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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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
작품등록일 :
2021.07.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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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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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DUMMY

탕탕!!


“카살! 안으로 들어간다?”


이른 아침부터 어떤 예의도 없는 녀석이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도련님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밝은 웃음을 지은 룬터였다.

녀석은 처음 방문한 내 방을 샅샅이 둘러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방이 너무 작은 거 아니야? 남는 방도 많은데 이왕이면 큰 방을 주지 피셀 경도 참....”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참! 피셀에게 들어 보니 너 로안 경을 만나러 간다며?”


고작 그것 때문이었나.

아침부터 난리를 피며 찾아온 이유가.

나는 한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맞습니다. 그분과 약속한 날이 별로 남지 않았거든요. 영주님께서 저보고 그를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하긴, 로안 경이라면 매우 탐나는 사람이기는 하지. 왕국에서 실력으로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니까.”


미안하지만 현재 로안이라면 열 손가락이 아니라 세 손가락 안에 들 거다.

룬터의 스승인 태양의 기사인 로스펄보다 아주 살짝 아래일 테니까.


그때 혼자 떠들던 룬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도 함께 가지!”

“어딜요?”

“그분을 만나러 가는 거 말이야. 로안 경이라면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어. 괜찮지?”

“글쎄요. 영주님께서 허락하실까요? 도련님은 그냥 저택에 계시는 게...”


명백한 거절 의사였다.

헌데 녀석은 눈치가 없는 건지 오히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 줄 알고 이미 허락을 맡고 왔지.”

“예? 영주님께서 정말 허락해주셨습니까?”

“아버지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시던데? 후계자가 직접 손님일 맞이하러 가면 좋을 거라고.”

“...그럼 왜 물어본 겁니까? 마음대로 하시지.”

“아하하, 그래도 네 의견을 듣고 싶었어. 로안 경과 약속을 한 건 바로 너니까.”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허락이 떨어지자 로안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이제야 좀 15살의 소년 같달까.

그는 내게 이따 훈련장에서 보자는 말을 남긴 채 밖으로 나갔다.


“하... 룬터 때문이라도 진짜 로안을 불러와야겠어. 벨, 그만 나와 봐.”


시련의 보상으로 능력 진화와 함께 얻은 사역마, 벨.

허공에 검은 여기가 푸스스 뿌려지며 그 안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해골이 등장했다.


-으헤헤!! 주인님, 드디어 저를 부르신 겁니까? 언제 부르시나 기다리다 목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용!


오랜만에 봐도 저 경박스러움은 정말이지...


‘적응이 안 된다니까.’


나는 깊은숨을 내뱉고 허공에 떠 있는 녀석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벨, 무저갱 감옥에서 데려올 사람이 있어.”

-예에? 군주님의 허락은 받으신 겁니까?

“그랬으면 굳이 네게 말하지 않았겠지.”


무저갱은 악마들이 죄인들을 잡아두는 감옥으로.

보통은 같은 악마나 마물이 대상인데, 가끔가다 인간이 잡혀 들어갈 때도 있었다. 바로 로안의 경우처럼.


최근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뭐, 1년 뒤에 스스로 감옥을 탈출할 예정이었지만.


-에헤헤... 아무리 주인님의 명령이라 하셔도 군주님의 허락 없이는 조금 힘듭니다요! 저따위가 어찌 감히...

“약한 소리 하지 마. 이미 너한테 면죄부가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허업!


벨의 표정 아니, 저 뼈밖에 없는 얼굴을 표정이라 부를 수 있으려나.

어쨌든 놀랐는지 벨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그, 그걸 주인님께서 어떻게...

“면죄부는 군주의 자식을 모시는 대가로 사역마들이 받는 보상 중 하나잖아. 그러니까 날 위해 쓰라고.”

-하... 하지만 그건 제가 받은 보상인데 왜 주인님을 위해서...

“싫으면 계약을 파기하고.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지?”


사역마에게 계약 파기란 아주 수치스러운 낙인.

일종의 ‘이 녀석은 쓸모가 없는 놈이니 사용하지 마십쇼’ 라는 증거가 된다.

과거 벨에게 들었을 때도 분명 낙인을 받은 사역마 중 다시 계약을 한 녀석이 없다고 했었다.


-이런 못된 신족 같은...

“뭐?”

-아, 아닙니다요! 헤헤, 당연히 주인님께서 원하시면 드려야죠! 제가 누굴 데려오면 되겠습니까요?

