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 아돌프
소련군의 기관총에는 저격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큰 장갑판이 달려있다. 이 장갑판에는 조준을 할 수 있도록 아주 작은 구멍만이 있다. 하지만 독일군 저격수는 계속해서 이 구멍을 통해서 소련군 기관총 사수를 저격하고 있었다.
블라슈크와 소련군 저격수들은 독일군의 저격을 맞고, 이마에 구멍을 남긴채로 쓰러진 기관총 사수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도..도대체 어떻게 저기로 저격할 수 있는거지?'
다들 그 정체 모를 저격수를 아돌프라고 불렀다. 나타샤가 속으로 생각했다.
'죽음의 숙녀와 아돌프 중에 누가 실력이 더 좋을까?'
블라슈크가 말했다.
"철모를 이용해서 미끼를 만들고 아돌프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에 제3의 위치에서 저격한다! 박격포 팀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네!!"
그렇게 나타샤는 크세니야와 함께 철모와 군복을 이용해서 허수아비를 만든 다음, 독일군 저격수를 유인해보았다. 나타샤는 장난기가 돋아서 허수아비를 살짝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했다. 크세니야가 말했다.
"좀 천천히 해! 너무 눈에 띄잖아. 누가 사람이라 생각하겠어?"
나타샤는 조심스럽게 허수아비를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다. 나타샤가 말했다.
"아돌프도 바쁜가봐!"
크세니야가 말했다.
"10분 쯤 있다가 다시 해보자."
조만간 독일군의 전차 부대가 다시 방어선을 뚫고 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부대에는 PTRS-40 대전차 소총이 새로 보급되었다. 나타샤는 대전차 소총은 한 번도 다뤄본적이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배우기로 했다. 나타샤는 커다란 14.5x114mm 탄을 보고 감탄했다.
'이...이거면 파시스트 전차를 기동불가로 만들고 훈장을 받을 수도!!'
파블리첸코가 말했다.
"이걸 제대로만 쏘면 한 방에 궤도를 기동불가로 만들 수 있어! 익숙해지면 서서 쏘거나 앉아서 쏠 수도 있을거야!!"
'이걸 서서 쏜다고?'
이 엄청난 총을 서서 들고 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어쨋건 PTRS-40은 독일군의 저격을 받을 위험이 없는 곳에 설치되었고, 나타샤는 배운대로 PTRS-40을 이용하여 전방에 보이는 나무 기둥을 조준하기로 했다. 커다란 탄을 장전하자, 경쾌한 소리가 났다. 블라슈크도 옆에서 나타샤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파시스트 전차는 앞에 지뢰밭이 놓여있을때 지뢰밭을 우회하기 위해 차체를 선회한다. 그렇게 전차의 측면이 노출되었을때 기동륜을 저격하면 되네! 전차장 큐푤라를 피격시키면 좋겠지만, 차를 기동불가 시키는게 중요하네. 그러니 차체가 선회하기 전에는 무리해서 저격할 필요 없네."
나타샤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트으엉!!!
탄피가 튀어오르며 근처에 박격포탄이 떨어진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이 두개골을 울렸다. 순간적으로 주변에 있던 흙 알갱이들도 뿌옇게 솟아올랐고, 나타샤는 뒤로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블라슈크는 이 광경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현재 저격수 팀 중에 대전차 저격이 가능한건 몇 명 밖에 없었다.
'역시 무리인가...'
나타샤는 무리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훈장따위 필요없어! 일단 살아만 돌아가자!'
하지만 나타샤는 여태까지 전공을 세우기는 커녕 사람을 상대로 저격을 해본적도 없었다. 결국 크세니야가 나타샤를 도와주기로 했다. 크세니야와 나타샤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구역이라 저격수의 공격을 받지 않는 곳에 가서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나타샤는 페리스코프를 올려서 한참 전방에 가끔씩 움직이는 독일군의 슈탈헬름을 바라보았다.
'이 거리에선 절대 안 맞겠네!'
크세니야가 말했다.
"여기선 어차피 절대 못 맞춰! 그니까 한번 연습삼아서 쏴보는거야!"
나타샤는 처음으로 사람을 향해 총을 쏴본다는 생각이 두근거렸다.
'나...나도?'
그렇게 나타샤는 전방을 관찰하다가 슈탈헬름이 올라온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나타샤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자세를 숙인 다음 페리스코프를 이용해서 전방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에 보이던 슈탈헬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맞추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겁을 주는 것에는 성공한 것 이다.
"나...나도 해냈어!!"
"잘했어 나타샤!"
빅토리아와 안나 또한 기뻐했다.
"맞춘거야?"
"맞춘건 아닌거 같아!!"
빅토리아가 살짝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혹시 맞췄을 수도 있"
쉬잇! 타악!!
