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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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floorman
그림/삽화
3F
작품등록일 :
2024.04.1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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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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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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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산군의 약속

DUMMY

"왜!"



개전을 알려오는 일고의 신호 소리.


동시에, 내딛는 발에 먼저 힘을 주기로 한 것은 좌측 파란 진영에서 거침 없이 뛰쳐나오기를 결심한 푸른 물결 위 날램의 돌고래 장수.



"왜 당신이 이곳에 있습니까? 저는 '최남단' 이라 분명히 말을 전해 드렸을 터인데요? 당신 설마! 그녀를 찾아 나서겠다, 제게 거짓을 고하기라도 한 것입니까?"



조금 전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진 파고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 여장수의 카랑카랑한 악음은, 순한 양과도 같았던 그녀의 울음소리가 더이상 샘과 같이 흐르지는 않겠음을 굳은 평화의 땅 위에 날카로이 전쟁을 수놓기로 했다.



"바른 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신의 사자가 거짓을 가까이 해야 할 이유 따위, 세상 전부를 뒤져내도 절대로 찾지 못할 테니까요!"



숱한 농민들의 곡소리와 함께 달려드는 대 전쟁 시대의 서막. 주변의 억눌린 심장들을 향하여서 서서히 위기감을 자극해 오는 청파 장군의 강인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깃 아래서도 충만히 차오르는 중이신 그녀 손 아래의 첨예한 갈래 창, 이른바 난투의 극.


일방적인 고양감을 그녀, 바다 측의 맹장으로부터 심장 박동 사이에 틈틈이 두려움을 쌓아 올릴 수 밖에 없었던 얼떨떨한 소국의 난색 어린 군민들은 모여있는 열 마디 손가락을 원치 않게 일으켜 세우는 일로 나랏 님이 만드신 전쟁에 대한 억지 의지를 조금이나마 목구멍 속에 짜 비추어야만 했다.



"누가 이렇게 떽떽거리나 했더니만 그 여자의 예쁜이었잖아? 그리고,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어? 예쁜이가 일러주었던 대로 난 이곳에 왔잖아. 옆에 있는 이 하얀 녀석을 찾으러 그 최... 머시기인가 하는 곳까지 말이야."



청 장군의 위협적인 극에 맞서기 위하여 붉은 진영으로부터 그림자를 드리워 내기로 한 이는 이제 불타는 적국의 위대한 용장, 커다란 키가 돋보이는 핏빛 이빨의 맹수. 하얀 종마를 한 손에 위풍당당 이끌며 전장 중심에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던 백전노장의 그녀가 대조적으로 타올랐던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푸른 호숫 결 위에 당당히 공포하여 놓기로 하였다.



"최남단 이라고, 최, 남, 단! 아래쪽에서 없는 것을 열심히 찾아 헤매고 있었어야 할 당신이 도대체 왜 이곳에 있는 것이냔 말이야!"


"그래, 그래. 그러니까 네 말대로 '최' 로 왔잖아 '최' 로! 최고 할 때 그 최가 아니야? 제일 높다는 뜻이잖아."


"내 말은 지도 상 제일 아래에 있는 곳이었다고. 여기랑 정 반대잖아, 이 멍청한 여자야!"


"엉? 그랬냐?"


"아니, 이 여자가 진짜!"



이제 막 두 합.


거대한 존재끼리 서로 맞붙기를 약속 하였던 최초의 쟁의 역사란 비단 이 두 합을 끝으로 그 마지막을 머무르지는 않기로 하였으니... 더 긴 기록을 써 내려가기 위한 필사의 휘날림으로써 한 젊은 남성은 후세를 위한 거대한 전투에 속히 자신을 참전키로 빠른 희망을 하게 되었다.



"하! 보아하니 그토록 거룩하신 우리의 바다께서 그분의 빛나는 지혜를 잠시 자녀 분께 내려주기로 하셨나 보군? 그 얄팍한 수가 오늘날 어찌 통하게 되었는지를 제 눈으로 똑똑히 확인 하였나이다, 나의 태양이시여!"



