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흑색 광선은 그대로 천장에 원형의 구멍을 내면서 솟아올라가, 내 의지에 따라 9계층 도달 직전에 소멸했다.
“코, 콜록콜록.”
“에취!”
붕괴할 걱정은 없었지만 먼지 안개가 심해지는 바람에 시이나와 이스는 거하게 기침을 해댔다.
“류셀... 그런 거 하기 전에는 얘기 좀 하고 해줄래?”
화려하게 먼지 세례를 맞은 시이나가 짜증을 냈다.
“맞아요, 동감이에요.”
이스도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었다.
“이게 제일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렇게 구멍을 뚫은 것 둘째 치고, 어떻게 올라가려는 거야?”
“비행마법을 쓴다.”
“비행? 그런 것도 쓸 수 있었어?”
“일단 기본적인 마법은 대부분 알고 있다.”
“비행마법이... 기본적인 거였나요...”
중얼거리는 이스와 아직 머리에 암반 가루가 묻은 시이나에게 등을 내밀었다.
“너희들은 쓰지 못하는 건가.”
둘이 서로 마주보는 걸 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내게 매달려라. 한방에 8계층까지 가주지.”
이스는 스스럼없이 달라붙었다. 내 등이 아니고 가슴에 안겼지만.
“잠, 잠깐! 이스 너는 왜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껴안는 건데!”
“혹시나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그치만...”
시이나는 우물쭈물 대면서도 내 등에 안겼다. 나는 졸지에 앞뒤로 여자아이에게 안기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기쁨과 거리가 멀다.
상대가 미소녀라 해도 신체 접촉은 역시ㅡ기분 나쁘다.
“류셀 씨의 옷, 부드러워서 좋네요. 냄새도 좋은 냄새가 나요. 안 그래요, 시이나 씨?”
“무, 무슨 질문을 하는 거야! 류셀, 부끄러우니까 빨리 가자.”
나는 한숨을 한 차례 쉬며 비행 마법을 발동했다. 발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그대로 위로 치솟았다.
바로 옆에서 비명소리와 기분 좋게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목표인 8계층까지 날아올랐다.
시이나는 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바로 쓰러졌다.
“왜 그렇게 속도를 내고 그러는 거야... 간이 떨어질 뻔 했어!”
“그랬나요? 저는 시원해서 좋던데요.”
시이나는 앞이 빙그르르 도는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비행 울렁증이 있는 모양으로, 나중을 위해 참고해 둘 필요가 있었다.
“시이나. 그건 그렇고 빨리 일어나는 게 좋을 거다.”
“응? 왜 그래?”
“골렘이 있다.”
내 말에, 이스가 바로 쌍검을 소환했다. 시이나도 부리나케 놀라 일어나서 대검을 뽑아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금세 안색이 창백해졌다.
“류셀, 저건...”
어둠속에서 걸어 나오는 골렘의 눈이 빛났다.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골렘은ㅡ인간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뭐야... 골렘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래. 저건 골렘이다.”
얼굴엔 아무런 표정을 띄우지 않고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한 손에는 넉클이 장비되어 있었고, 피와 살의 냄새가 났다. 허리춤에 달린 포션 가방 등 장비를 보아서는 생전에는 모험자였겠지.
“잠깐, 저건 누가 봐도 모험자잖아.”
시이나가 주춤했다.
“낮이 익은데... 설마, 반년도 전에 실종되었던...”
뭐야, 지인이었던 건가. 시이나도 참 운이 나쁘군.
“시이나 씨?”
“그... 그럴 리가, 저 사람은 리사 씨의 친구인ㅡ”
“저건 골렘이다.”
나는 그렇게 시이나의 말을 일축했다.
“적이 누군지 잊지 마라, 시이나.”
내가 다그치듯 말했다.
시이나는 뭔가 말을 하려 몇 번 입을 벌리다 다물고, 짧게 말했다.
“...응.”
“골렘은 인조인형. 재료는 돌이나 철 등의 무기물을 사용하는 게 제일 간단하지만, 유기물을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인간을 재료로 만들었다는 거야...? 자이언트 드래곤이...?”
“그래. 그렇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이름에 드래곤이 붙어있으니 무슨 잔재주라도 부렸겠지.”
