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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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최근연재일 :
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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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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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

DUMMY

정동우가 허씨를 보며 느낀 것은, 그녀가 홍련과 매우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허씨는 미모의 여인이었다. 나이는 제법 있어 보였지만 아직도 피부가 살아 있었고 기품이 흘렀다. 홍련이 그녀의 친딸이래도 믿을 것 같았다.

그녀가 그에게 천천히 고개를 숙이자 그도 따라했다. 그는 그녀의 인사에서 어떤 종류의 완벽성이 느껴져 내심 놀랐다. 무인이라 들었는데 궁에서 자란 여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철저함이 있었다.

“허계삼입니다.”

“철산 부사 정동우입니다.”

그러자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부사께서 무인들을 보고 놀라지 않으셨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아, 예. 굉장하더군요. 꼭 무림정파의 가문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새로운 계획을 완성했다. 그 정도의 힘이 있는 여인이 분명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말은 더 놀라운 것이었다.

“저희는 정파의 가문입니다.”

“예에?”

“저 역시 무인으로, 철들기 전부터 남부끄럽지 않게 무술을 갈고 닦았습니다.”

그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저택에 들어오면서부터 마주친 수많은 무인들을 생각하니 그제야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부사께서 배좌수님의 가문을 찾아오신 것은 맞습니다. 허나, 저는 그이의 아내이기도 하지만 문주이기도 합니다. 정식으로 소개드리지요. 무림정파 해동문의 문주 허계삼이라 합니다.”

정파 무림가의 문주. 그것이 그녀에게서 나오는 기품의 근원이었다.

자잘하고 미천한 가문은 많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정파라면 그 힘이 시골 부사쯤은 능가하고도 남았다. 물론 정계에 크게 간섭하는 가문은 극히 드물었지만 대들면 크게 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문파였다.

“아,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저희 문파와 남편의 일은 늘 분리하곤 했으니까요. 저희 해동문은 세간에 일에도 관심이 있긴 하지만 무인으로서의 세력은 곧잘 감추곤 합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무술의 도는 별개이니까요. 아직 부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 모르실 수도 있지요. 심지어 같은 고을 사람들도 저희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꽤 됩니다.”

“그래도 제가 아는 어지간한 가문과 견주었을 때 뒤지지 않을, 아니 무림 가문 중에서도 뛰어난 무인만 모인 것 같습니다.”

사실이었다. 권력을 가지려면 무림에도 충분한 관심이 있어야 했다. 정파를 직접 본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 보기에도 굉장한 가문임은 사실이었다.

“과찬이십니다.”

허계삼이 살짝 미소 지었다. 정동우는 그 미소가 홍련과 무척 닮았다고 느꼈다.

“그건 그렇고, 눈빛을 보아하니 단지 인사치레 하러 오신 것은 아니군요.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그의 머리가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역시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곳의 수많은 무인들을 보고 떠올렸던 것이다.

무엇을 택하든 이곳에서는 승산이 없다. 몽운사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충분한 정통성과 무력까지 있다. 결정적으로 이 여인을 거스른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승부수를 건다면 홍련이 아닌 이 여인에게 걸어야 했다.

“홍련이라는 아이를 아십니까.”동우는 허계삼의 눈가가 사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네.”

짧지만 많은 의미가 들어간 말이 분명했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그 아이가 제게 청한 것이 있습니다.”

“그 아이를 만나셨습니까.”

“예. 바로 어젯밤 그러했지요.”

거짓도 협박도 간청도 통하지 않는 상대다. 이 여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진실뿐이다.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허계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를 보지 못한지 몇 달이 되어 갑니다. 간혹 볼 수는 있었지만 전부 저를 죽이러 오는 시도였지요. 부사께서 왜 찾아오셨는지 짐작이 가는군요.”

역시 그랬다. 홍련이 암습의 달인이라고는 해도 허계삼 또한 무림정파의 문주. 홍련의 배는 수련했을 무공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경지일 것이다. 그토록 원한에 차 있으면서 허씨에게 손도 대지 못한 것이 이것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허계삼에게 간신히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한들 그녀를 따르는 수많은 고수들이 홍련의 복수를 가만 놓아둘 리 만무했다.

이 정도 무림 가문의 문주를 동우가 쉽게 잡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증거와 목격자와 진술을 모아도 허계삼이 발뺌하면 그만이다. 혹시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보다는, 오히려 허씨의 보호를 요청하고 홍련을 잡아 해독제를 뜯어내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그러나 그 전에 그는 진실을 알아야 했다. 알고 싶기도 했으나 그 역시 계산해서 나온 질문이었다.

“홍련은 제가 마님을 벌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마님을 벌하지 않으면 저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저런.”

“홍련은 마님이 장화의 살해자라 믿고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너무 직설적이시군요.”

허씨가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역시 미모가 홍련과 닮았다.

그러자 동우의 가슴이 뛰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여인의 미색을 감상한 자신을 자책했다. 호색한의 버릇이 오래 못 참아 날뛰는 것이다.

“진실입니까?”

“담이 크시군요. 여인일지라도 저 역시 어엿한 문파의 문주. 그리고 해동문은, 강합니다.”

어떻게 보면 조그만 협박이라고 볼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동우는 그것이 그저 자신을 놀리는 말임을 알았다.

“제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굳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지금 해동문의 보호를 청하고 있습니다. 해동문이 정말 강하다면 말입니다.”

“보호라. 누구에게로부터 말이죠?”

“아시지 않습니까.”

