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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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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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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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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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DUMMY

내가 힘을 드러낸 이후로 일상이 조금 변했다.


“흠흠, 카살이라 했지? 시간 괜찮으면 나도 좀 봐줄 수 있겠나?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말이야.”


제일 먼저 훈련 중에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다.

같은 탑에서 생활하는 지망생과 보조였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바빠서 괜찮으시면 오후에 봐드리겠습니다.”

“오후? 좋아, 그럼 이따가 다시 오도록 하지!”


특히 보조 같은 경우에는 훈련이 끝난 휴식 시간에도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다들 같은 보조인 내가 단시간에 강해진 비법이 궁금한 눈치였다.


“카살, 너 요새 너무 바쁜 거 아니야? 내가 사람들한테 한소리 해줄까?”

“도련님,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하던 거나 계속하시죠.”

“....잠깐만 쉬는 건 괜찮잖아?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휘둘렀다고.”

“안 됩니다. 계속하세요.”

“....응.”


나는 울상을 지으며 훈련하는 룬터를 지켜보다 힐끔 다른 지망생들을 쳐다봤다.

그들 중 몇몇을 빼고는 다들 나와 룬터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 담긴 감정은 질시와 부러움.

내 뛰어난 실력을 질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나를 보조로 가진 룬터를 부러워한달까.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생각보다 늦어.’


물론 나는 그에 대해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던진 미끼를 물어줄 물고기가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이보게, 카살이라 했나?”


그때 기다리던 반응이 왔다.

오전 훈련을 맡았던 교관이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데.”

“그러도록 하죠.”


그는 주변 눈치를 쓱 살피고는 내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게나.”


교관은 나를 조용한 복도로 데려갔다.

그는 다시 한번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검을 쓰는 게 뛰어나던데 누구한테 배운 건가?”

“아크노스 가문과 여기서 배운 게 끝입니다. 딱히 스승이라고 할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교관의 두 눈이 반짝였다.


“교관님, 저를 왜 부르신 겁니까?”

“아! 다른 게 아니라 자네한테 좋은 제안을 하고 싶어서네. 혹시.... 신전 용사가 되어볼 생각이 없는가?”


물고기가 미끼를 제대로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련님께서 용사가 되시면 저도 절로 용사가 되는 게 아닙니까? 물론 F등급 용사겠지만요.”

“하하, 그렇지. 하지만 내가 말한 신전 용사는 더 특별하다네.”

“신전 용사라....”


관심 있는 척을 하자 교관이 더욱 살갑게 다가왔다.

꼭 물건을 파는 장사꾼의 눈빛이다.


“신전 전속 용사가 되면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네. 거기다 그뿐인가, 자네도 지망생이 될 수가 있지.”


누가 들어도 파격적인 제안이라 할 것이다.

보조를 지망생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모자라 신전에서 직접 지원을 해준다니.


“보조인 제가 말입니까?”


하지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고.


“물론이네. 대신.... 흠흠, 신전 소속으로 10년간 일해야 하네. 협력 관계라 생각하면 편할 걸세.”


이건 뭐 말이 협력 관계지.

일종의 10년간 신전의 노예가 되라는 소리다.

신전 입장에서는 하나도 나쁠 게 없는 제안이랄까.


‘덤으로 나 같은 뒷배 없는 녀석들을 부려 먹어야 뒤탈이 없을 테니까 말이지.’


필요할 때마다 계약을 들먹이며 부려 먹다 쓰임이 다하면 버리는 패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도련님을 배신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 내 말은 배신하라는 게 아니라.....”

“도련님과 이야기를 나눠본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우선 알겠네. 그래도 잘 생각해 보게나. 아무에게나 하는 제안은 아니니까.”


녀석은 그래서 더 나쁘다는 걸 모르는 걸까.

신전이라는 놈들이 용사가 될 재능 있는 보조들을 꼬셔서 노예로 부릴 생각이나 하다니.


나는 고래를 절레절레 젓고는 훈련장으로 먼저 걸어갔다.

그래도 뭐, 방금 대화 자체는 만족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신전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의미는 생각보다 컸다.

희생을 바탕으로 높게 쌓아 올린 녀석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다.


“속이 좁은 녀석들답게 바로 움직이겠지.”


자존심이 상한 녀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이미 머릿속에 그려졌다.



* * *



역시나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반응이 왔다.


