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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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최근연재일 :
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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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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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6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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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홍련-2

DUMMY

‘어머니.’

동우가 생각했다.

‘아들이 오늘 불구가 되나 봅니다.’

그런 그의 생각은 아는지 모르는지 홍련이 신나게 떠들었다.

“부사님의 손가락은 열 개가 있고, 마찬가지로 발가락이 열 개가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하나라면 괜찮을 진데 스무 개 모두 탈이 나면 어찌할지 소녀 알지 못하옵니다. 너무 끔찍한 일이라 거기까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또, 거기까지 다 부러지고 나면 이제 부러질 곳도 얼마 남지 않습니다. 소녀 간단한 탈골은 치료할 수 있으나 허리나 목이 부러지면 치료할 방도를 모르옵니다.”

“이.......”

“자, 아~하시옵소서. 아~”

홍련이 아기를 어르는 목소리로 달래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약을 삼켰다. 자신이 상상했던 약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독약은 아닐지라도 미약이라든가 아니면 그저 우황청심환이면 너무나 다행일 것이었다.

약이 완전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홍련은 환하게 웃었다.

“부사께선 몸도 이리 튼실하시고 얼굴도 조각 같으신데 어찌 이리 강단도 있으십니까. 소녀 행복하옵니다.”

생글생글 웃으며 떠드는데 동우는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아양 떠는 기방의 기녀들밖에 없을 터인데 이 여자는 그를 꽁꽁 묶어 놓고 기이한 약을 먹이며 잘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남김없이 삼켰으니 말해라. 이게 정녕 뭐 하는 약이냐.”

아무리 생각해도 독약 같았다.

“그게 뭐 그리 중하겠습니까. 소녀 청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부터 들어 주시옵소서.”

뜻대로 안 하면 죽을 판이었다. 동우는 간신히 말했다.

“그래. 들어보자꾸나.”

“아, 잠깐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주시옵소서.”

홍련이 다시 그의 얼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젠 얼굴을 볼수록 치가 떨려왔기 때문이었다.

“워낙 원한이 깊은지라, 소녀 마음을 진중시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나으리의 얼굴을 볼수록 힘이 나는 것 같사옵니다.”

쌓인 원한이 깊은가. 동우 역시 원한이 쌓이고 있는 지경이었다.

“그래. 그렇게 해라.”

그래도 차마 말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홍련은 전혀 마음을 달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일어났다. 그리고 신방에 온 소녀처럼 신나게 방을 돌아다녔다. 거울을 보며 한창 얼굴을 만지기도 하고 동우의 금품을 꺼내 몸에 치장하기도 했다. 그가 소중히 했던 물건들이 가차 없이 꺼내졌다. 그는 화가 치미는 것을 꾹 참았다.

“어딘가 조급하십니까? 하긴 조금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습니다. 그래도........”

“그 물건이 네 물건이냐.”

“에.......오늘 언.......나으리의 손님이온데, 소녀는.”

그런 말을 하며 삐약, 하고 웃어버리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홍련은 방을 계속 난장판으로 만들다가 어떤 글이 써진 종이를 보고서야 광인의 짓을 멈추었다.

“연애편지이옵니까?”

동우는 그렇게 극심한 분노를 느낀 적이 없었다.

“읽지 마! 미친 이 미친년이 지금...”

그게 쓰다만 공문서일지 뇌물수수 문서일지 쓰던 편지인지 네년이 뭘 안다고. 그게 어떤 편지인데. 그게 어떤 편지인데.

“나으리. 지금 화 나셨습니까.”

나긋나긋하게 말하다 갑자기 진지하게 말하니 오히려 오한이 들었다. 동우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을지 상상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온 힘을 다해 절망하는 사이 홍련은 소설책을 보듯 편지를 흡입하고는 말했다.

“...나으리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습니다. 이 점 죄송하옵니다.”

급할 게 뭐가 있겠는가. 밤이 아직 깊은데 빨리 할수록 그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말이다. 협박에 결박에 사생활에 이제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예 풀이 죽어버렸다.

“.......서두를 건 없다. 그런데 뭣 하는 것이냐?”

동우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그의 얼굴을 다시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성공입니다 나으리!”

“뭐가 말이냐.”

“낯이 시퍼러신 걸 보니 독이 성공적으로 퍼졌사옵니다.”

‘하........’

화가 지나치게 올라와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독이 아니라 하지 않았느냐!”

