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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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floorman
그림/삽화
3F
작품등록일 :
2024.04.15 12:46
최근연재일 :
2024.09.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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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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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가짜 부부

DUMMY

달그락 달그락.


오징어를 닮은 삼각모자 지붕머리 위로 환한 꽃을 달게 된 나이든 마차 바퀴가 한둘레 한둘레 앞을 향해 나아가게 되면서, 옹기종기 모여있던 자루 속 물건들은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방식을 활용해 그들이 가진 각자의 크기 소리들을 주위로부터 시끌벅쩍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



스스로를 '하린' 이라 소개한 붉은 머리카락의 주인. 무엇이 그리도 흥에 겨웠는지 하루 전부터 계속해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의 신이 난 목청은 마을 입구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느 이름 모를 노인 ─짐 나르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아 온─ 의 재산을 나서서 보호 하기라도 하겠다는 양 몇 걸음 마차 앞을 앞서나가 부탁 받은 적도 없는 그의 보물을 지키기 위하여 열심히도 길을 터내는 중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중이라고?"



그녀가 이끄는 무패의 붉은 깃발 호송단, 그 호송단 내에서 갑작스레 고삐 쥐는 역할을 떠맡게 된 황당한 노인의 비좁은 마부석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진풍경이 겨울을 지낸 땅 속 씨앗의 마음처럼 곧 찾아들 봄의 소원들을 한 가득 화폭 위로 그려 내고 있었는데...



"설명은 하겠지만 우선 사과부터 할게. 미안..."



흰색과 검은색, 대조 되는 한 쌍의 작은 원앙새 두 녀석이 방울 만한 머리를 서로에게 맞대어 오며 너무나 보기 좋은 모습으로 포곤히도 그들의 조막만한 바닥 손을 정 가운데 맞잡아 두고 있었다.


수십 년 전부터 그의 것이었던 마차 중앙 자리를 덥석 차지하게 된 이들의 머리 위에는 각각 신랑과 신부를 뜻하는 노랑과 파랑의 화환들이 기쁨처럼 행복을 정수리에 씌우기로 하였으며, 지붕 위에 놓여진 커다란 꽃의 정체를 잠시 밝혀 보자면 한 번도 쓰지 않은 깨끗한 천을 활용하여 만든 네 개의 잎을 지닌 인공적인 녀석으로, 그 뜻은 이제 '영원' 이라! 사람들 사이에서 『백년해로』 를 감히 노래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앙숙처럼 지내던 그와 그녀는 어제 이후, 어린 부부로 거듭난다는 새로운 두 번째 삶을. 밤을 비추는 밝은 보름달의 축복과 함께 새끼와 중지 손가락 사이로 끼어든 두터운 인연의 결실을 보다 깊숙이 서로에게 맞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누가 너더러 사과를 받고 싶대? 그냥 내 질문에나 빨리 대답을 하시지?"



하루를 쫄딱 이부자리에 기절해 있었던 잠꾸러기 그녀. 아리따우신 눈의 마을 신부께서는 인생의 중대사라고도 할 수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정작 그녀의 머릿속엔 이와 관련된 내용이 단 한 장도 서류철 속에 들어있지 않게 되자, 서둘러 그것을 파악 하고자 하는 성급함에 그만 안 그래도 복잡한 꼬마 신랑의 말랑한 옆구리를 왼쪽 팔꿈치로 꾹 강하게 압박해 들고야 말았다.


다만, 그럼에도 맞잡아 둔 새 신부의 하얀 손에서는 평소 습관처럼 상대방을 힘껏 밀어내야만 했던 충성스러운 근육 조직들이 어째서인지 작은 미동조차 보이질 않아오며 갑작스러운 태업에 들어갔음을 주위 시선으로부터 널리 알려 두기로 하였고, 남편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미세한 생각의 틈 조차 그녀의 꼭 다문 손깍지 속에는 갯벌 조개가 입을 다문 것 마냥 손톱 만큼의 벌림 마저 그 좁은 공간을 허락치 않겠다 마음을 정해왔다.



