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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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
작품등록일 :
2021.07.26 14:13
최근연재일 :
2021.08.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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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3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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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화

DUMMY

“흠... 룬터,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신중히 생각한 것이냐?”


오래 생각하던 로스펄이 말했다.

방금 전과 달리 조금의 장난기도 없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예. 계속해서 생각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도 제게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보라 하셨잖습니까.”

“그거야... 지금이 아니라 한 5년 뒤쯤 해보라는 거였지. 누가 이리 바로 할 줄 알았더냐?”

“그럼 스승님은 반대십니까?”

“흐음... 너무 갑작스러워서 고민 좀 해봐야 할 거 같구나. 그런데 네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뭐냐?”


룬터의 두 눈이 반짝였다.

물론 실제로 반짝인 건 아니고, 내 눈에는 그렇고 보였다.


“카살과 훈련을 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저는 그 한계를 넘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카살이라면... 고작 저 녀석 때문에 네가 한계를 느꼈다고?”


늙은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러 탐색으로 확인했을 때 별 볼일이 없어 보이던 내가 거론되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 눈빛을 웃음으로 받아넘기며 어깨를 으쓱이고 입을 열었다.


“기사님. 저는 그저 도련님에게 간단한 몇 가지 조언을 해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말하는 거냐? 도대체 무슨 조언을 해주었길래.”

“정말 간단한 조언이었습니다.”

“클클, 나한테는 말하기 싫다 이거구만. 이거 아주 재미있는 녀석이 나타났어.”


허나 재미있다는 말과 달리 눈빛은 그러하지 않았다.

룬터만 없었다면 힘으로 나를 강제로 찍어눌렀을 기세다.


“아이, 또 왜 그러십니까.”

“아니 넌 제자란 녀석이 왜 나한테만 그러냐?”

“아하하... 카살, 이제 그만 나가봐도 괜찮아. 오늘 일과는 끝이니까 편히 쉬어.”


나는 룬터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복도에는 팔짱을 낀 피셀이 겉멋 가득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카살.”

“단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영주님께서 찾으신다. 따라와라.”


갑작스러운 영주의 호출.

보통의 시종이었다면 크게 당황했을 일이겠지만.


“예 알겠습니다.”

“...놀라지 않은 거냐? 영주님께서 호출하신 일인데도?”

“이유가 있으니 부르신 거 아니겠습니까. 가보면 알겠죠.”

“하여튼... 영주님 말씀대로 조금 이상한 녀석이라니까.”


피셀은 피식 웃고는 나를 영주의 집무실로 데려갔다.


“영주님, 카살을 데려왔습니다.”


영주는 집사의 도움을 받으며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그는 나를 힐끔 보고는 집사와 피셀에게 나가보라 손짓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나가자 서류에서 눈을 떼고 중심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클클, 긴장하지 말고 편히 앉거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부른 것이다.”

“예, 영주님.”

“그래, 요즘 이야기는 듣고 있다. 그 잠깐 사이에 내 아들과 꽤 친해졌다지? 역시 넌 기대 이상이구나.”

“도련님께서 편히 대해주신 덕분입니다.”


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쯧, 내 아들이기 전에 나를 닮은 녀석이라 잘 알지. 룬터는 쉽게 마음을 열 녀석이 아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제게는 처음부터 친절히 대해주셨습니다.”

“클클, 그래서 놀랍다는 거다. 카살, 솔직히 말해 봐라 도대체 무슨 방법을 이용한 거냐?”


역시 갑자기 나를 부른 목적이 그거였나.

아들과 멀어진 사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지금 누구보다 룬터 그 녀석을 더 잘 아는 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지. 녀석이 무얼 좋아하지, 무얼 싫어하는지 전부 다.’


허나 그건 말해 줄 수 없는 비밀.

그저 곰곰이 생각하는 척 연기를 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나이가 같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거 같습니다. 또한.”

“또한?”

“저도 이른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기에 동질감을...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영주님 앞에서 말실수를...”


영주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 펴졌다.


“크흠! 괜찮다. 그래서 룬터가 너에게 마음을 연 걸지도 모르겠구나. 후우... 그 날 이후로 녀석의 멍한 얼굴을 보면 얼마나 속이 쓰리던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련님께서 이제는 자주 웃기도 하십니다.”

“그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후회라도 하는 것처럼 씁쓸해 보이는 저 얼굴.

