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근자 수선지로(無靈根者 修仙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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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키
작품등록일 :
2023.08.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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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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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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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취한 것인지 깨있는 것인지, 임아소요 (是醉是醒塵寰別, 任我逍遥)

DUMMY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열차를 뒤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십수 년이 흘렀다.


 와각상인은 수 년간 정민에게 둔갑술과 서예를 가르쳐 주다가 어느 날 그의 눈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승하했다.


 은하수 주변 위성 은하들은 대부분이 천맹에 속하게 되었고, 국부은하군에서 가장 큰 은하중 하나인 삼각형자리 은하가 천맹과 전송진을 개통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은하수 주변 상황이 파국을 피하고 대체로 안정을 찾아가는 것과 별개로, 천맹 의장국 주재자 이정민에게 최근 이상한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근 위성 은하들이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오는 것이 대머리 화신기 수사들이 들쑤시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상반된 두 기운이 어디 있냐는···.”


 옛날 국부은하군 너머 다른 은하군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대머리 수사가 일월(日月)이 된 태양정수, 태음정화의 위치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수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고, 그 수가 소수가 아닌 것 같다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 일부 세력이 작은 위성 은하들은 화신기와 원영기 수사들마저 대거 살해 당하고 항성계가 파괴 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참···. 다른 은하군이라니, 거리가 적어도 수천만 광년이 넘을 터인데···. 거리는 둘째치고 어디서 온 지도 종잡을 수 없으니 원···.”


 수선대능이자 천맹 의장국 주재자로서 화신기 진군들에 대한 약간의 하대가 자연스러워진 정민은 그날도 천맹 본부 진군에게 그런 보고를 받고 있었다.


 “열염진군, 천맹 전체 회원국 중에 그들을 추적할 기술을 가진 곳은 없습니까? 반지계가 초공간 기술을 복구하고 있으니 추적만 가능하면 우리가 그곳으로 원정을 가면 될 텐데요.”


 “수선대능님. 송구하오나 그런 초장거리의 공간 왜곡을 추적할 기술은···.”


 ‘역시··· 수사들의 수준은 모르겠고 기술력은 저쪽이 우위인가?’


 천맹 회의에서 이미 최우선 의제가 된 이 외부 은하군 출신 ‘대머리’ 화신기 수사들의 침공은 회원국들의 성화에 못 이겨 피할 수 없는 결전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문제는 결전을 치루려면 양측 중 한쪽이 상대 진영에 본대를 투입해야 하는데, 천맹 측에는 그들이 있는 곳을 갈 방법이 없는 데다, 수십 이상의 화신 초기 수사들조차 그들의 본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었다.


 “초공간 기술과 공간 왜곡 추적 기술이 그렇게 동떨어진 범주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지계에 연구개발 예산을 집중해서 복구를 돕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천맹은 긴급 추가경정예산까지 투입해서 반지계의 고대 기술 복원에 힘을 쏟고 있었고, 최근 몇 달간 초공간 기술에서 소기의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후기 참오 병목··· 참 어렵구나. 이젠 또 수위가 문제가 아니네.”


 그리고 부술진군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후 예산에 여유가 생긴 정민은 일월에서 나오는 영초의 대부분을 단약으로 만들어 수위를 올리는 데 쓰고 있었다.


 그 결과 무원영의 수위는 이미 후기 수준에 가까워져, 참오 병목을 해결하면 원영 후기에 도달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천도가 나한테는 단 한 문장의 돌파구도 주지 않아.’


 먼 옛날, 청년이 한 원영 중기 천교 수사의 참오 병목을 해결해 줬을 때 들을 수 있었던 구절마저 세 문장에 불과했다.


 천교 중 천교인 그에게 천도가 아무런 돌파구를 주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몇 달간 무원영은 계속해서 독자적으로 입정에 들고 있지만, 아무런 깨달음이···.’


 세 원영이 전부 후기 참오 병목을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지만, 만약 그렇다면 수명이 다하도록 원영 후기가 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결단기때 했던 것과 아예 다른, 자신에 대한 또 다른 깨달음을 세 번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건데, 말이 안 돼!’


 지위나 명망, 외향 따위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닌, 개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은 사람마다 정해져 있는데 깨달음을 얻을 정도로 구분되는 특별한 그것을 셋이나 더 가지고 있는 자가 존재할 리가 없었다.


 ‘안 되는 건 계속해봤자 의미가 없어.’