지금까지 보여준 여유와는 꽤나 상반되는 태도로 나이테가 많이 둘러진 어른 나무에겐 어울리지 못한 꼬인 인사말을, 남자는 처음 만난 어느 여성을 향해 굉장히 퉁명스럽게 비꼼을 전하여 오기로 했다.



"뭐라고? 당신 말 다했어! 이래서 빨간 놈들 하고는 상종을 하면 안됐다니까?"



그에 대한 알맞은 답변으로, 푸른 군단의 수장 님께선 두 진영 사이를 갈라 놓기로 한 청과 적의 짙은 자색 금을 보다 뚜렷이 그들 사이에 선긋기로 한다. 이들이 태극의 조화를 이루어볼 일이란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겠다 라며, 위기 뒤에 이어진 절정의 순간들을 관객은 고조됨과 함께 당장의 비극을 계속해 이야기 하겠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이 못난이 아가씨야! 처음 만난 나와는 달리 내 형제께선 필시 그대와 구면 인 듯 보이는데... 예끼, 이 어린것아! 남 속이는 일이 그리 쉬울 줄만 알았더냐? 어림도 없다, 이년아."


"이년? 이 정신병자가 어딜 감히 년년 거리고 앉아 있어? 당신, 내가 누군 줄 알기나 해?"


"내 앞에 서있는 이가 세상의 제일 낮았던 죄인이면 어떻고 또, 가장 높으신 대신관이면 어떠하랴! 거짓을 뱉는 입은 누구나 똑 닮지를 않았더냐? 잘 들어라, 이 부족한 푸르름아. 너희들의 그 돼먹지도 못한 머리 자랑질이 드디어 제 발을 걸게 되는 날이 찾아왔구나. 최남단? 그따위 난잡함으로 사람 귀를 속이려 들었으니 잘 풀렸을 일 마저 이리 꼬이게 된 것이다. 우리 같은 불을 상대할 적엔 그저 따뜻한 아래로 가라 일렀으면 충분하였을 것을, 참으로 아둔한 자로다!"


"아둔? 최남단 중 아는 것이라곤 최 하나 밖에 없는 가벼운 불씨 놈들이 감히 내게 담겨진 샘의 무게에 대해 깊은 앎을 논해 와? 저 미천한 여자의 대갈통이 텅텅 비어 있는 게, 그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었냐고!"


"끌끌끌! 이래서 뱀 머리는 새 대가리에게 먹힌 다는 옛 말이 있는 것이다, 이 가여운 처자야. 어디 한낱 짐승의 꾀가 볕의 인도를 넘어설 성 싶더냐. 제 아무리 똑똑하다 외쳐본들 너희 강물은 무엇 하나 똑바로 이뤄내지도 못했던 철부지의 딸이 아니던가? 그 멍청한 종이나 쨍쨍 울려 대면서 살아왔으니깐 말이지."


"캭!"



사악.



갈라진 혀 사이로 나타나는 스산한 비명을 목에 질러본 이른바 철부지의 따님께서는 달려들 준비를 마치신 그녀의 방울 눈동자를 일자로 크게 벌어뜨려 삽시간에 이성을 턱 밑에 내려놓기로 했다. 상대를 주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던 노련한 수염 책사의 계책 덕에 우측 붉은 진영에서는 탐색전을 통한 값진 승리의 알을 매우 손쉽게도 그들 바구니 속에 챙겨 가기로 한다.



"멈추세요, 두분! 아이 앞에서 어른끼리 다툼이라니, 이 무슨 부끄러운 일이 다 있답니까?"


"도, 도련님! 하지만 이것은..."


"하지만, 뭐요! 어설픈 변명은 자기 허물만 벗겨 논다는 것을 온전한 물빛께서 설령 모른다 하시지는 않겠지요?"


"윽, 죄송합니다..."


"조일 형님도 마찬가지예요. 이분께서 수행자 신분이다 라는 것을 저보다 먼저 아셨을 것이 분명한데 어찌 이리도 그녀를 박대 하기로 결심 하셨나요? 신전 밖에 나는 행동을 하면 아니된다 라 충고 하였던 것은 분명 형님의 떳떳한 입이 아니셨던가요?"


