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같은 현실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는 자신이 가르쳤던 애니와 가비가 자리를 잡고 있던 건물이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설마?'
얌전히 포로로 잡히면 다행일 것 이다. 차라리 총을 맞고 깔끔하게 사살되는 것이 최선일 것 이다. 얼마 전 소련군 여성 저격수는 독일군 저격수에게 총을 맞아 턱뼈 아래가 모조리 날아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고약하게도 이 여성 저격수의 시신은 가슴이 풀어헤쳐져 있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시신을 이렇게 하는지 류드밀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정치 장교 타이버가 류드밀라의 기사를 가지고 와서 웃으며 말했다.
"류드밀라 동무 덕분에 많은 여성들이 스탈린 동지를 위하여 전선에서 싸우기 위해 저격수로 자원하고 있소!"
류드밀라는 스탈린을 싫어했기 때문에 이런 정치 장교의 발언에 화가 났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가..감사합니다.."
지금 류드밀라와 같은 부대에도 신참내기 여성 저격수들이 있었다. 이들은 훈련하거나 무거운 짐을 운반할때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남자 군인들의 비웃음을 사고는 했다.
"그거밖에 못하냐?"
"한심한 녀석들!!"
그럴 때마다 정치 장교 타이버는 호통을 치고는 했다.
"이들도 모두 스탈린 동지를 위해 싸우고 있는 동무들일세!"
류드밀라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피소로 쓰고 있는 건물로 걸어갔다. 애니와 가비는 고통을 겪지 않았을거라고 믿고 싶었다. 류드밀라는 남자 군인들이 바글거리는 건물 대피소로 들어가서 벽에 등을 대고 주저앉았다. 그런데 조피아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류드밀라의 옆에 와서 앉아서 속삭였다.
"타이버 그 새끼가 자꾸 자기 집무실로 오라는데 이상해."
"집무실로 오라고 한다고?"
타이버는 여군들을 성추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조피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군들도 정치 장교와 그 외 병사들의 성희롱을 당하고 있었고, 소련 여군들은 이러한 성추행이 싫어서 전부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른 부대에서는 아군에 의한 집단 성폭행이 있었고 결국 피해를 입은 여군이 전출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가해자들은 전혀 처벌 받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군에게 여군이 피해를 입을 경우에 스탈린은 이를 반기고 아주 대대적으로 선전용으로 써먹을 것이 분명했다. 류드밀라는 이렇게 되느니 차라리 수류탄으로 자살하기로 마음 먹고는 조피아에게 말했다.
"혹시 또 부르면 내가 같이 가줄게. 타이버가 다른 애들 부르면 그것도 이야기해줘."
류드밀라도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정치 장교의 성희롱을 당해본 적이 있기에 조피아의 심정을 이해했다. 물론 지금의 류드밀라는 전쟁 영웅으로 선전되고 있었기 때문에 부조리를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여성 저격수들은 대다수가 이런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이다.
류드밀라와 조피아가 쓰는 대피소에서 남자 군인들은 덥다고 웃통을 벗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류드밀라는 지금 많은 여성들이 저격수로 자원하고 있다는 타이버의 말을 떠올렸다. 솔직히 자신의 고향 친구들을 만난다면, 절대로 저격수로는 자원하지 말라고 할 것 이었다.
그렇게 조피아와 류드밀라는 대피소 구석에 주저앉아서 빨리 밥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디선가 바이올린으로 러시아 민요, '머나먼 길'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지금 당신이 내 곁에 있다면, 우울에 빠진 이 마음을 털어낼 수 있을텐데..이 머나먼 길, 환한 달빛과 함께, 저 멀리 울려퍼지는 노랫소리, 일곱 줄의 기타 소리, 밤마다 나를 고통스럽가 하는구나"
조피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한편, 보병 권츄베르트는 여전히 포로들에게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볼셰비즘과 싸우기 위해서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강간한다!!"
솔직히 말해서 다들 권츄베르트 녀석의 이런 전쟁 범죄에는 질릴대로 질린 참이었지만 아무도 참견하지 않았다. 권츄베르트 저 새끼가 아군을 건드리지 않고 소련군 포로만 건드리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키가 엄청나게 크고 온몸이 근육질이고 소문에 의하면 놈의 포신은 평소에는 1m 과열하면 2m라고 했다. 놈들은 자신의 포신으로 공산주의자들을 응징한다고 떠들고 다녔다. 오토는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다른 병과에서 뭔 일이 일어나던 참견하지 말고 떠들어대지도 말게! 전차 병과는 보병과의 보전 협동이 중요하네. 놈들이 우리한테 억한 심정 가져봤자 좋을게 없네!"
소련군 포로 중에 아르민이라는 녀석은 한 시간 뒤 질질 짜면서 울고 있었다.
"따흐흑!!"