 아기 이정민, 무원영을 거둬들인 그는 반주(飯酒, 밥을 먹으며 마시는 술)를 마시기로 했다.


 상에 올라온 것은 막걸리 같은 곡주였는데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시판 막걸리보다 쌉싸름한 맛이 조금 더 강했다.


 ‘고계 수도자가 되면 배고프지 않는데 밥은 왜 먹냐고 물어본 때가 있었지.’


 먹고 싶은데 안 먹을 필요가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 말고는,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그 질문에 백여 년 전 소년에게 청년이 답한다.


 “知天之所爲者 자연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天而生也 자연처럼 살아간다.”


 술을 마시는 목적을 여럿으로 나누자면 마실 당시 상황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아니면 취함으로 인해 나오는 인사불성 그 자체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술을 목으로 넘김으로 인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곡주가 아니라 보드카 백만 병을 마셔도 취하지 못할 테지···.’


 ‘그러면 나는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나? 그럴지도.’


 “수선대능님! 은하수 안쪽 구역에 놈들이 왔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출관이 가능한 진군이 없어서 수선대능님께서 나서주셔야 합니다!”


 막 반주를 한 잔 더 마시려 할 때, 천맹 본부 소속 원영기 수사가 그에게 다른 은하군의 ‘손님’들이 은하수 내부로 왔음을 알렸다.


 “나타난 곳이 알 다이라에서 가깝진 않겠지?”


 “다행히 은하 전체로 따졌을 때 거의 반대구역입니다. 타셔야 할 전송진은···.” 


 청년은 원영 수사의 안내를 받아 해당 구역으로 향하는 전송진을 긴급히 발동하고 성계 안쪽으로 향했다.


 ‘일월이 있는 곳이 우리 은하 안쪽이나 그 주변이라고 이제 거의 확정 지었나 보네.’


 그들이 태양정수와 태음정화를 원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그 둘은 기적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물건이니 어떻게든 그 존재를 알아냈다면 노릴만 했다.


 ‘그리고··· 놈들이 여태까지 한 말을 보니 최고 경지 수사는 화신 중기 너머 후기일 수도 있어.’


 첫 조우 때부터 화신 초기 부술진군이 있는 정민 일행을 보고 경지가 낮아서 ‘파장’을 못 느꼈을 거라 말했으니 화신 중후기 이상가는 수사가 놈들의 지도자인 게 분명했다.


 “언어 표현의 차이인지 어째서 경지가 더 높은 수사가 있다는 게 ‘내가 더 경지가 높다’라는 말로 바뀔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머리 수사를 목격 했다는 구역 주변에 오자, 청년의 영식 감지 범위 끄트머리에서 화신 초기의 수위가 느껴졌다.


 ‘놈도 알아 챘겠지! 역경검과 건곤척들로 혼을 빼놓은 다음에, 삼매진화로 기습해서 한 번에 제압하자!’


 제압을 생각하기가 무섭게 상대 측에서도 청년을 향해 천천히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녀석도 법상이라고 쓸모는 있어.’


 역천맹의 태을선존을 제압했을 당시 얻은 창 모양 법보에 담겨있는 법상은 이름이 창주(槍主)라고 한다.


 ‘법상일 뿐이라 신령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이름을 가질 정도로 창에 일가견 있단 거겠지.’


 그때, 영식 감지 범위 끄트머리에 점점 더 많은 수사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따라오는 놈들이 더 있다!’


 교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상대가 어째서 화신기 수사의 둔술 속도를 내지 않나 싶었더니 일행이 있었던 것이다.


 ‘반보 화신은 없고, 원영 후기 셋, 중기 스물하나, 초기 백, 결단기나 그 아래 다 합쳐서 사십오만··· 본격적이네.’


 화신기 수사가 한 명이란 점을 빼면 천맹이 반지계 복속 당시 출정한 수사의 거의 수분의 일에 가까운 수였다.


 우주 공간이라 그 힘을 발휘하기 힘든 휘선을 제외하고 새로운 법상 창주(槍主)와 자기 법술의 힘을 빌려서 나머지를 제압해야 할 것 같았다.


 ‘무원영과 내 본신이 수인을 교차해서 맺으면 무영순과 무화오기를 번갈아서 지연 없이 쓸 수 있어. 그것만으로 적어도 원영 초기 수준까지의 공격은 완전히 무화! 나머지는 그때그때 생각하자!’


