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소련 회담
한편, 도이체 보헨샤우(독일 주간 뉴스)에 나타샤, 뽈리나, 키라, 마가리타, 옥사나의 얼굴이 대문짝하게 보도되었다. 이는 나타샤 일행이 스페츠나츠 임무를 받고 독일에 침투했을때, 크라우제가 촬영한 것 이었다. 그 촬영분에서 나타샤가 얼굴을 가리며 크라우제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찍지 마! 찍지 말라고!! 망할 크라우트들아!!"
자막에는 이렇게 나왔다.
[제복을 입은 볼셰비키 총잡이 소녀들이 포로로 잡히다!]
그리고 도이체 보헨샤우에 얼굴이 공개되었기 때문에 나타샤 일행은 스페츠나츠에서 짤리고 다시 원래 부대로 돌아갔다. 나타샤는 억울해서 외쳤다.
"죽어라 목숨 걸고 싸웠는데!!!"
옥사나가 말했다.
"그래도 훈장은 그대로 아닙니까?"
"국가를 위해 싸웠으니 이걸로 충분합니다."
나타샤가 속으로 생각했다.
'너네나 국가를 위해 싸워!!!'
뽈리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이거 별 문제 없겠죠?"
나타샤가 말했다.
"도이체 보헨샤우인가 그게 1주일에 한 회씩 나온다는데 별 일 있겠어? 다 잊어버릴거야!"
참고로 21세기, 한스 파이퍼의 후손이자 밀덕인 루카 파이퍼는 유투브에서 도이체 보헨샤우를 보다가 나타샤 일행을 발견했다. 나타샤라는 이름의 소녀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볼셰비키 총잡이 소녀들이 포로로 잡히다!]
그리고 나타샤 일행의 사진은 2차대전 관련 책에 삽화로도 계속해서 등장했다.
한편, 1941년 4월 소련 외무인민위원 리트비노프와 프랑스의 외무장관은 프랑스 파리에서 소련-프랑스 회담을 갖게 되었다. 스탈린은 이번 회담의 빠른 진전을 위하여 리트비노프에게 전권을 위임한 상황이었다. 리트비노프가 프랑스로부터 얻어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1) 프랑스가 서유럽에서 독일을 상대로 2전선을 여는 것.
(2) 프랑스와의 군사적 협정 체결
리트비노프는 현재 프랑스 파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분석과 자신이 상대할 프랑스의 외무장관 조지 보넷에 관한 파일을 읽었다.
'조지 보넷은 현 프랑스 총리인 달라디에와 한때 정치적 알력 다툼이 있었다...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의 평에 따르면 경제와 금융에 있어 대단히 유능하지만 인격이 좋지 못하다...인격이 좋은 정치인이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왜 달라디에와 알력 다툼이 있었는지는 알아야겠군...'
리트비노프는 계속해서 파일을 읽어 보았다.
'현 프랑스 총리 달라디에가 육군장관이었을때 조지 보넷은 군비 삭감을 지지했었군. 그래서 달라디에와 마찰이 있어군...경제적 실용주의를 추구하면서 군비 삭감과 고립주의를 지지하는 성향의 외무장관이라...'
리트비노프는 현 프랑스 외무장관인 조지 보넷에 대한 파일을 읽고는 회담이 대단히 까다로울 것 같다는 막연한 직감을 느꼈다.
'조지 보넷 이 자는 1939년까지는 독일에 유화적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아무리 유화파라고 해도 동유럽에서 프랑스의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계속 유화 정책으로 나가지는 못할 것 이다.'
리트비노프가 파리를 방문하자 공항에서부터 많은 환영 인사가 리트비노프를 반겼다. 프랑스 공산당 측에서 이번 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미리 수를 쓴 것 이었다. 그 날 저녁, 리트비노프는 조지 보넷과 악수를 하며 상대를 파악했다.
'인상이 좋지 않군...'
리트비노프는 이번 회담에 임하는 프랑스의 태도가 세 가지 중에 하나일거라고 분석했다.
