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먹고 삽시다. (3) / 9. 18 수정
두 각 (30분 정도) 쉬고 나서 영섭은 경연을 계속 하였다. 어쩐지 중신들이 울상인 듯 하였지만 뭐 그거야 옛날 연구실의 대학원생들도 흔히 짓던 표정이 아닌가.
“이번에는 아까 말한대로 흙의 종류를 알아볼것이다.”
그러자 공조판서 신속이 글씨 쓸 준비 하며 말했다.
“흙의 종류라 하심은 무엇을 뜻하는것이옵니까?”
“공조판서는 농서에 밝으니, 그 얼개를 알것이다. 공판이 알고 있는 흙을 읇어보아라.”
“예, 흙이란 커다란 돌이 오랜 세월 파쇄되고 침식되어 생긴 작은 알갱이가 모여 된 것으로 돌, 모래, 진흙이 있사옵니다.”
현대 토양학에서는 흙의 구성을 모래, 점토, 미사(微砂)로 나누었지만, 영섭은 이 정도만 되어도 어디냐 생각하며 말했다.
“과연 그러하다. 이 세가지가 조화를 이루어 작물을 재배하기에 알맞은 흙을 이루게 되는데, 사실 흙은 이보다 더 작은 알갱이들로 가득하다.”
“더 작은 알갱이라 하심은 무엇이옵니까?”
“공판은 비옥한 흙을 직접 떠내어 면밀히 관찰한 적이 있는가?”
“소신, 눈으로 그 모습을 본 적은 있으나..”
“공판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중신 모두가 그러할 것이니 괘념치 말라. 공판이 흙을 잘 아니 민망해 하지 말고 나의 물음에 답하라.”
“예 전하. 소신 아는데 까지 답하겠사옵니다.”
“공판은 백반석(白礬石)을 알 것이다. 여기 내 손 안에 한 덩이가 있는데, 공판이 보기에 백반석이 맞는가”
“예 전하. 백반석이 맞사옵니다.”
그러자 영섭이 뒤에 있던 망치(철추)로 백반석을 깨부셨다.
“이리하면, 백반석이 맞는가.”
“전하! 옥체를 보하소서! 소신의 눈에는 여전히 백반석이 맞사옵니다.”
영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철추로 백반석 조각들을 사정없이 깨부셔버렸다.
“그럼 이젠 어떠한가.”
“여전히··· 백반석이 맞사옵니다.”
그러더니 영섭이 이젠 가루가 된 백반석을 흙에다가 뿌리고는 발로 다졌다.
“이제 이 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것인가?”
“백반··· 아니 흙이라 할 것입니다.”
“바로 보았다. 우리가 흙이라 하는것은 백반석 말고도 각기 다른 암석들이 매우 잘게 쪼개져 우연히 다른 것들과 섞이게 된것이다. 아까 공판이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공조판서 신속은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영섭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까 마지막에 백반석을 가루로 만들었을 때, 이를 백반석이라 부르기가 민망했던것을 기억할것이다.
헌데, 이보다 더 정교한 철추로 하여금 눈에 띄지 않을 크기로 잘게 쪼갠다면, 이 것은 무엇이라 칭해야 할것인가?”
그러자 중신들이 서로 웅성거리다 영의정 김육이 나서서 말했다.
“아무리 잘게 부셔졌다곤 하나, 그 시작이 백반석이었으므로 마땅히 백반석분 이라 칭해야 할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석영 같은것을 이 처럼 잘게 가루내어 섞는다면 어느 것이 백반석이요, 어느것이 석영인지 분간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흙에는 백반석분 따로, 석영분 따로, 석회분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닌 서로 엉겨있어 그 구분이 어려운 것이다. 하여 이를 무기질(無記質) 이라 칭할 수 있을것이다.”
원래 한자 뜻은 아니었지만, 영섭은 의미와 뜻만 대충 맞으면 되겠지 하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전하의 말씀대로 이옵니다. 흙 한 덩이를 파내어 물에 개어보면 어떤 알갱이는 빨리 떨어지고, 어떤 알갱이는 물에 둥둥 뜨는것이 모두가 같은것은 아닐 것이옵니다.”
김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무기질에는 여러 암석들의 알갱이들이 있을 터인데, 서역 색목인들은 정교한 유리 수정을 이용하여 이를 관찰하였다 하니 훗날 우리 조선에도 그러한 기물이 있어야 할것인 즉.”
“참으로 전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모두가 그 이치를 깨닳을 것이옵니다.”
영섭은 당장이라도 서역으로 갈 것 같은 김육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방금 영의정이 말한대로, 흙 한 덩이를 물에 개었더니 어떤 알갱이는 빨리 떨어지고, 어느 것은 둥둥 뜬다 하였다.
