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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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최근연재일 :
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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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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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장

DUMMY

평안 끝자락의 수막골이라 하면 아는 사람만 안다. 워낙 외진 주막인데다 상인들의 길목과 조금 벗어나 있어 큰 장사는 되지 않는 곳이다. 그렇기에 다른 동네에 놀러가는 토박이들이나 찾는 단골 술집 비슷하게 되어버린 곳이 수막골이다. 주인도 그다지 큰돈을 벌 욕심이 없어 그저 근근이 먹고 사는 정도였다.

사실 그런 곳이야말로 암행어사 정동우가 자주 들르는 곳 중 하나였다.

외진 곳에 있기에 권세가의 눈에 띌 걱정도 없다. 토박이들이 많기에 그 지방의 소식을 빼먹기에는 또 적격이다. 생긴 것도 제법 소박한 것이 운치가 있다.

“할매요. 다 왔어.”

동우는 말에서 내려 옆에 있던 노파를 쿡쿡 찔렀다. 노파는 고롱거리며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아잉, 조금만 더 자면 안 되겠느냐.”

동우는 노파가 그런 소리를 하면 항상 짜증났다.

“할매요, 내가 귀엽고 어여쁜 처자가 그런 소릴 하면 좋아 죽었을 건데 할매는 끔찍하거든.”

“미인은 잠이 많으니라.”

이 노파는 말을 타면서도 졸았다. 그러면서도 말은 잘만 모는 것이 완전히 잠든 것은 아니었지만 동우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내려.”

“노인 공경이라는 말도 모르느냐.”

노파가 툴툴거리면서 내렸다. 동우는 그 틈에 주인을 찾아 방값을 지불했다. 수막골의 주인도 자기가 모시는 할매 못지않은 노파였다. 심지어 귀까지 반쯤 먹어서 고생했다.

동우는 성격 참 한순간에 변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게 그의 본모습이긴 했다.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아랫사람에게 거만한. 그게 출세하면서 즐길 건 다 즐기기에 가장 좋았으니까. 그렇지만 노파를 돌보는 하인 신세가 되자마자 놀랍도록 적응이 빠른 건 그로서도 좀 신기했다.

“나도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자고.”

“그거 좋지.”

‘아이고, 어머니...’

어째 그리운 부모가 생각났지만 노파의 모습은 어머니의 그것과 백팔십도 달랐다. 잠결에 백발이 마구 엉킨 노파는 그야말로 마귀할멈과 딱 닮은 모양새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스레 짜증이 나 더욱 막 대하고 싶어졌다.

같이 지낼수록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동우는 노파에게 존경을 표할 생각은 없었다. 묘한 불쾌감도 있었지만, 노파 스스로가 그걸 아니꼬워했다. 늙어서 서러운데 괜히 존댓말이라도 들으면 더 슬프다는 것이다. 참 특이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수막골에서 묵는 것은 동우에게도 휴식을 의미했다.

부사에서 어사로 직위가 바뀌는 동안 정신적으로 극한의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했다. 잡다한 일이야 능숙하게 처리했지만 역시 그 동안의 야망과 재물 기반을 다수 포기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한동안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 신세라는 것도 싫었다.

뭣보다 매일 밤 냄새나는 늙은 여자와 한 방에서 자자니 자신의 처지가 너무 서글펐다. 자칭 평안 제일의 호색한이던 그가 왜 그렇게 몰락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절망스러웠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성공에 근접했는지 아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도 크고 작은 고을의 관리였던 시절이 눈에 생생히 그려졌다. 그토록 왕처럼 위세를 부리던 자신이 지위를 숨겨야 하니, 이제 비 피할 지붕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신세다. 뭣보다 가장 찔리는 것은 이제 너무 적응이 잘 되어 누구에게든 저자세가 되곤 한다는 것이었다. 도시의 왁자지껄한 주막에서 잠을 청하면 이런 슬픈 생각들이 더 깊어지곤 했다. 그나마 이런 시골의 주막이라면 상쾌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수막골에 묵은 손님들이 모두 잠들었을 무렵, 동우도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어가려고 할 때, 조용하던 밤 주막에 누군가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의원! 의원 있소?”

그 순간 동우는 잠은 다 잤다고 생각했다.

‘젠장.’

“의원 있느냔 말이오!”

안 그래도 예민해져 있는데 오밤중에 목청껏 지르는 소리를 들으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가 비몽사몽하며 장지문을 여니 다른 투숙객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의원을 왜 주막에서 찾아?”

“당신 누구야?”

“어떤 육시랄 놈이 소리 질렀어?”

어둑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동우는 본능적으로 그 소리의 주인이 젊은 청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성년기는 지났으나 풋내기였다. 그 청년이 업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피를 듬뿍 뒤집어 쓴 미모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청년의 손에는 검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평범한 검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거대한 대검이었다.

여인은 청년과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았다. 그녀를 본 투숙객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약을 가져온다 지혈을 한다 야단이었다.

