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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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최근연재일 :
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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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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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

DUMMY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가슴 풍만한 여인네가 옷섶을 풀어헤치고 올라 타 있다. 숨 막히는 미모의 아가씨라 좋아 죽어야 하지만 자신은 몸이 밧줄로 꽁꽁 묶여 있는 탓에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다.

아아, 어쩌다 이 꼴이 되었을까. 위대한 임금의 나라 화령. 전하의 부임을 받아 인제 인생이 필 날만 남았거늘. 평안 철산의 신임부사 정동우는 자신의 기막힌 신세를 한탄했다.


철산 신임부사 정동우는 부임한지 하루도 안 되는 부사였다.

정동우가 부사 자리를 따내는 데에 얼마나 공이 들었는지 몰랐다. 인맥, 화술, 금상의 신뢰, 그리고 돈. 그는 출신도 어정쩡하고 돈도 없는 애매한 인간이었다. 비록 중앙 정계에는 못 미치더라도 부사 자리를 따낼 수 있던 건 오로지 그의 노력 때문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새 부사가 온다고 자갈돌 하나까지 맨질맨질하게 닦아 놓았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어렸을 때만 해도 상놈이라고 멸시하던 아전들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싱글거리는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부릅뜬 눈으로 부실해 보이는 아전을 하나 집어내니 알아서 뇌물을 바치겠다고 설설 기었다.

‘그래, 전부 굽실거려라!’

한창 그가 흐뭇해할 때 옆에서 그를 졸졸 따라다니던 이방이 말했다.

“장 부사님.”

“오냐. 그래.”

부사란 얼마나 달콤한 말이었던가. 그는 한번만 더 부사라고 불러달라고 조르고 싶었다.

“지방 토호 분들과 면식을 나누시지요. 어르신들께서 부사님께 거는 기대가 큽니다.”

“그래. 가야지. 그런데 네가.......”

“노니모라 하옵니다.”

동우는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잊어버렸다. 뭐 중요한가.

“그래, 이방아! 그건 됐고....... 이 근방에 절색으로 꼽히는 기녀들이 많다고 들었다만?”

“예에?”

이방이 바보처럼 반문했다. 동우는 속으로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어허,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느냐. 철산이 기녀로 얼마나 유명하면 조정까지 소문이 나겠느냐. 당연히 그 중에서도 제일 잘 나가는 기녀들이 있을 것 아니냐!”

“아, 예이. 예이.”

이제야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동우는 혀를 찼다.

“당장 부사께 최고의 기녀들을 모아오겠습니다.”

“이제야 좀 알아듣는구나. 빠른 시일 안에 대령하거라.”

이방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동우는 흥이 넘칠 데로 넘쳐 이방이 자신을 토끼 눈으로 노려본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동우는 주색잡기로 한나절을 보냈다. 신임부사로서 절대 긍정적인 행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 계산된 행보였다. 어차피 신임부사에게 청렴결백함을 기대하는 고을은 별로 없다. 그보다는 아랫사람과 빠르게 융화하고 일찌감치 본색을 드러내 재물을 요구하는 게 더 낫다. 그는 이런 시골에서 부사로 인생을 마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한참을 즐기니 밖이 어둑해졌다. 그러자, 낮의 이방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침소에 드실 시간이옵니다.”

“오냐, 그래. 어디지?”

이방이 안내한 방을 본 동우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방은 왜 이렇게 비좁고?”

“그.......”

“본래 부사가 쓰는 방이 이곳이 맞느냐?”

“아니옵니다.”

“그럼 왜 그 곳은 놓아두고 여기서 밤을 보내라 하느냐?”

“그 방은 쓰시지 않는 것이.......좋습니다.”

“무슨 이유에서냐?”

“원혼이 나옵니다!”

이방이 생각만 해도 싫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부사께선 전임부사들에 대해 듣지 못하셨습니까?”

‘아아, 그거.’

그것은 동우가 비교적 쉽게 부사 자리를 따낼 수 있던 이유였다. 동우가 부사가 되기 전의 부사들이 취임한 당일에 급사했던 것이다. 그것도 연속해서 둘이나. 그것뿐이어도 꺼림칙한데 부사들이 죽은 날 밤에는 여인의 곡소리가 들린다든가, 보초들이 이상한 한기를 느꼈다든가 하는 소문이 조정까지 흘러나온 터였다. 벌써 시끄럽게 굿까지 몇 번 했다고 들었다.

“암. 내 소상히 알고 있다.”

“절대로 그 방에서 주무시면 안 됩니다. 그 참사는 원귀의 소행임이 분명합니다. 부사께서도 변을 당하신다면 제가 평생 발 뻗고 자지 못할 것이옵니다. 아니, 그냥 아예 관아에서 주무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우는 콧방귀를 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단순한 기우가 아니옵니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었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시절부터 이미 귀신보다 도적이 훨씬 무서웠다.

“괜찮다. 내 기가 워낙 장대해서 잡귀들은 얼씬도 못하려니와 나는 귀신을 쫓는 몇 가지 주술도 알고 있느니라.”

“하오나.......”

“되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우니라.”

차라리 들짐승이 나온다면 조금이라도 경계했을지 모르나 그는 있지도 않은 것에 지레 겁먹고 싶지 않았다. 고작 귀신 따위에 내뺀다면 신임 부사의 위엄은 어떻게 되겠느냔 말이다. 아예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 귀신 소문은 소문일 뿐인 것을 경험해본 몸이었다.

