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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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floorman
그림/삽화
3F
작품등록일 :
2024.04.15 12:46
최근연재일 :
2024.09.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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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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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찾아온 손님

DUMMY

시야를 감추던 세찬 눈발이 빼곡한 능선을 따라 산꼭대기 위를 훌쩍 넘어가게 되면서, 일주일 만에 도래한 평온한 오후의 한때를 상록의 숲은 참새들 지저귐 틈 사이에 섞여 정신없이 봄을 맞이하기로 하였다.



"에휴."



간만에 찾아 드신 햇살을 퍽 이나 즐겨보겠다 이야기 하며 남들은 테이블 바깥으로 옮기느라 발바닥 바삐 움직이기를 결정 하였던 이 황금 같은 정오의 오후 시간대에, 외로운 타향살이 소년은 한숨 푹푹 내쉬는 걸 연료 삼아 솜사탕 같은 눈밭 위를 열심히도 헤쳐나가기로 한다.



"눈이 싫다, 눈이 싫어."



툴툴 대는 입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마디 마디의 새하얀 연기들. 이 투명한 숨의 결과들은 현재 한여름의 주인이자 작열하는 붉은 태양께서 이처럼 맑은 하늘의 정중앙에 걸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 비키는 것을 몹시 내켜 하지 않던 추위란 놈이 눈구름 친구 녀석과 함께 손잡고 물러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하얀 양 볼을 거칠게 붙들고 늘어져 최후의 최후까지 이들 열을 가로채어가 세상 주인공들을 향한 끝 없는 질투심을 내비칠 것을 보다 쉽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너도 참 싫다!"



작은 발자국들만 한걸음 한걸음 씩 나타나지고 있는 적막한 낮의 오솔길을 마주하며 숲 전체를 가득 메운 새하얀 물 먼지들을 의식할 때마다 보란 듯 떠오르게 되는 어느 팔자 좋은 규수 집 아가씨를 향해, 코 밑 흐르는 물을 눈 엉킨 소매로 연신 닦아내기를 결정하였던 저택의 유능한 일꾼께서는 그 꽉 차신 속마음을 촘촘한 나무 틈 사이로다가 슬쩍 당나귀 귀 토로 하기로 했다.



"이에티아 님, 이제는 그만 독립해주지 않으시렵니까? 갈 곳이야 정말 많아 보이시는데요?"



일꾼의 주인이 집을 떠난 지 이제 막 두 달이 지나갔을 무렵, 제법 순항 중이라 여기었던 그와 그녀의 오랜 동거 생활은 곧 바닥을 드러내게 생긴 한 아이의 인내심과 동시에 연락이 닿지 못하던 주인을 직접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사춘기 소년의 모험심이 발현하기 시작하면서 배의 방향 키가 서서히 서서히 파국 쪽을 향해 어린 뱃머리를 비틀기 시작하였다.



"당신만 아니라면 내일 당장이라도 이곳을 뜰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적당한 돈, 그리고 소통 가능한 입을 가지게 된 지금의 소년이라면 정든 저택을 떠나 주인 찾는 길에 오르는 것이 그리 불가능한 일 만은 아니게 되었다. 허나, 위의 주장이 실현 가능한 위치에 까지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시해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명제가 그에게는 비단 존재하기로 하였으니...



"고것을 대체 어찌 처리하면 좋담?"



바로 주인이 저택에 버리고 떠난 하얀 짐승 녀석 하나를 그가 떠난 이후에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써, 관리를 이어 나갈 것인가 에 대한 명료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었다.



"분명 싫다 하겠지, 차라리 죽이라 할 것이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재주 많은 원숭이가 고려하기로 한 것은 총 열 손가락 모두 채울 정도로 아주 다양한 경우가 존재하기로 했다. 그중 제일 쉽고 간편하였던 방법이란 그녀, 엘프 이에티아에게 호감을 가진 한심한 마을 주민들로부터 요 짐 덩어리를 냅다 떠넘겨버리는 것.




─ 야, 거지야! 엘프 님은 어디 아픈데는 없으시다냐? 밥은 잘 드시고 계시고?


─ 어이, 얼간이 칸! 너 말고 우리 이에티아 님은 대체 언제 마을로 내려오시는 것이지? 우리 아버지가 그때 마을 축제를 여시겠다 말씀 하시는데 말이야.


