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평화 (3)
“꺄아아아아악!”
”파..파드레(신부)! 살려주세요!“
잔뜩 겁에 질린 여인들과 아이들이 오들오들 떨며 천주당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그 뒤를 창과 칼을 든, 팔기군 여럿이 따라와 굳게 닫힌 성당 문을 걷어찼다.
”이 돼지같은 놈들아!!! 어서 기어나오지 못하겠느냐!“
“이봐! 그만해! 그런다고 놈들이 문을 열겠어?”
문을 걷어차는 군졸을 자제시킨 군교가 씩 웃더니 품에서 화약 주머니를 꺼내 문에 걸었다.
화약 주머니를 바라본 군졸도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는 부싯돌로 불을 홰에 붙였다.
“불!”
군교와 군졸은 저만치 떨어져 횃불을 천주당 문에 던졌다.
-치지지직···
얼마 지나지 않아 섬광과 함께 폭음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귀를 때렸다. 천주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깨지진 않았지만 곧 맞이할 운명처럼 모조리 금이 가버렸다.
“문이 열렸습니다!“
“뭐해! 모조리 죽여라!”
“예!“
겁에 질려 안색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가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이들을 보호하려는 신부들의 결연한 눈동자에는 창을 들고 서서히 다가오는 청나라 군사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찔러!“
군졸의 외침으로 시작된, 죽음의 성가가 울려퍼지며 하나 둘 창에 찔려 쓰러질 때, 신부는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성모 마리아 상을 올려다 보았다.
”마리아시여···.“
상아빛 마리아 상은 여전히 인자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주를 모신다는 법당이며 사제들이 습격을 받았다고?“
”폐하! 어찌 이런 비극이 있겠사옵니까!”
순치제는 얼굴이 벌개진 채 열변을 토하는 사제 마갈렌스(Glbriel de Magalhaens)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뿐만 아닙니다! 사제관에 있던 신부들 모두가 끌려나와 한 사람씩 처형당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을 고하고자 도망쳐 바로 이 곳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러한가..“
”폐하! 책임자를 찾아 엄히 물어야 하고, 이 사실을 로마 교황청으로 알려 사건의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사주하였는지 말입니다!“
”그러한가···“
순치제의 반응이 뜨듯미지근한 것을 알아차린 마갈렌스 신부는 이 거대한 학살의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설마 황제폐하께서..!!“
“내가 모두 죽이라 지시했다는 것인가?”
순치제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얼음같은 냉혹한 말로 마갈렌스를 몰아붙였다.
“···아닙니다. 본 신부가 너무나도 참혹한 광경을 본지라···“
고개를 숙인 마갈렌스가 용서를 구하자 순치제는 빙긋 웃었다.
”아, 생각해보니 사실 내가 지시한게 맞네.“
“바..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어 마갈렌스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잔뜩 찌뿌린 채 고개를 들었고, 커다란 활을 든 채 자신을 겨누고 있는 황제와 눈이 마주쳤다.
“폐..커허어억!”
피를 토하는 마갈렌스를 바라보며, 순치제는 쩌렁쩌렁 소리쳤다.
“너희같은 천주 모신다는 승려들의 잘못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주씨 쥐새끼와 붙어먹어 이 나라를 엎으려 한 점.
두번째, 백성을 혹세무민하여 황조를 기망한 점.
세번째, 서양 문물을 소개한다 했지만 게을리 한 점.
네번째, 조선왕을 부추겨 청조와 서로 싸우게 한 점.
다섯번째, 아이들을 잡아먹고 배를 갈라 간을 꺼낸 점!“
마갈렌스는 의식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도대체 다섯번째 잘못은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억울했다. 대체 누가 저런 헛소문을 퍼트린것인가!
그가 눈을 부릅뜬 채 죽어갈 때, 자택에서 근신하던 아오바이가 순치제를 뵙길 청했다.
“폐하! 천주당을 부수었고 승려들을 모두 참살했나이다!”
