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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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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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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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7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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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3

DUMMY

동우는 자신의 방에서 나온 즉시 아전들을 집합시켰다.

놀랍게도 아전들은 그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저마다 그의 침소에서 대화만 해도 들릴 거리에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깨어 있는 사람도 꽤 되었다고 했는데 그 소동을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말 아무 소리도 못 들었냔 말이다!”

동우가 씩씩대자 아전들이 맥을 못 추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럴 리가. 그토록 큰 소리가 났는데 아무것도 못 들었단 말이냐? 누가 들어온 것조차 보지 못했다?”

아전들이 대답하지 못하자 동우는 더욱 화를 냈다.

“그럼 내가 환청을 들었단 말이냐! 환각에게 결박당하고 협박당했단 말이야!”

그들이 동우가 무사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을 읽으니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한 고을의 부사가 생명이 위험하다고까지 생각했으면 무슨 대책을 세워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그들이 하는 말은-간신히 얻어낸 답변에 의하면, 그럴 ‘생각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모조리 매질하고 내쫓고 싶었으나 아전들이 자신을 보는 눈길이 매우 좋지 않았다. 영락없이 귀신에 홀린 미치광이를 보는 눈빛이었다. 애초에 귀신이 있다고 침소를 옮기라는 말까지 들었던 터였다. 더욱 격노해 날뛰고 싶었지만 부임한 둘째 날부터 그런 짓까지 할 수는 없었다.

“오늘 밤은 경비를 강화해라. 오늘 밤만이라도 좋으니 어디 무림인이라도 몇 데려다가 철통같이 침소를 지켜. 정파든 사파든 마교든 관계없다. 실력만 뛰어나면 돼.”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 근방에서 가장 뛰어난 의원을 데려와라.”


아전은 철산에 의원이 많긴 한데 다 고만고만한 실력의 의원들뿐이라 했다.

유일하게 의술의 신선이라 할 수 있는 의선(醫仙)의 경지에 오른 의원이 있지만, 영 고집불통이어서 절대로 자기 자리를 뜨지 않는다고 했다. 직접 가지 않는 이상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어찌 그런 의원이 다 있냐고 길길이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동우는 반강제로 말을 타고 의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이 흔들릴 때마다 독이 더 퍼지는 것이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이리 오너라!”

말을 타고 당도한 곳은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움막이었다. 보통 이름난 의원이라고 하면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차려 놓고 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눈에 띠지도 않는 곳에 산다니 실력이 의심스럽기만 했다.

“냉큼 나와라! 나는 철산 부사 정동우다. 썩 나오지 못할까!”

분명히 집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의원은 한참을 고래고래 소리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폭발할 것 같은 화를 참으며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의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의원은 꼬부랑 노파였다. 동우의 어머니의 어머니보다도 나이 들었을 것 같은 노파. 당장 다음 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그는 누가 누구를 진료한다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헌데 노파는 그의 얼굴을 보자 곧 혀를 찼다.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찾아왔나.”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왜 왔는지 아느냐?”

“예상가는 것이 있어서 그렇다. 진맥을 해야 하니 팔 걷어.”

어딘가 굉장히 건방진 것 같은 노파였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동우가 서둘러 소매를 걷자 노파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알았느냐?”

노파는 혀를 차고는 동우를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제 뭘 먹었냐? 이거 맹독이다.”

동우의 낯이 독을 두 사발 더 들이킨 것처럼 창백해졌다. 혹시나 했는데 그 여자가 했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어떤 독이냐?”

“내가 아주 잘 아는 독이지.”

“도대체 어떤 독이기에 그러느냐?”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체질에 맞지 않는 자들은 하루도 되지 않아 급사하지. 그나마 목숨을 건진 게 용하다만 아마 중화제를 먹지 않으면 한 달 후에는......”

‘사형선고다. 이건 사형선고다!’

동우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해독할 수 있겠느냐?”“내 실력으로는 안 돼.”

“너는 이 고을에서 소문이 자자한 의선이라 들었다. 그런데도 해독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어지간한 병이라면 낫게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사람 다루려 만든 약에 중독되었다면 힘들지.”

“근처에 해독법을 알만한 이는 없느냐?”

동우의 애타는 말을 듣자 노파는 한참을 뜸들이고는 말했다.

“혹시 누군가에게 협박이라도 당했냐?”

노파가 미심쩍게 말하자 동우가 반색했다.

“그래. 그건 어찌 알았느냐?”