흙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기질 외에 낙엽 썩은것, 벌레 죽은것, 이따금은 짐승 털이나 핏덩이 같은것이 엉겨있는데
이는 잘게 부수어도 구분이 가 하니 마땅히 유기질(有記質)이라 부를 수 있을것이다.”
그 때 신속이 말했다.
“그렇다면, 흙이란 아주 잘게 쪼개어보면 무기질과 유기질로 나뉠 수 있다는 뜻이옵니까?”
영섭은 신속에 대한 평가를 좀 더 올리고 계속 이어나갔다.
“바로 보았다. 농사짓는 경작지는 유기물과 무기물이 올바르게 혼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으니,
흙 속에 있는 유기물은 비분(肥糞) 혹은 말라 죽은 초목의 뿌리나 가지나 잎, 동물과 벌레 따위의 사체에서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름진 흙이 함유하고 있는 유기물 양은 그 흙의 20분지 1이나 10분지 1정도이지만 적당히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은 은 고작 30분의 1정도이며,
작물이 생장하며 유기물을 흡수하여 자기 몸을 기르기 때문에 자주 비분을 주지 않으면 유기물은 점차 없어지게 된다.
논밭이 항상 기름지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비분을 많이 주거나 휴경하여 땅을 쉬게 하거나 살갈퀴나 콩 같은 식물을 심어서 훗날 유기물의 양을 증가시켜야 함이다.”
하며 영섭이 손을 뻗어 가리키니, 작은 봉분 여섯이 있어 중신들이 모두 의아해 하였다.
“흙의 종류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양토(壤土)로 고운 흙, 둘째는 식토(埴土)로 찰흙, 셋째는 분토(墳土)로 부풀어 오르는 흙,
넷째는 도토(塗土)로 진흙, 다섯째는 노토(壚土)로 푸석돌이 많이 섞인 흙이고 여섯째는 광척(廣斥)으로 진창의 뻘흙을 이른다.
이 여섯가지 흙의 종류와 특성을 토성변(土性辨)이라 한다.”
“흙의 종류가 여섯가지나 된다 하셨습니까? 이는 어느 농서에도 기록되지 아니한 전례없는것이옵니다!”
우의정 원두표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다른 중신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여섯가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먼저 양토를 살펴보면, 양토는 녹슨 쇳가루가 모래와 자갈에 섞여 만들어진 흙이다.
흙 사이 사이 공간이 있어서 태양의 기운이 잘 통할 수 있고, 무게를 달면 아주 무거워서 바람에 날리지 않으며 빗물에도 덜 씻겨 나간다.
그 성질은 습하지만 달라붙지 않아서 힘들이지 않고도 경작할 수 있으며 농작물 뿌리는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쉽게 잘 뻗어 자라니 제일 좋은 토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양토에 섞인 각종 무기질이나 유기질에 따라 백양(白壤), 황양(黃壤), 적양(赤壤), 자양(紫壤), 흑양(黑壤), 사양(砂壤), 순양(純壤), 송양(鬆壤), 고양(熇壤) 으로 나눌 수 있을것이다.
이 중 자양(紫壤)은 적양(赤壤)과 비슷하나 탄가루가 섞인 흙이다.
이러한 토양에는 콩, 보리, 기장, 조, 피, 참깨, 배추, 상추, 토란, 감자, 무, 목화, 모시풀, 마, 황국, 방풍, 멧두릅과 머위같은 작물을 심는 것이 알맞다.
거름은 땅에 구덩이를 파내어 썩힌 풀을 넣어주는 것이 가장 좋고, 마른 정어리, 청어, 인분즙이나 마분즙, 또는 해조류 등을 주어도 가 할것이다”
“전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소신 아둔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다시 한번 옥음을 청하여도 되겠사옵니까?”
신속이 이를 받아적다 생소한 것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자 다급해하며 허둥거렸다. 영섭은 자기가 너무 앞서나갔나 미안해 했다.
반 각 (약 8분) 동안 방금 말한 것을 반복한 뒤, 영섭은 다시 말을 이었다.
“식토란 철이나 납같은 금속이 부식되어 땅의 유기물과 함께 달라붙은 흙이다.
작은 돌이 섞여 있지 않아서 도기나 기와 및 벽돌을 구워내는 용도로 쓰기엔 충분할 것이다.
이 토양은 염분과 유기물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서 작물의 발생하는 힘이 대단히 왕성하지만,
초목의 가지 끝이 마치 둥글게 자른 모양으로 우거지는 것은 흙의 성질이 지나치게 단단하고 차져서 식물의 뿌리가 잘 자라지 못하는 탓이다.
따라서 이런 토양에 작물을 심으려면 흙을 곱게 부수고 구덩이를 파내어 썩힌 풀을 넣어 주지 않으면 안 될것이니 주의해야 한다."
하며 영섭이 붉은빛을 내는 흙을 들어 신속에게 보여주었다.
