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검천종
제검천종
테츠는 길게 심호흡 한 후 성력을 펼쳐 냈다. 이젠 손가락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성력 줄기를 뿜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수는 헤아리지도 못할 정도였다. 굳건한 방어벽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때론 공격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한번 뻗어 나간 무기는 최소 백 보 이상까지 늘어난다. 실가닥처럼 된 성력을 손목 굵기로 겹쳐 묶을 수도 있고 한 가닥 실로 바위를 가뿐히 뚫을 수 있는 무력도 지녔다.
테츠는 시련의 장을 끝내고도 성력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성력은 단지 내공에 녹아 운용되는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엘하카드와의 전투에서 진정한 성력을 눈 뜨게 되었다.
발베도니아 사건 이후 엠버스피어 들어앉아 성력을 운용하는 데 집중했다. 성력은 내공과는 별개로 하나의 거대한 힘인 것을 깨달았다.
시련의 장이 끝나고 엘자임이 몸에 걸었던 저주가 완전히 해결되었다. 그로 인해 심장에 걸리던 부화도 싹 가셨다.
오히려 내공보다 성력이 훨씬 쓰기 편할 정도가 됐다. 내공을 사용할 때 성력을 어느 정도 배합하는지도 깨달았다.
여기에 도력까지 뒷받침 되어 주니 신의 영역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기분이었다.
'제검천종'
제 일식 등천비룡.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양으로 수많은 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위로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다시 수직으로 떨어지며 검의 비를 뿌린다. 즉 하늘에서 검의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등천비룡은 검의 개수에 따라 그 피해지역을 늘일 수 있으며 성력으로 쏟아지는 검의 비를 쳐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트리스탄이 깎은 목검을 사용하고 있지만, 잉겔리움 검이 완성되면 무적의 검비가 쏟아져 낼릴 것이다.
성력이 담긴 검은 내공이 담긴 검보다 한층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인다.
검은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종과 횡으로 움직이며 날아다니는 일종의 어검술이다.
제 2식 불사회종
몇 자루의 검이 쌍을 이뤄 원을 그린 뒤 회전하여 적을 공격한다. 이건 톱날이 회전하는 것 같이 원형으로 포진된 검이 회전하며 주위 모든 것을 절단해 버리는 과격한 검법이다. 이건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막강한 검법이다.
제 3식 만검화우
검이 각기 따로 움직이니 매우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인다. 검 하나하나가 회전하며 종횡으로 움직이니 그 경로에 있는 것은 싹 갈아 버리는 검법이다. 백 자루, 천 자루의 검이 각기 따로 움직이며 동선을 그물같이 만든다고 생각해 보라.
제 4식 비월만우
암기와 같이 검이 여러 쌍으로 겹쳐 적에게 폭사해 나가다 적 앞에서 돌연 분리되어 사방으로 쇄도해 들어가는 가장 막기 힘든 검법이다. 검은 뱀처럼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는 데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고 감히 막는다고 생각하지 못할 검법이다.
제 5식 천종비검.
제검천종의 꽃이랄 수 있는 제 오식은 가진 검이 모두 달라붙어 하나의 거대한 검을 만들어 내니 능히 산 하나를 허물어 버릴 수 있는 괴력을 가진 검이다. 군단이 덤비더라도 이 천종비검이 펼쳐지면 경로에 있는 것은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무릇 하늘을 가르고 땅을 뒤흔든다는 검법이다.
목검으로 펼치니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목검은 가루가 되어 부서졌고 트리스탄은 계속 양질의 목검을 깎아 공급했다.
지금 테츠가 일시에 움직일 수 있는 양은 약 팔백 개 정도다 목검의 무게를 생각하면 잉겔리움 검으로는 약 오백 개 정도를 일시에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검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큰일이지만 정말 간단하게 해결됐다. 스케이븐 이킷 클로에서 배운 공허의 샘에 수납할 수 있으니 검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이 막강한 검법은 내공만으로는 절대 펼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보통 어검술은 검 하나만 제어하기도 벅차다. 한꺼번에 수백, 수천 개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제검천종은 신의 검법이라 알려져 있다. 그걸 성력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은 테츠에게는 또 다른 기연이었다.
비록 엘하카드와의 싸움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오히려 더 큰 기연을 안겨준 셈이 되었다.
거의 한 달이 넘어가도록 테츠는 검에 완전히 빠졌다. 벌써 이곳은 한겨울의 매서운 찬 바람이 불어왔고 눈이 쌓이는 계절이 되었다.