동우는 그 와중에도 재빨리 여인의 미모를 평가했다. 그가 본 것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미인이다. 홍련만큼은 아니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고양이상에 키는 작고 가슴도 별로 부풀지 않았으나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기가 무시무시하다. 경험 없는 사내라면 분명 남자 손도 못 잡아본 아가씨라 생각하겠지만 실은 농염하고 무서운 여자다. 경험이 수십 수백 번은 되었으리라. 그만큼 어떤 남자와 자도 능히 보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너 무슨 생각 하냐?”

“힉!”

정신을 차리니 노파가 그를 보며 한심하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뭣 하는 짓이냐?”

동우는 새빨개진 얼굴로 망측한 생각을 한 자신을 자학했다. 그러자 노파가 획 돌아서더니 여인을 데려온 청년에게 말했다.

“놔둬라. 내가 의원이다.”

노파는 다가온 사람들을 밀치고는 여인을 들어 마룻바닥에 눕혔다. 그 통에 여인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노파의 옷을 모두 적시고 말았다. 노파는 서둘러 진맥을 마쳤다. 그녀는 진맥을 끝내자 꽤 당황한 것 같았다.

“맙소사....... 이건.......지혈은 예전에 했지만 부족해. 피를 멎지 못하게 하는 독이다. 꽤 오랜만에 보는군. 피를 흘린 지 얼마나 됐지?”

노파가 청년에게 묻자 청년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까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부터.......”

“뭐?”

노파가 번개처럼 일어나 청년의 멱살을 쥐었다.

“너 이놈 이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경칠 줄 알아라.”

그러자 청년은 빠르게 노파의 팔을 잡더니 꽉 움켜쥐었다.

“의원님이야말로 못 살리면 각오하시오.”

헛웃음이 날 정도로 가냘픈 소리였지만 동우는 조금 감탄했다. 그건 노파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청년의 얼굴을 보니 그가 여인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필시 서로 볼 장 다 본 사이일 것이다. 같은 집안이거나 연인이거나. 동우는 여인의 색기가 그 청년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지 의심했다. 그렇다면 썩 부러운 녀석이리라. 얼굴도 어지간한 여자는 홀리기 딱 좋을 만큼 곱고 반반하게 생겨서 여인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노파는 심술궂은 얼굴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내가 착각했군. 본래 수명이 여기까지인 처자가 네놈 때문에 살았던 거였어. 남자복도 좋지.”

노파는 품속에서 어떤 꾸러미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바늘 같아 보이는 것이 수십 개는 쌓여 있었다.

“침술도 할 줄 알아?”

동우가 놀라서 묻자 노파가 중얼댔다.

“본래 이런 상처에 침을 쓰는 게 아니야. 임시방편이다.”

그리고 노파는 침을 여인에게 곧장 찌르는 대신 그것으로 자기 손가락을 땄다. 손가락에서 피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나오자 노파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제일 긴 침에 바르고는 여인의 왼쪽 가슴에 찔러 넣었다.

“하필 이런 독이라 생사가 오락가락하게 되었지만 또 다행이구나. 다른 독이었다면 이미 늦었을 터이니.”

그리고 노파는 번개 같은 솜씨로 여인을 지혈한 붕대들을 모두 벗겨내더니 새 붕대를 찾아 둘둘 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 개의 침을 붕대를 뚫고 여인의 몸에 모두 박아 넣었다.

“아예 피가 밖으로 못 나오게 혈도를 막아버렸다.”노파는 그러면서 귀를 대고 여인의 숨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의술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술이야. 본래 강시를 만들 때나 쓰는 짓이지만 내가 지금 이 처자를 살릴 방법은 이 하나밖에 모른다. 다행히 이 처자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 버텨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살릴 수 있소?”

청년이 가늘게 떨며 말했다. 노파는 알 듯 모를 듯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처자에게 달렸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독이 이 처자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배어버렸어. 지금은 수혈도 못한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 꼼수라도 써서 피를 줬을 텐데 이 처자한테 지금 그런 짓을 하면 바로 죽어. 근본적인 놈이 몸에 버티고 있거든.”

노파는 그렇게 말하며 사납게 노려보았다.

“네놈 아는 데로 불어라. 어디서 도망쳤지?”

청년도 지지 않고 노파를 노려보았다.

“그게 중요하오? 빨리 살려내기나 하시오.”

“중요하지. 이 처자를 오래전부터 갉아먹고 있는 독이 무령지독(巫鈴之毒)이니까.”

청년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되었든 독을 해독하든가 하면 될 거 아니오.”

“아무것도 모르는군. 거기 너. 무령지독이 무슨 독인 줄 잘 알지? 이 무책임한 공자한테 설명 좀 해라.”

노파가 동우에게 한 말이었다. 무령지독. 동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청년에게 강렬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거 내가 먹은 독이잖아?’

그리고 그가 독에 대해 말하자 공랑의 입이 쩍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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