 기령 창주의 공격은 기령 휘선의 그것보다 훨씬 더 물리적인 방법으로, 기령 본인이 나서서 창술을 발휘해 적 하나하나를 제압하는 식이었다.


 홱ㅡ


 홱- 홱- 휭-


 “아아아악!!”


 “···!!!!”


 창주가 초식을 발휘할 때마다 수십 수백의 저계 수사들이 고통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로 쓸려 나가고, 심지어는 가끔 초식의 연계 없이도 그 이상의 무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초식 없이 저런 위력을? 무초식으로 저런 움직임을 보일 정도로 창술만큼은 초고수 이상이란 말이지?’


 청년이 과거 무술에 큰 깨달음을 얻어 초고수급이라고 해도 초식을 펼치거나, 기껏해야 무영탄회지의 두 손 움직임을 한 손으로, 법력의 보조를 받아 억지로 줄이는 정도였다.


 창주의 무술 실력이 정민보다 위에 있다는 증거였다.


 쿠르르릉··· 쾅!


 화르르륵


 상대 화신기 수사와의 교전도 시작 되어 건곤척에서 천뢰들을 그를 향해 내뿜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수백의 불기둥을 세웠다.


 “법기에서 자미 천뢰와 법보 제련의 천뢰가 한 번에? 게다가 너는 예전에 만난 그 특이한 영근을 가진 개체로구나.”


 “나는 너를 만난 적 없다!”


 채챙-


 ‘삼매진화는 기껏 올려놓은 수위를 또 초기 수준에 가깝게 낮출거야! 가급적 쓰지 않고 제압하자!’


 상대가 자기를 만난 적 있는 것처럼 굴며 이상한 소리를 하며 창과 칼 법보 등을 내세우며 공격해왔다.


 ‘어쩐지 기혈이 가늠 안되더라니, 무술을 배운 놈이구나! 하지만 나보다 무술 실력이 낮다. 역경검으로 법보를 상대하고, 나랑 창주가 본신과 화신을 제압 해야겠다!’


 법보의 움직임은 무술 초고수인 그가 봐도 군더더기가 거의 없었고, 상대의 본신과 화신마저도 쌍검을 들거나 지법(指法)과 검지(劍指)를 세운 검기를 위시해 접근전을 펼쳤다.


 이에 따라 화신기 수사를 상대하던 건곤척은 이제 원영기 등 나머지 수사들을 제압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백중우세 정도인 전투 상황과 달리 영식으로 붙는 것은 훨씬 더 상황이 나았는데, 동급의 영식을 가진 수사의 경우 그 누구도 정민을 이겨본 전례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영식으로 동급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겠어. 퇴로를 막고 둔술부나 다른 도주 수단을 쓰지 않게 견제하자!’ 


 그렇게 상대의 영식이 반 이상 소멸 되었을 때였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도무지 원영 중기 수사의 실력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혹시 네가 상반된 두 기운을 가지고 있나?”


 “상반된 두 기운 자체가 뭔질 모르겠다니까?! 이 은하군에서 횡포 부리지 말고 다른 곳에서 찾아봐라!!”


 홱-


 대머리 화신 수사에 손에 들린 쌍검 중 하나가 청년의 겨드랑이를 찔렀다.


 “···!!! 으으윽···.”


 삿갓 쓴 청년은 이대로는 팔마저 같이 날아갈 수 있음을 알기에 청제우의(靑帝羽衣)의 보호막 기운을 그곳에 집중하며,  


 재빨리 반대편 손으로 검날을 잡아 상대 손아귀에 쥐어져 있던 검을 억지로 뺏었다.


 ‘정말로 찔리는 줄 알았어!’


 상대의 쌍검에 찔리는 척 했던, 순간적으로 발휘한 기지는 효과적으로 먹혀서 상대가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상황 경과를 이해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고수급 이상 무술 고수의 싸움에서 그 정도 시간 우위는 열위를 가진 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곤 한다.


 ‘무영탄회지, 육십사괘육방위검세!’


 픽 픽 픽


 어느덧 상대의 뒤편까지 다가와 있던 육십사역경허검이 한 번씩, 상대를 384번 찔러내 구속하고 무영탄회지의 무영탄환이 몸과 화신을 꿰뚫었다.


 “나와 동급이던 너희 화신기 대장이 죽었다! 모두 죽을 준비를 하거나 지금이라도 도망가는 게 좋을 것이다!”


