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로맨스

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최근연재일 :
2016.04.10 07: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3,718
추천수 :
473
글자수 :
163,678

작성
16.03.28 07:30
조회
481
추천
8
글자
12쪽

홍련-4

DUMMY

“제 계모 허씨에 대해 말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내 기억한다.”

“허씨가 제 언니를 살해했습니다.”

“뭐라?”

동우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언니라?”

“제 언니 장화입니다.”

계속 웃고 있던 홍련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표정만 바뀌었을 뿐인데 그녀의 분위기가 싸하게 변했다. 다시 전날의 귀기가 서리는 것 같았다.

“허씨가 정녕 네 언니를 살해하였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소상히 말해 보거라.”

“4년 전의 일입니다. 언니와 저는 병으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 슬픔이 오죽했냐만 저희 가족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근근이 버티어 나갔지요. 그러던 차에 아버지께서 허씨를 아내로 들이신 겁니다. 그리고 곧 얼마 되지 않아 언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시름시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살이라면, 허씨가 어찌 네 언니를 살해했다고 볼 수 있느냐?”

“제 언니 장화는 효심이 매우 깊었사옵니다. 매일같이 아버지의 시중을 들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허씨가 질투를 느낀 것이옵니다. 허씨는 아버지께서 모르시게 항상 언니를 구박하고 음해하였습니다. 심지어 외간남자와 밤을 보냈다는 거짓말까지 지어내어 언니를 괴롭혔습니다. 그 때 언니의 몰골이 어땠는지를 기억만 하면.......”

홍련은 울분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허씨는 그런 식으로 언니가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언니를 걱정했지요. 하지만 착한 언니는 아무에게도, 심지어 저에게도 심정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허씨는 마침내 때를 잡아.......연못에서 언니를 불러내 밀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자살이 아니구나.”

“모두가 자살이라 믿고 있지만 저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때 언니와 허씨가 같은 연못에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동우는 조금 고민했다. 얼추 납득 가는 것 같기도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이야기의 얼개가 맞지 않았다.

“직접 살해하는 장면을 보았느냐?”

“.......그러하옵니다.”

대답할 때 잠깐 홍련이 멈칫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의심스러웠다.

“증거가 있느냐?”

“.......언니는 너무나 착하고 여려, 허씨의 만행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나가듯 제게 하소연한 일은 있습니다. 저는 언니가 죽은 후 그 일의 전모를 낱낱이 파헤쳤고, 그것으로 허씨가 언니를 협박했다는 증거를 잡아냈습니다.”

“무엇이냐.”

“언니는 허씨에게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빚이라?”

정동우는 어느새 홍련이 가하는 위협을 잊기 시작했다. 오히려 호기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정상적인 빚은 아닙니다. 명백한 사기입니다.”

“어떤 빚이지?”

“제 아버님께서 앞을 보지 못하시는 사실을 아십니까?”

“배좌수께서 맹인이시란 말이냐?”

금시초문이었다. 배좌수의 가문은 사실상 철산을 장악하고 있는 실세다. 아무리 수완이 뛰어나다 해도 맹인이 세력을 늘리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역시 배좌수를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늘 대리인을 통해 만났을 뿐이다. 하긴 가문의 수장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면 좋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떤 빚이었느냐?”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몽운사의 주지가 찾아왔습니다.”

홍련이 말했다.

“주지는 공양미 300석을 절에 바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준다고 했지요. 물론 거짓이었지만, 언니는 그걸 믿고 빚을 내어 300석을 절에 공양했습니다.”

“언니의 불심이 깊었느냐?”

“아니요. 절에 잘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언니는 그런 허무맹랑한 말에 속아 넘어갈 만큼 허수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몽운사 주지가 몇 십번이고 설득하여 그리하였다 합니다.”

황당한 이유였다. 아무리 시골이래도 그런 것은 설득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300석이면 초가집 수십 채를 살 수 있는 재물이다. 사이비 스님 중 세뇌 수준의 말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속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제가 의심하여 조사한 결과, 주지의 행동은 허씨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것 외에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부사님.”

갑자기 홍련의 말투가 공격스러워졌다. 동우는 궁금한 것이 산더미였지만 그녀를 더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가 몸을 사리자 그녀는 잠시 후 표정을 풀고는 자기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몽운사 주지가 사기와 협박으로 언니 같은 소녀를 팔아넘긴다느니, 전문적인 말재주꾼을 부려 현혹시킨다느니, 빚을 지게 해 기녀로 노비로 팔아넘긴다는 말이었다. 언니의 경우는 더 잔혹해서 아예 용왕의 산제물로 바치고자 했다는 이야기였다.