"......"


"왜 말이 없으세요? 제게 정말 이러실 건가요? 한동안 우리는 형제와 같다 말을 하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냉담히 등을 보이기로 하셨데요?"



뚱함이 잔뜩 올라와 지는 중간 층계의 말간 볼따구니. 그 위로는 진하게 상기되었던 홍조의 띠가 함께 젖어 든 양 눈의 밤이슬들을 호숫가 주위에 슬피 노래하기로 하였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도련님! 그러니 부디 당신의 얼굴에다가 수심을 들여놓지 마시어요. 예? 소관이 진심으로 뉘우치겠습니다. 물론, 저이 몫 까지도요! 제발, 제발 당신의 마음을... 부족한 저로 인해 그 아래로 떨어뜨리지는 마십시요."



다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 무릎을 싹싹 빌어오게 된 쪽은 떨어질랑 말랑하는 물방울에 젖은 심장을 졸여가며 바닷 바닥을 원 없이 등껍질로 기기로 하였던 가여운 새우 여인이라 할 수 있었다.



'오호라.'



그 추한 자태를 확인한 남 책사의 흐뭇한 하관에는 가까운 미래에 비추게 될 스스로의 대운에 대해 다시 한번 큰 웃음 짓기로 한다. 이제 막 접한 승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 그는 호쾌했던 미소를 승전보 대신 본국 파발에 띄워 놓기로 다음 싸움을 결정하였다.


칸 소년. 저 참한 동생 녀석의 용모와 입을, 고풍스러운 저택 문 앞에서 인연이란 이름으로 맞이하게 됐을 무렵부터 놈들을 향해 이이의 빛남을 어찌 써 먹어 볼까 고심을 멈춰 본 적 없던 그의 노련한 꾀다.



'이 신물 나는 파랭이 녀석들!'



조모의 뜻을 이룬다는 명목 하에 하는 수 없이 놈들의 발밑을 찾아가 온몸을 싹싹 빌어야만 했었던 짜증나는 그들 대신전에서는, 고작 몇 단어를 일러준 일 가지고 ─그것도 매우 부정확한 해석의─ 어찌나 파란 년놈들이 득달 같이 모여들어 그리도 잘난척들을 해오셨던지. 과거의 치욕들을 떠올리자면 지금도 이가 바르르 떨려오는 불 신도의 어두운 추억니가 바로 이곳에 있다.


그렇기에, 이리도 힘 넘치는 불꽃을 둘 씩이나 앞에 두면서도 저토록 작은 아이 하나에게서 양 눈을 모두 빼앗겨 안절부절함에 빠지게 되는 바다 여인의 모습이란! 으르릉 소리를 내 향긋한 고기를 목전에 둔 사냥개의 탐욕이 되어버린 것만 같이 사내 놈의 침을 줄줄 흘리게 만드는 일에 가히 제격인 녀석이라 할 수 있었다.



"네 말이 맞다, 아가. 나도 참... 어른 답지 못한 행동을 네게 보이고 말았구나."



가장 지적인 생명체라는 말이 이들을 향해 부끄럽지 않게 느껴지도록 차후 대업을 이루기 위한 일보의 후퇴로써 번뜩이는 눈을 슬쩍 감춰 놓기로 하는 영리함의 짐승 놈. 어렵사리 눌러 담은 본능도 꿋꿋이 이겨내가며 타올라가는 뜨거운 복수심을 남자는 재빨리 인내 주머니 속에 다음을 담아내기로 하였다.



"얼마나 무서웠을고, 끌끌끌."



더하여 남자가, 아이의 형이 특별히 동생을 생각하지 않아 답변을 미루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서둘러 본인의 품 안으로 아우를 끌어 들인 이해심 많은 가슴은 어설픈 할아버지 흉내까지도 내가며 손주 녀석의 보드라운 머리칼을 투박한 손바닥에 어림 달래기로 한다.



"정말로 제 말이 들리는 것이지요? 나를, 이 아우를, 앞으로도 잊지 않으실 것이지요?"