“로안이라는 인간을 데려와. 지금 당장은 아니고 며칠 뒤에. 이 쪽지는 미리 전해주고.”


내게 쪽지를 건네받은 벨이 작은 머리통을 갸웃거렸다.


-혹시 작년에 불쌍한 하급 악마의 재물을 뺏고 살해까지 한 그 양심 없는 인간을 말하는 겁니까요?

“그랬나?”


생각해 보니 그랬다고 들었던 거 같기는 하다.

이유가 뭐라더라?

그 악마 녀석이 자신을 비웃었다나 뭐라나.

하여튼 악마나 인간이나 정상적인 녀석이 별로 없다니까.


“그런데 그게 왜?”

-아이구 주인님! 그 녀석 아주 죄질이 극악무도합니다요! 꺼내주면 분명 주인님에게 대들 겁니다!

“괜찮아. 녀석의 약점을 알고 있으니까.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으으... 분명 주인님께서 명령하신 겁니다! 제 탓은 아니에요!

“쯧. 악마 녀석이 쓸데없이 걱정만 많아서는.”


나는 불안해하는 벨에게 그저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주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자의 여유랄까.


* * *



로안을 만나러 가기로 한 당일 날 아침.


“카살! 여기야!”


저택 앞에 고급스러운 마차 한 대와 룬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지만.


“...도련님, 그분도 같이 가시는 겁니까?”


나는 룬터 옆에 서 있는 로스펄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 계획에는 없던 불청객이었기 때문에.


“아하하! 스승님도 로안 경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두 분께서는 오래전에 친분이 있으셨대. 괜찮지?”

“하아... 이제 와서 제 허락이 필요하겠습니까. 같이 가시죠.”


어차피 저 노인의 깐깐한 눈빛을 보면 거절해도 몰래 따라올 인간이다.

그럴 바에는 함께 움직이면서 감시하는 게 좋겠지.


나는 룬터와 함께 마차에 탔다.

피셀과 로스펄도 함께였다.

다만, 호위 시종인 케인 녀석은.


“케인, 그럼 마차를 잘 부탁할게.”

“...예 도련님. 제가 안전하게 말을 몰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홀로 마부석에 앉아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만 마차에 타지 못한 게 억울한 눈치였다.


‘그러게 줄을 잘 섰어야지.’


나는 슬쩍 건너편에 앉은 피셀을 쳐다봤다.

딱 봐도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행히 예정보다 빨리 일을 치르지는 않았어.’


과거대로라면 영주가 살해되는 건 내일 밤.

혹여라도 녀석이 로안을 만나러 가는 일 때문에 더 빨리 움직이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움직이지 않았다.


드르륵.


마차가 빠른 속도로 영지 외곽에 있는 마을을 향해 움직였다.

나는 종알거리며 스승과 떠드는 룬터를 뒤로하고 창밖을 바라봤다.


‘아크노스 가문의 일을 마무리하면 바로 용사의 신전으로 가는 게 좋겠지.’


30년 전 신으로부터 인간들에게 계시가 떨어졌다.

아주 오래전에 일어났던 신마 전쟁이 다시 한번 반복되려 하니 용사를 육성하고 대비하라고.


용사의 신전이 바로 그 용사들을 뽑아 육성하는 장소였다.

룬터가 스승에게 ‘용사의 길’을 걷겠다고 했던 것도, 용사가 되기 위해 자격을 시험 보겠다는 소리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도련님! 목적지에 다 왔습니다!”


그때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 밖으로 나가니 내가 살던 마을 안이었다.

내 눈에 갑작스러운 귀족 마차의 등장에 당황한 촌장이 보였다.


“카, 카살?”

“촌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아이구... 카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왜 귀족분이...”


나를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가워하는 촌장에게 다가가려던 그때.


퍼억!


“이 누추한 녀석이 어디 도련님 근처에 접근하려고!”

“어억! 죄, 죄송합니다요!”


어느새 마부석에서 내린 케인이 촌장을 발로 걷어찼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니, 그럴 거라 전혀 예상을 못 해 녀석의 행동을 막지 못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녀석을 쳐다봤다.


“...케인,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흥! 호위 시종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왜? 네가 아는 녀석이라서 기분이라도 나쁘냐?”


명백한 도발.

굳이 촌장을 공격한 이유도 나 때문이었을 거다.

지금 저 녀석 표정을 보면 나와 싸우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의 얼굴이었으니까.


“케인, 너...”