아오바이가 흡족한 얼굴로 들어오다가 화살에 맞아 죽은 사제를 보고 흠칫했다.
“쥐새끼 한 마리가 있었더군.”
“폐하···”
“태정대신의 잘못은 아니네만 내가 활을 들어야겠는가.“
”송구하나이다 폐하!“
”뭐 되었네. 하도 개가 짖어대길래 쏜 것일 뿐. 그래, 천주당을 부수고 사제들을 모두 참살했다고?”
“그러하옵니다 폐하! 군사들로 하여 천주당에 사제들을 몰아넣고 불을 놓았사옵니다!”
“그러한가, 천주라고 떠받들던 자들은 어찌 하였는가?“
”사제는 모두 참살했지만, 이 사교를 따르는 무리들이 워낙 많아···“
”그러겠지. 천주당에 드나는 사람만 하더라도 수만일테니.“
”하오나 폐하. 이들 모두를 색출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게 무엇이지?“
”일전에 왜국 사신이 왔을때 들은 이야기이옵니다. 왜국에서는 천주의 초상화나 십자가를 바닥에 내려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발로 밟게 하여, 거리낌 없이 지나가면 사교의 무리가 아니고, 조금이라도 거리끼면 사교 무리라 하여 즉시 참살했다 하옵니다.“
그러자 순치제가 무릎을 쳤다.
“좋다! 북경성을 모두 걸어잠그고 즉시 시행하라!”
아오바이가 순치제에게 건의한 것은 도쿠가와 막부에서 시행했던 후미에였다.
막부가 숨어있는 카톨릭 신자들을 잡아내기 위해 예수나 마리아의 모습을 새긴 판이나 그림을 밟고 가도록 하여 신자들을 찾았던 방법 그대로를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즉시 시행하겠나이다 폐하!”
아오바이는 엎어지다시피 큰 절을 올리고는 서둘러 자금성을 나갔다. 저 영악한 주씨 쥐새끼와 붙어먹은 사교를 따르는 이들을 색출하려면 쥐새끼들이 빠져나가기 전에 걸어잠가야 했다.
동시에 조정이 얼마나 강력한지, 팔기군이 얼마나 강력한지 의심하는 이들에게 똑똑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주씨 쥐새끼들에게 굴욕적인 화맹을 맺고 조선 원정도 실패한 지금의 조정에 의문을 품는 자들은 이 북경성 말고도 많았으니, 이번 사교 무리를 ‘제대로’ 제압하여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한다면 그들이 품은 의문 또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그러질 것이었다.
아오바이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날도 송시열과 송준길은 그들을 따르는 청나라 청년을에게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다.
“이보게 우암, 저기 무슨 일이 난 모양인데.”
“그런듯 하네. 무슨일인지 살펴가겠는가 동춘당?“
“후학들이 기다리고 있을터인데..”
“주자께서도 제자가 스승을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배움을 갈망하게 된다 하였으니 안될 것 없지 않겠나.“
하며 송시열이 방향을 돌려 걸음하자 송준길도 갸웃 하고는 그를 따라갔다.
처음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줄 알았지만 둘이 걸음을 할수록 그 무리는 점점 불어나 못해도 수백의 무리가 웅성거리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성들은 들어라! 오늘날 이 북경성에 천주를 따른다 하여 사악한 무리가 활개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라 하겠다!
이에 만세불변의 황제폐하께서 이들이 저지른 다섯가지 죄를 널리 알려 이들의 죄를 묻고자 하니 만 백성은 따라야 할 것이다!
첫번째! 명나라와 붙어먹어 이 나라를 엎으려 한 점.
두번째! 백성을 혹세무민하여 황조를 기망한 점.
세번째! 서양 문물을 소개한다며 백성들을 꾀낸 점.
네번째! 조선왕을 부추겨 청조와 서로 싸우게 한 점.
다섯번째! 아이들을 잡아먹고 배를 갈라 간을 꺼낸 점!
이 다섯가지 죄목이 이들에게 달려있음을 만 백성들은 시급히 알아야 한다!