"그전에 우선 몇 가지 확인부터 할게. 몸 상황은 좀 어떠니? 아픈 곳은 더 없고?"



이 사실을 쉬이 눈치챌 수 있었던 그녀의 풋풋한 첫 신랑께서는 달라진 부인의 가장 중요한 것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관심을 챙겨 나가기로 하였고, 반려의 몸 상태 변화에 대하여 진실로 놓친 부분이 없었는지 다시금 꼼꼼한 체크를 한 번 더 실시 하기로 한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기절한 후에 난 도대체 무슨 짓을 당했던 것이지?"


"언제 기절하게 되었는데?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은 뭐였어?"


"마지막? ...모르겠어, 맨 처음 저 여자 발에 걷어 차인 일 말고는 따로 기억이 나질 않아."


"음, 기억을 잃을 정도로 몸이 엄청 아팠었나봐. 이럴 땐 억지로 떠올려 내는 것이 도리어 정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어."


"시끄러워, 말 돌리지 말고 내가 묻는 것에나 똑바로 대답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


"대답이라고 해야... 실컷 맞았다 라고 밖에는 더는 표할 길이 없겠는걸? 애초에 싸움은 네 쪽에서 먼저 걸어왔다며? 그래서 '하린' 씨는 봐주는 일 없이 아주 강하게 혼내줬다, 이야기를 해오고 있어."


"젠장, 이렇게 무지막지한 놈이었을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까드득!



분함을 참지 못한 그녀의 이가 좌우로 세게 갈려 나가며 엘프의 여린 턱은 순간 싫은 소리를 내기로 했다. 마을 내에서 라면 정상 위에 군림하고 있는 설산의 유일한 호랑이가 하얀 머리 그녀는 분명 맞았을 일일지도 모른다.


허나, 이제 만나게 된 붉은 여자의 힘에 비하자면 엘프 이에티아의 존재란 경험 없는 청춘 속의 개구리 중의 개구리. 세상과 인간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던 그녀 자신이었기에, 모든 인간은 한 없이 뒤쳐져 있을 것이라고만 예상했던 편협한 사고의 체계가 이번 패배에서 크게 한 몫 거들게 되었음을 이에티아는 뼈아프게 현실로 인정해야 했다.



"너가 쓰러져 있는 동안 조일과 나는 공터에 도착을 하게 됐어. 그리고는 하린 씨를 말리려던 과정에서 내가 그만 작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우리는 지금 이런 꼴이 되고 만 것이었지."


"그러니까, 그 실수라는 녀석이 대체 무엇이냐고. 네 놈이 과연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나까지 이런 꼴이 되었어야 했냐 이 말이야."


"그건... 하아, 정말 면목 없네."



깍지 낀 부인의 손등 위로 다 자라지도 못한 엄지 손가락을 매만지며 끝끝내 경사에는 어울리지 못할 한숨들을 푹 내쉬고야 마는 그의 소심스러운 입. 내기에서 돈을 크게 잃기라도 한 한심한 노름꾼 가장이 된 것처럼 어린 신랑의 새로운 시름은 그의 타들어 가는 속 깊은 곳에 내놓아야만 했던 고백의 시간들을 잠깐이나마 유예해 보기로 한다.



"어디 한번 계속 그런 식으로 나와봐. 내일 이 자리에는 기필코 나 대신 네 녀석을 못난이 인형으로 깊게 쑤셔 박아 줄 터이니."



덕분에 신부의 얕았던 화는 곧장 두 배가 넘는 크기의 화마로 몸집을 부풀리게 되었고, 천륜을 잊어 다음 남편감을 찾아 나서겠다는 중죄인들의 타락함을 그녀 부인은 여신의 축복을 받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 속에 기어코 마음 바깥으로 배덕을 꺼내 놓고야 말았다.