올해 겨울은 어느 해보다 더 많은 폭설이 쏟아져 내렸다. 눈 때문에 당분간 테일리아드와의 무역도 중지되었다.
라그가 없으니, 마족의 활동도 뜸했고 엘빈과 알프레드도 무공 수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엠버스피어의 오크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고 트리스탄의 지휘 아래 겨울나기도 무사히 끝마쳤다.
이제 엠버스피어는 오크의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 적응했다. 작은 도시 국가가 만들어진 셈이다.
오크가 이렇게 엠버스피어를 둘러싸고 있으니 인간은 감히 넘어 들어올 수가 없었다.
두 달이 다 되어 가던 시점에 세렌과 칼멘은 라그를 데리고 무림맹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때를 맞춰 메흘린으로부터 보고가 날아 들었다.
테츠는 칼멘과 라그를 엠버스피어에 데려다 놓았다. 세렌은 특별 임무를 받고 엘스칼라 유적으로 들어갔다.
테츠는 메흘린으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정보에 관해 보고 받았다.
"저희가 고생해서 분석한 기록입니다. 제국에서 꽤 유명한 상단들의 물품 흐름입니다. 션사인 글로리의 덕을 크게 보긴 했지만, 잡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다른 업무가 없었으면 더 빨랐을 것입니다."
메흘린은 내민 것은 어떤 무역상의 물류 지표였다.
"노르단의 선장단입니다. 주신 제국 전지역에 걸쳐 고루 분포된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르단의 선장단은 다른 단체와 비교해서 주로 식자재가 큰 비중을 차지 하는 무역상입니다. 특히 술 취급은 상단 중에서 으뜸일 겁니다."
테츠는 물류표를 받아 들고 찬찬히 훑었다.
"여기 이 도시는 뭔가? 세이지포트라···."
"정확히 보셨습니다. 제가 의구심이 들고 있는 도시입니다."
"싱크레이 지역이라. 재미있는 도시인데?"
"네, 보고서에 적힌 바로. 싱크레이 지역은 솔라리스와 드라고나 국경을 접하는 지역입니다. 그 중앙에 세이지포트가 있습니다. 도시의 절반이 솔라리스 관할이고 나머지 절반은 드라고나 관할입니다."
"웃기지도 않는군. 도시를 왜 이렇게 나눠 놨지?"
"과거 드래곤 전쟁 때 도시 수비를 하기 위해 양쪽 군대가 함께 주둔했다가 그리 굳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분쟁이 일어나는 곳은 절대 아닙니다."
"재밌는 도시로군."
"그래서 세이지포트는 양쪽 나라 간의 자연스러운 국제 무역이 활성화된 도시입니다. 타 도시에 비해 상당히 물류 이동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걸 보시면 조금 의아해하실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두드러지게 표시가 나는 것이 하나 있더군."
"상당한 식량 비축분이 들어갔고 수신자는 드 루벤 백작입니다."
"귀족인가···."
"계속 조사하다가 흥미 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루벤 가문의 출신이 아칸에도 한 명 있더군요. 바로 피어스로트 백작입니다."
"피어스로트 백작이라면? 아칸에 있는 케이사르의 첩자···."
"바로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루벤가문으로 사촌지간입니다."
"뭔가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긴 나는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직접 조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솜씨 좋은 제자를 투입할까요?"
"아, 이번 일은 내가 시작한 일이니, 끝도 내가 보는 것이 맞겠지."
메흘린 테츠가 엘하카드에 공격당해 죽음의 위기를 넘긴 것을 모른다. 테츠는 말해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황태자가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고 하는 것은 메흘린과 더불어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황제에게 보고도 이뤄졌을 것이고···.
테츠는 그 일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하카드의 존재에 대해 황제도 알고 있어야 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어. 녹스텔라에 관한 내용인데···."
테츠는 스케이븐의 도시 녹스텔라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엘하카드와 만나 싸웠던 일. 최초로 자신이 힘에 눌려 도망쳤다고 둘러댔다. 엘하카드가 평범한 이브리엄이 아닌 올드 가드라는 사실도 말했다.
"이브리엄 세계에도 계급이 존재 하나 봐. 아주 간단하게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지. 지배층에 있는 존재들이 바로 올드 가드다. 이브리엄 세계에서도 소수라고 전해져. 영감이라면 이 정도만 들어도 대충 알겠지."
"이야기를 들어 보니 황제께 전해야 할 듯싶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말을 꺼낸 거니까."