 청년의 선언이 무색하게 그들은 물러날 기색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네가 상반된 두 가지 기운을 가진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네 본원영근이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네가 완벽한 영근과 관련 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냈···!”


 또 다시 그들 모두가 ‘나’임을 강조한 원영 후기 수사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상대 모든 수사들의 몸은 싸늘해졌다.


 “이건 언어 체계의 문제가 아니야. 놈들이 말하는 ‘나’라는 것에는 뭔가 확실히 알아봐야 할 구석이 있어!”


 ‘하지만 일단··· 쓸만한 물건만 챙기고 바로 알 다이라로 돌아가자. 놈들이 내가 상계 천재지보와 관련되어 있다는 걸 확신한 것 같으니.’


 정민은 화신기 수사와 일부 원영기급 수사들에게서 쓸만한 물건만 챙긴 채로 전송진을 통해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삼매진화 없이도 화신 초기 수사를 단독으로 제압할 수 있는 걸 확인해서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의문만 늘었어. 대체 놈들은 뭐지?’


 무엇보다 완벽한 영근과 ‘관련되어’ 있다니?


 정민의 본원영근을 완벽한 영근이라고 지칭하지 않는 것 봐서 그의 그것이 ‘정말로’ 완벽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아닌 것 같고,


 제공된 정보가 너무 단편적이라 청년의 추론에서 필연적으로 뭔가 빠진 게 있단 소리였다.


 그때,


 “소요진군님, 현재 천맹 권역 내에 추가적인 습격 보고는 없습니다. 폐관에 드시는 것 어떠십니까?”


 집으로 복귀하고, 그의 시중을 들어주는 결단기 수사 중 한 명이 그가 피로감을 느낀 것을 알아챘는지 휴식을 위해 폐관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우회적으로 해왔다.


 ‘확실히··· 최근 몇 달간 짬내서 참오 병목을 깨려는 것 말고 제대로 된 수행을 해본 적이 없어.’ 


 천맹의 진군들과 위성 은하의 화신기 수사들은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다른 은하군 수사들의 습격에 대비하느라 수행에 전념할 시간을 뺏기고 있었다.


 언제 또다시 이런 잠깐의 휴식 시간이 찾아올지 몰랐다.


 “그래. 폐관을 해야겠다. 성공 여부를 떠나 기간이 길진 않을 테니 본 진군이 스스로 출관하기 전까지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방해해선 안 된다. 후기 참오 병목의 심마가 될 수 있으니.”


 다른 수사들이야 천교 정도는 되어야 원영 대원만 수준의 심마가 찾아오겠지만, 이미 영식이 일반적인 화신 초기와 겨뤄도 우세한 그에게는 화신 중기 수준의 심마가 드리울 수 있었다.


 화신기쯤 되면 초기와 중기 사이 격차도 상당하기에, 청년에게도 안 그래도 참오만으로도 난제인 구간인데 더더욱 치명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모든 시중들에게 알리겠사옵니다!” 


 약초밭 겸 폐관 장소인 일월에 들어가 작업중인 모든 인원에게 축객령을 내린 정민은 그대로 문을 봉해 버렸다.


 “천맹에서 가장 높은 경지인 화신 초기 수사가 그쪽에선 이렇게 상급 정찰 자원에 가깝게 쓰이는 걸 보면 화신 후기 이상이 놈들의 수장인 게 확실하다···.”


 정민이 아무리 소경계 두세 단계쯤은 무시하고 제압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어도 원영 중기인 상태로는 화신 후기를 상대하는 게 불가능하다.


 ‘나도 이제 화신기가 되어야 해. 수위는 억지로라도 긴 기간에 걸쳐 채우면 되니까 이번 폐관에 어떻게 해서든 후기 참오 병목을 해결한다!’


 그 생각을 끝으로 아기 이정민, 무원영이 눈을 감고 입정에 들었다.


 청년의 본신 역시 입정에 들고 싶었지만, 원영이 깨달음의 주가 되어야 하는 구간이라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내 인생 전체를 뒤돌아 본다.’


 강대한 영식과 의식의 힘을 빌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주마등이 스쳐지나가고, 그의 길다면 긴, 하지만 원영기 수사로서는 매우 짧은 인생이 눈 깜짝할 새 현재로 돌아왔다.