동료 쟝이 아르민을 위로했다.
"이제 조만간 후방으로 갈걸세! 저 좆같은 파시스트 새끼들..."
아르민이 울부짖었다.
"시발!! 세상에 정의가 있는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마르코가 중얼거렸다.
"없지. 그래서 다들 문학을 읽는걸세. 책 속에 세상에서는 정의가 구현되니까."
한편, 전투는 잘하고 정의롭지만 눈치가 없기 때문에 다른 부대가 벌이는 온갖 전쟁 범죄를 전혀 모르고 있는 하이에는 소대원들과 함께 굴라쉬를 먹고 있었다.
"많이들 들게!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네!"
하이에는 여태까지 자신이 직접 목격한 몇 사건을 제외하고는 전쟁 범죄가 없을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때 고참 병사들이 신병들에게 말했다.
"이보게 자네들 말이야! 권츄베르트 그 덩치 큰 녀석한테는 안 가는게 좋네!"
"무..무엇때문입니까?"
"우하하하!!!"
고참 병사들이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가지 말라면 가지 말게나!!"
고참 병사들이 하이에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이에 성격에 이런걸 알아챘다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고참 병사들은 솔직히 말해서 다른 부대와 알력 다툼이 생기는걸 원치 않았다. 어쨋거나 전쟁터에선 아군들끼리 적을 만들지 않는게 제일 중요했다. 30대 초반의 주임원사는 병사들에게 절대로 다른 부대에서 발생한 전쟁 범죄를 하이에에게 보고하지 말고 입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던 것 이다.
하지만 한 고참 병사는 마침 술도 마신터라 그만 실언을 하고 말았다.
"자네들 궁둥이를 지키고 싶다면 말일세!"
"그게 무슨 말인가?"
"허억!!"
순간 고참 병사들 사이에서 정적이 돌았다. 결국 전투만 잘하고 눈치는 없던 하이에는 여태까지 권츄베르트가 소련군 포로들에게 저지른 전쟁 범죄를 알게 되었다. 고참 병사들은 모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이에의 눈치를 보았다.
'좆됐다!!!'
하이에는 묵묵하게 굴라쉬를 다 먹고는 장교 대피소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권츄베르트는 헌병들에게 잡혀서 군사 재판을 받게 된다. 하이네는 이를 통해서 앞으로 부대 내에서 포로에 대한 학대가 없어질거라고 굳게 믿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부조리가 없어질 것 이다!'
권츄베르트는 헌병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에밀이 중얼거렸다.
"꼴 좋다!!"
마티아스가 말했다.
"제대로 처벌받겠지?"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멍청한 하이에 녀석...저러다가 언젠가 총 맞지...'
대다수의 장교들이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녀석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또라이 새끼 건드려봤자 다같이 총 들고 다니는 전쟁터에서 내가 뒤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마르틴이 와서 헌병들에게 끌려가는 권츄베르트를 보며 물었다.
"저 친구는 무슨 일인가?"
하지만 전차병들은 모두 마르틴 앞에서는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아무 것도 아닐세!"
"뭐 군용 식량 훔쳤다더군!"
혹여나 마르틴을 통해서 총리한테까지 이 소식이 들어간다면 부대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권츄베르트는 증거 불충분으로 군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는 후방에 배치된다. 21세기, 루카 파이퍼는 1940년 독소전 당시 독일군의 전쟁 범죄 의혹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군사 재판에서 무혐의를 받았다는 대목을 읽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긴 나름 선진적인 병영 문화라는 군대에서 요즘도 부조리가 발생하는데 이 당시에 이런게 처벌이 제대로 될리가...'
다시 1940년 여름 튤라의 시가지, 하이에는 건물에서 치열한 백병전을 벌이고 있었다. 방금 전 교전으로 인하여 하이에의 MP40은 모두 탄이 떨어졌고, 소련군 장교의 토카레프 권총도 마침 총알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는 하이에에게 권총을 집어던졌다.
퍽!!
하이에가 멈칫하는 사이 소련군 장교가 하이에에게 달려들고는 근처에 떨어져있는 커튼 끈으로 하이에의 목을 졸랐다.
타앙!!
하이에가 루거 권총을 꺼내어 소련군 장교의 옆구리에 발사한 것 이었다. 하이에는 소련군 장교를 밀치고는 자신의 목을 감고 있던 끈을 재빨리 풀어냈다.
"끄으으억!!"
다시 산소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하이에는 붉게 충혈된 얼굴로 재빨리 방 밖으로 나갔다. 분대장이 외쳤다.
"2층 복도 점령 완료!!"
그 때, 총소리와 함께 창문이 박살났다.
탕!!!
하이에와 소대원들, 분대장은 본능적으로 엎드렸다.
"어디야!!!"
하이에가 창문 쪽을 가리키며 악을 썼다.
