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룸베어
포병 학교 생도들은 기차 속에서 설렘과 두려움이 섞인 마음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파시스트 놈들이 튤라까지 도착했대!"
"3달간 모스크바 방어에 성공한다면 전열을 재정비해서 반격을 할 수 있다고 들었어!"
하지만 다들 속마음은 비슷했다.
'몇 달 만에 파시스트 놈들이 이렇게 빠르게 진격했는데 모스크바를 방어할 수 있을까?'
"놈들은 보급선이 늘어져서 탄약도 보급 못 받고 난장판이라고 들었네! 우리도 할 수 있네!"
생도들은 지금의 처참한 상황에 대해서 굳이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기차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이 열차에는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독일군 항공기의 폭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대공포와 기관총이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었다. 이 대공포와 기관총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졸다가 정치 장교한테 대판 혼나고 있었다.
잠시 뒤 열차가 멈추었다. 이 역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이별을 하고 있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한 젊은 아버지는 아내와 딸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생도들 또한 창문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저런 한심한 놈!!'
'다들 열심히 싸우러 가는데 이 와중에 질질 짜냐!!'
그렇게 아버지는 열차에 탑승했고 딸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한 생도가 말했다.
"이제 파시스트 놈들이랑 싸워야 하는데 저런 사기를 떨어트리는 짓거리나 하다니..."
"내가 장교가 되면 기강을 단단히 잡을걸세!"
다시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튤라에서 또 다시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오토와 전차병들은 반합에 굴라쉬를 배식 받았다. 이번엔 취사병이 알아서 오토에게 고기를 많이 넣어주었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군!'
그렇게 오토는 고기가 산처럼 쌓여있는 반합을 들고는 대피소에 들어가서 소대원들과 탁자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이 곳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탁자가 있어서 편했다. 그 때 밖에 퀴벨바겐이 한 대 멈추더니 발터 모델이 들어왔다.
'!!!'
오토와 소대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경례를 했다. 발터 모델이 말했다.
"편히 쉬게."
발터 모델은 전차 전술에 대해 일선에서 전투하는 장교들과 직접 대화를 하며 의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모델이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오토 파이퍼의 소대는 여태까지 엄청난 수의 소련군 전차와 대전차포를 격파했다. 최전선에서 전차 부대가 쓰는 전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었기에 오토 파이퍼와 그 외 에이스 전차병들과 현재 전투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될 것 이었다.
발터 모델이 부관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이 친구들과 식사를 하겠네."
그렇게 발터 모델 또한 부관과 함께 취사병에게 배식을 받았다. 취사병은 굴라쉬를 한가득 떠서 배식할 준비를 했지만 모델이 말했다.
"고기는 필요없네. 흑빵이나 주게."
모델은 어차피 늘 제대로된 식사를 하고 있으니 굳이 일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식량까지 빼앗고 싶지는 않았던 것 이다. 그렇게 모델은 까샤와 야채, 흑빵만 배식 받고는 오토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발터 모델 옆에 앉게 된 에밀은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발터 모델이 오토에게 말했다.
"자네 소대에 대한 전투 보고서를 읽어보았네."
모델은 오토의 반합에만 수북히 쌓여있는 굴라쉬를 보았다. 다른 병사들의 반합에는 굴라쉬가 조금씩만 들어있었다. 더군다나 오토는 고급 캐비어 통조림까지 까서 같이 먹고 있었다. 오토는 완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이마에서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델은 오토 파이퍼를 한심하게 생각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굳이 언급할 일은 아니었기에 말을 이었다.
"지금 소련군 전차 부대와 대전차 부대 또한 계속해서 전술을 발전시키고 있네. 놈들은 독일 제국 전차 부대의 전술을 면밀히 연구하고 그에 따라 계속 대응을 하고 있지. 그렇기에 제군들도 전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걸세."
잠시 뒤 발터 모델은 퀴벨바겐을 타고는 후방 사령부로 떠났다. 오토는 식은 땀을 흘렸다. 왠지 굴라쉬를 많이 배급받은 것 때문에 찍힌 것 같았다.
