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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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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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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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3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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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홍련

DUMMY

부푼 마음을 안고 침소에 들자 당연하다는 듯 홍련이 그를 찾아왔다. 그녀는 조금 주저하는 것 같았지만 동우의 표정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나으리 생각으로 아무것도 못했나이다.”

“걱정해주니 고맙구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동우는 대답하기 전에 홍련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예쁘다.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보는 것이 사랑스럽다. 어쩌면 곱게 미친 탓에 더욱 미모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바로 그녀를 광인이라 속단하기엔 그녀와 보낸 시간이 너무나 짧았지만.

그가 말하지 않자 홍련이 발을 동동 굴리며 말했다.

“왜 말해주시지 않습니까. 혹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까?”

“아서라. 내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느냐. 몽운사에서 협박하는 것도 지쳤는데 허씨까지 끌어들이니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넌지시 떠본 말이었지만 홍련은 그를 패대기치지도, 투정을 부린다고 협박하지도 않았다. 일단 덮어놓고 협박하던 첫날밤과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우는 그렇게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 변화가 의문스러웠다.

“죄송합니다. 소녀 부사님의 마음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알았으면 되었다.”그녀는 그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르르 다가와 그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의외로 솜씨도 좋아서 긴장으로 뭉쳐 있던 근육이 사르르 풀렸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마음이 놓였다. 그녀가 그를 밟아서자고 한다면 수천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아예 그 쪽에서 저자세로 오니 주도권을 잡은 것이 동우가 되어버렸다.

“.......몽운사 주지는 네 언니 이야기를 하자마자 벌벌 떨더구나.”

“그럴 수밖에 없사옵니다. 저도 그 때 주지의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아쉽나이다.”

“끝끝내 버티다 결국 허씨에게 책임을 떠넘기더구나. 덕택에 주지를 잡아들이는 것은 어렵게 되었지만 허씨는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

“괜찮습니다. 허씨만 있으면 됩니다. 주지는 별 것 아니옵니다.”

어깨를 누르는 손이 조막만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풀고는 그의 몸에 밀착해서 앉아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다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동우는 점점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말이야 예상한 대로 나왔지만 그녀의 행동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홍련은 아예 그의 팔을 만지작거리기까지 했다.

“허씨는 완강히 부인했다. 그렇지만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관아에 출두하겠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곤장을 때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참으로 잘 하셨습니다. 허씨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여인입니다. 그 버릇과 습성까지 완벽히 계산하여 짠 계략이옵니다. 허씨는 스스로 곤장을 맞을 것입니다.”

“만약 맞지 않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

“일단 관아로 오는 순간 허씨는 진 것입니다. 제가 결계에 대해 말해드리지 않았습니까? 소녀의 결계는 효과적으로 무공을 약화시키는 것도 있습니다.”

동우는 조금 불안해졌다. 아예 사람에게 대놓고 해를 끼치는 결계도 있었단 말인가.

“그런 결계를 관아 곳곳에 만들어 놓겠다는 말이냐?”

“허씨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아무 탈도 없을 터이니 염려 마시옵소서.”

이거 어떻게든 다시 허씨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가 이길지의 신뢰성을 본다면 허씨가 훨씬 높기는 했다. 그래도 불안한 건 매한가지라 전날 허씨에게서 더 자세한 말을 들을 걸 하고 조금 후회가 되었다.

“내가 본 허씨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다치지 않고 끝낼 수 있겠느냐?”

“나으리, 절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

홍련이 눈을 반짝였다.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행복해지는 말이옵니다. 소녀 너무나 황송하나이다.

그 모습을 보니 동우는 무척이나 심란했다. 정말 그를 믿고 있는 눈이었기 때문이었다. 의혹을 품은 사람들, 대놓고 거짓을 말하는 자,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의중을 읽을 수 없는 자들은 많이 만나 보았다. 그러나 홍련 같은 인물상은 만난 적이 없었다.

하긴 미친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었으니.

“.......나는 단지 관아가 엉망이 될까봐 걱정되어서 그렇다.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도 곤란하지 않느냐.”

“조용하고 빠르게 끝낼 자신이 있사옵니다. 이번에도 저를 믿어주시면 되옵니다. 저도 부사님을 믿사옵니다. 아아, 꿈만 같사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마치 순진무구한 소녀의 눈망울 자체라 그는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드디어 원수를 갚을 있게 되다니........”

“그 정도더냐.”

결국 묻고 말았다. 쓸데없는 말이었다. 그러자 홍련이 반색했다.

“행복하옵니다.”

“그것이 그리 행복하느냐.”