황제폐하께서는 이들이 사악한 무리이기에 즉시 백성들에게서 떼내어야 하며! 북경에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저 사교 무리의 우두머리를 발로 밟아 정화할 것을 명하셨다!“
“···이보게 동춘당, 저 자가 뭐라 하는지 그대는 이해했는가?”
“천주의 무리들이 사교의 무리라는건 알겠는데.. 발로 밟아 정화하라는건 무엇인지..”
그 때, 청나라 군사들이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 수십여장을 가져와 바닥에 주욱 깔았다.
“들어라! 여기 모인 백성들 전부는 여기 사교 우두머리의 얼굴을 짓밟도록 하여라!“
군교가 소리치자, 제각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웅성거렸다. 모두가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던 탓이었다.
“네 이놈들! 모두가 사교를 따르는 무리구나!”
하며 군교가 칼을 꺼내 백성들을 위협하니 모두가 겁에 질려 감히 나서려는 자가 없었다.
“이보게 우암, 어서 돌아가세! 상황이··· 우암? 우암! 어디 가는가 우암!!!“
송시열은 송준길이 부르짖는 소리도 무시하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가니 청나라 백성들이 모두 힐끔거리며 송시열을 바라보며 길을 내주었다.
송시열은 나아가 예수의 그림 앞에 서서, 군교에게 물었다.
”이 그림을 밟고 가면 되는 것이오?“
”그렇다!“
”그렇군.“
하며 송시열은 가볍게 예수의 얼굴을 밟고는 지나갔다.
그 순간 모두가 숨죽이며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겁에 질린듯한 천주교인, 이 군중에 퍼져있는 중압감을 떨쳐낸 그를 경외하며 바라보던 청나라 청년, 그림을 깔던 팔기군 군사, 방금까지 송시열에게 하대하던 군교조차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송시열은 걸어온 방향으로 뒤돌더니, 자신이 밟은 그림을 집어들고는 이내 죽 죽 찢어버렸다.
”모두가 칭송해 마지않는 천하인의 기개가 이리도 사라졌느냐!!!”
별안간 내지른 송시열의 고함에 군교를 비롯한 백성들 모두가 깜짝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천하를 호령하던 천하인들이! 어찌하여 이 서역에서 건너온 사교 무리에 쩔쩔 매며 그들의 우두머리의 그림조차 두려워 하여 감히 밟지 못하느냐!”
송시열의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었다. 살을 에이는듯 한 추운 겨울의 공기조차 그의 목소리 앞에서는 부드러운 면포와도 같을 정도였다.
송시열은 청나라 백성들을 바라보며 일갈했다.
“나는 조선에서 온 송시열이라는 자이다! 지난번 조선에서 맺은 화맹에 대해 어리석은 백성들이 서로 말하기를, "지난날 동양 삼국이 벌인 전쟁은 서로 미워하기에 벌인 전쟁이다.” 하여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였다. 그러나 천하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구나!
비단 조선 뿐 아니라 동양 삼국에 세를 과시하고 있는 이 천주라는 무리가! 배후에서 동양 삼국을 분열하려는 책략임을 천하인들은 정녕 모르는가!!
다행히 청국 황제폐하의 총기와 성의(聖意)가 강경하여오늘날에서야 저 사악한 사교의 무리를 잡아내었으니 어찌 만민이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천주의 무리에 빌붙은 자들은 그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천하인들이여!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동양 삼국의 사람들과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천주의 노예된 사람들이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천하인의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천하인들이여! 천하인들이여!!!!!“
하며 송시열이 땅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꺼이꺼이 곡을 하자 군교를 비롯한 모두가 눈물을 아니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대인! 대인! 소인의 눈이 어두워 대인의 풍모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부디 밝은 길로서 개안하여 주소서!”
하며 군교가 달려와 송시열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팔기의 군사들도 모두 송시열에게 달려오니, 송시열은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들은 위정척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 작가의말
집에 쌀이 없어 벌어오느라 연재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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