동우가 말하자 허씨가 소리 내어 웃었다.

“부사께 그 아이가 무서운 협박을 하고 있는가 봅니다.”

“협박뿐입니까. 독까지 먹여 살아있는 시체로 만들어 놓고 저를 조종하려 하고 있습니다.”

“독이라고? 어떤 종류의 독이지요?”

갑자기 허씨의 낯이 어두워졌다. 동우는 불안해하며 대답했다.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나, 근시일 내에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죽는 독이라 들었습니다. 철산의 어떤 의원도 해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무척이나 심각한 일이었군요.”

“그 독에 대해 아십니까?”

“마교에서 쓰는 악랄한 독입니다. 그 아이가 저를 독살하려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잘 알고 있습니다. 덕택에 저도 독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지요.”

동우는 한시름 놓았다 생각했다.

“혹시 그 독을 해독할 방법을 아십니까?”

“무령지독(巫鈴之毒)을 해독할 방법은 천혼초밖에 없습니다.”

이름을 듣자 하니 약초인 것 같았다. 벌써 해독법까지 알고 있다. 동우는 자신의 선택에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그 천혼초라는 것이 약초입니까?”

그러나 정동우에게 말을 꺼내는 허씨의 표정은 탐탁스럽지 않았다.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난다고 하는, 전설과도 같은 약초입니다. 아니, 약초인지도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무령지독의 해독제는 그것으로 만든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그 아이, 저를 죽이고자 마교에서 오랫동안 무공을 수련했던 것으로 아옵니다. 아마 그 때 몰래 빼왔을 겁니다. 확실한 건 천혼초는 마교에서도 귀한 약재일뿐더러 마교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사께서는 그 아이에게서 직접 해독제를 받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동우는 망연자실했다.

“혹 홍련을 이쪽에서 먼저 잡아 해독제를 빼낼 수 있겠습니까.”

“순수하고 어리석지만, 독한 아이입니다. 자기 손으로 부사께 해독제를 넘기지 않는다면 얻을 방도가 없을 겁니다. 갖은 고문을 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하아.......”

“지극히 정론에 의한 설득조차 통하지 않는 아이입니다. 저는 그 아이를 오래 전에 포기했습니다.”

“그렇다면 홍련의 의심은 오해였던 것이군요.”

동우가 그렇게 말하자 허씨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부사께서는 진실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목숨을 원하십니까?”

목숨. 그렇게 말하려고 했으나 그는 말하기 직전 마음을 바꿨다.

“둘 다면 안 됩니까?”

“물론 둘 다도 괜찮지요. 교섭할 줄 아시는군요.”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입니까?”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 부사께 알려드리기 싫습니다.”

굉장히 애매한 말이었다.

“제가 장화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들으실 수 없습니다. 그건 장화를 욕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투를 보아하니 허씨는 장화에 대해 분노나 질투보다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홍련이, 그 애는 지금 부사께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부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애의 악행을 끝내야겠지요.”

동우의 가슴 속에서 안도감이 퍼져갔다.

“도와주시는 겁니까?”

“해독제까지 뺏어드리겠습니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꼭 부사님만을 위한 일은 아닙니다. 그 아이가 불쌍한 탓도 있고, 무엇보다 제 남편 때문에.......”

강철 같던 그녀의 표정이 일순간 변했다.

“언젠가 제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그리고 그 아이가 좁은 틈이라도 노리면 어찌 될지 두렵습니다. 제가 무너지면, 제 남편도 무너집니다. 그이는 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전 그이를 정말로 사랑합니다. 그걸 망칠 수는 없지요.”

그녀의 얼굴에서 격한 감정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 그는 홍련과 허씨가 왜 서로 닮았는지 깨달았다. 허씨의 남편에 대한 애정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꽤 심한 것 같았다.

“조금 흥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괜찮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 아이가 저를 어떻게 벌하라고 했지요?”

그는 말하는 김에 홍련을 처음 만난 것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암습에 대한 것부터 곤장 100대에 이르기까지 말하자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아이는 저를 아직도 잘 모르는군요. 고작 100대로는 티도 안 납니다.”

“너무 자신하시는 것 아닙니까? 건장한 무인도 수십 대를 맞으면 평생......”

“살이 찢기고 뼈가 마디마디 부러져도 참아낸 것이 홍련이보다도 어렸을 때입니다. 해동문의 무술은 신체의 팔다리 모두를 강화시키는 강체술. 수련하다 다치고 죽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저 역시 아버지께 얻어맞고 1년 간 앓아누운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저를 때린 강도로 바위를 치시니 바위가 둘로 갈라지더군요.”

동우는 무술로 그런 초인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그 아이를 속이려면 단순한 속임수로는 안 됩니다. 제가 정말로 관아에 출두하여, 진심으로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저도 저 자신을 속일 정도여야 하고 부사께서도 그리하셔야 합니다.”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속으로는 무척 고마웠지만 짐짓 말리는 척 했다. 그러자 허씨가 바로 대답했다.

“속보이는 말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예, 감사합니다.”

역시 그녀를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아이는 부사께 오늘 밤도 찾아올 것입니다.”

허씨가 말했다.

“밤에 제가 관아로 가면 그 아이는 당연히 수상하게 생각하겠지요. 부사께 믿을 만한 호위를 붙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내일이 되면 제게 맡겨주시면 되니, 부사께선 오늘 밤을 넘겨주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우가 손사래를 쳤다. 그런 것쯤은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이제 그가 홍련을 휘두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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