“왜 그리 물으십니까?”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부사께서 이해하지 못하셔도 상관없사옵니다. 슬픔이 드디어 보상받을 날이 온 것입니다. 소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토록 바라던 복수를 하면 아버님께 돌아갈 것이냐?”

“그 후는 생각해본 적이 없사옵니다.”

그녀는 그를 향해 헤벌쭉 웃었다.

“아버님은 허씨의 만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제가 복수를 끝마치면 자연히 슬퍼하시겠지요. 저로서는 원수를 갚은 셈이오나 그 사실을 숨기고 아버님께 아무 일 없단 듯이 돌아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버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단 집에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이냐?”

“소녀 어려서부터 제 친어머니와 언니 말고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준 일이 없습니다.”

갈 곳이 없다는 거겠지. 어처구니없을 만큼 불쌍하고, 또 한심하며,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그랬느냐.”

홍련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마치 꼭꼭 숨겨든 마음을 열어보기 싫다는 것 같은 태도였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다.”

“말해줄 수 없느냐?”

“소녀 부사께 큰 은혜를 입었으니 부사님이 정말 궁금하시다면 말해야겠지만.......정말 말하기 싫사옵니다.”

동우는 포기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기 싫다면 되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홍련이 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동우의 마음도 조금 풀어졌다. 뭐가 어떻게 되든 아마 이 여인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감상적이 되는 것 같았다. 내친김에 해독제를 빨리 내 놓으라 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말해 의심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독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겨우 생긴 홍련과의 좋은 기류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해독제야 다음날 받게 될 테니 조금 느긋해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어, 뒤의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해드렸지만, 실은 어젯밤 곰곰이 생각한 것이 있사옵니다.”

“그래. 무엇이냐.”

다음 대답을 듣기까지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있는 대로 꼼지락거리더니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동우는 이 여인이 보통 정신이 아니니 또 순간적으로 몽둥이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뒤이어 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소녀 이제 더 이상 의지할 이도 사모할 이도 거의 남지 않았나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은 저를 결코 배반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게 누구냐.”

“소녀 일이 끝나면 부사께 몸을 의지하고자 합니다.”

허씨와의 일이 잘 끝나면 뭐라 말해도 상관없을 말이었지만 동우는 왠지 섣불리 말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안 된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홍련의 눈이 촉촉이 젖기 시작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금방이라도 그에게 떼를 쓸 것 같은 아이 같은 형상으로 홍련은 동우를 바라보았다.

“제가....... 싫으십니까?”

도저히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홍련은 조심스럽게 동우에게 다가오더니 그를 껴안았다.

“저는.......부사님이 좋사옵니다........”

고작 며칠 가지고 그렇단 말인가. 역시 기이한 여자였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소녀 고백하겠습니다. 처음의 포옹은 부사님이 독을 견딜 수 있는 강한 남자인지 알아보려 했던 것이옵니다. 부사님의 심장박동 소리가 얼마나 건강한지도 들어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부사님을 꼭 껴안고 있던 것이옵니다. 부사님이 전임 부사들처럼 약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맙소사.

“그러나 그렇게 안고 있을 때 깨달았습니다. 소녀에게 부사님의 마음이 전해진 것이옵니다. 처음에는 소녀도 착각인 줄 알았지만 하루 종일 생각해보니 아니었습니다. 소녀에게 전해진 것은, 부사께서 진실한 분이라는 예감이었사옵니다. 그건 제 언니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이었습니다. 소녀 어리석어 지금에야 겨우 그 사실을 깨달았나이다.”

‘내가?’

이 여자가 지금 무엇이라 말하는 것인가. 애초에 홍련은 그를 완전히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그녀를 따를 생각조차 없었다. 그리고 끝까지 그녀를 속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거짓말하는 데에 있어서 둘째라면 서러운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하루 이틀 만에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이상한 것이다. 그는 주저했지만 이것만은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네가 잘못 안 것이다. 완전히 착각했어.”

“소녀의 감은 정확하나이다.”

“아니. 덮어놓고 나에 대해 네 입맛대로 확신하는 것부터 좋아 보이지 않는구나.”

“나으리야말로 자신에 대해 잘 모르십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이 제일 모르는 법입니다.”

“너는 그것을 잘 알 수 있단 말이냐?”

“소녀 한 명의 여자로서 부사님을 잘 알 수 있었나이다. 부사꼐서는 진실한 사랑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착각과 망상의 행진이었으나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동우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허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안 된다 했다.”

“저희는 이미 여러 밤을 함께 지새우지 않았습니까.”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소리구나.”

정동우는 홍련과 동이 틀 때까지 옥신각신해야 했다. 그저 좋다고 말하면 되는 문제였지만 그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애매하게 말하는 것으로 홍련을 내보내야 했고, 그는 또다시 엄청나게 피곤한 아침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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