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사정 (2)
1655년 1월 창덕궁에 흩날리던 눈은 물방울로, 금새 연기로 바꿔버릴만큼 뜨거운 기운이 가득했다.
이 뜨거운 기운의 형상에 이름을 붙인다면 충군 애국이라, 누군가는 실없는 소리라며 웃고 넘어갈 터였지만 한성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 구빈원 신세를 지고 있는 거렁뱅이부터, 내로라 하는 사대부들까지 지난 달 국왕전하께옵서 친히 권총으로 저 청나라 칙사의 머리를 날려버린 이래로 태어나서 이리도 가슴뜨거운 장면은 처음 보았다는 자들이 너나할거 없이 임금님 천세를 외치고 다니니, 서울 올라온 팔도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고 눈물 흘리며 열렬히 임금님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성에서는 매일같이 만민공동회가 열려 청나라를 규탄하는가 하면, 많이 배운 자들은 주상전하의 충군 애국이라는 뜻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만민공동회에서 못 배운 자들을 가르치니, 스스로 칭하길 애국계몽을 실천하는 자라 하니 수 많은 자들이 너나할거 없이 따랐다.
돈 많은 상인들은 만민공동회가 열릴때마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간략히 정리해 종이에 써서 팔았는데, 경상대방 김득수의 ‘만민신보’를 시작으로 ‘애국신보’, ‘농협신보’ 등이 발행되며 만민공동회에서 나온 이야기에 각 신보에서 이를 논하는 글을 실어 내니 가끔은 신보끼리 논쟁을 거듭하기도 했다.
애국신보가 영의정 김육을 좋은 글 몇 자 써주십사 하며 포섭하자, 만민신보는 우의정 원두표를 포섭해 글을 받아오니, 그 형세가 용호상박이라 한성부 사람들 모두가 신보 나오는 날이면 광통방 일대에서 죽치고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 무렵,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여념없는 영섭은 뜻밖의 소식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러니까.. 지금 팔도에서 초모에 응한 이가 13만명이 넘는다고 했는가?”
“정확히는 13만 1천 하고도 413인이 응했사옵니다.”
영의정 김육이 상기된 표정으로 영섭을 바라보았다.
“각 고을 관아마다 초모에 응하려는 자들로 넘쳐난 덕에 수령들이 애를 많이 먹었다 하옵니다.”
“허.. 이거 참.”
“그 중에 초모에 탈락하자 대신 써달라 하며 소며 말이며 쌀을 바친 백성들이 수 없이 많다 하였으니 이 어찌 나라의 큰 복이 아니겠사옵니까?”
영섭은 그들이 고마웠다. 정말이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나서주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저 감자 하나 널리 퍼뜨려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음을 소망했던 터. 그것이 이렇게 돌아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하, 초모에 응한 이들로 하여금 신속히 군을 편성하시어 청적을 대비하셔야 합니다.”
우의정 원두표도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영섭이 생각하기에도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많은 백성을 모아 군대로 조련하겠는가 하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7만을 의주성에, 4만을 평양성에, 2만을 도성 인근에 예비로 하여 배치한다면 감히 청적이 조선을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공조판서 신속도 거들며 말했다. 지난 병자년 전쟁때도 의주성부터 이어지는 의주대로를 따라 청군이 진군했으니, 의주성만 방어해도 적의 기세는 크게 꺾일수 밖에 없었다.
“나는..”
오랜 고민끝에, 영섭이 운을 떼자 삼정승 이하 관료들이 귀를 쫑긋했다.
“초모에 응한 13만 중 절반 이상을 다시 돌려보낼 것이다.”
“예에? 전하!”
어디에 병력 배치를 할까 고민하던 병조판서 이완이 기겁하며 말했다.
“지금은 병사 하나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초모에 응한 자들 중에 절반을 다시 돌려보내신단 말입니까?”
영섭이 고개를 젓더니 이완을 바라보며 말했다.
“돌려보낸다는게 그들을 군사로 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급격히 초모에 응한다면 치중의 준비에 있어 큰 짐이 되지 않겠는가.”