"그럼, 그럼. 사내의 약속은 필히 진중 해야 한다라, 내 네게 의리를 일러 놓지 않았더냐? 이토록 소중한 너를, 내 핏줄 같은 심장 소리를 어찌 쉽게 잊을 수가 있겠어!"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형님! 쭉 저를 잊지 마시어요."



형님 곁에 포옥 안겨 있는 아우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장면을 모셔온 일처럼 훈훈한 기운만을 주위에 넘실거리도록 만들었다.



"익!"



닿아오는 불길에 부글부글 끓는 중이신 물의 심정 하나만을 제외 한다면 이번 쟁의 결과란 태양과 바다의 싸움 치고는 상당히 평화로운 선에서 정리되었다, 결과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물 바닥 아래에 잠잠히 숨어 살던 뻐끔살기 잉어가 기적과 가까운 이날의 이변들을 그의 좁은 비늘 틈 사이에 몰래 끼워 넣는 것으로, 세상은 역사적 한 순간의 기록을 절대 내일에 잃어버리지 않기로 한다.


푸름과 붉음의 충돌. 앙숙처럼 살아온 이들에게 있어서 과거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늘 전선을 향한 오랜 다툼을 더욱 지속해나갈 전망이 구름 곁에는 흰 종이에 번져가는 먹처럼 암운을 뚜렷이 나타나 보였지만, 아이가 쏟아 내리는 비가 충분히 땅을 적셔 놓을 적이면 이처럼 마음 밀린 어느 한 쪽이 먼저 백기를 자청하여 보는 것으로 시름 깊은 장마가 오래 지속 되지는 않겠음을 날씨의 주인에게 고할 수 있게 된 편지 일행의 작은 행운이 되겠다.


아주 좋은 뜻이 담긴 하루였다며 후일로부터 추억 할 수 있게 된 이날의 작은 사건 수첩 하나는 남자들 만의 뻔뻔한 승리로써 평화로이 막을 내려 보기로 한다.




***




"아주 팔자들 한 번 늘어지시는 군?"



배를 빌려 떠나게 된 눈의 마을 엘프는 엎어져 있는 일행 셋의 모습을 보고선 혀 차는 일을 참기가 심히 어려워만 졌다.



"으으..."



사내라는 녀석들은 뭍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서로를 품에 부둥켜 안아오며 한쪽 구석에서 묘한 신음을 생산해 내는 중에 있었고,



"구에에엑!"



느닷없이 튀어나온 파랑파랑한 애벌레 한 마리는 사공이 떡 하니 버텨 서 있는 곳까지 당당히 실자리를 펼쳐 앉아, 껴 안은 뱃머리를 배게 삼아서 물고기 밥 주는 일에 강한 열의를 띄기로 했다.



"봐봐, 당신. 그렇게 뛰어난 힘을 가졌으면서 왜 놈들이 멋대로 날뛰게 내버려 두는 것이야? 목줄은 반드시 주인이 잡아 끌어야 했던 것 아니야?"



불쾌했던 그녀의 심기를, 유일하게 살아 남은 상대를 향하여서 과감히도 드러내 보이기로 한 사춘기 시절의 언짢음이란! 붉은 여자로부터 도전자의 위치에 서있게 되었음을, 어린 엘프의 젊은 육체는 가라앉은 뺨의 붓기와 함께 주어진 고통들을 말끔히 잊어버린 듯 보였다.



"내가 왜 이놈들 목줄을 잡아 끌어? 특별히 개장수가 되어 보이겠다 말한 적은 없었다고?"


"누가 당신더러 이것들을 키워 달래? 적어도 놈들에게 휘둘리지는 말았어야 할 것 아니냔 말이야."


"내가 뭘 휘둘렸다는 거야? 난 이렇게 가만히 누워만 있었잖아."


"가만히 있는 것이 문제지, 가만히 만! 왜 자꾸 가만히 있어? 저 수염 달린 놈이 하자는 것에 그저 알겠다 알겠다, 고개 끄덕이기나 할 줄 알고. 강자가 가지게 될 권위라는 것에 대해 당신은 생각이나 해본 적 없어?"