─ 꼬맹아, 너 처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 이에티아 양이 드실 것을 좀 골라서 가라. 불쌍한 엘프 님이 못 먹어 탈이라도 나는 날엔 내 네놈 엉덩이를 직접 패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알아듣겠느냐?




"......"



인간 마을에 살고 있다는 유일한 엘프가 타 생명체에 관하여 아주 일말의 호의라도 내비치는, 그런 외견 만큼이나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존재였다 라고 한다면. 여자 아이 하나 쯤 맡긴다는 이번의 임무가 그리 어려운 일 만은 아니게 되었을 것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 생겨나는 엄청난 양의 호감과 무한히 치솟아 가는 중인 그녀를 향한 애정 어린 마음. 눈의 마을 주민 대부분은 그들과 다르게 생긴 어린 소녀의 모습을 마주 하고도 먹고 먹힌다는 생태계 속 일부처럼 의심과 경계를 해보기는 커녕 '이질적인 존재를 무리에서 밀어내야 한다' 라는 동물의 기초적인 본능도 잊은 채 엘프를 자기 친자식처럼 아끼고 감싸려 들기에 노력을 급급하기로 했다.


알 수 없는 사정에서 가족과 떨어지기로 한 그녀 아가씨의 새 버팀목이 되어주겠다 일념 하에 움직이는 이른바 '셋테이아 엘프 지킴이' 들은, 저택 주인이 몇 달 째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는 엄청난 희소식이 들려온 순간부터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본인의 집에 그녀를 모셔가고자 심히 안달이 나게 된다.


때때로 쌓여있는 조바심을 표출하기 위하여 하나의 경쟁 상대로만 여기어 왔던 힘없는 저택 시종의 어깨를 잠시 손 아래 붙잡기로 한 이들 욕심 많은 입은, 크고 작은 모멸들과 함께 서리 새긴 차가운 협박들을 한참 어린 상대에게도 전혀 아끼질 않기로 했다.


덕분에 소년의 머릿속에서는 불쌍한 본인 자신이라면 모를까! 저 위에 살고 계신다는 지독한 짐승 한 마리께서 마을에 내려와 굶어 죽는 일은 절대로 없겠구나 라며, 강력한 믿음들을 마음 속 원한 대신 품기로 한다. 그들 지킴이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한에서는, 놈이 외부의 힘에 의해 다치게 되었다는 어설픈 사건이란 마을 내에선 결코 일어나지 못할 일이라 아이는 완벽한 정의를 내려 보기로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에게 맡겨진다 라는 시대 지식인의 당차버린 계획은 순전히 짐승의 선택에 의해서만 그 운명을 좌지우지 하게 되는 일이었고...




─ 마을 축제? 내가 미쳤다고 거기를 내려가?


─ 날 위해 열어? 하, 웃기네 정말... 내가 언제 열어 달라고 부탁이나 했다라니?


─ 뭐?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왜?


─ 기분이 참 묘해지려고 해. 마치 싫어하는 개구리들이 자꾸만 따라다니게 됐다는 동화 속 요정 여왕 님이 된 것만 같아. 이럴 때 여왕 님께선 그들을 모아 대체 어떻게 하셨더라?


─ 불태워, 죽여버렸던가? 아하, 이제 알겠다! 마을 인간들은 모두 그 개구리들처럼 숯덩이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구나? 응? 그런 것이지?


─ 이런, 대답이 없네? 용건은 이걸로 끝? 참으로 아쉬워라.


─ 그렇다면 이제는, 나가서 마당 눈이나 좀 쓸어보시는 것이 어때? 너의 그 흉측한 얼굴과 오후를 나란히 하기에는 내게 주어진 영원에 가까운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지 않았겠니?


─ 부탁할게요, 지혜로운 칸이시여. 하나 뿐인 나의 소중한 친우님. 당신은 그 누구보다 똑똑한 분이시니, 부디 제 마음을 어서 이해하시고 빨리 이곳으로부터 사라져 주세요.



제발...




그녀를 향한 인간들의 넘쳐 나는 사랑 만큼이나, 엘프는 그들을 이유 없이 싫어하고 지독히 배척 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인간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먹이 사슬 위의 포식자가 그녀, 엘프 였음을 밝혀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녀는 상황이 제시하는 모든 선택에 관하여서 칼자루를 본인 오른손 위에 두는 일로 결과들을 맘 편히 또, 쉬이 조정 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아와 발 밑 인간들을 얕잡아 내려다 본다는 맹수들의 유희를 간식 먹는 일 만큼이나 퍽 즐겨 하기로 했다.