나는 녀석의 도발에도 화가 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자꾸 귀에서 윙윙거리는 저 벌레 같은 녀석을 어떻게 죽일까 고민했을 뿐.


“휴우... 생각보다 빨리 왔네. 응? 카살, 무슨 일이야?”


마차에서 내린 룬터가 내게 물었다.

케인과 나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분위기를 읽은 듯 보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그럼 바로 움직이자. 로안 경이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르니까.”

“그러도록 하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두려워하는 촌장을 위해서라도 바로 숲으로 들어갔다.

룬터는 자신의 영지이면서도 이곳 숲이 처음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살, 이 정도 울창한 숲이면 위험한 몬스터들이 살지 않나?”

“예전에는 그랬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꾸준한 토벌로 인해 소형 몬스터들만 남았습니다.”

“으음... 아버지께서 몇 년마다 정기적으로 하던 토벌이 그거였구나.”

“아마 맞을 겁니다. 저도 어릴 적에 병사들이 토벌하러 가기 전 마을에 들렸던 게 기억납니다.”


사실 이 숲은 자원적 가치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가치가 높은 장소였다.

아크노스 영주가 굳이 병사를 이용해 숲을 토벌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숲이 타국과 연결된 만큼 생각처럼 개발이 쉽지가 않았다.

욕심 많은 귀족들답게 서로 양보를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멍청한 놈들이 여기 땅 아래 뭐가 잠들어 있는지 알았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말이야.’


가치를 떠나 비밀이 많은 숲이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촌장조차도 이 숲이 정확히 언제부터 있었는지 몰랐다.

허나 나는 어머니 덕분에 이 숲에 뭐가 잠들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주인님! 명령대로 그 인간을 불러냈습니다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눈앞에 벨이 나타났다.

녀석이 가진 은신 능력을 사용했기에 다행히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녀석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였다.


“위치는?”

-이 방향으로 3분만 걸어가시면 됩니다요! 그런데... 그 녀석 눈이 완전히 미쳤던데 괜찮겠습니까?


하긴, 무려 무저갱 감옥에 갇혀 있다 나왔으니 미치지 않으면 이상하지.

로안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면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정신이 파괴되었을 거다.


“그래 봤자 약점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케헤헤! 그럼 저는 주인님만 믿겠습니다요!


하여간 저 경박스러운 웃음소리는.

그래도 일 하나만큼은 잘 하는 녀석이니까.


“음? 룬터, 잠시 멈춰라.”


목적이 거의 도착했을 때 태양의 기사 아니,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멈춰섰다.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

“설마... 이 거대한 기운의 주인이 로안이란 말인가...”

“예? 스승님! 정말 로안 경이 있는 겁니까? 그럼 어서 가야죠!”

“쯧, 진정하고 혹시 모르니 넌 내 옆에 있거라.”


노인이 내게 턱을 까딱였다.

다시 앞으로 가라는 뜻이었다.

그에 나는 거대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감옥에서 고생 좀 했을 텐데도 기운이 펄펄하군.’


피부가 짜릿짜릿할 정도로 무식한 기운이었다.

룬터도 뒤늦게 그 기운을 읽었는지 입을 닫고 조용히 따라왔다.

그렇게 풀숲을 헤치고 작은 공터에 도착하자.


솨아아아아-


단순히 뿜어내는 기운만으로 대지를 진동시키는 젊은 남자가 홀로 서 있었다.

20대 정도로 보이는 잘생긴 얼굴과 눈에 띄는 아름다운 금발 머리.

그리고 입술 위쪽에 새겨진 문양 같은 작은 흉터까지.


“로안 씨, 다시 뵙게 되어...”


내가 로안에게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네려는 그 순간.


“네가 카살인가?”


어느새 순식간에 거리를 뛰어넘은 로안이 내 목에 검을 겨누었다.

눈으로 보고 있었음에도 움직임을 전혀 예상치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벨 이 새끼 이거 편지 제대로 전달한 거 맞아?’


딱 봐도 로안의 눈빛이 아예 맛이 가버렸다.

여차하면 진짜 날 죽일 기세였다.

녀석은 금색으로 일렁이는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살고 싶다면 날 꺼내준 진짜 목적을 말해라.”

“하아...”


어쩐지 요즘 일들이 전부 쉽게 해결된다고 했더니.

허나 나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입꼬리를 올렸다.


‘일단 편지는 제대로 읽은 거 같고... 아무래도 날 위협해서 자기 멋대로 하려는 거 같은데...’


녀석은 아쉽게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것도 한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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