"무슨 소리인가 싶더니만 차라리 방귀를 뀌지 그러셨어. 원 시덥잖은 말을 자꾸만 해 대는 군."


"억울해서 그래, 억울해서! 내가 당신을 이길 수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 상황을 해이 하게 두진 않았을 것이야. 알간?"


"아휴! 알겠다, 알겠어! 우리 아씨께서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드셨는지 어디 말씀이나 좀 하셔 봐봐. 내 들어는 드릴게."



머리에 이가 끓는 듯한 간지러움을 느낀 물 위의 사자, 그녀 힘의 상징인 갈기가 어깨 위로 부풀어 오를 때까지 뒤통수의 성가심을 초원의 왕은 가만 놔두지 않기로 한다.


다만, 권력의 이모저모를 모두 들 쑤셔 보기로 작심한 모래 결정 크기의 하얀 좀벌레 녀석은 "좋아, 먼저 말하라 했으니 내가 꼭 하고야 말겠어." 라고 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기어코 귓가에 쫑알 거리겠다, 여우보다 더한 섭정을 옥좌에 간섭해 놓기로 했다.



"우선, 힘을 가진 자는 반드시 무리를 이끌어야만 했지 이리 끌려 다녀서는 아니 돼. 밥을 먹자 할 때에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꼭 골라서 먹어야 하고, 어디를 가자 할 때에도 반드시 스스로가 고른 길을 억지로 가야만 하지. 비록 그곳이 가시밭길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그런데도 당신은 모든 것을 약자놈들에게 떠넘기고 있어. 이것은 분명 좋지 못한 일이야."


"보세요, 아씨. 나보다 크다는 호랑이 녀석도 산을 통채로 가지지는 않는 답니다. 놈은 여우 암컷을 친구로 둘 때도 있으며 지 동굴 속에는 쥐새끼도 여럿 키워낸다 하지요. 이것을 당신은 알고나 계십니까?"


"그건 짐승의 상황이고, 우리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이야기이잖아. 우리 엘프 정도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당신의 힘을 나는 인정 해야만 하겠어. 그리고, 내가 당신을 인정한 이상에야 그에 걸 맞는 행동들을 당신은 반드시 내게 행해주어야만 해."


"대체 뭡니까? 그 걸 맞는 행동이라는 놈은?"


"여럿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찮은 이의 뜻을 감히 이뤄주어서는 아니된다 가 가장 첫째가 되겠지. 고것들의 기고만장 해진 코를 내 눈 속에 정녕 담아갈 수는 없겠으니까 말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신경 쓰며 살아가라는 것입니까? 거참, 피곤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려. 그게 어떻게 강자의 삶이라는 것이지요? 제일 능력 없는 놈이 하게 될 일이면 딱 좋겠구만."


"그렇게 하나둘 맡겨 놓다가는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언제 어디서 계략을 꾸며올지 정말 몰라서 그래? 간악한 수에 당하는 것 만큼이나 사자에게 또 치욕스러운 일이 없다고. 그 알량한 포용심 하나 때문에 가졌던 용맹을 죄다 잃어버려야만 하겠어?"


"푸용인지 용용인지, 난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고. 하나 확실히 이르자면 아씨의 고민은 그저 적당히 강했기에 일어났을 뿐 천하산군인 이 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뭐야?"


"그렇잖아, 결국 네 말은 약자에게 빼앗길 것이 두려워 쥐의 사지를 밧줄로 묶어두어야 했다는 말인데... 내게는 참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릴 뿐이란 말이지. 빼앗겼다면 다시 빼앗아오면 될 일. 그게 강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 아니겠어?"


"그래, 말은 참 쉽겠지. 당신이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한 번 빼앗기면 돌이키지 못할 것도 세상엔 존재하게 되는 법이야."


"허, 참으로 고집쟁이 신부 님일세 그려. 해바라기 남편 분도 있는 마당에 뭐가 그리 세상을 못마땅해 하시는지? 집 있고, 남편 있고, 애 있고! 그러면 이 짧은 인생, 대차게 살다 가는 것 아니야?"


