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용사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먹잇감
작품등록일 :
2021.07.26 14:13
최근연재일 :
2021.08.24 13:5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2,932
추천수 :
304
글자수 :
189,104

작성
21.08.07 13:50
조회
415
추천
8
글자
13쪽

13화

DUMMY

“휴우... 다들 괜찮습니까?”


한 방에 상황을 정리한 살라무스가 우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룬터는 그의 마법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용사의 신전에서 나오신 겁니까?”

“아,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저는 용사 살라무스라고 합니다.”

“용사... 아! 저는 룬터 드 아크노스입니다! 이번에 새로 지원한 용사 지망생입니다!”


살라무스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눈치다.


“룬터라면 이번에 온다는 신입 중 한 명이었군. 아! 내가 연장자이니 말을 놓아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선배님!”

“하하! 꽤 마음에 드는 성격을 가졌구나.”


두 사람은 처음 봤음에도 합이 잘 맞는지 신나서 이야기를 떠들었다.

나는 그 한심한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돌아오는 기사 레일을 바라봤다.

그는 상당히 분하다는 얼굴이었다.


“젠장!”

“레일 경, 그 도적 대장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용사에게 정신 팔린 룬터를 대신해서 물었다.

그러자 레일이 자신의 검에 묻은 피를 보여주었다.


“거의 다 잡았는데 놓쳐버렸다. 그래도 큰부상을 입혔으니 녀석들도 다시는 도적질은 하지 않을 거다.”

“그렇군요...”


제일 중요한 녀석들을 놓쳤으면서 그걸 자랑이라고 떠들기는.

나는 레일이 고개를 돌린 순간 슬쩍 손을 뻗어 도적의 피를 손에 묻혔다.

그리고는 기침하는 척 입을 막으며 곧바로 혀에 살짝 가져다 댔다.


‘...역시 그 녀석 짓이었나.’


피의 기억을 바탕으로 도적 아니, 용병에게 명령을 내린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녀석은 지금쯤 신전에서 교육을 받고 있을 용사 지망생.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경쟁자를 줄이기 위한 신입 용사 사냥이 맞았던 거다.


“카살, 있잖아... 응? 카살?”


그때 룬터의 부름에 상념이 깨졌다.


“예 도련님.”

“그 도적놈들 보통 녀석들이 아닌가 봐. 선배님 말로는 최근 신전으로 향하던 신입 용사 몇이 공격당했대.”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 맞죠, 선배님?”


살라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최근에 공격당한 용사 지망생만 무려 셋이다. 룬터까지 합치면 이제 넷이나 되는 거지.”

“선배님, 그 녀석들은 도대체 목적이 뭐였을까요?”

“흠... 지금으로 봐서는 신전의 용사 육성을 막으려는 거겠지. 어떤 녀석들이 벌인 짓인지는 몰라도....”


그의 두 눈이 이글거리는 게 상당히 화난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 범인이 같은 신전에 소속된 용사 지망생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선배님, 아주 나쁜 녀석들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녀석들이 아닐까요?”

“그럴지도. 하지만 이상한 게 하나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녀석들이 신입 용사 지망생이 오는 걸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 그건 신전만 아는 일이거늘.”

“어? 그러고 보니...”


역시 신전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었다.

살라무스가 외곽을 순찰하던 것도 신전의 명령이었을 테니까.

그는 이내 고개를 젓고는 룬터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일단 신전부터 가는 게 좋겠다. 나는 주변을 더 둘러보다 갈 테니 너는 먼저 가서 기다리거라.”

“예! 선배님.”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두워진 상태라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신전이 용사들의 훈련을 위해 오지에 위치해 있어 밤에 상당히 위험한 까닭이다.


“가자, 카살.”

“예.”


마차가 다시 신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살라무스가 주변에 있기 때문인지 더 이상 우리를 공격하는 녀석들은 없었다.

덕분에 막힘없이 숲길을 달린 끝에.


“와아... 여기가 용사의 신전? 대단하지 않아, 카살? 아크노스 성보다 훨씬 거대한 성벽이야.”


울창한 숲 한가운데 지어진 하얀 성벽으로 둘러싸인 신전.

룬터의 감탄처럼 성벽은 아름다우면서도 그 어떤 침입을 막아낼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잠시 후, 마차가 입구에 도착하자 하얀색 갑옷을 입은 경비병이 다가왔다.

언뜻 봐도 동작에 절도가 느껴지는 정예병이다.


“실례하겠습니다. 아크노스 가문의 룬터 님이 타신 마차가 맞습니까?”

“예, 저희 도련님께서 타고 계십니다.”

“잠시 얼굴과 추천장을 확인하겠습니다.”


병사의 요구에 룬터가 창으로 얼굴을 내밀며 추천장을 보여주었다.


“확인되셨습니다. 신전 중앙으로 가시면 안내인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가 물러서자 거대한 성벽만큼 거대한 철문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신전도 꽤 오랜만이군.’


과거에는 수없이 방문했던 용사의 보금자리.

다시 방문한 신전은 여전히 도시와는 상당히 다른 신기한 구조였다.