 ‘지금 내 마음속에 가장 걸리는 것은 내가 유일하냐 아니냐구나.’


 무간묘화를 얻었을 때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 제 2의 삼도축기자와 무영근자가 있다면, 제 2의 이정민이 있다면 본인의 삶이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자기 유일성이 사라지면 뇌수, 뇌신이 유일하다고 확언한 그 존재가 부정되는 셈이고, 그런 대신격의 확언조차 의미없는 세계라면 대도(大道)라 불리는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모두가 놀아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당시 본원신령 명조, 금붕을 얻어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소요의 편린을 느낀 그는···


 그 모든 걱정을 마음속 저편으로 밀어 놨었는데, 결국 이것이 후기 참오 병목과 큰 관련이 있어 보였다.


 “유일함과 비유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정민으로서 내 존재가 유일하다면, 그로 인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다면 그 소득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본신이 아닌 무원영이 심호흡을 하며 자기가 뱉어야 할 다음 문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是醉是醒塵寰別 술에 취한 것인지, 깨있는 것인지···.”


 아니, 지금은 이 말을 뱉어야 할 때가 아니었다.


 “且有眞人而後有眞知 그러므로 참된 사람(眞人, 진인)이 있은 후에야 참된 지식(眞知)이 있는 것이다.


 何謂眞人 누구를 진인이라 하는가?


 古之眞人 옛날의 진인은 


 不逆寡 적음을 꺼리지 않았고 


 不雄成 성공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不謨士 아무일도 꾀하지 않았다.


 ······ 


 若然者 이러한 사람은 


 登高不慄 또 높은 곳을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入水不濡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入火不熱 불에 들어가도 뜨거워 하지 않는다.


 是知之能登假於道者也若此 이는 그 지식이 세속을 초월하여 자연의 도리에 도달 할 수 있었으므로 그런 것이다.”


 이 고사가 말하는 진인(眞人)과 천도가 말하는 무위(無爲, 无爲, 도가의 핵심사상 중 하나)는 그 공통점이 있으니··· 


 인위적으로 그 무엇도 하지 말고 자연이 흘러가는 그대로 두는 것이 세계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청년이 불을 얻으려 할 때 그 스승에게 검은 천뢰를 내리친 신식이 ‘손오공은 대가를 치뤘다’며,


 설령 중생을 위한 행동이더라도 천지의 이치를 건드리는 것이 천지조화의 균형을 깨는 것이라고 했듯···. 




 “하나 그 진인은 ‘옛날’의 진인이고, 그들이 말하는 무위도 그저 방임하는 천도의 유위(有爲)일 뿐이다.”


 무원영 아기 이정민이 그 말을 하자 갑자기 아기 이정민의 얼굴을 한 어린 용, 토원영이 그 옆에 서 같이 입정에 들었다.


 “是醉是醒塵寰別 술에 취한 것인지 깨있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 없다.


 진정한 진인은 함으로 인해(有爲) 하지 않음(无爲)을 실현한다.


 그것이 현재의 진인이고 미래의 진인이다.”


 그 말을 잠시 곱씹던 무원영이 토원영의 마지막 말에 맞춰 다시 입을 벌려 말을 이었다.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물에 들어가 젖을 것이고,


 화마(火魔)에 휩싸이더라도 불에 타지 않으면서 또 뜨거워 할 것이다.


 높은 곳을 올라가지 않는 데도 그 두려움을 몸소 느끼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용감히 나설 것이다!”


 토원영 아기 이정민은 무원영의 말에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이 깨달음의 마지막 문구를 채웠다.


 아니, 정확히는 두 원영이 동시에 마지막 문구를 채웠다.


 토원영도 그이고 무원영도 그이기 때문이다.


 “任我逍遥 임아소요!


 내 마음 가는대로


 모두가 천도의 무위 아래에 놓여져 있는 이 참극에서조차 즐거움을 느끼고, 


 유위로써 중생을 구제함으로 천지조화의 균형을 되찾아 무위를 실현하고,


 가고 싶은 곳 가고, 또 가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해낼 것이다!”



 시작부터 틀린 방향으로 걸었던 그는 지금 이 순간 그 마침표를 찍어 자기가 왜 이 길을 걷는지 완전히 깨달았다.


 옛날의 관점으로 쳐다보기에, 천도가 보는 그가 틀렸던 것이다.