"아하, 남편! 그래, 그 개똥 같은 자식 말이지? 부탁인데 그 자식 배를 나처럼 걷어차 기절 시켜서 저 호수 밑 바닥 까지 붙은 숨을 천천히 떨어 뜨려 주면 안될까? 그리만 해준다면 내가 평생을 입닥치고 있어줄게."


"응?"



새 신부의 충격적인 마지막 발언에는 태평함을 쭉 유지 하였던 천하산군 재판장 마저 그녀의 웅대했던 몸을 나무 침대에게서 천천히 일으켜 세울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



부리부리 치켜 떠오는 눈과 꾹 다문 입술. 그것을 통해 방금 전 꺼내온 말이 그저 농담으로 뱉은 말은 아니었음을, 초행길의 재판장이라 할지라도 아주 간단히 결별 망치를 탕탕 내려 칠 수가 있었다. 때문에 "뭐야, 짝사랑이었나? 이러면 괜한 짓을 해 버린 건가?" 라는 고해성사의 말을 조심스럽게 대변한 입은 자기 주인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아주 소박한 뉘우침을 잠시 법정 위에 중얼 대기로 했다.



"어... 일단은 미안하다고 해두지. 딱히 네 남편과 평생을 함께하란 뜻은 아니었어. 남자야, 어디에든 차고 넘치니까 말이야. 그래도 말이다? 널 위해 울어줄 사람이 몇 없다는 사실 정도는 미리 알아두고 살아라. 정말 없다, 세상에 날 좋아한다는 사람. 붙어 있을 때 붙잡아야 하는 것이 때로는 있었다 라고 몇 년 더 살은 선배께서 네게 인생 교훈을 이야기 하마."


"시끄러워,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설교를 떠들어. 난 날 좋아해줄 사람 딱 하나만 있으면 족해. 그 이상은 더 원하지도 않아."


"그렇다면 왜 망설이고 있어, 가서 놈을 가져!"


"없어."


"뭐?"


"없다고, 이미 내가 낄 자리는 그곳에 없게 되었어."


"없으면 만들어. 나이도 어린 녀석이 무슨 고민이 그리 깊어! 힘이 딸리면 지금 내게 말을 해. 당장이라도 힘 쓰는 법을 가르쳐 줄 테니 말이야. 너 정도 주먹이면 막을 태산이 대륙에 몇 없단 말이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힘? 그런 걸로 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당신이 말하지 않았어도 진즉 가져 오고도 남았어. 내가 말했잖아, 몹쓸 수에 당한 사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고. 그 이후라는 녀석은 세상 어디를 찾아가도 자리에 없었단 말이지."


"아이고, 아무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보군."



"나는 쥐요!" 라고 외쳐 보이는 승객들 중 가장 강인 하였던 여성은 넘어가는 머리 뒤로 그녀의 깎지 낀 팔을 거칠게 뉘우며 벌어진 작은 설전으로부터 뛰어난 직감의 명에 따라 작은 꼬리를 말아 올릴 것을, 여자는 급히 도주를 결심 하기로 했다.


한심한 고민 뒤에는 한심한 시간들 만이 따른다.


골이 아픈 일들은 되도록 빗겨가며 살기로 한 하린의 근육이 이토록 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이러한 시간 잡아먹는 괴물들과의 접점을 열심히 손 날로 쳐내 고독한 시간을 혼자서만 꾸려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지켜왔던 유일무이한 원칙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라도 붉은 선장 님은 오늘도 배 밑바닥에서부터의 탄탄한 규율을 서둘러 선상 위에 지켜나가기로 했다.



"흥, 쥐새끼처럼 도망치기는! 결국 당신도 별 볼일 없는 놈들 중 하나 였을 뿐이야. 그렇지?"



