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감금
그녀는 그 뒤로 다시 몇 주가 지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공랑은 천화를 그리워하기까지 했을 때에야 겨우 볼 수 있었다. 다시 만났을 때, 천화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꼭 술을 마신 것처럼 비틀대고 있었지만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조금 달랐다. 중독적인, 기이한 향내가 났다. 이전에도 맡아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훨씬 강했다.
그녀는 철창 밖에서 그를 응시한 채 계속 서 있기만 했다. 보다 못한 그가 그녀를 먼저 불렀다.
“오랜만이오.”
“........”
그녀는 익숙한 몸짓으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아예 제집 들락거리듯 하는 것 같았다. 공랑이 헛웃음을 차며 그것을 지적하려는데, 술 냄새가 진동하듯 강한 향냄새가 느껴졌다. 공랑은 코를 찡그렸다.
“뭘 마신 게요? 술은 아닌 것 같은데.”
“.......랑아.”
그녀는 공랑에게 천천히 다가와, 엎어지는 것처럼 공랑을 덮쳤다.
“뭐, 무엇이오!”
“우웅.......”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후각이 마비되는 것 같은 냄새는 가까이에서 맡으니 정신이 몽롱할 정도였다. 순간 머리가 어찔했다. 비단 여인을 품에 안고 있어서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나는 향은 환각제가 분명했다.
“무엇을 먹은 것이오!”
“나, 힘이 하나도 없다.......”
몸이 화끈거렸다. 공랑은 독향에 취하기 직전 가까스로 그녀를 밀어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옷매무새는 어느새 심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헐렁하게 벗겨져 어깨가 훤히 드러나 그 사이로 쇄골이 빛났다.
“정신 차리시오! 약에 중독된 것이오?”
“우움.......아니야. 매일 먹는 건데. 근데 어제는 좀.......많이 먹었다.”
“환각제를 매일 먹는단 말이오?”
공랑은 자기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나 소리쳤다. 천화가 그것을 보고 멍한 눈으로 말했다.
“걱정해주는 거냐?”
천화가 해실해실 웃어댔다. 공랑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여긴 대체 왜 온 것이오. 빨리 해독제를 먹고 안정을 취해야 하오. 이토록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약이면 가벼운 것이 아니지 않소.”
“해독제. 헤헤.......랑이가 날 걱정하는구나.”
‘맙소사.’
이미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갈수록 많이 느끼는 것이긴 했지만, 그는 그토록 악랄한 여자가 이토록 무방비하다는 것을,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그렇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
“괜찮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독을 먹었다. 아주 강한 독이다.”
“.......”
천화는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조금 전보다 살짝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무서운 독이지. 도망가지 말라고 하는 독이다. 이렇게 가둬 놓지 않아도 된다. 자주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죽는 독이다. 네게도 그런 것을 먹여주랴?”
말을 마치자 천화가 낄낄댔다. 공랑은 천화가 무섭기까지 했다.
“이런 곳에 갇혀서야 선택권이 없는 걸 알지 않소.”
“네겐 먹여도 효과가 없느니라. 너는 목숨이 아깝지 않으니까. 그러니 평생, 평생 여기서 못 나오는 것이지.......”
그리고 그녀는 다시 공랑을 껴안았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안은 듯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감옥 안에서 비실하게 마른 남자와 매일 수련하는 여자의 차이를 감안해도 그녀의 근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우웁!”
“내가 이러는 것이 싫으냐....... 좋지 않으냐.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좋구나. 평생 이렇게 하고 싶구나.”
말을 마치자 천화는 서서히 힘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서 전해지는 것은 향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마음에 자리 잡은 그녀에 대한 연민, 의심, 갈등, 그 모든 것이 그녀를 떼어낼 수 없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자신도 그녀를 강렬하게 끌어안고 싶다는 충동이 악귀처럼 솟구쳤다. 자신도 당황할 만큼 강한 감정이었다.
그녀가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 그리 말했던 것처럼.......복잡한 것들은 다 잊고.......너도, 나와 같이.......”
공랑은 지금 당장 그녀를 내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안 되오!”
공랑은 있는 힘껏 그녀를 밀쳐냈다. 그녀는 몽롱한 눈으로 허우적대며 다시 공랑을 부여잡으려 했다.
“제발, 이러지 마시오.”
“랑아.......”
“소저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오.”
“나 지금 말짱하다.......우리.......한 번만 더.......”
공랑이 천화의 오른쪽 뺨을 내리쳤다.
“그만두시오.”
“으.......”
왼쪽 뺨도 쳤다.
“우.......웁!”
천화는 그제야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그녀는 붉어진 양 볼을 붙잡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공랑을 바라보았다.
“꼴불견이군. 내가 알던 악녀는 최소한 당당하기라도 했소. 술에 취할지언정 약에 휘둘리는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소.”
“나는.......”
“이제 정신이 좀 드시오?”
그녀의 커진 눈망울은 좀처럼 가라앉을 줄은 몰랐다. 어쩐지 안심되는 것을 느끼며 공랑은 그녀가 이제 그에게 벌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도 오래되어 고문다운 고문도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러나 공랑의 예측은 어긋났다. 그녀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읍........우...윽.......흑.........”
“.......괜찮으시오?”
“넌.......”
그녀는 화가 있는 대로 난 표정이었다. 눈물을 계속 흘리면서도 그랬다. 공랑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화는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천화가 공랑의 뺨을 때렸다.
“헉!”
눈이 돌아갈 정도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곧 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사실 머리가 잘못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의 충격이었다. 주먹질을 한 것과 다름없었다.
“나가!”
천화가 소리쳤다.
“나가! 다시는 들어오지 마! 나가라고!”
“저기.......”
그가 아픔을 참으며 대꾸하자 그녀가 시뻘게진 얼굴로 외쳤다.
“나가!”
“.......나가지 못하게 하는 쪽은 그쪽 아니오?”
그녀는 눈을 크게 뜨더니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귀 끝까지 빨개진 얼굴로 쏘아붙였다.
“.......누, 누가 몰라서 한 말인 줄 아느냐! 나도 더 이상 못 참는다. 내가 내쫓을 거다. 네 놈은 갇혀있을 자격도 없어. 비급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됐으니깐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그런 말을 마친 그녀는 나는 듯한 속도로 감옥 문을 닫고 달려 나갔다.
공랑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긴 시간동안 고민하고 말았다.
- 작가의말
하루에 두 번 올릴 수도 있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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