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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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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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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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2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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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1)

DUMMY

반짝, 하고 여자는 눈을 떴다.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고개를 천천히 창문 쪽으로 돌렸다. 어스름한 새벽. 5시는 넘었을까? 평소라면 지금보다 1시간 늦게 깨어나는 것이 일상의 시작이었으나 오늘은 어째서인지 일찍 깨어났다.


이상한 꿈이었다. 9살적의 꿈을 꾸다니. 자신이 올해 22번째 생일을 맞이하였으니, 13년 전의 꿈이 아닌가?


여자는 부스스한 붉은 머리칼을 손으로 매만지며 허리를 일으켰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탓에 몸이 뻐근하긴 했으나, 정신만큼은 기이하게 맑았다. 그녀는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작은 회중시계를 들었다. 회중시계는 정확히 5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자그마하게 오늘의 날짜가 떠올랐다. 날짜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어째서 오늘 이렇게 일찍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충복이 그녀의 곁을 떠나있다. 그녀가 여태까지 해왔던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여자, 샤를리즈는 허리까지 오는 자신의 붉은 머리칼을 하나로 묶은 뒤, 회중시계가 놓여있던 탁자에 수북이 쌓인 종이들을 집었다.


그 모든 종이는 왕국의 3대 상단 중 하나인 빈트뮐러 상단 총수의 최종 결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라니언 공작령에 소속되어 있는 대도시, 아케인은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으나 귀족들이 발령받길 꺼려하는 도시이기도 하였다.


근처에 왕국의 가장 큰 항구와 접하고 있는데다가 왕국 내에서 가장 큰 3개의 상단 중 하나인 '바켄바우어'의 남부지부까지 있어 그 도시의 시장이 된다면 제법 뒷돈을 두둑이 챙길 수도 있었지만, 귀족들이 기피하는 이유는 그 매력적인 조건이 있다 하더라도 기피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왕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 마약 '프루덴스'가 유통되는 본거지가 바로 아케인이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중독성을 지닌 마약의 본거지인 만큼 아케인은 활발한 대도시임에도 마약중독자들이 넘쳐났고, 그로 인한 범죄율이 가장 높은 곳 또한 아케인이었다.


왕국에서 '프루덴스'의 복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공표했기에 대낮부터 이 마약을 복용하는 자는 없었지만, 암암리에 활개를 치는 마약상인들과 중독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일만한 묘안은 없었다. 그나마 아케인에 24년째 시장을 맡고 있는 자가 그나마 유능했기에 마약으로 인한 범죄가 줄어들고는 있었으나 그 변화가 미미하여 상부에 보고조차 하기 부끄러운 수치였다.


큰 폭으로 수치가 줄어들지 못하는 것은 마약 상인들의 결속력이 아케인 상부의 그것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마약 상인들의 근거지가 아케인 상부로써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들의 근거지는 다름 아닌 상단 '바켄바우어'의 남부지부였으니까.


"뉘슈?"


왕국 남부 특유의 사투리를 쓰는 사내가 엄지손가락만큼 문을 열고는 물었다. 낮이면 항상 열려있는 '바켄바우어'의 남부지부였으나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문을 닫고는 아주 경계어린 시선으로 방문객을 맞이하였다.


겉으로 알려진 바로는 저녁엔 항상 바켄바우어 상단의 극비 계획을 논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프루덴스의 맛을 아는 자'라면 저녁의 바켄바우어 남부지부에서 통칭 '프루덴스 시장'이 열린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의문의 방문객'은 좁게 열린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문지기가 깜짝 놀라 문을 닫으려고 하던 찰나, 문지기의 뒤에 있던 자가 문지기의 행동을 저지했다. 방문객의 손등에는 네 장의 잎을 가진 검은 꽃이 그려져 있었다. 문지기의 뒤에 서 있던 자가 얼른 문지기를 밀어 낸 뒤 문을 활짝 열어 방문객을 맞아들였다.


"이, 이거 참. 이 시간에 '빈트뮐러'의 사자가 오시다니..."


사내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문지기에게 눈짓을 보냈다. 빨리 윗사람들을 불러오라는 눈짓임을 문지기는 금세 눈치 채고는 후다닥 뛰어갔다. 방문객은 짙은 갈색 로브를 껴입고 있었는데, 얼굴마저도 로브의 모자와 목도리로 칭칭 감아 살짝 그을린 피부와 날카로운 코 외의 나머지 얼굴 부분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아까 본 손에 물집과 굳은살이 잔뜩 박혀있는 걸로 보아 무예를 익힌 자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고, 평균키에 속하는 사내가 고개를 들고 바라 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큰 자였다.


방문객은 낮은 목소리로 사내에게 물었다.


"이 시간에 어째서 바켄바우어 지부가 문을 닫고 있는 건가?"


난생 처음 본 사이이면서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태도였다. 그러나 뒤가 구린 쪽은 이쪽이었기에 사내는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말했다.


"아, 그것이 지금 이 시간부터는 바켄바우어의 극비 계획을 논하는 시간입니다. 오랜 전통이지요."

