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공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오토
만토이펠 대대와 같이 이동하는 보병들은 손가락에 커다란 물집이 잡히도록 계속해서 참호를 파고 또 파야했다. 지크프리트 4인조의 올라프가 투덜거렸다.
"프랑스 놈들하고 싸울 때는 참호 한 번 파고 거기 계속 머물렀는데 이게 뭐냐!!"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참호를 파야했기에 독일군은 엄청나게 고생해야했다. 그렇다고 참호를 안 팔 수도 없는 것이, 소련군 포병대의 화력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던 것 이다. 오토와 소대원들 또한 전차를 넣어둘 호를 파두고 위장까지 한 다음 자신들이 들어갈 호를 파기 시작했다. 잠시 뒤 점심 시간이 되었다.
"밥 먹자!!"
지크프리트 4인조는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야전삽을 내려놓았다. 전차병들도 반합을 꺼내고는 밥을 배식받으러 갔다. 병사들은 반합을 씻을 기회가 없었기에 모든 반합들은 지저분했다. 그래도 각자의 반합에 묽은 죽을 배급 받은 다음 각자의 개인호로 들어가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멀리서 소련군 포병대가 포격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쿠르릉 쿠릉
다행히 착탄점은 현재 만토이펠 대대가 있는 곳으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조만간 착탄점은 이 쪽으로 올 것이 분명하다. 이제 포격에도 익숙해진 병사들은 대수롭지 않게 숟가락을 이용해서 서둘러 밥을 먹었다. 한 신병은 포격이 들릴 때마다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자리 옮겨야 하는거 아닌가? 포격 이 쪽으로 올텐데...'
오토가 외쳤다.
"지금 먹어두지 않으면 앞으로 먹을 시간이 없네!!"
오토의 말에 신병도 개인호에서 허리를 수그리고 먹기 시작했다.
쿠르릉 쿠르르릉!!
스테판이 말했다.
"슬슬 옮겨야 하는거 아닌가?"
"아직은 괜찮아!!"
신병은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흙먼지들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이제는 철모 속에서 자신의 머리도 덜덜덜 울리고 있었다.
쿠과광!! 콰광!!
오토는 허겁지겁 숟가락으로 반합에 남은 죽을 긁어먹은 다음 고개를 숙였다.
쿠르릉 쿠과광!!!
땅의 진동은 점점 세지고 있었다. 여전히 지난번 소련 여군들에게 당한 이유로 정신이 나가있는 에밀이 외쳤다.
"이동해야 합니다!!!"
"이동해!! 빨리!!"
그렇게 독일군은 더 뒤쪽에 있는 참호로 달려갔다.
"우아아악!!!"
쿠과광!! 쿠궁!! 쿠과광!!
잠시 뒤 포격이 끝났다. 모든 병사들의 슈탈헬름, 군복에는 흙먼지가 수북히 쌓여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병사들은 천천히 자신들의 참호로 돌아왔다.
"내 반합 어딨어!!"
"내 숟가락!!"
"부상자!! 부상자!!"
그야말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신병은 자신의 참호 속에서 흙먼지에 뒤덥힌 자신의 각반을 찾아냈다. 이미 우유죽은 다 쏟아진 상태였다. 한숨을 쉬는 신병에게 오토가 보급용 통조림을 하나 건네주었다. 이 보급 통조림은 맛이 없어서 오토가 먹지 않고 남겨둔 것 이었다. 신병에 말했다.
"감사합니다."
오토는 얼마 전 에밀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다들 오토의 지휘를 신임했지만 소대원들의 존경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 이다.
오토는 잠시 뒤, 자신의 소대원들을 모아두고 연설을 했다.
"우리 소대는 2기갑군에 모든 전차 소대 중에서 가장 많은 T-34와 ZiS포를 격파했다! 어쩌면 이는 중부집단군에서 최고일 것 이다!"
오토의 말은 사실이었다. 파이퍼 소대는 여태까지 엄청난 전공을 세우고 있었던 것 이다. 오토가 외쳤다.
"1소대는 전쟁 역사를 다시 쓰게 될 것 이다!!!"
"우오오!!!"
"해산!!"
그렇게 멋지게 연설을 한 오토는 걸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퍽!!
"으익!!!"