솔직히 아주 조금 놀랐다. 저 뱀 같은 영주가 이런 표정을 지을 줄이야.


‘역시 아무리 교활한 자라 해도 자식에게는 어쩔 수가 없나 보군.’


그때 순식간에 표정을 수습한 영주가 입을 열었다.


“흠! 이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 카살, 로안을 만나기로 한 기간이 얼마나 남았느냐?”

“5일 남았습니다.”

“별로 남지 않았구나. 이번에도 피셀을 붙여줄 테니 같이 가거라. 반드시 그를 데려와야 한다. 알겠느냐?”

“영주님, 실례가 안 된다면 굳이 로안 경이 필요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클클, 뛰어난 인재를 얻는데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인재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하여간 욕심 많은 늙은이.

그 전에 당신 목숨부터 걱정해야 할 텐데.

과거대로라면 피셀이 당신을 죽이는 날도 며칠 남지 않았거든.


‘이걸 죽도록 둬야하나, 살려야 하나.’


나는 영주의 목숨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아니 사실 고민 자체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했다.

다만, 그의 생사여부가 앞으로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니만큼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과거대로 그를 죽게 내버려 두냐.

아니면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게 뻔한 그를 살리냐는 선택의 기로.


“카살! 네가 로안을 데려오면 큰 보상을 내릴 것이다. 영주의 권한으로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마!”


어라, 이거 피셀에게도 들었던 거 같은데.

하여튼 권력자 놈들은 약속을 너무 쉽게 한단 말이야.


“영주님, 그럼 혹시 보상을 미리 받을 수 있겠습니까?”

“흐음... 보상을 말이냐?”

“예. 그럼 더 힘을 낼 거 같습니다.”

“클클, 보상을 줘야 로안을 데려오겠다는 협박처럼 들리는구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까짓것 좋다. 원하는 걸 말해봐라.”


내가 원하는 거라.

사실 무얼 얻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핏빛 보석을 주십쇼. 소문으로 영주님께서 그 물건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 괴짜 연금술사 녀석이 만든 보석을?”


영주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하긴, 다른 보물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쓸모없는 물건을 요구했으니.


‘다른 사람에게는 쓰레기라도 지금 나한테는 제일 필요한 보물이거든.’


핏빛 보석은 다름 아닌 피를 응축해 만든 보석이었다.

그렇다고 사람의 피는 아니고, 북쪽 회색 숲에 사는 마물의 피였다.


그 괴짜 연금술사가 보석을 만든 이유가 뭐라더라?

어둠 마나를 품은 마물의 특성을 이용해 인공 마나석을 만들고 싶었다나.

하지만 결과는 당연히 실패.

그 탓에 현재 핏빛 보석은 그냥 별 가치 없는 수집용 물건이 되어버렸다.


“으음... 굳이 그런 가치 없는 물건을. 차라리 다른 보석은 어떠냐? 차마 내 양심에 찔려 수락할 수가 없구나.”

“저는 괜찮습니다. 꼭 가지고 싶던 물건입니다.”

“...누가 이상한 놈 아니랄까 봐. 뭐, 마음대로 해라. 나야 손해 볼 것이 없으니.”

“감사합니다.”

“됐다. 그만 나가봐라. 피셀에게 가져다주라 할 터이니.”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시간이 아슬아슬했는데 다행이야.”


핏빛 보석은 현재 1단계 진화를 앞둔 내게 길을 열어줄 열쇠.

피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는 내게는 마물의 피라 하여도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오히려 강한 힘을 가진 마물의 농축된 피라면 더 좋을 뿐이었다.



* * *



늦은 밤


“자, 받아라. 네가 영주님에게 말했던 핏빛 보석이다.”


피셀이 보석을 들고 내 방을 찾았다.

그는 보석을 받고 웃는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살, 후회하지 않나? 고작 그 가치 없는 보석 때문에 영주님이 주신 기회를 날리다니...”

“저는 괜찮습니다. 딱히 돈에 욕심이 없기도 하고요.”

“하여간... 알았다. 나는 그만 가보마.”


피셀이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참! 그런데 영주님과 도련님의 사이가 좋아 보이더군요. 소문으로는 좋지 않다고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네 눈에는 그래 보였나?”

“예. 특히 영주님께서 도련님 걱정을 많이 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냥 봐도 애정이 보인달까요.”

“...”


내가 던진 도발이 제대로 먹혔다.