"후..."



엘프가 가진 세상의 유일한 칼자루가 앳된 첫 주인의 손을 떠나 그에게 넘겨져 온다 라는 구원의 날을 조용히 인내하여 보는 것. 어린 소년의 생각에도 그것은 문명이 살아 숨 쉬는 옛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을 기약하여 보는 쪽이 훨씬 더 가망 있다 느껴질 만큼 심히 어리석고 좋지 못한 방향이라 판단이 내려졌다.



"결국 실현 가능한 쪽은 역시 그 방법 뿐인가?"



슬며시 한숨 뱉기로 하는 오늘의 새까만 패배자. 어지간히 아껴두고 싶은 최후의 계획에 대하여 아이는 다시금 고려해 보기를 재차 결심 하기로 한다. 악마의 저주와도 닮아있던 계집을 마을에 두고 떠난다 라는 기적 같은 꿈은 잠시 묻어두기로 하고, 보다 실현 가능한 선택을 이제는 스스로에게 제시할 때가 찾아온 것이다.



"급한 것은 주인님을 찾는 일이지 엘프를 떨쳐내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사소한 것에 너무 매몰되지는 말자. 그녀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그녀를 위해서라면!


참한 주인 님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는 쪽이 새삼 당연하지 않겠냐는 시종의 충성스러운 다짐이 이어지고, 양쪽 불끈 쥔 그의 손 안에서는 드디어 불길을 닮은 작은 의지들이 서서히 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손바닥 속에 붙여지는 이 가련한 의지들을 어떻게든 잊지 않는다고만 한다면, 그 어떤 밤이 앞을 찾더라도 당당한 걸음으로 어둠을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 스스로 만들어낸 이 위대한 불길들을 굳센 하늘의 천사께선 절대 믿어 의심치 않기로 했다.



"우, 아우, 아우 아우~"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짐승과의 참담한 미래를 살짝 엿보았던 것만으로도 희생하는 삶이란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또, 어째서 충성의 표본이 '네 발 걷는 개' 라 세상에 일컬어지게 되었는지를. 아이의 작은 입은 고된 고뇌의 증거로써 늑대를 닮은 울음소리를 목 속에 표방 하기로 한다.


그의 강아지 같은 두 발들이 저택을 향해 깔려지게 된 하얀 고난들을 천천히 곱씹어 보는 것으로 하나하나 꼼꼼히도 즈려 밟아야 했던 힘겨운 순례 길이 도래 하였음을, 벌개진 코와 얼어붙은 속눈썹은 그의 영혼 곁에 단단히 달라 붙어와 떨리는 속마음을 주인 된 자로부터 조용히 웅얼 대기로 하였다.




***




"왜 이렇게 늦었어, 이 멍청아!"



돌아온 소년을 제일 처음 반기는 인물이 엘프 였던 것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렸던 일 만큼이나 매우 타당한 사건의 경위라 할 수 있었으나, 어떠한 이유에서 인지 오늘은 그 모습이란 녀석이 평소와는 제법 모양새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금, 밖에 나와있는 거야?"



방 밖으로는 절대 나오려 하지 않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그것도 맨발로 저택 안을 벗어나 그와 눈을 마주하며 마을의 유일한 녹빛 눈을 한껏 찌푸려 놓기로 했다. 이는 지금까지는 없던 일이 소년의 머리로는 가히 분명하였으며, 침착함을 자랑하기로 했던 그의 마음에 당혹감이 찾아 들기로 한 것은 꽤나 합리적인 일이었다 보탬의 말을 전할 수 있겠다.



"왜냐니? 눈이 있으면 저 안쪽을 한 번 쳐다 봐봐."



좀처럼 현실감을 찾지 못하여 어정쩡 방황하기로 하였던 상대를 향해 하얀 머리 소녀께서는 너무나 한심하다는 양 그녀의 잘 정돈된 미간 사이를 잔뜩 구겨 보이기로 한다. 그리고는 곧 문 안쪽을 향해 짧은 눈짓 두어 번 보내기를 청해, 놈으로부터 저쪽 쳐다볼 것을 감히 권유키로 한다.



"안, 쪽?"



소녀가 가리키는 곳에 서있게 된 것, 그것은 아직은 굳게 닫혀져 있는 고동색 빛바랜 나무 대문. 그 옆을 나란히 줄지어 있는 조그마한 유리 창문을 통하여 칸은 이에티아의 제안에 따라 잠시 집 안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누구?"