“소녀 천지신명께 맹세하는데 그렇게 말한 적 없사옵니다. 이제 약효가 돌기 시작하니 나으리의 결단이 조금 더 단순해지리라 믿습니다.”

약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말 때문에 죽을 것 같았다.

“무슨 독이냐! 무슨 독인데 먹인 것이냐!”

“전문용어로 무령지독(巫鈴之毒)이라 하옵니다. 매우 귀한 약이옵니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지만 어쨌든 독은 독이라는 것이었고, 그것도 무척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독이었다. 틀림없이 몸에 매우 해로우리라.

“해독제! 해독제가 있느냐!”

“재촉하지 마시옵소서. 그리 빨리 목숨을 앗아가는 독은 아니옵니다. 사람이 죽기까지 적어도 한 달은 걸립니다.”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해독제에에에!”

“나으리, 소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하지 않았습니까?”

홍련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냥 막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명주천을 가져와 쑤셔 틀어막아 숨이 막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폐가 마비될 지경이 되고서야 그녀는 입을 풀어주었다.

그가 간신히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뭘 원하느냐.”

“나으리, 저는 억울하옵니다.”

‘.......내가 더 억울하다.’

아닌 밤중에 이런 미친년과 실랑이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던 그였다.

“소녀 원한이 있어서 부득이 이런 피치 못할 방법을 써 부사께 청을 드리려 하는 것입니다.”

정동우는 황당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정당한 송사라면 날이 밝은 후 정식으로 관에 신고하면 되지 않느냐.”

“지금껏 그러려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이곳 철산에 부임하는 관리들은 죄다 뇌물을 먹어 벼슬자리를 얻어낸 탐관오리들 뿐. 밀린 공사를 처리하기는커녕 부패를 일삼았고, 간신히 제가 말을 올리려 하면 제 아버지와 관련된 일이라며 모두 손을 떼었사옵니다.”

지금 그녀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뭔 짓으로 부사가 되었는지 홍련은 상상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무려 주상전하 앞에서까지 신임을 얻은 그였지만 세간에서의 기준으로는 탐관오리라 불리고도 부족할 테니.

“아버지라면 배좌수시냐?”

“제 아버님을 조사하려는 시늉조차 한 관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만약 홍련이 배좌수의 딸이 맞다면, 그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부사라면 절대 낮은 지위가 아니긴 하지만 결국 변방의 수령. 중앙에서 정계에 참여하기는 꽤 힘든 자리다. 잘 나가는 위인이 이런 곳에 오려고 할 리 없었다. 반면 궁궐과 멀다는 것이 돈을 끌어 모으기는 안성맞춤인지라 감투를 사서 부사가 된 자들이 득실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초에 정동우 자신이 이 자리에 오른 것도 배좌수의 힘이 컸으니. 얘기를 듣자하니 배좌수와 깊게 관련된 일 같은데, 그런 인물에게 섣불리 손을 댈 관리가 많을 리는 없었다.

“저도 정식으로 송사를 벌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패한 관료들은 아버님의 이름만 듣고 소녀를 내치는 터라, 어쩔 수 없이 극약처방을 쓴 것이옵니다.”

“아버님이 네게 원한을 사기라도 했단 말이냐?”

정말 그랬다면 목이 날아가는 한이 있어도 홍련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었다. 목숨보다 중한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였으나 자식이 부모에게 그것이 그의 유일한 윤리였다.

그러나 홍련은 다르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죄가 없으십니다. 죄라면, 모두 그 여자에게 있습니다. 허씨입니다.”

“허씨?”

“저의 계모입니다.”

그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네 의붓어머니가 내게 무슨 짓을 저지르기라도 했단 말이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홍련은 재빨리 동우를 결박하던 밧줄을 끊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고 왔던 겉옷을 보따리처럼 만들어 그 안에 밧줄조각들을 넣었다.

간신히 묶인 몸이 풀려나자 온 몸이 마비 된 것처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격통이 찾아왔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다음번에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홍련이 태연히 말했다. 벌써 날이 샌 것이다. 그는 하룻밤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줄 생각도 못했다.

“다음번에 다시 오겠으니 혹시라도 엄한 생각은 하지 마시옵소서. 크게 다치십니다. 부사께선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직무에 힘써주십시오. 첨언하자면, 그 약의 해독제는 저만 가지고 있으니 헛되이 의원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찾아온 것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

동우는 자신의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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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천랑비급 +2 16.03.23 634 1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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