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의 정석, 중요한 정보는 언제나 얼떨결에 말하게 된다
“그래서 좋은 게 뭔데?”
“으음.
그게 말이지이···.
사실대로 말하면 나, 이 소설의 남주인공이 총 몇 명인지 알아.”
나는 가만히 연신이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감탄의 시선은 아니었다.
어이가 없어서였다.
“장난치냐?”
“엥?
왜!”
“니가 나 여기 끌고 왔지?”
“응.”
“그럼 넌 당연히 남주인공이 몇 명인지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아니지!”
연신이가 파닥거리더니 내 머리 위로 올라왔다.
이 새대가리, 그만큼 머리 위에 앉지 말랬는데.
“안 내려오냐?”
“안 내려갈 건데!
그것보다, 야!
너 생각 좀 해 봐.
내가 연애소설의 신이긴 한데 모든 소설의 스토리랑 주인공을 다 알 거 같아?”
나는 흠칫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미쳤나 봐.
야, 니가 보던 사이트에서만 하루에 몇 개의 소설이 올라오는지 알아?
게다가 연재는 하지 않더라도 혼자서 소설 쓰는 사람들은 한 둘인 줄 알아?
그걸 내가 다 어떻게 알아!”
“···.”
그것도 다 모르면서 연애소설의 신이라고 소개하는 건 뭐야.
나는 한심하다는 듯 연신이를 바라보았다.
“왜.”
“뭐.”
“왜 그렇게 보는데.”
“왜겠어?”
“나야 모르지!”
···.
눈치도 없고···.
머리도 나쁘고···.
아이고.
“그럼 난 간다.”
“엥?
어디 가!”
“들을 거 다 들었으니까 방에 가서 잘려고.”
졸리다.
사실 졸리지 않아도 굳이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에잇!
내 정보는 아직 안 끝났거든?”
“뭐 말할 게 더 있어?”
“몇 명인지 안 궁금해?”
···.
궁금하긴 하지.
그럼 희망이라도 보일 테니까.
매번 회귀할 때마다 새로운 남주인공 후보가 발견된다.
게다가 재무대신은 아직 만나지도 못했고.
이대로라면 언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가늠도 안 된다.
근데 굳이 없어도 상관은 없다.
내가 좀 지치긴 할지도 모르지만···.
“안 궁금해.”
“에에?
진짜?
진짜로?
안 궁금하다고?”
“응.”
어차피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건 확인했다.
그래서 조급하던 마음도 많이 느긋해졌다.
그러니까 뭐···.
굳이 연신이한테 아쉬운 소리 하면서까지 듣고 싶진 않다.
“안 궁금하면 안 되는데···.”
연신이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럴 땐 은근 귀엽다.
그냥 같이 가 줄까?
아니면 좀 더 놀려먹을까.
“흠···.
그럼 내 부탁 하나 들어줄래?”
“···.”
연신이가 포도알 같던 눈을 가늘게 뜬다.
뭐지, 이거.
뭔가 되게 변태를 보는 눈으로 쳐다보는데.
“내, 내 정조는 안 돼···.”
···.
이게 미쳤나.
“야.”
“왜, 왜!”
“죽을래?”
사람을 뭘로 보고.
뭔가 급격히 기분이 나빠진다.
불쌍해서 가줄까 했는데 그냥 방에 돌아가야지.
나는 쿨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 가!”
“방에.”
“으으으으.
케이크만 받아 가자!
거의 다 왔잖아!
응? 응?”
···.
거의 다 오긴 했지.
어차피 온 김에 그냥 받아 갈까.
“그럼 내 소원 하나 들어줄 거야?”
“그, 그건···.”
“니 정조랑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부탁이야.
들어줄 거야?”
“설마 진 남주인공이 누구인지 물어보려는 건 아니지?”
“오, 그런 방법도 있네.”
“안 돼!
절대 안 돼!”
···.
바보.
설마 그런 부탁을 할 리가 있나.
안 가르쳐줄 게 뻔한데.
“그런 거 안 할게, 그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달라는 것도?”
“응, 안 할게.”
“···.”
연신이는 생각에 잠겼다.
또 곤란한 부탁이 뭐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중인 듯했다.
사실 나도 딱히 뭔가 부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언젠가 이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랄까.