“예? 저보고 남쪽 숲에 발견된 던전을 가라고요?”

“20호님, 혼자가 아니라 전투 보조와 신전 병사들이 도와드릴 겁니다. 발견된 던전의 마나 농도 또한 낮습니다.”

“아니, 그게 그 소리나 마찬가지....”

“흠흠! 새로 발견된 던전을 ‘조금만’ 확인해달라는 겁니다.”


정말 뜬금없는 명령이었다.

용사도 아닌 지망생에게 새로 발견된 던전을 확인하라니.

그것도 룬터와 나만 꼭 집어서 말이다.


그때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던 10호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사제님. 누가 그런 이상한 명령을 내린 겁니까?”

“10호님이시군요. 명령은 위에서 내린 겁니다.”

“위라면....”


대사제 중 하나를 말함이었다.

나는 그가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 늙은이가 속이 좁기로 유명했지. 마침 그가 지망생 관리를 담당하고 있을 테니.’


제안을 거절한 나에 대한 보복.

제론 사제가 내 눈을 피했다.

그도 왜 이런 명령이 내려졌는지 아는 눈치다.


“아니 이게....”

“도련님.”

“어?”

“실습 훈련이라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함께이지 않습니까.”


불안해하던 룬터의 눈빛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는 눈치다.


“....네가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사제님. 신전의 지시를 따르도록 하죠.”

“20호님, 잘 생각하셨습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룬터와 함께 성문으로 가자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새로 발견된 던전을 확인하러 갈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뭐랄까.


“카살, 다들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는데...?”

“제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군요.”


늙거나 부상으로 병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우리에게 붙여준 것이다.


사실 나도 설마 이 정도로 대놓고 티를 낼지는 몰랐다.

나야 평민이라 해도 룬터는 대 백작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던가.


‘아무래도 그 늙은이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군.’


잠시 잊고 있었다.

신전은 생각보다 더 권위 의식에 찌든 자들이라는 걸.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그 대상이 설령 귀족이라 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도련님, 일단 출발하죠.”

“휴우.... 벌써부터 고생길이 보인다.”


신전에서 파견했음에도 사제가 한 명도 없는 일행.

우리는 그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웃음을 흘리며 던전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새로 발견된 던전이 멀지 않은 장소에 있었다.

다만 아주 작은 문제라면.


“어, 어!! 거기 조심하세요! 방패를 들고....”


병사들이 생각 이상으로 쓸모가 없다는 것.


퍼억!!


“.....아니 공격이 날아오면 방패를 들어야죠. 방패를 안 쓸 거면 왜 들고 다니는 겁니까....”

“도련님, 이미 늦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짐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간단한 중소형급 몬스터 한 마리조차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두 사람이 겪어야 했고.


“카살, 이대로라면 던전에 도착했을 때 서 있는 병사가 없을 거 같은데?”

“차라리 병사들을 돌려보내고 저희 둘이 가는 게 나을 지경이군요.”

“....진짜 그래야 하나. 괜히 저 사람들한테 미안해지려 해.”


고작 반을 오는 동안 당한 병사 또한 절반.

룬터와 내가 필사적으로 움직였음에도 이게 최선이었다.


“그럼 돌려보내죠. 오는 길은 뚫어 놨으니 병사들끼리도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되려나?”

“상관없을 겁니다. 애당초 일행이 정상적인 구성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알았어. 그럼 병사들을 보내자.”


나와 룬터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 병사들을 신전으로 돌려보냈다.

전부 죽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판단한 거다.


우리는 신전에서 준 아티팩트가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 다시 움직였다.

확실히 병사들이 빠지니 속도가 빨라졌다.

1시간도 지나기 전에 풀숲에 가려진 동굴 입구가 보였다.


“카살, 여긴가 본데? 아티팩트 바늘이 여기서 헛돌고 있어.”

“맞을 겁니다. 옅지만 마나의 달콤한 향기가 느껴지는군요.”

“....마나에 향기가 언제부터 달콤했어? 아니 그전에 향기가 났나...?”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나는 피식 웃어주고는 먼저 발을 디뎠다.

동굴 입구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가면 꽉 찰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헌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입구가 넓어지더니 어느새 작은 광장이 나왔다.


‘원래 여길 탐사했던 게 누구였더라.....’


과거 신전 소속 E등급 용사가 이 던전을 맡았던 게 기억이 났다.