빅토리아가 철퍼덕 쓰러졌다. 빅토리아의 이마에는 작은 구멍이 난 상태였다.
"비...빅토리아?"
"저격수야!!!"
이 사실은 바로 무전으로 전달되었고, 다른 쪽에 있던 파블리첸코에게도 전달되었다. 하지만 파블리첸코는 독일군 저격수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나타냐, 크세니야, 안나, 류드밀라 모두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았다. 나타샤가 부들부들 떨며 속으로 생각했다.
'독일군은 어차피 내일 공세를 할거고 그 땐 다 같이 죽을거야...고작 하루 일찍 죽은 것 뿐이야...'
안나가 중얼거렸다.
"아돌프가 틀림없어...저 거리에서는 아돌프 아니면 누구도 못 맞춰..."
나타샤가 말했다.
"어차피 우린 내일 다 죽을거야. 운이 좋으면 며칠 더 버티겠지."
류드밀라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
그 때, 독일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쿠르릉 쿠릉
다들 대피호로 도망갔다.
"빨리!!"
그렇게 나타샤 일행은 총을 챙기고는 대피호로 숨어들어갔다. 대피호에서 블라슈크가 외쳤다.
"포격이 끝난 이후에 자리를 잡고 파시스트를 저지한다!!!"
쿠르릉 쿠르릉 쿠르르르릉
부상을 입어서 대피호로 가지 못한 소련군은 눈을 크게 뜨고는 10m 쯤 전방에서 포탄이 폭발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붉은 불꽃과 함께 사방이 붉게 보이면서 흙 알갱이, 나뭇잎 등이 사방에서 모두 동시에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쿠과과과광!!!!
그렇게 수 많은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갔고 그 소련군이 죽기 전에 본 마지막 광경이 되었다. 포격 이후, 소련군은 모두 급하게 자신의 자리로 달려가서 독일군의 전차를 저지할 준비를 했다. 파블리첸코가 아닌 류드밀라는 대전차 소총을 이용해서 독일군의 전차를 저지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지고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
드득 드드득 드드득 드득
퍼엉!!
근처에서 포탄이 터질 때마다 먼지가 휘몰아치고 시야가 제한되었다. 먼지 속에서 독일군의 기관총과 주포가 불을 뿜을때, 류드밀라는 짐작을 통해서 궤도 방향을 향해 대 전차 소총을 발사했다.
타앙!!!
한편 나타샤는 자리를 지키지 않고 은근슬쩍 도망가고 있었다. 그 때,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있던 블라슈크가 나타샤를 발견하고 외쳤다.
"이보게!! 자네!!"
나타샤는 도망가고 있었던터라 뜨끔했다.
"네!!"
"저 호에 숨어있다가 파시스트 전차가 오면 주포에 이 줄을 걸어서 주포를 망가뜨리게!!"
블라슈크는 수류탄이 양쪽에 달려있는 끈을 나타샤에게 건네주었다. 나타샤가 당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블라슈크 또한 자신도 전차의 주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전방 개인호로 달려갔다. 나타샤는 물론 전차의 주포를 무력화시킬 생각이 없었다.
'웃기고 있네!! 난 일단 살아야겠어!!!'
그렇게 나타샤는 수류탄을 들고는 후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20m 정도 앞에 포탄이 떨어졌다.
쿠과광!! 콰광!!!
나타샤는 주저앉고 말았다.
"!!!"
여기저기서 포탄이 폭발해서 나타샤는 길을 잃고 말았다.
쿠궁!! 쿠과광!! 콰과광!!!
온 천지가 폭발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성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타샤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허리를 숙이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 때 땅에 이상한 진동이 느껴졌다.
트으응 트드드드등 트드드드등
'!!!!!!!!!'
나타샤는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의 시체가 널려있는 호 안으로 숨었다.
'으아아....으아아아아....'
나타샤는 팬티에 똥오줌을 지렸다. 전차의 육중한 궤도가 나타샤가 있는 호 위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타샤의 철모 위에 흙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아아...으아아아아...'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드드등
그렇게 전차가 지나간 다음, 나타샤는 고개를 들고 참호를 따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망가야해!!!'
그 때 블라슈크는 이미 자신이 들고 있던 수류탄으로 전차 한 대의 주포를 무력화시킨 상태였다. 블라슈크가 나타샤에게 외쳤다.
"수류탄 던져!! 빨리!!"
하지만 블라슈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나사탸는 블라슈크가 탈영하는 자신을 쫓아오는거라 생각했다.
'싸우기 싫어!!!'
나타샤는 저만치 앞서가는 티거를 보았다. 저 티거 후방 차체 위에 올라가면 블라슈크 같은 정치 장교도 자신을 잡을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거의 포탑은 나타샤 쪽으로 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티거 차체 뒤에 올라가도 기관총이나 주포를 맞을 일도 없을 것 이었다.