잠시 뒤, 슐레프 중대는 명령에 따라 부대 이동을 시작했다. 한참 부대 이동을 하는데 마을이 하나 보였다. 알프레트가 중얼거렸다.
"저기서 음식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오토가 말했다.
"그러면 좋겠지만 이 인근 마을이 10개가 있으면 그 중에 3개 정도는 파르티잔에게 협력하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하네."
결국 슐레프 중대장은 잠시 마을 인근에서 정차하면서 차량을 정비하고 마을에서 채소와 과일, 염소 젖을 구입하기로 했다. 슐레프 중대장이 마을 주민들과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스테판이 중얼거렸다.
"음식에 독 넣는거 아냐?"
다행히 마을 주민들은 독일군이 보는 앞에서 직접 염소 젖을 짜주었다. 슐레프 중대장은 값을 치루고 염소 젖과 과일, 채소를 샀다. 전차병들은 배가 고팠기에 모두 과일을 하나씩 꺼내서 먹었다. 근데 아래쪽에 있는 과일들은 상해 있었다. 오토가 마을 주민들에게 외쳤다.
"이보시오!! 이거 다 썩었습니다!! 바꿔주시오!!"
오토는 총을 겨누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을 주민들은 벌벌 떨면서 새 채소를 갖다주었다. 슐레프 중대는 군마들에게 먹일 건초도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은 상한 건초를 가져다주었고 배고픈 군마들도 냄새를 맡고는 건초를 먹지 않았다. 파울이 울화통을 터트리고는 독일어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 새끼들이 장난하나!!"
그렇게 독일군은 마을 주민들에게서 싱싱한 채소와 과일, 건초를 받고는 우물에서 물도 신나게 퍼마셨다. 다들 물을 마셨고 오토는 우물에서 물을 떠서 자신의 반합도 씻었다. 반합은 오토에게 생명과도 같았기 때문에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서 머리도 감을까 했는데 슐레프 중대장이 오토의 귀를 잡아당겼다.
"악!!"
"출발 준비해!! 당장!!"
그렇게 슐레프 중대는 다시 출발했다. 슐레프 중대장은 오토를 보며 골머리가 아팠다. 만약 다른 장교가 오토처럼 행동했다면 상부에 그대로 보고했을 것 이다. 하지만 어쨋거나 오토는 한스 파이퍼의 아들이었고 엄청난 전공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전투력이 뛰어난 녀석들 중에 인성까지 좋은 녀석은 거의 없었다.
'제발 내 부대에서 큰 사고만 치지 말아라...'
그렇게 슐레프 중대는 관목림에서 숙영을 하게 되었다. 오토 또한 열심히 참호를 파다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뮐러씨에게서 받은 야광 기능이 있는 시계를 보았다.
'10시 밖에 안 되었는데...'
여름에는 밤에도 더웠는데 이제는 조금씩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앞쪽에는 파울이 자신의 기관총 팀과 함께 기관총 호를 파두고 전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오토는 키가 큰 관목림 위를 살펴보았다. 아까 확인은 했지만 왠지 저격수들이 저 위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것 같았다.
오토는 티거 속에 들어가서 밀리나와 가족들이 보내 준 편지를 읽으려고 했지만 읽을 힘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편지를 들고 있는 것 만으로도 가족들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지금 밀리나는 아주 멀리서 오토를 기다리고 있을 것 이다. 밀리나와 같이 놀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에 있었던 일 같았다.
지금의 오토는 너무 변해버린 것 이었다. 밀리나는 언제나 전쟁을 반대했고 아마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에 슬퍼하고 있을 것 이다. 밀리나는 자신이 총리였다면 무역과 외교, 중공업으로 독일을 경제 대국으로 만들거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 시절만 생각하면 오토는 웃음이 나왔다. 둘 다 너무 어렸고 오토와 밀리나는 자신들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토는 몇 시간 뒤 전투를 해야 하는 현실을 떠올렸다.
'좆같네...'
차라리 잠이라도 자면 좋을텐데 몇 시간 뒤에 전투가 있었기에 잠이 오지 않았다. 오토와 병사들은 대다수가 수면부족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계속된 전투로 신체 리듬이 엉망이 되었던 것 이다.