그의 이름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떠올랐다.

그 용사가 던전 탐사 중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억이.


“도련님, 어두우니 조심하십시오. 제가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응. 그런데 우린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는 거야? 우리가 받은 임무는 간단한 조사였잖아.”

“여기에 뭐가 있는지만 확인하면 될 겁니다.”


신전에서 미리 마나 농도로 파악한 던전의 등급은 하.

쉽게 말해 보물은커녕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래된 빈 동굴에 마나가 고여 던전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기에.


‘그래서 우릴 보낸 거겠지. 고생이나 해보라고.’


하지만 나는 이 던전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부당한 명령임에도 룬터를 설득해 이곳에 온 것이니까.


‘슬슬 반응이.....’


입구가 보이지 않을 거리까지 들어온 그 순간.


그르르릉.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진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졌다.


“어? 카살! 땅이....”

“쉿. 잠시만 조용히 해주세요.”

“아, 알았어.”


나는 룬터를 조용히 만들고 진동에 집중했다.

동굴의 주인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동이 두 발을 흔들 정도로 가까이 도착했을 때.


쿠르르릉!!


거대한 지진과 함께 녀석이 등장했다.

아주 괴상한 생김새를 가진 괴물 녀석이.


“.....카, 카살?”

“괜찮습니다. 보기에는 징그러워도 사실 엄청 강한 녀석은 아닙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끄어어억-!!!


고작 괴성 한 번에 동굴 전체를 짜르르 울리게 만드는 녀석.

생김새가 꼭 지렁이와 흡사했다.

다만, 둘의 차이라면 매우 거대하고 주둥이에 수백 개의 이빨이 달렸다는 것 정도?


저 괴물의 이름은 ‘청소부’.


마물은 아니나 위험도는 5급종에 맞먹는 녀석이다.

쉽게 말해 평범한 지망생과 보조 둘이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는 녀석이라는 소리.


“도련님은 지금부터 왼쪽으로 뛰세요. 광장 주변을 빙빙 돌아야 합니다.”

“....카살, 저 녀석 상당히 화가 난 거 같은데 나가야 하지 않을까?”

“저 녀석보다 빨리 달릴 자신이 있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참고로 저는 자신 있습니다.”


룬터는 자신이 착용한 무거운 갑옷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나 버리고 가면 안 된다?”

“도련님 하는 거 봐서요.”

“어? 아니 그건....”

“뛰세요!”


그 순간 사냥 준비를 마친 괴물이 움직였다.


크어어어억-!!!


“아, 아니 왜 나부터야!!”


괴물의 질주에 겁에 질린 룬터가 미친 듯이 광장을 돌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땅을 강하게 박찼다가 괴물의 등에 안착했다.


타앗!


“벨.”

-에헤헤! 부르셨습니까요!

“넌 몰래 숨어서 괴물의 피를 받아놔. 덩치가 커서 피의 양이 제법 많을 거야.”

-그런 일쯤이야 맡겨만 주십쇼!


나는 검을 휘둘러 괴물의 가죽을 살짝 갈랐다.

녀석은 따끔했는지 잠시 몸을 꿈틀거렸지만 이내 다시 룬터를 쫓았다.

그 사이 벨은 상처에 주둥이를 가져다 댔다.


-쪼옵! 쪼옵! 크으.... 더럽게 맛이 없습니다요! 다음부터는 이왕이면 맛있는 피로....

“조용히 하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해.”

-예에.....


벨을 조용히 만들고 편안히 앉아 룬터를 구경했다.

사실 당장이라도 이 정도 괴물 따위야 악마 변신까지 하지 않아도 처리할 방법은 많았지만.


“룬터, 살고 싶다면 내가 만족할 만한 재능을 보여라.”


실력을 드러내고 신전의 제안을 거절하기까지.

이 모든 게 룬터를 하루라도 빨리 용사로 만들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던 거다.

녀석이 빨리 성장할수록 대륙을 발아래 두겠다는 내 목표 또한 빨라질 터이니.


“허억...! 허억.... 카, 카살!! 너 어디 있어! 나 두고 간 거 아니지? 진짜 그러면 넌 친구도 아니....”


크어어어억-!!!


“어, 어...!! 너 말고! 너 부른 거 아니야!!”


물론 그 전에 녀석이 이번 고비부터 잘 넘겨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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