숨어버린 두더지에게 쏟아져 내리는 틱틱한 날치들의 가혹한 몸 부딪힘이 갑판 위로 이어지며 그들의 날카로운 날개 검을 원 없이 휘둘러 대기로 한 표독자의 고고한 삿대질은 맹인 쥐의 등 가죽을 뜯어 만든 지도 위에다가 위대한 항로의 표식들을 일말의 사정 없이 칼질로 남겨 두기로 한다.


허나, 이내 적마 갈기 옆에 엉덩이를 깔고 앉기로 한 하얀 엘프의 모습에선 어느새 생겨나게 된 강자들끼리의 유대감이라는 것이 둘의 체온을 아주 공평히도 나무 판자 아래 나눠 갖게 만들고야 말았다.



"무식하게 힘만 세서는, 어디 두고 보라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안에 당신은 반드시 내 앞에 무릎을 꿇고야 말 것이야."


"하이고, 그러십니까? 거 다가올 장래가 아주 기대 됩니다요."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 내가 이기기도 전에 당신이 누군가에게 당해버린다면... 그때의 나는 참으로 곤란해져 버릴 예정이야. 그러니 이 이야기 만큼은 당신에게 꼭 해줄 필요가 있겠어."


"오오, 그것은 과연 무슨 소리랍니까? 내가 당하다니? 누구에게?"


"저기, 뱃머리에 엎어져 있는 저 여자 말이야. 새로 나온 물고기 엄마. 그녀와 당신 사이는 썩 좋아 보이지는 않던데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둘 필요가 있을까? 듣자하니 당신이 곧 상대할 사람은 바로 저 비늘이 엄마와도 꽤 관계가 깊다지?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것이 더 속편 하지 않았겠어? 남쪽에서 나를 찾으라 하였던 것처럼 또다시 몹쓸 수작을 부려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반대로, 이쪽에서 먼저 수를 쓰는 방법 또한 꽤나 괜찮겠지만."


"킥킥! 말씀은 감사하지만 똑똑하신 나으리, 어떤 빛나는 수를 떠올리셨던 간에 저 여자에 한해서는 그러시지 않는 편이 더욱 현명할 것입니다."


"왜? 어째서?"


"그야, 나으리가 말씀 해오는 이가 그녀의 하나 뿐인 애조 였기 때문이지요. 루밀, 고년의 유일한 사랑이란 말이오. 시궁창 쥐처럼 매일 표정을 굳혀 사는 녀석도 그녀의 애조만 마주하면 아침의 나팔꽃처럼 그나마 활짝 피어 오르더이다. 행여, 저를 힘으로 넘기시기 전까지는 루밀이란 자의 분노를 그 마음에 사들이지는 마십시요. 진짜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요."


"루밀이라는 여자가 그리도 두렵나? 한 번 졌다 해서 이기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면 왜 당신은 지금 그녀를 만나 보겠다, 나와 같이 호수를 내려가려는 것이지? 그저 정신 이상자 처럼 패배를 맛보러 갈 뿐?"


"패배를 맛보러 간다라... 과연, 틀린 말은 아니군. 아니, 오히려 맞다 볼 수도 있겠어."


"진심이야? 왜 그렇게 빨리 포기하는 건데? 어차피 인간놈들끼리의 싸움이야.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말이지."


"인간끼리의 싸움? 미안하지만 내가 이길 가능성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아. 이미 말했다시피 난 지러 가는 것일 뿐, 그 이상을 바라며 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까. 상대는 나와 같은 범인이 아니었고 적어도 현재의 나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바로 여자, 루밀이었기 때문이지."


"넘어서는 무엇인가... 왜지? 어떤 이유에서 한 번 만났을 뿐인 상대 때문에 그토록 강한 당신이 이리도 쉽게 깎아 내려지는 것이야?"


"그걸 알았다면 놈을 이길 준비를 마친 후에야 나는 아씨를 만나러 갔겠지요. 동쪽의 마법쟁이들이 부리는 요술처럼 정말 일도 알아챌 수 없는 속임수가 루밀과의 일선에서 판을 벌여다 놓았기에, 방법이 없는 사냥개인 나는 이처럼 새로운 오답을 내놓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토끼를 놓치러 망할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답지 않게 장황하기는. 결국은 또 지겠다는 소리잖아? 두고 봐, 나는 당신과는 달라서 이 뒤섞인 흙탕물 속에서도 마실 물을 보란 듯 건져내 보일 테니까 말이야. 승리는 곧 내 손안에서 진주를 드러낼 것이 분명해."


