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츠나츠
1941년 초 프랑스 군사학교를 다니고 있는 샤를 예거(엘랑 예거의 아들)은 친구 에릭, 프랑크, 니꼴라와 함께 주말을 맞아 외출을 했다. 그 때 신문 파는 꼬맹이가 샤를 일행에게 외쳤다.
"특종입니다!! 특종입니다!!"
프랑크가 동전을 주고 신문 한 부를 구입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신문에 그닥 흥미를 끌만한 특종은 없었다. 프랑크가 2면을 보고 외쳤다.
"프랑크푸르트에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을 초대한다는데?"
독일 제국은 1941년 4월, 프랑크푸르트에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영국, 프랑스 참전 용사들을 초대하여 전쟁 부상자들 간 만남을 개최하는 행사를 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행사에는 무려 히틀러가 연설을 할 예정이었다. 히틀러는 예전에도 비슷한 행사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 참전 용사들 앞에서 자신 또한 독가스에 실명할 뻔했고 참호전을 겪었다고 연설한 적이 있었다. 그 연설을 실제로 듣고 온 영국, 프랑스 참전 용사들은 히틀러에 대해 확실히 평화주의자로 보이고, 불필요한 전쟁은 피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에릭이 낄낄거리며 중얼거렸다.
"히틀러가 서부전선을 안 만들려고 용을 쓰는군."
현재 영국, 프랑스에서 독일 제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에, 독일 제국이 제2의 전선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외교적으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 이다. 독일은 자국의 안보를 위한 성전인 독소전만 끝나면 다수의 보병사단을 해체하겠다고 영국, 프랑스 측에 미리 협의해둔 상태였다. 물론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샤를이 생각했다.
'크라우트 놈들은 보병사단을 해체하겠다고 하지만 그 대신 육군을 기계화, 차량화, 기갑화하겠지. 이건 말장난일 뿐이다. 우리와 싸우기 위하여 공군과 해군의 전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놈들의 유보트는...'
니꼴라가 말했다.
"세계대전 경험한 노인네들한테는 제법 먹힐 전략이군. 원래 노인네들은 불러만 주면 좋아하잖아."
그렇게 샤를 일행은 번화가를 구경하는데, 10명 정도 규모의 시위대가 보였다.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삼는 독일과 싸워야 합니다!"
샤를과 친구들은 그 시위대가 드골의 지지자가 아니라, 공산당을 지지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 프랑스 공산당은 소수 정당이었지만, 그 지지자들이 상당히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공산당은 스탈린의 끄나풀이나 다를바 없었고, 그들은 지금이 알자스 로렌을 되찾을 기회라며 전쟁을 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었다.
프랑크가 중얼거렸다.
"저 녀석들 몇 년전에는 전쟁은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냐?"
에릭이 말했다.
"독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고 우리가 크라우트랑 전쟁을 하는 상황이라면 저 공산당 녀석들은 우리 방위산업체에서 파업을 선동했을거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군을 강화하지 못하게 선동한게 저 녀석들이잖아."
공산당은 프랑스의 국방 예산 증가에 반대했던 것 이다.
"크렘린의 장녀잖아."
"크라우트가 육군 강화할때 저 새끼들은 히틀러가 우리 쪽으로 침공할 줄 알고 좋아했지."
"공산당은 강제 해산시키고 군사 재판 세우는게 답이야."
샤를과 친구들은 허구한날 잉크병이나 던지고 싸우는 정치인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산당을 해산시켜주는 쪽에는 다음 선거때 표를 주기로 결심했다. 에릭이 말했다.
"근데 이렇게 되면 미국만 꿀빠는거 아니냐? 서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 기업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럽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거야."
"일본이 동아시아쪽을 노리고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에서 한판 붙어줬어야 하는데."
"만주 쪽에서 유전이 터졌잖아. 덕분에 일본의 석유 문제가 해결되어서 소련을 공격할 수 있었던거지."
1930년대 일본 점령하에 만주 땅에서 대규모 유전이 터지는 바람에 일본의 석유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 이다. 지금 프랑스는 드골의 의견대로 최대 10만명의 직업군인으로 이루어진 정예 기계화 부대를 편성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에는 최소 2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 이었다. 만약 정치권이 진작에 이렇게 협조적이었다면 프랑스의 정예 기계화 부대 편성은 좀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 이다.