패가 많아서 나쁜 일은 없···나?
근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던데.
으음.
뭐, 여튼 부탁 들어주기 자유 이용권은 있어서 나쁠 건 없겠지.
“어쩔 거야?
대답 안 하면 그냥 방에 간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부탁 들어줄게.
그러니까 이제 같이 가 줄 거지?”
···.
에휴.
“알았어.”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뭔지 모를 엄청나게 큰 방을 지나 중앙계단을 지나자 하인들의 숙소가 나왔다.
으음.
처음 와보네, 이쪽으로는.
“흐흐흐, 라로레리~.
라로레리 너무 맛있겠다~.”
신나셨네.
나는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머리 위의 연신이를 콩, 하고 쓰다듬어 준 후 문을 두드렸다.
“네!”
생각보다 빨리 문이 열렸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이것도 연신이의 힘일까.
“어···, 누구세요?”
흑갈색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
내 눈높이보다 조금 더 높은 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소년이었다.
으음.
흑발 적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합이다.
물론, 완전 흑발은 아니지만.
“안녕하세요.”
나는 웃었다.
하지만 말할 게 없다.
세상에.
생각해보니 나 뭐라고 말할지 생각도 안 해보고 왔어.
소년은 수상쩍다는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내 머리 위의 연신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어?
너 왔구나.
이 새 주인이세요?”
“아, 그, 네.
시녀분들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그쪽이 제 새랑 자주 놀아주셨다고.”
뭐, 새한테 들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랬구나···.
아, 들어오세요!
혹시 빵 좋아하세요?”
밝다.
엄청 밝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보는 유형의 캐릭터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꼭 다람쥐 같다.
으음.
귀엽기까지···.
“빵이요?”
“오늘 왠지 빵을 굽고 싶어서 라로레리를 구웠거든요.”
아, 정말로 라로레리라는 이름이구나.
헐.
진짜 있는 빵인가?
원래 세계로 가면 찾아봐야겠다.
“라로레리요?”
“네!
드시고 가실래요?”
···.
뭐지.
이건.
라면 먹고 갈래 패턴?
으음.
뭐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남주인공 후보일, 리, 없겠, 지···?
이놈의 소설은 누가 남주인공 후보인지 확실치가 않으니···.
심지어 시종장인 데바인도 남주인공 후보로 보이고.
“먹자, 먹자.”
“···그럼 조금만 먹고 갈게요.”
연신이의 속삭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이러려고 왔으니까, 뭐···.
“그럼 제가 방으로 가져다드릴게요.
2층에 계신 손님이시죠?”
“아뇨.
전 저 방에 있어요.”
나는 복도 끝을 가리켰다.
곰곰이 생각하던 소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왕비님의 방에 계신 분이에요···?”
“왕비님의 방?”
···.
잠깐.
왕비의 방이라고?
내가 있는 방이?
어쩐지.
방이 지나치게 좋더라.
그냥 손님 방이 그렇게 좋을 리가 없지.
게다가 카이델이라면 무의식중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우, 우리 폐하께서 언제 결혼을 하셨죠?!”
“결혼 안 했어요.
진정하세요.”
웃긴 소년일세.
자신들의 왕이 결혼식을 올렸는지 안 올렸는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 그, 그, 제, 제, 제가 왕비 전하한테 실례를···!”
“진정하세요.
왕비 아니에요.”
“하지만 왕비님 방에···.”
“일단 진정 좀 해요.”
나는 웃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절대 온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쾌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니까.
“히, 히끅!”
소년은 깜짝 놀라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음.
좀 귀엽다.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귀여운 것에 약하지.
나는 조금 누그러진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일단 저기, 음···.
이름이 뭐예요?”
부르려고 해도 이름을 모르니 부를 수가 없다.
소년은 차렷 자세를 하더니 큰소리를 질렀다.
“라오입니다!”
“라오, 씨?
라오님?”
“그냥 라오라고 불러주세요, 전하!”
“···.”
아니.
전하 아니라니까···.
“그, 라오?”
“네!”
“저는 폐하의 손님으로 이 성에 머물고 있는 아샤라고 해요.”
나는 붉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조금이라도 안심시켜주려고 한 행동이지만 역효과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라오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뺐다.