(1) 소련의 의향을 파악하되 이번 회담에서 문서화된 협정을 체결하지는 않을 것. 프랑스가 군사적 행동에 나설 경우, 소련이 독일과 휴전 협정을 체결할 의향이 없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주 목적.
(2) 협정을 체결하는 것. 프랑스가 군사적 행동에 나설 경우 독일이 양면 전선을 유지해야 하므로 프랑스와 소련은 상호 간의 동의가 없으면 독일과 휴전 협정을 체결하지 않을 것 이라는 문서화된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좋다. 그러한 협정을 비공개로 하거나 혹은 문서화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는 프랑스가 군사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이다.
(3)소련에 그 어떠한 보장도 해주지 않고, 그저 독일에게 보여주기식 회담을 하는 것. 이번 회담에서 어떤 실질적인 결과물도 내지 않고, 독일에 외교적 압력을 가하는 것이 주목적으로, 소련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황.
현재 프랑스가 알자스 로렌을 두고 진행 중인 독일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소련과의 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3번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리트비노프가 파리까지 온 것은 순전히 프랑스에게 놀아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곧이어 회담이 시작되었고 리트비노프는 회담의 빠른 진전을 위해서 자신은 스탈린으로부터 모든 전권을 갖고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현재 독일군은 탱크, 포, 기갑부대, 정예병들을 모두 동부전선에 집중한 상황입니다. 특히 이제 4월 20일 즈음에 시작될 공세를 위하여 독일군은 가용 가능한 모든 부대를 동부로 돌린 상황입니다."
조지 보넷이 대답했다.
"물론 그렇겠지요."
리트비노프가 말을 이었다.
"현재 서유럽에서는 독일의 전력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독일군이 군사적 이득을 본 이유는, 1940년 4월 전쟁 발발 직전 독일의 부대가 전면적으로 동원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기습 공격으로 단기간의 군사적 이득을 본 것 입니다."
하지만 조지 보넷은 프랑스의 참전이나 군사적인 협정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빙빙 돌리며 그 어떠한 확답도 주지 않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최대한 조심하던 리트비노프는 살짝 강경하게 나가기 시작했다.
"독일은 중유럽과 독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프랑스는 전혀 독일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현재 리트비노프와 조지 보넷의 회담은 모조리 녹음되고 있었으며 두 명의 속기사에 의해 기록되고 있었다. 이번 회담은 오늘 저녁 모스크바로 직통으로 전달될 것이 분명했고, 조지 보넷은 리트비노프에게 그 어떠한 약속도 해주지 않았다. 보넷은 군사적인 문제보다는 현 유럽 경제에 대해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굳이 이번 전쟁에 끼어들어서 군비를 낭비하고 프랑스 장병들의 피를 흘릴 이유가 없다.'
보넷이 말했다.
"말씀하신 것에 동의합니다. 위와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 유연성을 갖고 단계적으로 합의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리트비노프는 안경을 벗고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애초에 조지 보넷은 협정을 체결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리트비노프가 안경을 다시 끼고는 최대한 참을성을 잃지 않고 천천히 이야기했다.
"이번 회담에서 어떠한 협정도 체결하지 않는다면 제가 파리에 방문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이번 회담은 그 어떠한 구두 약속도 없이 종결되었다. 리트비노프는 회담이 종료되자마자 바로 모스크바에 직통으로 아무 것도 얻어낸게 없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리트비노프는 회담이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일부러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매우 건설적인 회담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리트비노프가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달라디에와 조지 보넷이 앞으로도 자리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 이다. 프랑스 내부에서는 조만간 강경파가 힘을 얻게 될 것 이다.'