중심에 신전의 주체가 되는 높은 탑이 있었는데, 그를 중심으로 띄엄띄엄 작은 탑들이 지어져 있었다.


잠시 후 우린 그중 높은 탑 앞에 멈추어서야 마차에서 내렸다.


“어서 오시죠. 저는 사제의 길을 걷고 있는 제론이라 합니다.”


제론이라는 사제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당연히 그도 나와 과거에 인연이 있던 자였다.


“사제님, 반갑습니다! 저는 룬터 드 아크노스입니다. 편히 룬터라 부르시면 됩니다. 아! 추천장을 보여드려야 하나요?”

“예, 추천장을 제출하셔야 합니다. 제게 주시죠.”

“아 여기 있습니다.”


추천장을 받아든 사제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룬터님?”

“왜 그러시죠?”

“으음.... 추천인 인장이 살짝 훼손되셨군요.”

“예? 그럴 리가요! 분명 제대로 보관했는데....”


사제가 추천장을 손에 든 채로 보여주었다.

정말 자세히 보면 피로 찍은 인장 끝부분이 갈라져 있었다.


“하하, 가끔 이런 일이 있죠. 이 정도면 확인을 하는 데는 충분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휴우... 다행이군요. 저는 또 문제가 되는 줄 알고...”


당연히 인장을 훼손한 범인은 나였다.


‘덕분에 로스펄의 힘과 기억 일부를 손쉽게 얻었어.’


룬터가 마차에서 날 믿고 잠에 빠져준 덕분이었다. 녀석은 그 사실도 모른 채 연신 사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에 사제는 손사래를 치고는 우릴 수십 개의 탑 중 하나로 안내했다.


“룬터 님께서는 한동안 대부분은 여기서 생활하시게 될 겁니다.”

“저 사제님, 여기는 뭘 하는 곳인가요?”

“지망생을 교육하는 교육장 겸 훈련장입니다. 또한 2층과 3층에는 숙소도 마련되어 있죠.”

“아하...”

“룬터 님께서는 3층에 있는 11번 방을 쓰시면 됩니다. 아! 함께 생활하실 분은...”


사제의 시선은 당연히 뒤따라온 기사들로 향했다.

하지만 룬터가 고개를 젓고는 나를 가리켰다.


“제 호의 시종인 카살과 함께 생활할 겁니다.”

“예? 시종이라면.... 노예이지 않습니까? 보조를 노예로 선택하신다면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다시 생각해 보시죠.”


신을 믿는 사제라는 녀석이 신분으로 사람을 차별하기는.

과거에도 이 더러운 신분 차별 때문에 꽤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노예가 아닌 평민으로 시작한 것도 이 이유가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으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시종이긴 하나 카살은 평민입니다. 말을 조심해주세요.”

“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특별한 경우이다 보니...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렇게 등록해 두죠.”


사제는 그 말을 끝으로 기사들과 밖으로 나갔다.

이제부터 여기서 아크노스 가문의 일원은 진짜 나와 룬터 단 두 명뿐이었다.

룬터도 그제야 실감했는지 조금 떨리는 표정을 지었다.


“하, 이거 조금 긴장되는데? 카살,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제가 봐온 도련님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그렇겠지...? 스승님을 생각해서라도 꼭 용사가 되어야 할 텐데...”


걱정하지 마라.


‘네가 용사가 되기 싫어도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니.’


우리 두 사람은 용사가 되어 과거처럼 다시 한번 대륙을 시끄럽게 만들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긴장 때문인지 잠을 설친 룬터가 급하게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면서 이미 준비를 마친 나를 한번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카살! 나도 깨워줬어야지! 이러다 첫날부터 늦게 생겼다고.”

“벌써 마차에서 공부했던 신전의 규율을 잊으셨습니까. 용사 지망생은 혼자 일어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건...”

“이러다 늦겠습니다. 저 먼저 나갈까요?”

“기, 기다려! 다 준비했어!”


슬쩍 나가는 척을 하니 놀란 룬터가 우당탕거리며 달려왔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제일 중요한 검을 챙기는 건 잊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어쨌거나 나는 초짜 지망생인 룬터를 데리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통로에 탑 구조가 그려진 지도가 있었지만, 딱히 볼 이유가 없었다.

내 기억이 바로 지도나 다름이 없으니까.


“카살, 여기 맞아? 너 길을 제대로 아는 건...”

“맞습니다. 저기 사람들이 있군요.”


5층 훈련장에 도착하니 이미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얼굴이 앳된 걸 보면 룬터와 마찬가지로 지망생일 거다.

헌데 반은 경계의 눈빛을 보냈고, 나머지 반은 먼저 다가와 손을 흔들었다.


“이봐, 네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지?”

“예? 아, 예!”

“크크, 나는 13호다. 내가 선배니까 편하게 말할게. 넌 몇 호냐?”

“....예? 그게 무슨...”

“어라, 설마 너 아무것도 몰라?”


당황한 룬터가 내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지망생들은 용사가 되어 수식을 받기 전까지는 번호로 불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 말이 이 뜻이었구나!”


번호로 부르는 건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규칙이다.

말로는 신전 밖에서 가졌던 개인의 작위를 제한하기 위해서라는데.