'서..설마 이걸 기억하진 않겠지?'
오토는 소대원들과 함께 전차를 보러 갔다. 보병들은 튤라에도 건물 사이사이에 대규모로 참호를 파두고 있었다. 이렇게 참호를 파두면 저격수의 총에 맞지 않고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이 가능하다. 소련군이 갑작스럽게 반격을 해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중요한 진지로 사용되는 건물 근처에는 지뢰를 매설해두고, 이렇게 참호를 파서 통로를 만들어두었다. 가끔 참호를 지나가는 병사들의 둥근 슈탈헬름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공병들은 튤라 시가지에 있는 피아노에서 피아노줄을 잘라낸 다음 이곳 저곳에 설치하고 있었다. 공병 소대장 노이어가 오토에게 시가지에 피아노줄이 설치된 위치를 말해주었다.
"이 위치에 피아노줄을 설치해두었네!"
이렇게 시가지에 피아노줄을 설치해서 전차의 궤도에 엉키게 하는 것은 소련군의 전술이었다. 전차 궤도에 피아노줄이 엉켜서 전차병이 펜치를 들고 나올 때 매복해있던 저격수가 저격총을 쏘는 식으로 소련군은 방어를 했다.
하지만 원래 적군의 전술도 유용하면 긴빠이쳐서 쓰는 것이 전쟁이다. 오토는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피아노줄이 설치된 길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서 알려주었다. 그리고 오토의 소대는 다시 튤라 시가지를 진격했다.
콰광!! 쿠구궁!!
4호 전차장 슈뢰어가 무선으로 보고했다.
"83번 확인점 광장!! T-34/76 2대!!"
"수신 완료!!"
83번 확인점으로 가려면 도로를 우회해야 했기에 7분 정도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그 때쯤이면 T-34 전차는 이미 위치를 이동했을 것이 분명했다. 오토가 조종수 마티아스에게 외쳤다.
"좌측 민가 보이나!!"
"확인 완료!!"
"뚫고 들어가!!"
잠시 뒤, 2층짜리 민가는 티거에 의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오토와 티거의 전차병들은 벽돌이 티거 위로 쏟아져내리는 것을 고대로 느꼈다.
'으아악!!!'
그렇게 티거는 차체 위에 벽돌을 수북히 쌓아둔 채로 앞으로 진격했다.
트으응 트드등 트드드드등
광장에는 T-34/76 두 대가 있었고, 한 대는 포탑을 5시 방향, 다른 한 대는 11시 방향으로 해둔 상태였다. 오토가 외쳤다.
"좌측 T-34부터 철갑탄 발사!"
티잉!! 쿠과광!!
포탑을 5시 방향으로 돌려두었던 T-34가 폭발하며 포탑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쿠과광!! 콰과광!!
다른 T-34/76가 포탑을 선회시키기 전에, 오토의 티거는 T-34를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쿠광!! 콰과광!!
그렇게 힘든 전투를 마치고 오토와 소대원들은 다시 본부로 복귀했다. 그런데 여태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전차가 다른 부대에 보급된 것을 목격했다. 15cm 곡사포가 장착된 이 뚱뚱해보이고 투박한 신전차를 보고는 오토가 말했다.
"이건 뭐지?"
브룸베어 소대의 장교가 으스대며 외쳤다.
"브룸베어일세! 시가전에선 이게 티거나 판터보다도 훨씬 유용할걸세!"
"3호 돌격포는 콘크리트 벽은 부수지 못했는데 이건 엄청나겠군."
확실히 이 12구경장 15cm StuH 43 곡사포는 시가전에서 엄청나게 유용할 것이 분명했다. 제아무리 티거와 판터가 강한들 시가전에서는 딱히 T-34에 비해 유리할 것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오토는 티거와 판터를 시가전에서 쓰는 것이 전력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뒤, 브룸베어는 소련군이 요새화시킨 건물을 완전히 박살내는 전공을 세웠다.
쿠구궁!! 쿠과광!!
