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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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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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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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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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DUMMY

승급 시험 당일.


나와 룬터는 신전 일찍부터 지하로 내려갔다.

이번 승급 시험 무대가 어제까지 이용했던 지하 던전이었기 때문에.


“여기야! 14호!”


우리를 반겨준 건 90일 만에 다시 만난 4호였다.

처음 만났을 당시에만 해도 13호였던 녀석이 1년 만에 4호가 되었다.


‘조금 이례적인 일이지.’


승급 시험의 합격률을 생각하면 1년 만에 9명이 빠졌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됐다.

룬터는커녕 악시온이나 심판의 용사 수준의 재능을 가진 녀석도 흔치 않은 게 사실이니까.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벌써 4호가 되신 겁니까?”

“하아.... 그러게 말이다. 요즘 따라 중간에 포기하고 나가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건지....”

“예? 그럼 다른 선배님들이 용사가 돼서 나간 게 아니었습니까?”


4호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사실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의 말이 정확했다.

용사를 포기해도 고향으로 돌아가 사치를 부리며 살면 그만이니 아쉬울 게 없는 거다.

그리고 안 되는 걸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게 더 미련한 법이니까.


“아하.... 그런 사정이 있었나 보네요. 전혀 몰랐습니다. 조금 아쉽네요. 다들 용사가 되어 만나고 싶었는데...”

“됐어,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아! 그런데 너 말이야....”

“예?”

“큭큭, 1년 차 주제에 건방지게 승급 시험에 도전해? 너 때문에 다른 탑도 난리가 난 거 알지?”


4호의 장난에 룬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꼭 도전해보고....”


그에 오히려 당황한 건 4호였다.

그는 황급히 손을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야! 장난이야 장난! 승급 시험에 도전하는 건 본인의 자유지 누가 뭐라고 할 게 아니라고. 그리고 너는....”

“예?”

“천재잖아. 천재가 남들과 똑같은 길을 걸어갈 이유는 없는 법이지! 암, 그렇고말고.”

“....제가요?”


룬터가 똘망똘망한 눈을 한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얄미운지 나와 4호는 눈을 찌푸렸다.


이래서 천재들이 문제다.

정작 당사자들은 본인들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타고났는지 모르니까.


‘....뭐, 사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피를 포식할 때마다 다시 한번 느낀다.

아버지인 카이악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능력을 내게 물려주었는지에 대해.

과거에는 그가 싫어 이런 능력을 방치했으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었을 거다.


“휴우.... 카살, 그럼 다녀올게.”


룬터가 던전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었다.

승급 시험은 보조가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련님, 하던 대로만 하세요. 괜히 뭘 더 하려고 하지 말고요.”

“....꼭 명심할게.”

“제발 그러시길.”


나는 녀석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대기석에 앉았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이다. 녀석이 당당히 1차 시험에 합격해 손을 흔들며 나올 때까지.



* * *



승급 시험 무대인 제7 던전.


시험에 도전한 건 총 5명이었다.

그중 같은 탑 소속인 룬터와 4호 그리고 1호가 한 자리에 뭉쳤다.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에서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1호였다.


“다들 알겠지만, 우린 다른 탑 지망생과 달리 선택권이 있어.”

“선배님, 선택권이라면 협동과 개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1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협동을 해서 다 같이 시험에 합격하던가, 아니면 저 녀석들처럼 개별로 움직이는 방법이 있지.”


다른 탑 소속 지망생 두 명은 이미 자리를 뜬지 오래였다.

그들은 던전 초입에 연결된 총 5개의 입구 중 각자 하나씩 들어갔다.


그렇다면 현재 남은 통로는 3개.

마침 남은 인원도 3명이기에 그들은 협동을 하든 개인을 하든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잠시 고민하던 4호가 입을 열었다.


“저는 찬성입니다. 14호, 너는 어때?”

“저도 좋습니다!”

“흐흐, 그럴 줄 알았지! 그럼 일단 너는 나랑 함께하는 걸로 하고, 1호 선배께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신중한 눈빛을 한 채 턱을 쓰다듬던 1호가 고개를 저었다.


“너희 둘이 협동하겠다면, 미안하지만 난 혼자 움직이겠어.”