“이 약은 마교에서 곧잘 쓰이는 약이다. 용도는 크게 두 가지지. 하나는 쓸 만한 무인에게 먹여 마교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 둘째는 협박하고자 하는 상대에게 먹여 원하는 것을 취하는 것. 어느 쪽이든 이 약을 먹인 사람이 해독제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목숨 기한이 비교적 정확해서 쓰기 편리한 독이니까.”

“그럼 내게 독을 먹인 놈에게 해독제를 받아내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말이냐?”“그것밖에는 답이 없어.”

동우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분노했다.



관아로 돌아오니 벌써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아전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부임한지 이틀이 되었는데 하루는 놀기만 하고 하루는 광인 같은 짓만 하니 당연한 것이었다. 당장 여러 인사들을 만나보고 기본적인 일을 처리해야하는 것을 동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무인들은 구했느냐?”

“예, 부사님.”

전날 본 이방이 한 쪽을 가리키자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드는 우락부락한 장정 셋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안심이 되면서도 불안했다.

“혹시 마교와 관련된 인물들은 없느냐?”

“모두 정파의 무인들입니다. 급하게 불러서 더 이름 있는 분들은 오시지 못했지만 신원은 확실합니다.”

그는 한 명이라도 마교의 인물이 있음을 내심 바라고 있었다. 마교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지는 못했지만 흉흉한 소문의 절반만 맞아도 이런 일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의원이라던 노파의 말을 생각해보면 홍련이라는 여자도 마교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오늘은 침소를 옮기겠다. 수상한 자가 있으면 바로 잡아들여 보고해라.”

“예.”


동우는 밤이 깊어 가는데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서라. 아직 죽을 단계는 아니다.’

동우는 마음을 추슬렀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고 했다. 게다가 이곳은 그의 집이다. 그의 힘으로 고생고생해서 얻은 자리다. 무인까지 대기시켜 놓았다. 침소도 작은 방으로 옮겨서 일부 아전들 말고는 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 잠을 자고 볼 일이었다. 전날 밤을 새운 데에다 하루 종일 뛰어다녔으니 잠이 쏟아졌다. 애초에 무인들 바로 옆에서 잠을 잘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약한 일을 당하긴 했지만 그 여자는 절대 귀신이 아니다. 잡아 족치면 해독제를 뱉을 것이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여자에게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이 든 동우는 곧 지독한 후회와 함께 깨어나야 했다.

“나으리~”

무언가 따뜻한 것이 그를 품에 안는 것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깨어나니 익숙해진 향기가 느껴졌다.

“나으리, 계속 몸이 괜찮으신 걸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제가 왔사옵니다. 혹 저를 기다리셨습니까? 저도 나으리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 여자였다. 동우는 소름이 끼쳤다. 전날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눈앞에서 귀신을 보는 것 같아 입이 얼어붙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헌데, 저 오늘 나으리에게 몹시 실망하였습니다. 바로 의원에게 달려가시질 않나, 귀여운 사내들을 문 앞에 세워두시지 않나. 저를 그리도 못 믿으십니까?”

“여, 여긴 어떻게 들어왔느냐!”

“소저 은신술과 암습은 이미 달인의 경지에 올랐사옵니다.”

홍련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꾸했다.

“말도 안 돼. 밖에 있는 무인들을 다 죽인 것이냐?”

“소녀 그렇게 잔인하지 않사옵니다.”

홍련이 입술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일종의 결계입니다. 그리 대단한 것은 못 되옵니다. 결계 밖 어느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재미있는 결계이온데, 밖에 있는 자들의 정신을 혼란시키고 의심을 없애며 이성을 누그러뜨리는 것이옵니다. 안에서의 소리를 절대 못 듣게 하기도 하지요. 아마 귀신에 대한 소문이 결계에 대한 효과를 더욱 증폭시켰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결계라는 것은 잡귀나 음기를 차단하기 위한 민간신앙으로만 알았던 그는 그녀의 말이 실감나지가 않았다. 게다가 귀신 소문은 또 어찌 알았을까. 동우는 모골이 송연했다.

“낮에 굳이 의원을 찾아가셨으니 별 방도가 없다는 것도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알았으니 당장 해독제를 다오.”

“일에는 모두 순서가 있는 법. 먼저 소녀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소녀 이제 부사께 정식으로 청을 드리려 합니다.”

다시 머리가 아파왔지만 다짜고짜 몸을 묶어대던 전날의 비하면 홍련의 태도는 제법 예의 있는 것이었다. 상복 같은 하얀 소복차림은 그대로였지만 또 몽둥이를 꺼낼 것 같지는 않았다. 당연히 독을 먹여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겠지만.

홍련이 정좌하고 앉자 동우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래, 무슨 말인지 들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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