눈에 띌 정도로 굳어진 저 표정을 보면 분명히.

그렇게 잠시 아무런 말도 없이 서 있던 녀석이 이내 깊은숨을 내뱉었다.


“휴우...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역시 피가 섞인 ‘가족’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하긴, 가족과 남은 다르겠죠.”

“...가보마.”


피셀이 입술을 깨물며 밖으로 나갔다.

녀석의 얼굴만 보면 질투심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래, 피셀. 그 질투심을 참지 말고 예정대로 움직여. 내가 판을 쥐고 흔들 수 있게끔 말이야.”


판에 깔린 말들은 그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결과를 선택하는 건 바로 나니까.


꽈아악!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린 붉은 보석을 바라봤다.

보석의 색깔은 사람의 선혈보다는 더 어두웠다.

거기다 평범한 보석에서는 느껴지지 않을 탁한 힘이 느껴졌다.


“어둠 마나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편식할 상황은 아니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보석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기가 손바닥 삼분에 일만 해서 삼키는 게 쉽지 않지만, 몸으로 들어가니 보석이 스르륵 녹았다.

그와 동시에 육체에 전율이 일며 두 번째 심장이 맥박을 시작했다.


쿠웅! 쿠웅!


짜릿하다 못해 황홀한 이 기분!


꽈드득!! 꾸드득!!


처음 인간의 피를 마셨을 때 겪은 재구성을 넘어 육체가 완전히 탈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마시며 모은 피의 힘이 육체의 그릇을 넓히려는 것이다.


“크읍!”


덕분에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처음 겪는 것도 아닌데 인상이 절로 써질 정도로.

꼭 누가 내 온몸을 망치로 부수고 불로 태우는 느낌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문 채 그 고통을 인내하며 마지막 시련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스르르-


그 순간 눈앞이 빠르게 캄캄해졌다.

눈을 감은 건 아니었다. 그저 마지막 시련을 위한 장소로 이동하는 절차였을 뿐.

다시 시야가 밝아졌을 때는 작은 방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동굴 속이었다.


“여기도.... 정말 오랜만이군.”


육체적 진화가 신체 재구성이었다면, 이곳은 능력자체를 진화시키기 위한 시련의 무대.

아버지인 카이악이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만든 특수 공간이었다.


나는 움직이기에 앞서 주먹을 쥐어보았다.


꽈아악!


무엇이든 부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넘쳐흘렀다.

육체 재구성이 무사히 끝이 난 것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끝을 알 수 없는 동굴을 걸어가는 일뿐.


저벅저벅.


고요한 동굴에서는 내 발자국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나는 그 소리를 악기 소리처럼 음미하며 서서히 보이는 통로의 끝을 바라봤다.

그곳은 광장이었는데, 중앙에 3m도 넘는 커다란 석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건장한 인간의 체형에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

머리 위로 우뚝 솟아나 있는 두 개의 거대한 뿔까지.


드드득!!


그 순간 동상이 흔들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굳은 몸을 풀고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군주의 자격에 도전하는 자. 그 시련을 견뎌라. 나는 대군주 카이악 님의.....]

“석상 괴물.”


나는 녀석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도발하듯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귀찮게 더 이상 설명할 거 없어.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붙어보자고. 내가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말이야.”

[....오랜만에 보는 건방진 도전자군.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려면 그만한 실력을 갖추었어야 할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은. 내 실력을 보고 너무 놀라지나 말라고.”


솔직히 과거에는 저 괴물을 상대로 쩔쩔맸다.

그나마도 녀석이 봐주면서 했기에 몇 번의 도전을 반복해 시련을 통과할 수 있었던 거지.

지금처럼 제대로 도발을 걸고 싸웠다면 진화는커녕 분명 죽었을 터.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지. 나는 용사였던 카살이니까.’


내가 용사가 될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

신에게 선택받은 룬터와 맞먹을 정도로 강했기 때문.


[오만한 도전자여, 그 대가를 받으라!]

“틀렸어. 나는 오만한 게 아니라...”


진화를 도중에 포기하고도 노력만으로 인간들의 정점에 섰던 게.


“그냥 강한 거다.”


바로 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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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0 개돼지꿀멍
    작성일
    21.08.16 23:01
    No. 1

    영주가 의심이 많다더니 갑자기 바보가 되었네.
    평민이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보석을 돈이 목적이 아닌데도 갑자기 달라고 했는데 의심도 않고 넙죽 내주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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