오토는 대피소 건물 옥상에서 잠망경을 이용해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소련군의 요새화 건물이 15cm 포탄을 맞고는 엄청난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다시 브룸베어는 소련군의 건물을 향해 15cm 포를 한 발 더 날렸다.
쿠과광!!!
이 폭발은 인근 건물들과 대지까지 진동시켰다. 그렇게 오토는 브룸베어의 활약을 구경하고는 대피소 1층으로 내려왔다. 이제 튤라는 독일군의 손에 거의 넘어온 상태였다.
1층에 내려와보니 우편병들이 슐레프 중대에게 배달된 소포와 편지를 가지고 온 상태였다. 수북히 쌓여있는 우편물 사이에서 다들 자신에게 온 소포를 찾았다. 오토 또한 에밀라에게서 온 소포를 받고는 초코렛을 꺼내 먹고 담배를 피웠다.
'역시 담배는 싸제야!'
그 때 자신의 소포를 찾던 게오르크가 외쳤다.
"스테판 이거 자네한테 왔네! 에밀라 파이퍼로부터!"
스테판이 깜짝 놀랐다.
"나..나한테 왔다고?"
놀랍게도 스테판 또한 오토와 똑같은 초콜릿과 담배, 그 외 식량을 받았다. 분명히 소포의 발신자에는 에밀라 파이퍼라고 적혀 있었다. 스테판이 초콜릿을 꺼내 먹는데 오토가 걸어왔다.
"나한테 올거 너한테 잘못 간거 아냐?"
하지만 소포에는 분명 에밀라의 글씨체가 적혀 있었다. 왠지 양도 많아보였다. 오토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스테판의 소포를 들여다보았다. 스테판은 자신의 소포를 들고 가며 말했다.
"이건 내꺼잖아."
오토는 띠꺼운 표정으로 주저앉아서 캐비어 통조림을 먹었다.
"캐비어는 지겨운데..."
한편, 블라덱 소대에서는 전투 끝에 소련군 포로를 두 명 잡은 상태였다. 그 중에 한 명은 십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보통 포로들은 눈치를 보게 마련이었는데 그 새끼들은 포로로 잡혔는데도 좆같이 당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블라덱 소대원들이 이 십대 중반의 소련 병사의 대가리를 때렸다.
퍽!!
"이 새끼가 지금 상황을 모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련군 포로는 기가 죽지 않았다. 결국 열 받은 블라덱의 소대원들은 그 어린 소련군을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퍽!! 퍼억!! 퍽!!
다른 소련군 포로가 외쳤다.
"그만 둬!!"
퍼억!!
"너도 뒤지기 싫으면 닥치고 있어!!"
잠시 뒤 그 소련군 포로는 기절했다. 오토 또한 소대원들과 함께 캐비어 통조림을 먹으며 이 광경을 구경했다.
"저런 한심한 놈..포로로 잡혔으면 숙일 줄도 알아야지!"
그리고 다음 날, 튤라는 거의 점령이 되었기에 만토이펠 대대는 주전선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오토와 소대원들은 신나게 전차를 정비하고는 이동할 준비를 했다.
"가자!!"
트으응 트드등 트드등
만토이펠 대대는 부대 이동이 감재되지 않도록 가급적 저지대를 이용하여 전진했다. 그렇게 한참을 전진하다가, 이들은 앞으로 전차 부대가 넘어야할 능선을 발견했다. 지도에 의하면 이 능선을 넘고 700m 정도 앞에는 또 다른 능선이 있었다.
오토는 초조하게 지도를 바라보았다.
'뭔가 불길한데...'
여태까지 전진하면서 소련군의 공격도 받지 않았고 너무 조용했다. 오토가 슐레프 중대장에게 건의했다.
"이 두번째 능선에 소련군의 전차와 대전차포가 매복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군의 전차부대가 첫번째 능선을 넘어갈때를 노리는 것 입니다."
첫번째 능선과 두번째 능선의 거리는 고작 700m 정도였다. 소련군은 장거리 교전에 불리하기 때문에 이런 전략을 쓸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발터 모델이 최근에 오토 소대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소련군이 쓰는 이런 전술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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