그는 이방을 몇 번이고 안심시키고 침소로 들어갔다.

‘그렇게 담이 약해서야. 귀신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그래. 다 미신이야. 아전들 겁먹는 꼬라지 보라지. 우연의 일치라고 그건.’

널찍한 방을 차지한 그는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하이고, 이렇게 못생겼을까.”

잘생긴 그 누구보다도 그가 거울 앞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터였다. 피부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는데도 그의 얼굴은 진흙탕마냥 부스럼이 잔뜩 번져 있었다.

“이 튀어나온 광대뼈하며, 뻐드렁니는 또 어떻고. 아아, 돈으로 얼굴이라도 뜯어 고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이목구비는 철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늘 불만이었다. 그의 길흉이 모두 얼굴에서 나왔다. 관상쟁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풍파 가득한 삶이 되리라 예언한 것도 얼굴 탓이다. 사랑했던 소녀를 떠날 수밖에 없던 것도 얼굴 탓이다. 산적에게 잡혀 노비로 팔려나가지 않았던 것도 이 얼굴 탓이다. 좋은 점이 없지만 하루도 얼굴 생각하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돈과 무관한 유일한 꿈이 있었다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좋아해주는 여자와 짝짓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거울만 바라보다 밤이 되었다.

“허, 춥다. 지금이 겨울인가.”

그럴 계절이 아닌데도 갑자기 서늘한 한기가 들어왔다. 북쪽 지방이라 유난히 추울지도 몰랐다. 아전을 시켜 군불이라도 때라할까 하는데 밖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억울하옵니다.......억울하옵니다.......”

‘힉!’

난생 처음 들어보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야말로 귀신의 곡성이라, 아무리 담이 크다 해도 놀라 자빠질 소리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게 누구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위엄 있게 말한다는 것이 강아지 울음소리마냥 찔끔하게 나왔다. 그걸 들었는지 아닌지, 귀곡성은 끝도 없이 들려왔다.

“소녀 억울하옵니다.......억울하옵니다.......”

허연 장지문에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오는 처녀귀신의 그림자가 검게 비치니 혼이 달아날 것 같았다.

“누구냐? 사람이면 이름을 밝히고 귀신이면.......”

귀신이면 썩 꺼지라고 말하려 했는데 순순히 말을 듣는다면 그것도 무서울 것 같았다.


그 때 장지문이 서서히 열리었다. 그리고 흰 소복을 입은 여인의 형체가 동우의 방 안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동우는 옆에 있던 베개를 팔에 힘줄이 돋을 만큼 꽉 쥐었다.

“네년은 누구냐!”

“소녀, 귀신이 아니옵니다.......”

말을 하는 것이 귀기가 어려 있어 동우는 쉽게 마음을 놓지 못했다. 얼굴도 창백하고 눈도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 보이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장사치의 마음가짐으로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를 여자를 품평하던 그의 생각은 문득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거, 이쁘다.’

제법, 아니 아주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자칭 평안 제일의 호색한이었으니 여자 고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그였다.

‘들어갈 땐 들어가고 나올 땐 나오고.......실하게 여문 몸이로구나. 나이는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까....... 그러면서도 결코 어리게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 처녀는 아니렸다. 허, 아깝도다. 장안의 기녀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미색이거늘.......’

무서움이 가시고 보니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음산한 것이 아니라 요염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강아지상이라 귀여움이 요염함과 섞여 기이한 미색을 자아낸다. 허벅지는 소복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분명 튼실할 것이고 특히 엉덩이가 단단하면서도 통통하여 남자 여럿 홀릴 상이다. 거기가지 여인을 셈하던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정말 귀신이 아니냐?”

그러자 여인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사람이면 사람인 것인데 귀신이 아니냐 하시면 제가 어찌.......”

무언가 애달파하는 것 같은 얼굴이 되자 동우는 속으로 여인의 점수를 더 높게 올렸다. 가만히만 있어도 빛이 나는 여인이 표정을 아주 조금만 바꿔주니 또 다른 매력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잡생각들을 하니 어느새 무서움은 온데간데없이 달아나고 호기심이 생겼다.

“귀신이 아니라면, 어떤 일로 한밤중에 들이닥친 게냐?”

“부사께 드릴 간곡한 청이 있사옵니다.”

“상고라면 낮에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왜 오밤중에 내 침소에 와서 억울하다고 하는 것이냐?”

“지금이 아니면 안 되기에 그렇습니다.”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옷섶을 풀기 시작했다.

가슴 앞에 묶인 매듭이 풀리기 시작하니 속곳이 보이고 그 안에 숨겨진 뽀얗고 부드러운 살덩이가 보이기 시작하는지라 동우는 얼굴이 절로 붉어지며 오만 감정이 다 생겨났다. 이대로 그 탐스러운 가슴을 훌렁 헤치면 좋으련만 여인은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소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오밤중에 미모의 여인이 옷을 벗으며 용서해 달라 청할 만한 것이 무엇일지 동우는 정말로 궁금했다.

“뭘 용서한단 말이냐?”

“일단 가만히 있어 주시옵소서.”

여인은 동우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야말로 꼬집어주고 싶은 귀여운 얼굴이라 그의 표정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겉옷에 숨겨둔 몽둥이를 꺼내 그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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