"식토 중 적식토는 쇠의 녹이 땅의 유기물과 섞여서 차지게 되고 황갈색 모습을 하고있으되,
이러한 흙으로는 차라리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낫지 농사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부지런히 구덩이를 파내어 썩힌 풀을 넣어주고 철 가루를 거름과 같이 적당히 주면 생장에 크게 도움이 된다.
논에 벼를 심고 김을 매줄 때에 모사이의 흙을 잘 부수어서 덩어리지지 않게 해 주면 벼는 마침내 이삭을 피워 의외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영섭은 다른 흙을 들어 보여주었다.
"황노(黃壚)는 노토 중에서 황양(黃壤) 또는 황식(黃埴)에서 나온 흙이다.
이 토양은 진토는 아니고 나무의 잎․뿌리․줄기가 썩은 것이라서 도니(塗泥)에 비해 한 등급 아래라 할 수 있다.
비록 여러 가지 기름기와 염분이 있는 거름을 주더라도 경작이 쉽지 않고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지만, 여러 해 거름을 주어 점차 생장력을 증진시키면 역시 좋은 흙과 견줄 수 있다. 만약 정성으로 가꾸지 않으면 이 흙은 쓸모가 없을것이다."
"여기 해사(海沙)도 있구나. 이 흙은 해안이 붕괴된 곳에 있는 흙인데, 새로이 만든 광척(廣斥) 토양이 바로 이것이다.
기름기가 없고 짠 맛만 있기 때문에 생육하는 힘이 고운 모래만 훨씬 못하지만, 이따금씩 토질과 섞인 곳이 있으므로 그곳에는 경작을 할 수 있으며 물대기가 편리하면 논,솔새밭(菅田), 골풀밭(藺田)으로 적합할 것이다.
만약 조수가 많이 밀려드는 곳이면, 소염법(燒鹽法)으로 소금을 없애는 것도 가 할것이다."
하며 영섭은 또 다른 흙을 웃으며 집었다.
"백분(白墳)이 여기 있었구나. 분토 중에 가장 좋은 흙이 이것이다.
석회, 염초, 유황 등의 무기질이 많은 흙이라 그 색깔이 희고 그 성질이 부풀어오르기 때문에 생육시키는 힘이 극히 왕성하니 가장 좋은 토양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이 토양에서 자라는 초목은 아주 무성해진다. 그러나 이런 토양의 논에 벼를 심으면 줄기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만약 초가을에 비바람이 심하면 벼가 쓰러질 것이니 무턱대고 농사를 지어서는 아니될 일이다"
하니 김육이 말했다.
"전하, 지난 전란 이후 논과 밭이었던 땅이 다시 황무지로 돌아가고, 돌밭이 되어 경작을 엄두도 못 내는 일이 많사옵니다. 이러한 경우엔 어찌 해야하겠습니까?"
"영의정이 부노(腐壚)를 말하는가. 노토 중에 별 볼일 없는 토양이자, 영의정이 말한대로 산악, 구릉, 평원, 황야 뿐 아니라 아직 개간하지 않은 황무지가 바로 이것이다.
대개 아직 개척되지 않은 땅에서 해마다 비나 이슬, 서리와 눈으로 초목이 무성했다가 썩은 것이, 점차로 퇴적되어 토질로 변화한 것이기 때문에 부노라고 할 것이다.
화전법(燒畑法)으로 하여 땅을 개간하고 정성으로 거름주어 가꾸면, 해를 거듭할수록 수확을 얻을 수 있고 토질도 점차로 좋아진다.
만일 이것을 황폐한 채로 방치한다면 이 어찌 천지가 만물을 끊임없이 만들고 기르고자 하는 뜻이겠는가?"
영섭이 설명을 마치자 신속이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쓸모없는 땅은 없는것이옵니다. 토성변에 따라 거름을 달리 주면 황무지도 기름진 옥토로 변할 수 있는것 아니겠사옵니까!"
그러자 옆에서 원두표도 거들었다.
"공판의 말이 참으로 가 하다 하겠습니다 전하. 여태껏 농사를 지을 때, 땅의 특성이 있는지 모르고 그저 시비를 잘 하거나, 으레 농사가 잘 되던 땅만을 골라 농사지으니 황무지를 개간하길 꺼려함도 있던 것이 사실이었사옵니다."
영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 이 농정신편으로 하여금 농사짓는 이들과 이를 도울 관리들에게 두루 널리 읽혀 농사에 힘쓴다면 그 어떤 땅이라 할 지라도 최소한 감자 하나 정도는 재배가 가능할 것이니 여기 있는 중신들은 나의 뜻을 이제 이해하였는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면 경연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다. 공판은 오늘 적은것의 초록(초안)을 내일 상참때 가져와 읽도록 하여라. 좋은 것은 널리 나누어야 할 일이다."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하니 중신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영섭이 또 무얼 시킬라 재빨리 퇴청하는 것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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