"큭큭! 아주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좋습니다, 그대가 그리도 확신을 입에 해대시니 쇤네의 기분께서도 어째 마음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 한 것 같습니다. 기대, 그 어설픈 놈의 목을 잠시 나으리께 바칠 참이니 어디 한번 녀석을 마음껏 길들여 보십시요."


"좋아! 그리고, 이 또한 승부라는 것을 당신은 반드시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지면 졌다고, 어른 답게 확실히 선언하는 것이야. 알겠지?"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하하하!"



상쾌한 웃음을 빵빵 터뜨리며 몸을 휙 돌려보기로 한 새빨갛던 여인은 새침하게 등을 기대어 앉은 하얀 아가씨의 여린 허리를 자신의 품 속으로 강하게 끌어 당겨왔다. 주절대기만 하는 사내 놈들과는 달리 이 아씨께서는 분명 자신까지도 움찔하게 만드는 지조 높은 강함이 세찬 태도에서부터 폭포수처럼 용맹함을 알려 왔다.


누가 뭐래도 죽을 때 까지 계속 덤벼 보이겠다!


그 어린 시절, 아직은 맞고 다닐 적의 작은 하린이 터진 눈을 부라려 가며 아비에게 또, 형제들을 향해 끈임 없이 달려들게 만들었던 철 없는 심보 놈이 떠올라, 이제는 혼자만 남게 된 어른 여성의 외로운 코를 간만에 깊은 감상으로 푹 젖어 들게 만들었다.



"헤헤, 우리 아가씨께서 이렇게 까지 말씀을 하시는데 쇤네가 해볼 때 까지는 죽도록 달려볼 참이니 부디 두 눈 똑바로 뜨고 무슨 일이 일어 났었는지를 제게 단단히 일러 주시구려. 혹시 또 모르지요!"




"아가씨 쇠 말뚝이 이렇게 고집스러이 곁을 박히게 되었으니, 내 두 다리 전부가 팔자로 퍼져 나가도 나는 끝까지 일어나 보일 수 있을 것이오. 그대의 뜻대로 산군이 쉽게 승리를 놓지 않겠음을, 자리에서 똑똑히 약속하는 바 이외다. 요 질긴 아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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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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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검의 회고록 6 24.09.14 3 0 26쪽
22 검의 회고록 5 24.09.07 5 0 29쪽
21 검의 회고록 4 24.08.31 7 0 26쪽
20 검의 회고록 3 24.08.24 9 0 25쪽
19 검의 회고록 2 24.08.17 9 0 24쪽
18 검의 회고록 1 24.08.10 11 0 24쪽
17 시작된 심판 24.08.03 10 0 25쪽
16 묘한 제안 24.07.27 9 0 34쪽
15 흔들리는 저울 24.07.20 7 0 24쪽
14 얼굴에서 드러나는 진실 24.07.13 8 0 22쪽
13 자매를 찾은 두 번의 패배 24.07.06 6 0 26쪽
12 완벽함의 투우사 24.06.29 9 0 25쪽
11 똑 같은 후회, 색 다른 결과 24.06.22 8 0 24쪽
10 닮아 있는 앙숙 24.06.15 10 0 27쪽
» 산군의 약속 24.06.08 10 0 26쪽
8 어린 신부와 어설픈 신관 24.06.01 10 0 26쪽
7 가짜 부부 24.05.25 9 0 26쪽
6 붉은 갈기 24.05.18 10 0 25쪽
5 산뜻한 시작 24.05.11 12 0 22쪽
4 계약은 천천히 24.05.04 11 0 23쪽
3 편지의 뿌리를 찾아서 24.04.27 9 0 28쪽
2 찾아온 손님 24.04.20 10 0 22쪽
1 남아서 집을 지키는 것 24.04.15 21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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