정론이었다.
13만 군사를 모으는 것 까진 좋은데, 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조련시키는데 들어갈 모든 물자와 노동력은 아직 미비했다.
총력을 다해 전쟁을 벌이자는 것 까지는 모두가 불타는 마음에 그 높은 뜻을 펼치려 하였지만, 딱 3일동안 먹고 마시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 의지 또한 꺾일 수 밖에 없었다.
영섭은 철도망의 부재와 잘 정비된 길이 없음에 지난 한국전쟁을 겪으며 보았던 총력전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기에 현실을 냉정히 바라본다면, 초모한 13만을 화톳불과 잘 곳 없이 조련만 시킨다면 청과 싸우기도 전에 모두가 동사할 것이다.”
그러면서 영섭은 세자를 불렀다.
“세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자는 영섭이 내뿜는 무언의 기운에 눌려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지난번 사건 이후 영섭은 항상 세자를 자기 옆에 앉혀 국사를 돌보는 눈을 기르도록 했다.
“소신, 생각하건대 13만이 초모에 응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나라의 큰 복이옵니다. 다만 전하께서 이들을 일시에 먹이고 재우고 조련함이 어렵다 하시니 짧은 생각을 논해보겠사옵니다.”
“세자도 나의 뜻에 따르려 하는가?”
“전하, 송구하오나 초모한 이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낸다면 그들이 품은 의가 옅어질까 두렵사옵니다.”
“음 그건 그렇지.”
“하여 초모한 이들을 넷으로 나누어, 당장이라도 싸울수 있는 자들을 선별하여 수병(秀, 짧게 조련하면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우병(優, 길게 조련하면 전투에 보탬이 되는 자들은 미병(美, 싸울수는 없지만 치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들을 양병(良이라 칭하여 나눈 다음, 수병과 양병은 즉시 북방으로 올려보내고, 우병과 미병은 각 고을 수령과 병방으로 하여금 조련하는 것 이옵니다.”
뜻밖의 말에 영섭과 관료들이 놀라워하니, 세자가 부끄러워했다.
“세자는 계속해보라.”
“예 전하.. 또한 초모에 응해 통과한 모두에게 증서를 교부하여 그들이 납부해야 할 세금을 1회에 한해 면제를 한다면 모두 사기가 높아질 것이옵니다. 후일 다시 초모한다 하더라도 이 때 응했던 자들은 다시금 응해 전하의 부름에 답할 것이옵니다.”
세자의 말이 끝나자, 영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신묘한 계책이구나. 병조판서는 초모한 이들로 하여금 넷으로 나누도록 하여 수병과 미병을 도성으로 보내고, 우병과 양병은 각 고을에서 수령과 병방으로 하여금 조련토록 하여라.”
“전하, 세자께서 고하신 체계는 이해하였으나, 각 기준을 어찌 잡아야 할지···”
병조판서 이완이 말끝을 흐리자, 이번엔 영섭이 답을 주었다.
“무과에 응시하였다가 탈락한 자가 첫번째, 호랑이나 곰 같은 커다란 짐승을 쏘아 잡은 자가 두번째, 멧돼지나 노루 등을 쫒아 잡은 자가 세번째, 조총을 갖고 한해 백여발이 넘게 쏘아본 자가 네번째. 병장기를 능숙히 다루고 체격이 남들보다 크고 잘 지치지 않는 자가 다섯째이다. 이들은 모두 수병에 해당 할 것이다.”
“듣고보니 과연 그러합니다 전하! 그 기준으로 하여금 수병부터 양병까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초모에 응한 자들 중에 수병에 해당하는 자는 얼마나 되겠는가?”
“소신 장담할순 없지만, 이 중 이 할이라도 나온다면 많을 것입니다···”
“3만이 약간 안되겠구나.”
