고만장해서 날뛰는구나. 내 오늘 일을 반드시 기억해 놓을 것이다. 반드시!”

그녀는 새가 나는 속도로 감옥을 빠져나갔다.

‘여전히 멋대로군. 생각도 행태도.’

그는 생각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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