나타샤는 자신이 머리가 엄청나게 좋다고 생각하며 티거의 후방 차체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포탑이 선회하기 시작했다.
트으으으으
"꺄아아아악!!!"
블라슈크가 외쳤다.
"조심해!!!"
트으으으으
선회하는 주포에 밀려 넘어지면 나타샤는 전차 옆으로 밀려나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타샤는 포탑 위로 올라간 다음 손에 들고 있던 수류탄을 떨어트렸다. 수류탄에 걸려있는 줄이 정확히 티거 주포 위에 걸렸고 핀이 뽑혔다. 나타샤는 포탑 위에서 뛰어내린 다음 똥오줌 지리며 반대쪽으로 달렸다.
"엄마!!!!!!!"
쿠과광!! 콰광!!!
그렇게 티거의 주포가 박살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거는 계속해서 기관총을 긁어대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르르륵
티거 한 대의 주포는 무력화되었지만 다른 티거들이 이미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었다. 누군가 외쳤다.
"우측방이 완전히 돌파되었습니다!!"
블라슈크가 병사들에게 외쳤다.
"후퇴해!!! 후퇴한다!!!"
지금 후퇴를 안했다가는 부대 전력을 모조리 잃을 수 있었던 것 이었다. 그렇게 블라슈크는 남은 전력을 데리고 후퇴했다. 그렇게 다음 방어선에서 정비를 하는데, 정치 장교 안토노프가 블라슈크에게 호통을 쳤다.
"누가 후퇴를 승인했나!!!"
블라슈크가 외쳤다.
"우측방이 완전히 돌파되었고 후퇴하지 않았다면 전력을 보전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안전한 후방에 장교용 대피소에 있었던 안토노프가 외쳤다.
"마지막 경고다!!!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방어선을 지킨다!!! 이 이상 독단적인 판단을 할 경우 이를 모두 상부에 보고하겠다!!"
"대피소에만 있지 말고 직접 상황을 보십시오!!!"
그 때 근처에 포탄이 떨어졌다.
쿠구궁!!
포탄 폭발에 안토노프는 허리를 숙이며 움찔했다.
"으익!!!"
팔다리가 잘려나갔거나 창자가 쏟아져나온 수 많은 부상병들이 들것으로 실려가고 있었다. 통신병이 안토노프에게 보고했다.
"다수 지점에서 돌파구가 형성되었습니다!! 더 이상 현 전선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안토노프가 물었다.
"사령부와 통신망은 유지되고 있나?"
"현재 통신망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 끝에 소련군은 또 다시 다음 방어선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나타샤는 전차 한 대의 주포를 무력화한 공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 되었다. 안토노프가 직접 나타샤에게 이 훈장을 수여했다. 나타샤는 훈장을 받고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어쩌면 전투에 재능이 있는지도?'
한편, 한스 파이퍼는 군사 주간지를 읽고 있었다. 이 군사 주간지에는 한스 뿐만 아니라 구데리안 등도 전차 관련해서 논문을 기고하고는 하였다. 한스는 계속해서 현재 전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시작한 전쟁이다!!!'
현재 키릴 대공이 백군의 최고 지휘관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백군의 기강을 잡고 있었다. 독일군으로서는 도저히 러시아 땅을 전부 점령할 수 없었기에 이는 무척 잘된 일이었다. 독일 제국은 소련군과 파르티잔은 공격해도 되지만, 소련군 포로들과 민간인은 건들지 말라고 반데라, 우크라이나 임시 정부, 벨라루스 자치 정부와 합의를 본 상태였다. 각 지역은 백군, 우크라이나 임시 정부, 벨라루스 자치 정부를 주축으로 지휘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로선 더 많은 병력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군!'
한스가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 민병대의 활약은 진짜 엄청났다. 이들은 특별히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획 무기 등을 이용하여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한스는 나폴레옹을 떠올렸다. 제아무리 천재적인 전술가라 할지라도 다른 국가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서는 절대 그 승리를 유지할 수 없다. 소련의 대숙청 피해자들도 현재는 백군 임시 정부에 가담한 상황이었다. 물론 한스는 이 화합이 얼마 가지 않을 것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전쟁이 끝나면 피바람이 불겠군...'
한스는 현재 독일군 보병 전술이 지나치게 기관총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근접전에 취약했고, 결국 한스의 요청대로 기관단총의 생산량이 증가되었다. 한스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현재 극동의 상황이었다. 일본은 방어 태세로 전환한 다음 최대한 전력을 보전하며 방어선을 축소하는 전술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 때, 한병태와 동료, 부하들은 극동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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