정말 어떤 멍청이가 그런 생각을 해낸 건지.


“도련님은 23호입니다. 저는 23호의 보조가 되겠군요.”

“그래? 선배님! 저는 23호랍니다!”


13호 선배가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아무래도 순수한, 나쁘게 말하면 어리숙한 룬터의 모습이 웃겼던 거 같다.


“큭큭, 앞으로 잘 지내보자. 밖에 이야기는 사제님들이 말하지 말랬지만, 옛날에 널 본 적이 있어. 사실 나도 칸 왕국 소속이거든.”

“정말이십니까? 어떤 가문의...”

“쉿! 밖에 이야기는 최대한 안 하는 게 좋으니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예! 알겠습니다.”


다행히 13호는 룬터가 마음에 든 눈치다.

다만. 조금 이상한 것은.


‘13호 이 녀석... 과거에는 분명 못 봤던 녀석이야.’


신전을 방문한 현재와 과거의 시간 차이는 고작해야 한 달 정도.

그렇다면 답은 두 개밖에 없다.

녀석이 한 달 안에 죽거나, 교육을 포기하고 신전을 스스로 나가거나.


그때 한눈에 봐도 강해 보이는 교관이 등장했다.

은연중에 내뿜는 기운을 보면 피셀급은 아니라 해도 꽤 강한 자였다.


“자, 오늘 교육을... 음? 아, 네가 이번에 들어왔다는 23호인가 보군.”

“예! 저는...”

“소개는 됐다. 저쪽 자리에 가서 서라. 바로 교육을 시작할 것이다.”


교관은 새로 들어온 룬터에게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차피 용사가 되면 별로 볼 일이 없기 때문일 거다.


“오늘은 신입이 있으니 검술을 훈련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각자 준비되는 대로 시작하라.”

“예 교관님.”

“신입은 내 동작을 보고 잘 배우도록.”


내게는 눈을 감고도 쓸 정도로 너무 익숙한 신전 기본 검술.

당연히 동작을 따라 하며 자연스럽게 시선이 지망생들에게 향했다.

그중 특별히 눈이 가는 녀석이 세 명이 있었다.


‘다른 두 녀석은 그렇다 쳐도... 아직 저 녀석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 그럼 저 녀석이 1호겠군.’


녀석은 갈색 머리를 가진 잘생긴 청년이었는데.

원래는 곧 용사로 승급하기에 여기서 만날 인연이 아니었다.

내 개입으로 미래가 점점 틀어지며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다음으로 시선이 간 건 파란 머리였다.

녀석은 룬터보다 고작 한두 살 많은 소년이었다.

헌데 나이치고는 검술 실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아마 지금 번호 2를 가지고 있는 건 저 녀석일 것이다.


‘그럼 번호3를 가진 건....’


마지막으로 나와 마찬가지로 검은 머리 청년을 쳐다봤다.

전체적으로 잘생긴 얼굴은 아니나 굉장히 선한 눈을 가진 자였다.

그런데 특이하게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 있어 비열한 느낌이 든달까.


그리고 바로 저 녀석이.


‘이번에는 네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다. 악시온.’


용병들에게 신입 용사를 사냥하게 명령을 내린 주범.

하는 행동처럼 심계가 깊고 아주 간악한 자다.


꽈아악.


벌써부터 긴장감이 차오르며 손아귀에 힘이 실렸다.

악시온은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힘들어도 반드시 죽여야 할 녀석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왜냐면.


녀석이 미래에 신전을 배신하고 미친 황제에게 붙을 악의 용사였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피를 마시는 용사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30화 +3 21.08.24 183 10 15쪽
30 29화 +2 21.08.23 151 10 14쪽
29 28화 21.08.22 160 8 14쪽
28 27화 21.08.21 178 7 14쪽
27 26화 +1 21.08.20 183 9 14쪽
26 25화 +1 21.08.19 192 7 14쪽
25 24화 21.08.18 201 7 13쪽
24 23화 21.08.17 198 8 14쪽
23 22화 21.08.16 219 9 15쪽
22 21화 21.08.15 245 6 14쪽
21 20화 21.08.14 271 8 14쪽
20 19화 21.08.13 292 6 13쪽
19 18화 +2 21.08.12 285 8 13쪽
18 17화 +2 21.08.11 289 9 14쪽
17 16화 21.08.10 311 8 14쪽
16 15화 21.08.09 330 7 13쪽
15 14화 21.08.08 378 8 15쪽
» 13화 21.08.07 416 8 13쪽
13 12화 21.08.06 427 6 13쪽
12 11화 +1 21.08.05 457 9 14쪽
11 10화 21.08.04 469 9 13쪽
10 9화 +1 21.08.03 504 9 14쪽
9 8화 21.08.02 505 9 15쪽
8 7화 21.08.01 533 8 13쪽
7 6화 +1 21.07.31 546 8 13쪽
6 5화 21.07.30 584 10 13쪽
5 4화 21.07.29 693 12 14쪽
4 3화 +1 21.07.28 789 13 14쪽
3 2화 +2 21.07.27 860 20 14쪽
2 1화 +1 21.07.26 986 2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