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하, 멍청하긴.”
새하얀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소년은 몹시나 아름다웠다.
생김새는 귀엽지만, 그 몸에서는 위엄과 기품이 흘렀다.
“허상 속에서 얻은 행복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런 걸 위해 칼에 맞아가면서까지 연기를 했던 게 아니었다.
소년은 아직도 욱신거리는 가슴의 상처를 손으로 억눌렀다.
하지만 그녀를 끌어들인 자신에게 그녀를 매도할 자격은 없다.
소년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칫.”
소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새하얀 자태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순식간에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소년이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작은 새 한 마리.
뱁새의 형상을 한 신은 가만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후···.”
신의 눈이 자신의 꽁지깃을 향했다.
약간 반짝임이 들어있는 분홍색의 꽁지깃.
딱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다시 자랄 때까지 기다리려면 최소한 몇십 년은 걸릴 터였다.
그런 걸 한낱 인간을 위해 사용해야 할까?
“···칫.”
하지만,
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저 허망한 생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화가 났다.
자신이 쓴 소설에 트집을 잡는 멍청한 독자.
그걸 골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현신하기 전에 간단한 정보를 알아보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학대받고,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불쌍한 인생.
소설이었다면 악역이거나, 엑스트라일 것이다.
그 와중에 딱 한 명.
모자란 동생만이 여자를 사랑해주었다.
그리고 여자는 그 동생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하, 네까짓 게 감히 내 소설을 우롱해?”
그 정도의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꿈을 꿀 때마다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자신이 소설에 써왔던,
소설로 읽어왔던 수많은 장면보다도 더 생생한 폭력의 현장.
그 안에서 소녀는 한없이 무력했다.
사랑하는 방법은커녕, 사랑받는 방법조차 모르는 작은 소녀.
23살의 화아사는 어린 아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가르쳐줄 마음은 없었다.
그녀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꼴 좋다며 비웃어주던 초반.
그때가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꾸 그녀에게 마음이 갔다.
신경을 쓰게 되었다.
연애소설의 신이라고 자칭하면서도 몰랐다.
자신의 그 호기심이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을.
“에휴···.”
연신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꽁지깃에서 분홍색 깃털을 똑 떼어냈다.
“내가 진짜···.”
조금만 덜 사랑했더라도 안 이랬을 텐데.
그렇게 투덜거리며 연신은 허공에 글씨를 써넣었다.
「여주인공 속성을 획득했습니다.」 의 세계에서 검은 머리카락의 마녀 전설이 사라집니다.
허공에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글씨를 보며 연신은 빌었다.
“허상이든 뭐든, 행복해라.
여태까지 네가 행복하지 못했던 걸 모조리 채워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아니, 훨씬 더 넘칠 정도로.
꼭 행복해라, 화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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