“음,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1호가 룬터를 빤히 쳐다봤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아니, 살짝 질시가 섞인 눈빛이었다.


“14호가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래 봤자 1년 차야. 녀석은 분명 짐이 되겠지.”

“선배! 14호에게 그건 너무 실례되는....”


룬터가 흥분한 4호의 어깨를 잡았다.


“선배, 틀린 말은 아니에요. 저는 1호 선배의 의견을 존중할게요. 1호 선배께서 먼저 통로를 정하세요.”

“....내 말이 과했다면 미안하다. 그럼 너희도 시험에 붙길 바라마.”


1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통로로 사라졌다.

룬터는 그때야 화가 잔뜩 난 4호의 어깨를 놓아 주었다.


“야! 너는 저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냐?”

“아하하....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제가 1년 차인 건 사실이니까....”

“아니 그래도.....”

“괜찮아요, 선배. 제 실력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보란 듯이 시험에 합격할 겁니다.”


4호도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었다.

그는 룬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 해보자고! 내가 꼭 저 1호 녀석 때문이라도 반드시 용사가 되고 말 테니까! 어디 두고 보라지!”

“예? 선배, 고작 그런 이유로 용사가 된다는 건.....”

“....너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받는 거 아니냐?”



* * *



어느덧 룬터가 던전에 들어간 지도 벌써 9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 도대체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1차 시험 종류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시간.

그런데 녀석과 4호만 아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진즉에 나온 3명을 바라봤다.

저 중 합격자는 겨우 1명에 불과했다.

룬터와 같은 탑 소속인 1호는 시험에 떨어졌다.

녀석은 침울한 얼굴을 한 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멍청한 새끼.’


나는 1호가 혼자 나왔을 때 단번에 상황을 알아챘다.

녀석이 4호와 룬터를 버리고 홀로 움직이는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잘못된 선택으로 녀석이 시험에 떨어졌다는 것까지.


사실 녀석은 1호치고는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자신이 용사가 될 그릇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진즉에 탑에서 나갔어야 할 녀석인 거다.

용사란 그저 끈기만 있다고 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니까.


그때 옆에 있던 4호 보조가 벌떡 일어섰다.


“어, 나왔다!”


그의 말처럼 던전에서 4호와 룬터가 함께 걸어 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험한 싸움을 했는지 옷과 얼굴 상태가 영 아니었다.

하지만 입과 눈은 웃고 있었다.


“카살!”

“도련님,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걱정부터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너무 매정하잖아.”

“결과가 더 중요합니다.”

“그게 말이지.....”


룬터가 옆에 있던 4호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동시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합격이야! 시간이 아슬아슬했는데, 다행히 막판에 높은 점수 몬스터가 나와서 간신히 채웠지!”


그제야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다행이군요.”

“그게 끝이야? 나 진짜 힘들었다니까!”

“잘하셨습니다.”


녀석이라면 합격할 거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사실 조금은 불안했다.

다른 지망생들보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았기에.

그래서 4호가 승급 시험에 도전했다고 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녀석이 옆에 있다면 룬터에게 부족한 경험을 채워줄 수 있으니까.


“4호 님도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고생은 했는데 뭐, 이번 시험은 14호 덕이 컸지! 저 녀석 도대체 5구역 던전에서 뭘 했길래 이렇게 강해진 거래?”


4호의 눈빛이 꼭 괴물을 보는 것처럼 놀란 상태였다.

녀석은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다 내일 보자는 말을 남긴 채 먼저 자리를 떠났다.


“카살, 우리도 그만 방으로 가자. 사실 서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거든....”

“알겠습니다. 2차 시험은 내일 오후에 있다고 하더군요.”

“시험 종목은 나왔어?”

“예. 제론 사제 말로는 대련 종목이 될 거 같답니다.”

“대련이라면....”


룬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단순한 대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던전처럼 성물의 힘을 이용해 만든 특수 인형과 일대일로 치러지는 실전 대련이었다.

그리고 그 종목은 지망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시험이기도 했다.


‘다른 녀석은 몰라도 룬터라면 별문제가 없겠지. 대련이라면 나와 줄곧 했으니까.’


나는 이때를 위해 녀석을 아주 혹독하게 굴렸다.