"전통? 그런 전통이 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군. 우리 빈트뮐러가 호적수인 바켄바우어의 전통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방문객의 말에 사내는 당황하여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항상 받는 질문이었기에 자동적으로 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상대는 귀족이 아닌 자신들과 같은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상단의 인간이다.


그것도 바켄바우어와 더불어 왕국 3대 상단 중 하나인 빈트뮐러의 사자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3대 상단 중 가장 무시무시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빈트뮐러가 호시탐탐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는 바켄바우어 상단의 전통을 모른다는 것은 삼척동자조차 듣고 깔깔거리며 웃을 소리였다.


그 때였다.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사내와 방문객이 있는 곳에 다다른 것은.


"하하하... 이거, 빈트뮐러의 사자가 오셨다던데. 저는 바켄바우어의 남부지부장인 로스 아벨론입니다."


사내는 고개를 돌리고는 냅다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그리고는 속으로 연신 '다행이다..!'를 외쳤다. 자신의 상관인 바켄바우어 남부 지부장이 등장하였으니 자신의 말실수 따위는 금세 방문객의 머릿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방문객은 쓰고 있던 로브의 모자와 머플러를 풀었다. 하늘빛이 도는 짙은 회색머리칼이 눈에 확 들어오는 단정한 용모의 사내였다. 그는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차분하게 가라앉은 짙은 회색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내는 자신의 말실수 때문이었는지 그 눈이 무척이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빈트뮐러 중앙지부 총수 대리, 에단 피데스라고 합니다."


총수 대리! 지부장은 물론 방금까지 그를 상대했던 사내조차 정신이 아연해짐을 느꼈다.


공적인 장소는 물론 사적인 장소에서도 조차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빈트뮐러 상단의 총수가 자신의 모습을 대신하여 내세우는 사내가 있다는 것을 빈트뮐러와 손을 섞는 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으나, 이런 식으로 직접 마주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앙의 일로도 충분히 바쁠 저 총수 대리가 이곳 바켄바우어의 남부지부까지 아무런 연통도 넣지 않고 오다니. 분명 무언가 있다 생각한 지부장은 저도 모르게 몸을 긴장했다. 총수 대리라고 자신을 밝힌 사내, 에단은 천천히 건물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늦은 시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방문했는데 상단의 문이 닫혀있더군요."


그 말에 로스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분명 뜻 없이 하는 말인 것 같았는데도 어째서인지 형사들이 범인에게 자그마한 꼬투리라도 잡기 위해 말하는 심문조로 들리는 것은 사내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차분하기 때문이라고, 로스는 생각했다. 그리고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예, 어찌하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올라가시죠. 이리 서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바켄바우어의 전통이 아니니까요."


로스는 에단이 '전통'이라는 단어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주의 깊게 에단의 얼굴을 보았을 때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지독하리만치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로스는 에단이 매우 기분 나쁜 사내라 생각하며 앞서 걸어갔다. 에단이 기분이 나쁜 사내이든, 자신을 심문하는 듯 말하든 상관없었다. 그는 일단 상대 상단의 총수 대리이다.


자신과는 급이 다른 거물. 그런 거물이 하필 이 시간에 왔다. 그것도 누구도 대동하지 않고. 왕가의 인장을 받은 세 개의 상단 중 하나인 바켄바우어가 왕가가 금지한 칙령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왕가의 인장 수거는 물론이거니와 100여년의 전통을 가진 바켄바우어 상단은 왕가의 군 발아래 밟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위험부담을 갖고도 마약을 파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이윤이 남기 때문이었다. 들키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어떠한 장사보다도 큰 이윤을 남긴다. 들키면 끝장이지만 들키지만 않는다면...!


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곧 중독자들이 들이닥칠 것이고, 지하에 마련되어 있는 마약시장은 시끌벅적해질 것이다. 일단은 저 사내를 어떻게든 꾀어내어 이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는 에단 몰래 그의 옆에서 그를 따르던 보좌관에게 눈치를 주었다. 보좌관은 곧장 그의 의중을 알아차리고는 급히 자리를 비웠다. 혹여 일이 틀어진다면 위험부담이 크더라도 검을 써야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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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메가헤르츠
    작성일
    11.02.28 09:17
    No. 1

    왕가의 군발아래??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49 주한아빠
    작성일
    11.03.19 21:13
    No. 2

    음..설정이 너무 쫌 그렇네요.

    마약을 파는데 상단 건물에서 시장까지 열어서 판다라..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상황이란걸 명시하면서도 그러다니

    누가 그런 멍청한짓을 할까요..

    권력에 입김을 빌지않고 저런짓 절대 못하죠..

    막말로 누구나 맘만 먹으면 바로 까발릴수있을건데...

    삼성 현대가 마약 판매한다 생각해보세요.

    그게 비밀에 붙여집니까?

    말도 안되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라울리
    작성일
    12.12.09 23:14
    No. 3

    ㅎㅎ 다시 정주행 시작함다.. 어디부터보았는지도 모르고 워낙 잼나게 보아서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마녀의약솥
    작성일
    13.03.31 03:52
    No. 4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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