샤를과 동료들은 외출을 마치고 군사 학교로 돌아갔다. 다음 날, 샤를과 친구들은 새로 출판된 군사학교 교재를 받았다. 지금 독소전에 영향으로 전술 교리가 엄청나게 바뀌고 있었기에 작년에 선배들이 쓰던 교재는 필요 없게 되었다. 샤를과 에릭은 이제는 필요 없어진 선배들이 작년에 쓰던 필기 노트를 강매했던 것만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었다. 에릭이 필기 노트에 적혀 있는 문서 전달용 비둘기에 관한 부분을 읽으며 말했다.
"지금이 세계 대전때도 아니고 문서 전달용 비둘기 따위가 왜 나와?"
샤를은 필기 노트와 새로 받은 교재를 비교하며 말했다.
"비둘기 키우느니 전신기 하나라도 더 설치해야지."
샤를은 선배들이 써왔던 필기 노트에 적혀 있는 전술을 읽었다. 이동 탄막 사격, 참호 진지 구축 요령, 마지노선의 전략적 의미 등등이 적혀 있었다. 다른 동기가 말했다.
"망할 정치인들 때문에 마지노선 같이 뒤떨어진 방어 시스템에 엄청난 돈을 소모했어. 그 돈으로 신형 중전차나 만들었어야 하는데."
샤를이 말했다.
"마지노선은 방어만을 위한 것이 아니야. 마지노선 덕분에 기갑 부대를 다른 곳에 집중적으로 배치할 수 있을테니 역설적으로 공격적 전술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얼마 전에 선배한테 기합을 받은 녀석이 말했다.
"이렇게 되면 선배들이 우리한테 다시 배워야하는거 아니냐? 여태까지 선배들이 수업에서 배운건 아무 소용 없는 전술이잖아."
샤를은 선배들이 썼던 필기 노트를 읽었다. 이 필기 노트에 적혀있는 원칙들은 가장 기초적인 것 부터 완전히 다시 써야 할 것 이었다.
"진정한 전쟁을 아는건 최고 지휘부 노인네들이 아니라 우리 세대가 될거야."
한편, 오토 파이퍼는 침엽수 위에 올라가서 쌍안경으로 주위를 정찰하고 있었다. 상당히 장거리에서 소련군의 포격 소리가 천둥 소리처럼 들려왔다.
쿠르릉 쿠궁 쿠구구궁
대구경 포탄이 터질때마다 눈이 두텁게 쌓인 거대한 평원에는 시커먼 크레이터가 생겼다. 소련군의 공세가 끝나가기는 하지만 마지막 한 방을 노리고 전선의 약한 틈으로 기습적으로 공격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그렇게 되면 501 중전차 대대가 실력 발휘를 해야 할 것 이다.
소련군 정치 장교 블라슈크는 포격 시간을 체크하고 있었다. 붉은 군대 포병대의 효율적 화력 투사를 위해서는 포격 시간을 정교하게 짤 필요가 있었다. 블라슈크는 일선에서 뛰면서 하급 장교들의 의견을 들으며 이를 모조리 상부에 보고하고 빠른 전술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오토가 포격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놈들 포격이 훨씬 정교해지는군.'
그 때, 오토의 소대원 하나가 달려와서 침엽수 위에 있는 오토에게 외쳤다.
"중대 회의실로 오시랍니다!!"
501 중전차 대대의 슐레프 중대장은 오두막으로 만들어진 중대 회의실에 중대 장교들을 집합시켰다.
"최근 소련군이 스페츠나츠(소련군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교량을 파괴하고, 정보를 빼내는 등 사보타주를 하고 있다. 스페츠나츠는 소대나 분대, 그 이하 단위로 주로 움직이다. 이에 철저히 경계한다."
지금 독일군 전선의 곳곳에는 구멍이 있었다. 소련군은 이러한 독일군 전선의 구멍을 통하여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수색과 견제 임무를 맡기고 있었던 것 이다. 회의가 끝나고, 오토는 자신의 소대 전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추위로 인하여 현재 오토의 소대에 멀쩡히 기동 가능한 티거는 두 대였다. 오토의 소대 뿐 아니라 다른 소대에도 제대로 기동 가능한 티거는 한 두 대가 전부였다.