메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드버드 맹주에게 연락해 아칸의 피어스로트 백작을 감시하라 하게. 조심스럽게 놈의 뒷조사를 시작해. 어쩌면 토끼 굴 같은 것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이 사실은 윌리엄 대공에는?"
"아냐, 시기상조야. 그쪽까지 움직이면 소음이 많아. 당분간 우리끼리 조용히 움직이자고···."
메흘린이 물었다.
"교주님은 신성불가침 조약이 파괴되는 것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어차피 제국 전체를 놓고 피바람이 불 거야. 신성불가침 조약으로 보호받고 싶어 하지만 솔라리스는 오히려 역효과를 보고 있잖아. 이번 발베도니아 사건은 드라고나 전사들이 어찌어찌 해결 해지만 다시 한번 이런 일이 벌어지면 성군의 도움이 절실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토멘트 그놈을 잡아 내지 않으면 양쪽 모두 신성불가침 조약을 해결할 수 없어. 정말 귀찮게 됐어. 녀석들이 세력을 확장해도 황제는 아무런 힘을 보탤 수 없지. 스케이븐이 설치는 것도 조약 때문이니까···. 마교 입장에서도 거추장스러운 것은 맞아."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적은 둘보다 하나가 상대하기 좋지 않겠습니까?"
"후후, 어느 쪽이 적이 되면 좋은지 생각은 해 봐야지."
"그럼 바로 세이지포트로 가실 생각입니까?"
"아니, 이번에는 정말 신중히 처리할 생각이야. 놈들도 어느 정도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됐다고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겠지. 괜히 건드려서 좋을 일은 없어. 아무도 모르게 그림자 속으로 숨어 들어가야지. 그러고 보니 그림자의 왕이 먼저 움직였을 수도 있겠어. 그놈은 유일한 황제의 그림자니까."
"그리고 스케이븐에 대한 일입니다. 아무래도 발베도니아 쪽에서 탈출에 성공한 녀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션사인 글로리를 통해 수신된 첩보에 의하면 사냥꾼들에게 목격된 사례가 보고 되고 있습니다."
"그래? 귀찮게 됐네. 내가 직접 세일럼에게 연락해 두지. 드라고나 왕국도 한동안 바빠지겠구나."
"스케이븐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입니다. 그들이 인육을 섭취한다는 것은 비극이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먹을 게 없던 곳에서 인간만 있다면 어쩔수 없겠지만 제국에는 야생동물이나 먹거리가 풍부할 테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인간을 먹으려 하지는 않을 거야."
"그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이 각성자뿐이라는 것도 걸립니다. 평범한 사람은 아무리 뭉쳐도 놈들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벌써 두 달이 넘어섰습니다. 번식력이 강한 놈들이라면···."
"그게 문제긴 하지. 이제 신성불가침 조약 때문에 발목이 잡힌 것은 성황이 아니라 그들이 됐어. 그걸 노리고 스케이븐을 제국에 풀어 놓은 것이겠지."
"제국은 어쩌면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다. 그래서 더욱 토멘트를 잡아 내야 해. 신성불가침 조약을 해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놈뿐이니까."'
"쉽지 않을 겁니다. 제가 케이사르라도 가장 꼭꼭 숨겨 놓겠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이 관여하지 못하는 곳으로요. 우리의 죽음의 사막처럼 말입니다."
"그래. 하지만 단서는 있어 골드워스홀, 그곳으로 가봐야겠지. 토멘트 성격상 은둔형은 아니야. 나서길 좋아하는 놈이라서 만인의 위에 군림하려 하겠지."
"상황 정리되는 대로 성황께 보고 올리겠습니다."
"스케이븐도 중요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엘하카드라는 사실을 강조해. 녀석이 다시 나타나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주신 제국에 성황과 나밖에 없을 테니까."
"놈들이 혹시 교주님의 정체를 유추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후후, 영감 덕을 크게 봤어. 설마라고 생각하겠지. 내 본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엘하카드도 날 누락된 이브리엄 중 한명이라고 생각하더군. 놈도 내가 누군지 정확히 모르고 있어. 오히려 그렇게 소문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으니까. 당분간 나 혼자 움직일 테니 내 동선에 관해 입 다물었으면 해. 누가 와서 방해하는 것 질색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무림맹에 들르시겠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무림맹은 독단적으로 움직이도록 나 둬. 마교와 달리 그들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말이야."
***
어반마르스 노새렌 장터의 상단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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