거짓이라기에는 너무 허무맹랑하여 오히려 사실 같은 이야기였다. 정상적인 사건이라면 홍련을 다그쳐서라도 더 자세한 정보를 캐물어야겠지만 약을 먹은 이상 주도권을 자신이 잡는 일은 불가능할 터였다.

“하나 물을 것이 있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홍련은 다행히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소녀 듣겠사옵니다.”

“300석이라면 분명 적지는 않지만 배좌수님의 가문이라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재물이다. 헌데 그런 빚을 아버지도 모르게 지고, 아버지께 끝까지 말하지 않았단 말이냐?”

그렇게 말하자 홍련이 그의 눈을 피하며 말을 흐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희 가문은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그건 저희 가문의 사정입니다.”

“그렇다며 너는 왜 이 사실을 배좌수님께 말하지 않았느냐?”

“허씨가 저마저 죽일 까봐 그랬나이다. 이제 그만하시옵소서. 제가 언니처럼 될까봐 얼마나 긴 세월을 숨어 다녔는지 아십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아니면 화를 내겠다. 홍련의 표정에서 딱 드러났다. 그는 다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았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더 할 말이 없사옵니다. 바라오건데 부디 제 언니의 복수를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제 원한을 갚아 주십시오.”

동우는 골치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의붓어머니라. 얘기가 전부 사실이라면 허씨는 홍련을 딸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홍련은 허씨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는다. 혈연관계도 아니니 이미 남남이라 할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원한을 갚는다는 소리는 아니다.

사실 그건 동우의 자기합리화이기도 했다. 무척이나 찝찝했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았으니.

“네 청을 들어주자면 네가 내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허씨의 죄를 낱낱이 밝힐 수 있지 않겠느냐?”

“이야기가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저는 부사께 죄인을 처단해달라는 것이옵니다. 그것도 계모의 신분으로 딸을 죽인 자입니다. 제 언니를 죽인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없을 놈이란 말입니다.”

속이 더 답답해졌다.

“너는 죄인을 처벌해달라는 것이냐. 아니면 네 원한을 그저 마구 풀려 하는 것이냐!”

그녀의 심기를 거스를 각오를 하고 뱉은 말이었지만 홍련은 의외로 담담했다.

“둘 다이옵니다. 어차피 허씨는 중죄인이고, 저는 허씨에게 큰 원한이 있습니다. 부사님의 의무는 그런 죄인을 처벌하는 것입니다. 전혀 거리낄 것이 없사옵니다.”

“만약 허씨가 죄인이 아니라면 어쩌느냐.”

“제가 언니의 살해를 보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저를 믿지 못하십니까?”

홍련의 눈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정동우는 고심했다. 그냥 막무가내였다. 분명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다. 거짓말도 있는 것 같다. 그는 이전에 이런 식의 사건을 몇 번 맡은 적이 있었다. 자신은 무조건 피해자이고 상대는 악마 같은 자이니 죽여주십사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상고하는 자가 맞는 경우가 더 많기는 했지만 아닐 때도 있었다.

그런 사건 자체는 진실을 가리는 데 있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홍련의 일은 달랐다. 그녀는 재판관의 목숨 줄을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깨달았다.

이건 진실이냐, 거짓이냐가 전혀 상관없는 문제다. 자신은 허씨를 무슨 구실을 씌워서라도 잡아내 처벌해야 한다.

이쯤 되면 무인 3명을 손쉽게 따돌릴 실력을 가진 홍련이 다짜고짜 허씨를 죽이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딱히 공적인 판결을 바라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불길한 추측이긴 했지만 그녀는 이미 전임 부사 둘을 죽인 전적이 있었다.

“.......너를 믿는다.”

“부사께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홍련의 기분은 정말 시시때때로 변했다. 그를 삶아 먹을 것처럼 노려보던 홍련은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어쩌면 원래부터 그런 여자였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몽운사 주지와 허씨를 잡아들이겠다.”

“소녀 부사님의 은혜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렇지만 허씨 역시 배좌수님의 사람이니, 잡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시일이 꽤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알아들었느냐?”