신전 생활 3개월 차부터 하루에 한 번씩 강제로 대련을 시켰다.

혹여라도 녀석이 힘들다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련을 빌미로 사정없이 두들겨 팬 적도 많았다.

그것 때문에 녀석이 얼마나 찡찡거리던지.


“아! 카살. 1호 선배는 어떻게 됐어?”

“떨어졌습니다. 뭐, 본인 스스로 중간에 포기한 거라 아깝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그래서 아까 표정이 안 좋았나 보네....”

“도련님도 긴장하세요. 도련님께서 내일 그 표정을 짓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말에도 룬터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살짝 불안해하던 것과 달리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이다.


“1차 시험을 하면서 느꼈어. 카살 네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그러니까 내일 시험도 붙을 거야. 반드시!”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하하! 내가 널 용사로 만들어줄게! 나만 믿으라고!”


참나, 지금 누가 해야 할 소리를 하는 건지.

그래도 그 모습이 웃겨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내가 널 최고의 용사로 만들어주마. 그리고.....’


바로 그 날이 내 손으로 너를 죽이는 날이 되겠지.



* * *



다음 날 오후가 되자 대련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중에는 조금 의외인 사람도 몇몇 있었다.


‘살라무스에 이어서 늙은 여우까지 오다니....’


그들은 C급 용사 살라무스와 대사제 중 하나인 마르타인.


고작 지망생 승급 시험에 대사제와 상위 용사가 참관하는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바로 저 늙은이가 룬터에게 임무를 내려 괴롭히던 녀석인 걸 생각하면 더더욱.


대사제와 살라무스는 상석에 앉은 뒤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련님.”


몸을 풀던 룬터가 긴장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휴우.... 왜 카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팔찌를 끄고 대련을 하세요.”


룬터의 양 손목에는 멋없는 검은 팔찌가 걸려 있었다.

내가 육체 훈련을 위해 쓰던 바로 그 팔찌였다.

물론 무게는 적당한 수준으로 낮추었다.


“어, 진짜?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팔찌는 끄지 말라고 했었잖아. 그래서 어제 던전에서도....”

“관객이 많아졌으니 판을 키울 생각입니다.”


꽈아악!


나는 룬터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그리고 녀석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사였다.


“도련님께서 1년 동안 준비한 걸 모두 보여주세요. 저들에게 증명하는 겁니다.”


나는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묻지 않는 건 룬터 또한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대련장 중심으로 걸어갔다.


룬터가 대련 인형 앞에 서자 대련장에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시험 담당자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대련을 시작하세요.”


그에 맞춰 멈춰 있던 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끄드드득!!


강철로 만들어진 인형은 괴기한 소리를 내며 룬터에게 저벅저벅 다가갔다.

인간과 비슷한 체형으로 만들어진 녀석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그 이상이었다.

웬만한 지망생이었다면 두려움에 검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을 정도로.


“하아.... 쓰읍!”


하지만 룬터는 그 웬만한 지망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녀석은 오로지 인형에게만 시선을 집중한 채 천천히 특이한 자세를 취했다.

그때 옆에서 나와 함께 그 모습을 구경하던 4호가 입을 열었다.


“저건 신전 검술 자세가 아닌데? 아니, 분명 신전 검술은 맞는데.... 미묘하게 달라.”


4호의 시선이 휙하고 내게 향했다.

의문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카살, 너희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저 신전 검술과 도련님의 스승이신 로스펄 경의 검술, 그리고 아크노스 가문의 검술을 하나로 섞었을 뿐입니다.”


1년의 성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새로 창조한 그 검술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뭐? 왜 그런 미친 짓을....!”


4호의 반응이 재미있어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이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허.... 설마 저 아이가 신전 검술을 마음대로 변형시킨 건가?”

“대사제님, 저는 신전 검술을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저 친구가 꽤 위험한 짓을 한 거 같습니다.”


다들 놀라하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신전 검술이 일개 지망생이 마음대로 변형시킬 정도로 어설픈 검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오러를 운용하며 펼치는 검술 도중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목숨이 위험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보조인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4호가 그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잠시 후면 누가 옳았는지 모두가 알게 될 터이니.


‘저들에게 너의 재능을 증명해. 네가 저 가짜 용사들과는 다르다는 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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