아이의 눈에 처음 들어오기로 한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옷차림을 한 채, 중앙 계단 앞을 팔짱 끼고 막아 서기로 했던 어느 이름 모를 청년 남성. 자신의 두 배 쯤 되어 보이는 큰 키를 지닌 저 어른 남성께서는 현재 그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이라 말할 수 있는 뒤로 묶인 푸석한 갈색 머리와 동시에, 허리 춤에서 틈틈이 빛을 발하는 중이신 짧고 뭉툭한 형태의 멋들어진 황동 검집을 유리 창문을 통하여 가감 없이 모습 드러내는 중에 있으셨다.



"이크!"



반짝이는 그의 검집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여 보고자 소년이 창문 가까이로 이마를 더욱 붙이려던 찰 나, 모습을 모두 드러내 버린 아이의 형상은 그만 어른의 흘겨낸 오른쪽 눈에 그물망처럼 지느러미를 걸려들게 되었다.



"......"



그러나 "네 이놈!" 하며 달려들겠지 했던 물고기의 예상과는 달리 끼었던 팔짱조차 풀지 않기로 하는 황동 그물의 주인님께서는 자신을 훔쳐보는 동그란 눈 역시 지긋이 응시 하기를 결정 했던 것으로, 본인은 제재를 위한 행위를 가할 생각 따위가 전혀 없으며 이처럼 한 자세를 계속하여 유지할 것을 물고기에게 보란 듯 예고 전해 놓기로 했다.



"이런!"



이 같은 어른스러운 움직임 속에 모종의 불쾌감에 대해 '아차!' 하고 눈치를 채기로 한 저택 시종, 자신이 지금 큰 실수를 하는 중임을 깨닫고는 서둘러 문 열었던 일로 시작해 손님에 대한 첫 번째 예절을 저택 안에 다시 맞이하기로 한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어서오세요, 여기는 저의 주인 되시는 분이신 베니 님의 공간입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그래, 이제야 좀 제대로 된 사람이 나타나는군?"



다행히 어린 아이의 상대께선 옛적 과오를 부드럽게 용서하여 줄 수 있다는 인정 크게 성장한 착실한 어른이 분명 맞으셨다.



"정말 실례 많았습니다. 잠시 바깥에 용무가 생겨 이처럼 자리를 비우기로 하였답니다. 나리께선 이곳을 어떤 일로 방문하시게 되셨습니까?"


"내 용무는 그저 편지 하나를 이곳에 전달하는 일. 헌데, 이 간단한 일조차 나를 여기서 한 시간 넘게 서있게 만들더군."


"예? 그것은 무슨 말씀이신지?"


"밖에 있는 저 놈 자식 말이다. 도대체 왜 나를 보고도 말 한마디는 커녕 숨어서 힐끗 힐끗 훔쳐보기만 하냐 이 말이야. 젠장, 뉘 집 귀한 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엔 정도라는 것이 있지. 나는 말이다? 혹시 몰라서 최소 열 번 이상은 정문을 두드렸고, 신원과 목적도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 놓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밖에서 저 지랄을 떨어? 당장 내 앞으로 나와라, 이 잡것아! 너에게 예절이란 놈을 내 부모 대신 직접 엉덩이에 가르쳐주마! 오냐 자식도 말이 되는 정도만 했었어야지... 나 참, 어이가 없어 가지고 서는!"



한눈에 보아도 상당히 화가 많이 난 듯한 눈 앞의 남자.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남자는 서슴 없이 아이 앞에서 드러내기로 했다. 상대가 내오는 불쾌한 감정이란 너무나도 정당한 것이기에, 이에 대해 한마디 대꾸도 할 수 없었던 쭈그러진 입은 상대의 화가 풀릴 때 까지 잠시간의 기다림을 인내에 갖기로 한다.


하필 저택에 남아있었다는 이가 인간을 극도로 싫어하는 어린 엘프 였다는 것. 그리고, 그런 그녀가 남자와 마주하기를 꺼려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라는 애처로운 사실은 순전히 저희들만이 가지게 된 특별한 가계 사정이었을 뿐. 이것으로 인해 받았을 어이없는 모욕에 대해서 손님 신분이셨던 그가 편지 전달을 위해 먼 곳까지 방문해 주시기로 한 일은, 화를 참아내야 할 이유가 이 땅 그 어디에도 답을 존재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배 밑에 양손을 붙들어 보기로 하는 저택의 낮은 시종, 재차 사과의 뜻을 전해 남자에게 면목 없는 고개를 숙이기로 했다.