“네, 네네네네네, 네?!”
“그러니까···.
왕비가 될 사람도 아니고 왕비도 아니고 그냥 폐하의 손님이에요.”
“그런데 왜 왕비님의 방에 머물고 계시는 거예요!?”
“···.”
으아.
설명하기 귀찮다.
아까 라오의 말에서 유추해보면 손님들 방은 2층인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예전에 데바인이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2층 객실이 어쩌고, 하면서.
내게 왕비의 방을 준 건 뭐···.
뻔하지만 이걸 설명하면 좀 그런데···.
“글쎄요···.
저는 폐하께서 쓰라고 하신 방을 쓰고 있을 뿐이에요.”
결국, 나는 설명을 포기했다.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응.
“그, 그, 그, 그렇군요.”
뭐야.
왜 더듬어.
아오, 왕비 아니라니까.
믿어라, 좀.
“그럼 전 방으로 돌아가 있으면 될까요?”
에라이.
내 신분에 대해 꼭 확실하게 할 필요도 없고···.
공략 상대도 아니고···.
나는 그냥 다 내려놓고 생글생글 웃었다.
“네, 네!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샤님.”
“고마워요.”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됐냐?”
“응!
라로레리~.”
그게 그렇게 좋나.
먹는 것에 별로 욕심이 없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으음.
내가 김치를 떠올리면 드는 기분이랑 비슷한 걸까.
“그럼 소원으로 뭘 빌어볼까···.”
“엑?
어, 그, 음···.”
연신이가 우물우물하며 시선을 피했다.
설마···.
“설마 약속 어길 건 아니지?”
“아니!
설마!”
“그치?
명색이 신인데 막 약속 어기고 그러면 안 되잖아, 그치?”
“그럼!”
으음.
뭐, 좀 찜찜하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방이 나왔다.
으음.
그래···.
여기가 왕비의 방이라는 거지.
다음 회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되면 이 방은 사양해두도록 하자.
응.
“난 잔다.”
“엥?
안 돼!
내 라로레리 받아 줘야지!”
“뭐?”
내 사나운 음성에 연신이가 움찔한다.
그러나 이내 빵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내젓고 내게 달려들었다.
“내가 받을 순 없잖아!”
“내가 거기까지 가준 것도 모자라서 받아주기까지 해야 해?
내가 네 집사야?”
“그럼 어떡하라고!
내가 받으라고?”
“응.”
“걔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너 사람 조종할 수 있다매.
잘 해봐.”
“너무 위화감이 강한 건 못한단 말이야!”
뭐야.
만능도 아니었네.
으으.
귀찮아.
자고 싶은데···.
“그럼 소원 하나 더 콜?”
“싫어!”
칫.
그건 안 되나.
“···하, 오늘 특별 서비스다, 진짜.”
“아싸!”
뭐, 빵은 구워놨다고 했으니 금방 오겠지.
나는 침대 대신 소파에 앉아 라오를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라오, 는 이름이 좀 특이하네.
다른 캐릭터들은 다 이름이 서로판 이름인데.
혼자 약간 중국 이름 같아.
머리카락 색도 한국인이랑 거의 비슷하고···.
“라오는 동양인이야?”
“응?
아, 너희 세계 기준으로?”
“응.”
“으음, 뭐 그런 셈이지?”
“외국 사람인가?”
“응.
아마 그렇지 않을까?”
뭐야.
응이라고 단정 지은 것 치고는 뭔가 시원찮다.
“쟤도 남주인공 후보야?”
“응.
···응?
아, 어, 응?
모르겠는데!?”
···.
아무 생각 없이 물었는데 남주인공 후보를 찾아버렸다.
아니, 그건 둘째치고 이 소설 대체 남주인공 후보가 몇 명인 거야?
작가 진짜 미친 거 아냐?
“야.”
“응?
뭐, 왜?”
“작가 미친 거 같다, 진짜.
무슨 남주인공 후보가 이렇게 많아.
이런 소설 사람들이 질려서 안 볼걸.”
“아니거든!”
연신이가 소리를 꽥 질렀다.
지가 작가도 아니면서 왜 흥분하고 난리야.
에휴, 모르겠다.
어쨌든 빵만 받아주면 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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