오토가 군사 학교에서 훈련을 받을때 기상 시간은 새벽 5시 5분이었다. 25분 동안 체조를 하고, 7시 전까지 청소를 마쳐야 한다. 선배들은 어떻게던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꼬투리를 잡고 오토와 동기들에게 기합을 주곤 했다. 정오까지 훈련, 그리고 오후 1시반부터 5시까지는 전투, 전술 훈련이 이어진다.
전투 훈련을 하다보면 단추가 떨어지고 옷깃이 터지기 때문에 여섯시 까지는 완벽하게 훈련복을 바느질해야한다. 제대로 안해두면 선배에게 기합을 받는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다음에는 국가 사회주의와 애국심에 대한 교육, 이른바 세뇌를 당했다. 정신교육 이후에는 세탁실, 복도 등을 청소해야 했다.
생각할수록 좆같은 일상이었다. 그 때는 독일 제국을 위한 전사가 될 것 이라는 믿음에 어떻게던 버텼지만 지금은 군사 학교에서 10대 시절을 허비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밤에 몰래 기계 공학 책을 조금씩 읽은게 다행이었다. 오토는 모스크바만 점령하면 대학에 가서 기계 공학을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토는 기갑 병과로 들어갈 예정이었기에 오토바이, 트럭, 퀴벨바겐, 전차 등 모든 종류의 차량을 정비하는 법을 배워두었다. 그렇기에 뒤늦게 기계 공학을 공부해도 잘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달 뒤면 이 좆같은 군복도 끝이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나 실컷 하고 유학도 가는거야!! 그리고 밀리나와 결혼해야지!!'
그런데 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까 전에 욕심을 부려서 염소 젖을 너무 많이 먹은게 원인인 것 같았다. 오토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볼 일을 보기 시작했다. 오토 말고도 이 곳에서는 몇 병사들이 담배를 피우며 볼 일을 보고 있었다.
쿠르릉 쿠릉 쿠르릉
'???'
이건 소련군의 포격 소리였다. 똥을 싸던 오토와 병사들은 모두 뒤로 자빠졌다.
퍽!!
"아아악!!!!"
잠시 뒤, 오토와 몇 병사들은 인근 하천에 가서 엉덩이를 씻어야했다. 그런데 야간에 물을 길러 온 인근 러시아 아가씨들이 이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이 아가씨들은 독일군과 마주치기 싫어서 야간에 물을 길러 온 것 이었다. 마을 아가씨들은 얼굴을 가리고는 황급히 하천 상류로 가서 물을 길었다. 오토가 속으로 울부짖었다.
'왜 하필 지금 오고 지랄이야!!!'
2시간 뒤, 슐레프 중대는 다시 기갑군 명령에 의해 소련군의 주요 거점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정찰에 의하면 소련군은 T-34/76의 포탑으로 도로와 주요 거점에 토치카를 만들어둔 상태였다. 이런 포탑으로 만들어진 토치카는 땅에 낮게 붙어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조준하지 않으면 격파가 힘들다. 현재 소련군은 모스크바를 포위하려는 독일군을 막기 위하여, 대전차 지뢰는 물론이고 모든 길에 이렇게 T-34/76의 포탑을 이용한 토치카를 설치해두었다.
이렇게 토치카가 설치된 롤반은 티거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오토의 티거가 선두에서 롤반을 지나가며 소련군의 토치카를 격파하기로 했다. 오토는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은 에밀을 격려했다.
"자네는 중부 집단군 최고의 포수다!! 훗날 역사는 이 전쟁을 기억할 것 이다!!"
"헤헤...철갑탄 발사!!!"
슐레프 중대장이 오토의 귀를 잡아 당겼다.
"아악!!"
"저 녀석 부대 잔류시켜도 된다고 보고 올렸냐?"
에밀은 소련 여군에게 당한 이후로 정신이 완전히 나간 상태였지만 오토는 훌륭한 포수인 에밀을 부대에 잔류시키기로 결심한 것 이었다.
"자..잘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슐레프는 뒷목을 잡고는 중대 지휘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토의 티거가 롤반을 따라 뿌연 먼지를 내뿜으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한창 앞에는 T-34/76의 포탑으로 만들어진 토치카 속에서 소련군이 오토의 티거를 쌍안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티거다!!!"
이 토치카 주변에는 수 많은 탄피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철갑탄 장전하고 신호하면 초탄 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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