"왜 그대가 사과를 하는가, 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난 그대에게 화가 난 적이 없네."


"하지만 저 역시 나리를 창 너머로 훔쳐보지 않았습니까?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낯선이가 집 안에 들어와 있기로 서니, 창문을 잠깐 훔쳐보는 일이야 그리 잘못된 것이 아니야. 오히려 잘 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 그만큼 상대를 파악하는 일이란 생명에게 있어 꽤나 중요한 임무가 되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 내가 위험한 인물이 아님을 말 한마디 없는 나를 보고도 그대는 한 눈에 알아봐 주었지. 이곳에 사는 착실한 자로서 소명 다하는 이가 맞음을 나 역시 그때 알 수가 있었네. 문 밖의 몹쓸 녀석과는 반대로 그대는 칭찬 받아 마땅할 인재란 말이야."


"제, 제가요?"


"그렇다네. 내 듣기로 그대와 밖에 있는 녀석은 같은 나이라 들었으나, 이리 차이가 심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하였군."


"...나리께선 저희에 대해 알고 오셨습니까?"


"많이 알지는 못해. 이곳을 찾기 위해 마을 어르신께 몇 마디 여쭈어 본 것이 다야. 저택의 주인이 베니라는 이름의 여성이라는 것과 그녀가 현재 두 아이를 이 저택에서 기르는 중이라는 것. 그 중 하나는 독특한 검은 머리 남자 아이이며 다른 하나는 더 독특한 하얀 머리 엘프 소녀라는 것이 내가 들은 너희의 전부다. 덧붙여 저 망할 꼬맹이에 대한 마르지 않는 칭찬의 샘을 나는 잠시 나마 엿들을 수가 있었지. 이제 보니 죄다 거짓 투성이었군 그래? 하여튼 간, 그대의 주인께서 부재중이라는 사실은 나 역시 알고 있네. 다만, 이 편지라는 것이 꼭 베니 라는 분께 직접 전달 해야 할 필요는 없어서 말이야."


"직접 받지 않아도 된다 라 말씀 하심은?"


"아, 이 편지에는 수신인이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거든. 적힌 것은 오직 편지의 행선지, 그리고 내 느낌에 그건 이곳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는 내 조모 되시는 분께서 자신의 은인으로부터 맡아두었다는 60년 넘게 된 물건으로,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이제는 알아보지도 못할 잃어버린 문자로만 내용이 죄다 쓰여져 있다. 그 망할 노친네가 나에게 요놈을 떠넘기고 세상을 하직 하시는 바람에 편지를 해석하는 일에만 꼬박 10년이 걸려 버렸지. 드디어 오늘, 그 일의 종착지를 나는 찾아오기로 한 것이었다."


"네? 10년 씩이나요? 왜요?"


"그야, 고대 문자를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전혀 없게 되었으니까 말이지. 이것도 대륙 전체를 돌아다니며 모은 단서들로 대신전의 책과 겨우겨우 비교해 가면서 알아낸 거라고."


"그럴리가, 보세요! 『눈의 마을 가장 높은 곳으로』 라고, 엄청 알기 쉽게 적혀져 있잖아요."


"......"


"아니에요?"


"이게, 그런 뜻이냐?"


"아니, 나리께선 지금까지 이걸 뭐라고 여기셨는데요?"


"눈, 마을, 높다."


"그렇게 단어로만? 10년을 찾아 헤맸는데도?"


"......"


"......"



방금 전 일어난 해프닝으로 인하여 당황하게 된 쪽은 소년과 남성, 양측 모두라 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이곳에 나타난 지 채 1년도 걸리지 않는 시간 속에서 알게 된 편지 속 '고대 문자' 에 대하여 10년 넘게 부정확한 해석을 하기로 했다는 남자의 말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자꾸만 속으로 의아해 하였고, 유언을 지키기 위한다는 일념 하에 상당히 오랜 기간을 몰두하기로 하였던 손자의 효심은 자신의 청춘 대부분을 받쳐낸 열정에 대한 해석이 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 속에 슥 해내어 지고 말았다는 불세출 천재를 눈 앞에 두곤 허탈과 좌절감에 빠져들어 스스로의 인생을 잠시 부정 당해야만 했다.



"이런 젠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이봐, 너! 도대체 어떻게 이걸 읽을 수 있는 것이냐! 이건 역사를 꿰차고 있다는 신관들 조차도 몇 못 알아 보는, 완전히 미쳐버린 놈이었다고! 그런데 이걸, 대체 어떻게!"