“미병에 해당하는 자는 2만이 조금 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당장 싸울 수 있는 자가 5만인데, 이중에 2만은 철저한 조련을 거쳐야 하고 나머지 7만은 예비로 남겨야 한다라···”
“소신의 생각이 그와 같습니다···”
병조판서 이완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영섭은 금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청적이 군세를 일으킨다면, 그 수는 얼마나 될 것인가?”
“지난 병자년에 쳐들어온 수가 5만이 채 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피차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남경이 아슬아슬할 터이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혹은 남경을 내버려두고, 우리 조선을 전력으로 치달을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청이 우리처럼 총력을 다해 군세를 몰아온다면 그 수는 얼마나 될것인가?”
침묵
“다소 민망하더라도, 병판은 고하라.”
“소신 생각하기에, 아무리 적어도 30만일 것이고, 70만이 최대일 것입니다.”
“70만이라. 이번에 초모에 응한 자가 13만이라 하였으니 다섯배가 넘는 적을 맞아 싸워야 하겠구나.”
“다만, 아직 중원땅에서 명의 불꽃이 사드라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기세가 올라 있으니 우리에게 겨누어진 칼은 조금 덜 할것입니다. 하여···”
이완이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떻게든 청나라 군사 20만을 맞아 크게 싸워 이긴다면 우리와 강화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13만으로 20만을 맞아 싸워 이긴다. 70만 보다야 낫겠지만 이 또한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분명 그러할 것입니다.”
영섭은 한참을 깊이 고민하더니, 영의정 김육을 바라보며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이번 초모에 응한 이들 중 미병과 양병을 즉시 고양군으로 올려보내라 하며, 이들로 하여금 훈련청를 설치한다. 훈련청이 설치된 이후 도감군 중 신식군 갑사들을 훈련청으로 보내어 미병과 양병을 조련하고, 수병과 우병을 순차로 조련하겠다.”
“예? 전하 훈련청이라 하시면···?”
지난 삶의 기억중에서, 한국전쟁 당시 피난하던 와중에 제주도에 육군훈련소가 생겼다니 배를 타고 들어가 군인이 되겠다는 동무들이 있었는데, 그 중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최 아무개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최 아무개가 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것을 전쟁처럼 해야만 했다며, 군복이 없어 입고 온 옷 그대로 군복으로 사용해야 했고, 식량이 없어 바다 속을 뒤지며 미역이며 전복이며 따서 먹기도 했으며 총도 탄도 넉넉하지 않아 나무를 깎아 만든 총을 들고 총 쥐는 법, 탄을 장전하는 법, 총검술로 싸우는 법, 어떻게 군인처럼 행동하는지, 어떻게 군인처럼 말 하는지 연습했다고 했다. 심지어 막사도 없어 천막을 치고 생활하기도 했다니 용변이나 세면따위는 사치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 시기에는 전국 어디든 마찬가지였으니 전장이든 훈련소든 혼란한 사회든 그저 억척스럽게 살아남는 것이 첫번째요 출세 따위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저 오늘 죽지 않으면 내일 죽게 되는, 발 디디는 곳 모두가 전장인 그런 땅에서 필사의 전쟁을 겪어보았기에 오히려 영섭은 차분히 지금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영섭이 보기에 지금 상황은 지난 생에서 겪었던 한국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군에 들어온 순간, 나라는 어떻게든 이들을 군인으로 만들어 전장으로 내보내야 했다.
한국전쟁이 그랬고, 영섭이 공산군을 쓸어버리겠노라 하며 갔었던 베트남에서도 그랬다.
그저 굴리고 굴리고 굴린다. 살아남지 못한다면 살아남게 해야 한다. 총을 쥐어 쏘게 하고, 싸우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사람 쏘는 것이 무덤덤해질때, 축하한다! 그대는 비로소 군인이 되었으니. 적 총검으로 꿰뚫고 앞으로 전진하라! 하며 용기를 심어주어야 한다.
백관 모두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영섭은 짧게 한숨을 쉬며 동시에 머리속에는 청사진을 한장 두장 그렸다.
“일산을 신도시로 기억하는 이는 이제 나 혼자가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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