"밖에서 쏜 거야!!! 모두 엎드려!!! 엎드리라고!!"
탕!! 타앙!! 탕!!!
한 신병은 양 손으로 귀를 막고는 엎드렸다. 총 소리는 건물 내에서 계속 메아리치기 때문에 어디서 쏘는지 식별이 힘들고 소련군도 독일군도 서로의 총을 노획해서 쓰기 때문에 소리 만으로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기 힘들었다. 하이에는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가급적 소련군의 총기를 쓰지 말라고는 했지만 탄약 보급이 늦어지고 있었기에 다른 부대에는 소련군의 따발총을 쓰는 녀석들이 많았다.
탕! 타앙! 쿠과광!! 콰광!!
여기저기서 수류탄 박격포 소리와 총알 소리가 섞였다. 누군가 신병의 어깨를 흔들었다. 하이에가 뭐라고 악을 쓰고 있었다. 신병이 외쳤다.
"안 들립니다!!"
하이에가 수신호로 신병에게 기관총 사수 옆 자리로 가라고 지시했다. 병사들은 혹시나 창문으로 총알이 날아올까봐 먼지와 잔해로 뒤덮인 건물 바닥을 기어서 다녔다. 고참들은 이런 전투에 익숙한건지 건물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술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는 신병들에게 말했다.
"바닥에 구멍 뚫어놓게! 1층에서 진입하는 새끼들 보이도록!!"
그 말에 신병은 곡괭이를 이용해서 2층 마루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퍽!! 퍼억!! 퍽!!!
잠시 뒤, 마루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만약 1층으로 소련군이 진입한다면 여기 수류탄을 던지면 될 것 이었다. 옥상에는 박격포병들이 자리를 잡았고, Sd.Kfz 251이 와서는 박격포탄을 보급하고 갔다.
튤라 시가지 곳곳에는 대전차포 또한 땅을 파두고 자리잡고 있었다. 37mm 대전차포, 일명 도어 노커(문 두드리기)로 소련군의 T-34에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터렛 링을 명중시켜 포탑 선회를 못하게 해야 했다. 물론 슈틸그라나테 40이 있다면 측면이나 후면에서 T-34를 격파시키는 것도 가능할터였다. 하지만 보급 문제로 슈틸그라나테 40은 충분히 보급되지 않았다.
37mm 대전차포병은 소련군의 T-34/76이 조만간 앞에 보이는 대로변을 지나갈거라는 소식을 보병에게서 전달받았다. 근거리지만 터렛 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대전차포병들은 모두 식은 땀을 흘렸다. 다행히 인근에 아군의 전차 또한 엄폐하고 있었다.
잠시 뒤, T-34/76이 엔진 소리를 내며 도로를 따라 오기 시작했다.
트르릉 트드드드등 트르릉
인근 건물에 독일군 저격수가 T-34/76을 따라오는 소련군 보병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쉬잇!!
또한 건물 옥상에 엄폐하고 있던 기관총 사수 또한 소련군 보병들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
드륵 드르륵
소련군 보병들은 T-34/76을 따라오지 않고 골목에서 기다렸다. T-34/76은 독일군의 기관총이 있는 방향으로 포탑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트으으 트으으
그 틈을 타서 땅 속에서 엄폐하고 있던 독일군의 37mm 대전차포가 튀어나와서는 T-34/76의 터렛 링을 향해 탄을 발사했다.
퍼엉!!!
포탄이 발사되며 대전차포 주변에 있는 흙먼지가 땅에서 솟구치며 곡선을 그렸다. 37mm 철갑탄이 공기를 뚫고 날아갔다.
카가강!!!
하지만 철갑탄은 터렛 링을 맞추지 못했고 T-34의 측면에 자국을 남기고는 도탄되었다. 이제 T-34의 포신은 독일군 대전차포를 향해 선회하기 시작했다.
트으으으
독일군 대전차포병들은 다시 탄을 발사했다.
카가강!!!
순간적으로 T-34의 터렛링 쪽에서 노란색 녹물이 튀겨져나왔고, 포탑이 선회를 멈추었다. 그 때 골목에 숨어있던 소련군 보병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대전차포다!!"
"으아악!! 유탄 장전해!!!"
그 때, 맞은편에 있던 독일군의 판터가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판터는 T-34의 측면에 철갑탄을 발사함과 동시에 소련군 보병들을 향해 기관총을 긁어댔다.
드륵 드르륵 드르륵
독일군 대전차포병들 또한 소련군 보병을 향해 유탄을 발사했다.
퍼엉!!
한편, 소련군 포병학교 생도들은 기차를 타고는 튤라를 방어하기 위해 대거 튤라로 집결하고 있었다. 실전 전투 경험이 없는 이 생도들은 파시스트로부터 튤라를 지키는 것에 성공하여 전쟁 영웅이 되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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