눈썹에 허옇게 서리가 낀 에밀이 투덜거렸다.
"한 달 전부터 새 전차 보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티아스가 말했다.
"새 전차는 고사하고 부품조차 안 보내주니 이거 원."
오토가 말했다.
"얼마 전에 4호 전차 4대가 열차역까지 보내졌는데 시범 주행해보니 전부 변속기 쪽에 나사가 들어 있었다더군."
알프레트가 말했다.
"변속기 쪽에 나사가 들어있는거면 일부러 사보타주한거 아닙니까?"
독일 내부에 공산주의자들은 소련과의 전쟁에 반대했기 때문에 방위산업체 등에서 파업을 선동하고, 사보타주를 하기도 했던 것 이다. 오토는 만약에 자신의 눈 앞에 공산주의자가 나타난다면 그 새끼를 죽이고 확인사살하기로 결심했다.
'좆같은 새끼들...'
한편, 굴라크를 탈출하는데 성공한 지크프리트 4인조는 같이 탈출한 조선인 일본군 출신의 다이치와 함께 두 대의 전투용 썰매를 나눠 타고 인근을 정찰했다. 두꺼운 눈밭에 네 줄의 굽이치는 선이 생기면서, 썰매는 대평원을 질주했다. 다이치는 MP40 기관단총을 들고 혹시나 침엽수 쪽에 소련군이 있지는 않은지 경계했다. 그 때, 수 km 떨어진 곳에서 붉은색 조명탄이 하늘로 발사되며 기관총 총성이 들렸다.
트등 트드드등 트드드등
수 km 떨어진 곳에서 독일군 전투용 썰매가 소련군 스파이가 타고 있던 군용 트럭을 발견한 것 이었다. 소련군은 수색을 거부하고 도주하고 있었다. 지크프리트 4인조는 잽싸게 방향을 꺾고 쪽으로 달렸다.
쉬이이이익
다이치는 도주하는 소련군 트럭을 향해 MP40를 긁었다.
트드등 트드등 트드드드등
크리스티안 또한 소련군 트럭을 향해 전투 썰매에 달린 기관총을 긁었다.
드륵 드르륵 드르르르륵
끼익!!
이윽고 눈밭에 소련군이 타고 있던 트럭이 멈추었다. 그렇게 지크프리트 4인조와 다이치는 소련군 스파이를 포로로 잡는데 성공하고 진지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전차병 에밀 또한 이 광경을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알프레트가 외쳤다.
"이제 게릴라 참여한 자는 즉결 심판 가능하지 않냐?"
포로로 잡힌 두 소련군 스파이는 공포에 사로잡혀 눈을 굴렸다. 잠시 뒤, 그 스파이들은 장교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지만 놈들은 아무 것도 털어놓지 않았고, 추운 마구간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나타샤와 동료들은 4층짜리 건물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타샤는 식은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제서야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만약에 자신들이 스파이라는 것이 발각된다면 차라리 지금 자살하는 것이 나을 것 이었다. 나타샤는 어깨, 목, 심지어 손발까지 근육 경련이 오기 시작했다.
'어...어떡하지?'
옥사나, 키라, 마가리타, 뽈리나 또한 공포에 쌓여서 눈을 굴리고 있었다. 일단 무기들은 이 4층짜리 건물에 벽 속, 마루 속에 숨겨둔 상태였다. 하지만 언제 독일군이 들이닥쳐서 마루를 뜯고 벽 속에 숨겨둔 무기를 찾아낼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나같이 어린 여자애를 이런 곳에 스파이로 보낼 수 있어!!'
나타샤는 얼마 전 탈영을 시도했다가 끔찍한 일을 당할뻔했던 것이 떠올랐다.
'시...싫어!!'
나타샤는 자신보다도 어린 부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절대로 이들이 그런 일을 겪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나타샤는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무서워하면 다들 더 무서워하겠지?'
나타샤는 주먹을 꽉 쥐었다 푸는 것을 세번 반복했다. 나타샤는 손짓으로 일단 조용히 있으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내가 상황을 보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한편, 소련군 출신의 데니스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나왔다. 데니스는 마구간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칼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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