나는 마안을 발동했지만, 역시 생명이 없는 것에는 먹히지 않았다.
다시금 검을 소환해서 겉으로는 평범한 여성 모험자인 골렘에 향했다.
“
어째서 하위마물들이 있는 계층엔 손을 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만, 드래곤이 있는 9계층에 도달하는 걸 막기 위한 일종의 방위 설치물인가.”
“시이나 씨,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류셀 씨의 말이 맞아요, 아무리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저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골렘이에요.”
이스가 시이나를 다독였다.
“류셀 씨, 여기는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언제까지고 류셀의 힘에만 의지할 수는 없으니까요.”
“알았다.”
일부러 나서려는 짓은 하지 않았다. 방관은 나쁘지 않다.
상대가 제안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나는 뒤로 물러나고, 이스와 시이나가 골렘의 앞을 막아섰다. 시이나는 결심했는지 대검을 들고 골렘에 달려들었다.
쾅!
대검이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꽂혔다. 골렘은 그걸 날렵한 동작으로 피해, 아직 대검을 내리잡고 있는 상태인 시이나를 향해 오른손을 내질렀다.
간발의 차로 몸을 숙인 시이나. 골렘의 주먹은 그대로 지면에 충돌해, 시이나의 대검보다 더 큰 범위로 박살냈다.
시이나는 그 힘에 살짝 놀란 모양이었지만 금방 대검을 빼고 뒤로 뛰어 물러났다.
“시이나 씨, 겉보기로 판단하면 안 돼요. 저 골렘은 인간인 시절보다 몇 배는 강해졌다고 생각하세요. 조금이라도 스치면 신체 일부분이 날아간다고요.”
“...알았어.”
대검을 휘두르며 알았다고 대답한 시이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시이나의 대검이 엉뚱한 곳에 박힌 빈틈을 노려 골렘이 갑자기 치고 들어온다.
시이나의 대검의 크기상 날렵한 움직임은 취할 수 없다.
대검을 놓고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격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이나는 순간 자신의 지인을 죽이는 것에 망설였고, 그 찰나의 순간에 골렘의 넉클이 시이나의 복부를 강타.
“큭!”
웨어울프의 신체로도 버틸 수 없는 위력이겠지. 시이나는 가까스로 이어지는 골렘의 공격을 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쪽 무릎을 꿇고 일어서지 못했다.
피가 흐른다. 내장 파열이다.
“그... 그래도 이건 제 선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에요...!”
시이나가 힘껏 일어나보려 하지만 몸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누구 마음대로 죽으려고 하는 건가. 일어서. 나와의 계약을 잊었나?”
“알고... 있어...”
“시이나 씨!”
대화를 길게 할 여유도 없이 계속해서 넉클이 날아들었다. 이스가 적당히 견제하며 지원 공격을 해주고 있지만 그거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이나도, 이스도 체력이 떨어져가는 느끼는지 호흡소리가 거칠어져 간다.
나는 생각했다.
둘로는 이 골렘 하나를 이길 수 없다.
그런 결론을 내렸으니 이건 역시 시간낭비다.
“실드.”
그렇게 판단한 나는 간단한 마법을 외며 골렘으로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류셀?”
골렘이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고,
다음 순간 내 손은 골렘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
상대 또한 마찬가지로 내 목을 부여잡고 최대한 힘을 주었다. 미리 둘러둔 방어마법이 있으니 쓸데없는 일이라고 알려주고 싶지만 자아도 없는 놈에게 그럴 필요는 없다.
골렘은 버둥대면서도, 고통스러운 표정은 전혀 짓지 않았다. 무표정인 그대로, 어떻게 해서든 내 목을 부수려 애쓰고 있었다.
“죽어서까지 타인에게 조종당하다니, 가련하군.”
내가 읊조렸다.
“문지기 역할은 끝이다.”
“잠깐, 류ㅅㅡ”
나는 오른손을 냅다 꽂아 골렘의 심장부근을 관통했다.
“잠들어라.”
코어 역할을 하던 심장을 부수는 것으로, 인형은 움직이는 것을 그만두었다.
한때 사람이었던 것. 시이나와 무슨 사이였던지 결국 알지 못한 채 그것은 그렇게 쉽게 활동을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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