절벽 끝까지 몰려 까치발로 겨우 버텨내기로 하는 남자의 우매함. 최후의 발악으로써 그는 잔뜩 소리 치는 것을 쉽게 택하기로 한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그저 제 주인님께 배웠을 뿐이에요."


"배웠다고? 이걸? 자, 그렇다면 여기 안쪽을 한 번 읽어 봐봐! 이건 지금 뭐라고 적혀있지?"


"당사자도 아닌데 편지를 이렇게 막 열어봐도 되는 것일까요?"


"지금 그게 문제야? 자, 어서 읽어보라고! 어서!"



점점 커지는 숨소리와 동시에 한껏 벌어져 가기로 하는 상대의 시뻘건 눈동자. 처음의 점잖은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덥수룩한 수염 만이 남아 씩씩 대는 추한 흥분에게서 어른의 등을 점점 땀으로 얼룩져 지게 만들었다.


그 불순함을 가까이 마주하기로 한 이 땅의 어리고 맑은 총기. 투명함과 순수함을 이야기하던 소년의 어린 눈동자는 이물에 대한 면역 반응을 일으켜 당장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 적 일이라 판단, 재빨리 고개를 끄덕여 보는 것으로 거짓 순종을 행함에 따라 지저분한 땀에게서 몸만 복종하여 볼 것을 지혜는 즉석에서 꾀를 내비치기로 한다.



"좋아, 천천히 읽어봐."


"음, 그러니까..."




구름이 머무는 땅으로 저를 찾아 와주세요.


그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두 아이...




"구름이 머무는 땅? 거긴 왜 오라고 하는 것이지? 그리고, 마지막은 대체 뭐라 적혀져 있는 것이냐?"


"......"


"왜 아무런 대답이 없어? 응? 못 알아보는 글자라도 나온 게냐?"


"칸."


"뭐? 감?"


"칸, 그리고 이에티아 에게..."


"칸? 그리고 이에티아?"


"......"


"잠깐만, 그 이름은 분명... 너 방금 제대로 읽은 것이 맞아?"


"아마도, 요?"



전해 받게 된 편지의 내용. 그 마지막 줄을 접하게 된 남자와 소년은 한동안 서로를 아무 말 없이 쳐다 보아야 했다.



"봐라, 꼬맹아. 그건 네가 생각해봐도 많이 이상하지 않니?"


"예, 맞아요. 무척이나 이상해요. 그래도 이 안에는 분명 그리 적혀져 있어요."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빛에 따로 거짓이 섞여 있지는 않았다. 때문에 황당함을 표해야 마땅했던 그의 입이란 최종적으로 이런 답을 둘 사이에 내놓기로 한다.



"아가야, 이건 우리 할머니가 60년도 전에 받아 본 편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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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검의 회고록 6 24.09.14 3 0 26쪽
22 검의 회고록 5 24.09.07 4 0 29쪽
21 검의 회고록 4 24.08.31 7 0 26쪽
20 검의 회고록 3 24.08.24 8 0 25쪽
19 검의 회고록 2 24.08.17 8 0 24쪽
18 검의 회고록 1 24.08.10 11 0 24쪽
17 시작된 심판 24.08.03 9 0 25쪽
16 묘한 제안 24.07.27 8 0 34쪽
15 흔들리는 저울 24.07.20 7 0 24쪽
14 얼굴에서 드러나는 진실 24.07.13 7 0 22쪽
13 자매를 찾은 두 번의 패배 24.07.06 5 0 26쪽
12 완벽함의 투우사 24.06.29 8 0 25쪽
11 똑 같은 후회, 색 다른 결과 24.06.22 7 0 24쪽
10 닮아 있는 앙숙 24.06.15 10 0 27쪽
9 산군의 약속 24.06.08 9 0 26쪽
8 어린 신부와 어설픈 신관 24.06.01 9 0 26쪽
7 가짜 부부 24.05.25 8 0 26쪽
6 붉은 갈기 24.05.18 10 0 25쪽
5 산뜻한 시작 24.05.11 12 0 22쪽
4 계약은 천천히 24.05.04 10 0 23쪽
3 편지의 뿌리를 찾아서 24.04.27 9 0 28쪽
» 찾아온 손님 24.04.20 10 0 22쪽
1 남아서 집을 지키는 것 24.04.15 20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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