“수년을 기다렸는데 그 정도도 못 참겠습니까. 참을 수 있습니다. 헌데, 허씨를 잡아올 때 조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허씨는 보통 사람이 아니옵니다. 무서운 솜씨를 가진 무인이옵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암습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이옵니다. 눈치도 빨라서 부사께서 장화 언니의 일로 부르시면 나오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산 넘어 산이었다. 동우는 홍련이 왜 허씨를 바로 죽이지 않았는가 알 것 같았다.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겠지.

“허나 부사께서 어떤 식으로든 구실을 삼아 공적으로 소환하시면 허씨도 순순히 응할 것이옵니다. 그냥 제 언니의 일을 대셔도 됩니다. 그녀는 그 자신감 때문에라도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겠다.”

“만약 그대로 옥에 가두신다면 손쉽게 달아날 것이니 힘을 뺄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곤장 백 대면 충분할 것이옵니다.”

동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백 대라고? 너는 곤장으로 허씨를 죽이고 싶은 것이냐?”

건장한 남자라도 곤장 서른 대에 병신이 되는 것이 흔했다. 하물며 백 대라면 아무리 무인이라 해도 배겨낼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저 힘을 빼놓는 것입니다. 허씨가 이룬 경지는 만만한 것이 아니옵니다. 오히려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겨우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라면 허씨도 응할 것이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 생각하던 동우는 홍련이 자신을 조종해 허씨를 죽이게 하려 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했다. 그러나 홍련은 다음말로 그것을 부정했다.

“곤장 백 대를 맞추시면 옥에 가두어두십시오. 그러면 그 날 밤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언니의 원한을 갚을 것이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죽이는 것까지 허락할 수는 없다.”

“죽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죽는 게 더 좋을 정도로 만들 뿐입니다.”

동우는 고심했다. 그러나 답은 하나뿐이었다.

“알았다. 그리 하겠다.”

어떤 결정을 하든 일단 그녀 앞에서는 그녀 말에 따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승낙하자 그녀의 얼굴이 밝게 피어났다.

“아아, 정말 다행이옵니다.”

“그래, 됐다. 이제 가 보거라.”

그녀는 갑자기 동우를 힘껏 껴안았다.

“제 말을 믿어주시는 사람은 부사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소복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인지 풍성거리는 느낌이 났다. 동우는 얼굴을 붉힌 채로 대답했다.

“......아직 한 것도 아니잖느냐.”

“저는 부사님을 믿사옵니다. 부사님이 저를 믿듯이 말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동우에게 절을 하고는 오던 것처럼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동우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랑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공지 16.04.11 357 0 -
공지 매일 오전 7시 30분 16.03.15 635 0 -
37 만남-5 +2 16.04.10 401 3 9쪽
36 만남-4 +2 16.04.09 423 2 9쪽
35 만남-3 +2 16.04.08 578 2 8쪽
34 만남-2 +2 16.04.07 433 2 8쪽
33 만남 +4 16.04.06 456 2 9쪽
32 세 번째 장 +2 16.04.05 374 4 10쪽
31 장화신은 홍련-3 +2 16.04.04 402 5 14쪽
30 장화 신은 홍련-2 +2 16.04.03 330 5 11쪽
29 장화 신은 홍련 +2 16.04.02 372 4 9쪽
28 연극 +2 16.04.01 439 4 7쪽
27 다시, 홍련 +2 16.03.31 458 4 11쪽
26 허씨 +2 16.03.30 367 5 12쪽
25 몽운사 +2 16.03.29 483 6 11쪽
» 홍련-4 +2 16.03.28 482 8 12쪽
23 홍련-3 +2 16.03.27 507 8 10쪽
22 홍련-2 +2 16.03.26 606 10 9쪽
21 홍련 +2 16.03.25 596 12 8쪽
20 두 번째 장 +2 16.03.24 707 10 11쪽
19 천랑비급 +2 16.03.23 633 12 15쪽
18 열쇠 +2 16.03.22 600 13 14쪽
17 다시, 감금 +2 16.03.21 594 12 7쪽
16 다시 만났을 때 +2 16.03.21 621 10 9쪽
15 첫 만남 +2 16.03.20 598 11 12쪽
14 그런식으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2 16.03.19 674 12 12쪽
13 이날 잡히지만 않았어도 +2 16.03.18 639 15 14쪽
12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2 16.03.17 742 11 14쪽
11 감금-11 +2 16.03.16 757 15 12쪽
10 감금-10 +5 16.03.15 901 27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