 현재, 미래의 유일한 참 진인이 모든 이치를 손에 쥐는 날, 청년의 길은 비로소 남들이 보기에 옳게 되는 것이다. 


 약초밭 일월이 빛에 휩싸였다.


 순간적으로 일월(日月) 그 자체보다 찬란한 광휘를 내뿜은 두 빛은 바로 후광들이었다.


 하나는 무원영의 아기 이정민, 하나는 사람 얼굴의 어린 용의 머리 뒤편에 비치는 빛.


 약초밭 일월에 있는 생장 속도는 일주가 더 빨라지지 않았는데도 더 속도가 붙었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찾아온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바뀌는 계절의 역동성을 바라보며 한동안 감상에 잠겼다.





 “본 진군이 어제 원영 후기에 들었는데, 하늘이 무심하지 않아 본원 원영이 후광을 얻었습니다.”


 “이는 미약한 참오라도 나누라는 하늘의 보은이니, 은하 내에서 가장 큰 자리를 마련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이 깨달음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천맹 내 모든 전송진과 시험 운행중인 반지계의 복원된 초공간 기술을 이용해 범인, 수도자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들은 옛날 청년이 처음으로 원영 후광을 얻었을 때처럼 누구는 기도를 하고, 누구는 입정에 들고, 누구는 시험공부 같은 편익을 위해 모였다.


 그 수가 수천 배 늘었을 뿐, 그때처럼 일부 연기기 수사들이 천겁 없이 축기에 성공한 것마저도 똑같았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단 하나 있으니, 아무리 우둔한 자라도 그가 본명신령을 얻었을 때 경험했던 소요의 편린을 다 같이 느꼈다는 것이었다.


 생애 진정한 자유를 맛본 적 없는 자들이 느끼는 첫 소요이기에, 세상에 또 그렇게 편안함을 주는 게 따로 없었다.


작가의말

나머지 1화는 정규 업로드 시간에 올라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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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02. 수신(水神) 사한(司寒) 현명(玄冥)에 맞서다 (1) 23.10.02 194 5 14쪽
102 101. 사람의 얼굴을 하고 용 두 마리를 밟는 새 (2) 23.10.01 211 6 14쪽
101 100. 사람의 얼굴을 하고 용 두 마리를 밟는 새 (1) 23.10.01 245 7 13쪽
100 99. 상고(上古) 약원(藥園) (2), 을목지기(乙木之氣) 23.09.30 237 5 15쪽
99 98. 상고(上古) 약원(藥園) (1) 23.09.30 232 6 13쪽
98 97. 성계(聖界) 23.09.29 212 6 12쪽
97 96. 신비조직 성림(聖林) 23.09.29 222 7 14쪽
96 95. 여름 모양 목걸이, 천지일월(天地日月) 23.09.28 234 6 13쪽
95 94. 우주제일(宇主第一)수사의 붓질 23.09.28 242 6 13쪽
94 93. 법칙(法則) - 영역(靈域), 창생청제청체(昌生靑帝淸體) 23.09.27 251 8 13쪽
93 92. 도심, 연목구어(道心, 緣木求魚)를 파쇄하다 23.09.27 256 5 12쪽
92 91. 칠칠치 못하구나 23.09.26 252 7 14쪽
91 90. 천도(天道)는 정해졌고 합도(合道)는 무망(无望)하다. 23.09.25 280 10 16쪽
90 89. 하은의 기연과 비밀 +1 23.09.24 304 9 15쪽
89 88. 연꽃 (4),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 23.09.24 298 10 14쪽
88 87. 연꽃 (3), 동방청목 (東方靑木) 23.09.23 283 11 16쪽
87 86. 연꽃 (2), 두 눈의 이상한 힘 23.09.22 297 10 13쪽
86 85. 연꽃 (1) 23.09.21 308 9 15쪽
85 84. 내가 없는 사이에 감히, 영수(靈獸) 혼(䮝) 23.09.21 272 8 12쪽
84 83. 신재월(神在月)에 내리는 봄비 23.09.21 245 8 24쪽
83 82. 유명반도(幽冥半島), 귀도제군(鬼道帝君) 23.09.20 279 9 13쪽
82 81. 신무월(神無月) 23.09.20 292 10 18쪽
81 80. 은하조차도 내겐 동천(洞天), 태행산맥(泰行山脈) 23.09.19 317 8 12쪽
80 79. 감히 수선대능(修仙大能)의 명을 (2) 23.09.18 298 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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