다음 날 이번 회담은 매우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으며 양국의 친선과 우애를 확인하고 발전시켰다고 프랑스, 소련 언론사를 통하여 보도되었다. 그리고 이 시각, 독일 게슈타포는 프랑스의 외교 암호를 해독해서 이번 프랑스-소련 회담에서 실질적인 결과물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독일 외무부는 프랑스에 대한 외교적 [시간끌기]를 그대로 유지해나가기로 결정했다. 알자스 로렌에 프랑스인들의 자유로운 출입과 경제적 활동을 허가하고, 프랑스어 사용을 인정하는 방안에 더불어, 독일군이 프랑스 국경에서 최소 15km 밖까지 물러나는 조건을 추가적으로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알자스 로렌에 대하여 유연성을 갖고 단계적 협상을 하고 싶으며, 관세 등에 대해서도 추후에 협상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강경파 정치인들 또한 이번 회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는 분개하고 있었다. 한 강경파 정치인이 말했다.
"어차피 독일은 협상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독일에 나라를 팔아먹는 짓거리를 좌시해야 합니까!"
언론사 사장들이랑 친한 프랑스 의원이 의원이 최근 여론 조사에 대한 자료를 제시하며 말했다.
"점점 국민들의 여론 또한 독일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강경파가 우세해질테니 그 때까지 소련이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그때까지 소련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나폴레옹도 실패한 일을 히틀러가 해낼 수 있겠습니까? 히틀러는 러시아 땅의 거대한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입니다."
한편, 스탈린은 리트비노프로부터 보고를 받고 현 상황에 대해 장성들에게 이야기했다. 일부 장성들은 프랑스가 2전선을 형성하는 것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기에 이 이야기를 듣고 낙담했다.
'서방은 소련의 힘이 빠지길 기다리는 것이군...'
'부르주아 놈들은 고의적으로 우리가 최대한 피를 흘리게 만들고 있다.'
참모총장 바실리예프스키 최근 모스크바 쪽에서 독일군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이는 분명 기만 작전을 위한 국지적 움직임일 것 이다...'
이미 남부전선으로 이동시켜둔 수 많은 병력들을 이제와서 다시 중부 쪽으로 가져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현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바실리예프스키는 전체 전선 지도를 보며 어느 쪽에서 독일군 특유의 쐐기 같은 공격이 시작될지 머리 속으로 워게임을 돌리며 예측해보았다.
'분명 독일은 캅카스를 향할 것 이다.'
그리고 스탈린은 군사 회의를 마치고, 현재 소련과 이익이 일치하는 프랑스 극우 강경파들과도 외교적 접촉을 시도하라는 명령을 비밀리에 내렸다.
한편, 모스크바 인근에서는 NKVD, 공산당원, 콤소몰 자원병들이 중기관총, 자동 권총으로 무장하고는 탈영병들을 잡고 있었다. 멋드러진 제복을 입은 이 자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자랑하듯 바리케이트가 설치된 검문소에서 검문 검색을 하며 거들먹거렸다.
반면, 최근에 동원된 일부 소련 병사들은 바로 끌려온거라 군복도 지급받지 못했고 소총 한 자루, 수류탄 두 개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얼마 전에 징집된 두 소련 병사는 마호르카 담배를 조심스럽게 절반으로 나누고 신문지를 찢어서 말아피웠다.
"내 말 맞지? 잉크 맛이 들어있어야 맛있다니까!"
데듀시코라는 이름의 병사는 마호르카 담배는 반드시 잉크가 묻어있는 신문지로 말아 피워야 잉크가 곁들어져서 담배맛이 좋다고 했다. 데듀시코는 현재 독일 제국이 점령한 곳에 아내와 두 딸들을 두고 온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잇대의 아이들에게 빵 조각을 주고는 무릎 위에 앉혀 보았다. 아이들은 빵 조각을 받아 먹고는 달려갔다.
데듀시코는 딱 한 번이라도 딸들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데듀시코는 독일군이 뿌린 삐라를 우연히 곁눈질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삐라에는 독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독일군은 민간인들을 치료해주고 먹을 것도 주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당신들의 가족은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치료시켜주고 먹을 것도 주고 있다. 이 삐라를 가지고 넘어와라.]
데듀시코는 그 삐라를 줍지도 않았고 탈영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삐라의 말대로 가족이 고향에 잘 살아있을거라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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