"아이고, 창피해라! 보시오, 젊은 처자. 그대 남편 입으로는 도저히 말을 하기 힘들 것이오니 정녕 오늘 내로 답변을 듣고자 한다면 이 친절한 나그네께서 대신 도와 주리다."



마차 안쪽 천을 열어 젖히며 때마침 등장하기로 한 것은 어린 부부의 인연을 지켜주고자 하늘에서 내려보냄을 받게 된 경험 많은 흙색의 중재인.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위기에 빠진 처자를 구출하기 위하여 유일하게 용에게 덤빈 세상의 용감함이 여신으로부터 하사 받게 된 전리품이가 바로 저 머리 위의 증표요, 맞잡은 그대들의 손이 뜻하는 바는 이제 치열한 전투 끝에 취할 수 있었던 한 사나이의 천년치 베필이어라! 제 삼자는 이처럼 만들어진 전설을 뜨겁게 이야기 할 수가 있겠소. 킥킥킥!"


"뭐?"



어린 신부께선 당최 알아듣지도 못할 천상의 말들을, 잔뜩 읊어가며 키득 거리기 만을 반복할 뿐이었던 못난 중재인의 손은 젊은 신랑의 검은 머리가 헝클어져 돌아오지 못할 만큼 그녀 남편의 차분한 머리를 세차게 휘저어 놓기로 했다.



"개소리 말고 바른 대로 대답해! 그 실수란 놈이 대체 뭐야?"


"어이쿠! 너무 큰 소리를 내지는 마시오, 아가씨. 저기 가는 그녀께서 우리 이야기를 듣기라도 하시는 날엔 그땐 정말 큰일이 될 수도 있거든!"



쉿 하는 입 막음과 동시에 오른손 검지는 입술 중앙에, 왼손 검지는 앞서가는 붉은 전사의 등을 향해 가리켜 보는 놈의 차분한 눈빛. 중도를 원한다는 어른의 손짓을 따라 괴물의 눈치를 슬그머니 보기로 하였던 소녀의 떨리는 목소리에선 조용히 잠겨가는 상대의 눈꺼풀을 닮아 최초의 침착함을 되찾아 오는 일에 다시금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조용히 알아 듣기 쉽게 다시 설명해봐."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야. 말 그대로 네 처량한 몸뚱아리가 하린씨에게서 호되게 혹사를 당하고 있을 당시, 귀신의 날카로운 손아귀로부터 너를 핍박에서 구해냈던 사람이 바로 요 녀석이었다 라는 것이지."


"윽!"



팡팡!



정수리 위로 내려쳐 오는 거센 손바닥 압력에 검은 머리 신랑의 입에선 짧은 비명 소리가 끅 하고 새어 나오게 됐다. 그러나, 순식간에 달아오른 그의 낯빛은 어쩐지 거부 의사를 비칠 생각이 딱히 없어 보이기 까지 한다.



"그게 뭐? 뭐가 어쨌다는 것이지?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는데?"


"허허, 그대는 널려있는 동화책 한 권을 쳐다보지 못하였나? 이것은 정말 쉬운 내용이지 않나."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내가 너희 인간들이 펴낸 책 따위를 꼭 머리 속에 외어두며 살아야만 했을까?"


"아이고, 여신님 맙소사!"



상당히 알기 쉽게 풀어 설명했다 자부했던 되새김 선생의 부드러운 인간적 언어. 정말 안타깝게도, 좀 더 직설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에야 그녀의 뾰족한 귀에는 닿지 못하는 실정인 듯 보였다.



"우선 이것을 먼저 물어보마. 그대들에게 혼례란 과연 무엇을 의미 하는가?"


"혼례? 그게 뭔데?"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어흠! 아니지 아니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엘프에게는 짝이 없는 경우도 흔할 수 있구나? 네 말은 곧 그런 뜻이겠지?"


"짝? 아아, 그런 이야기였어? 내가 아이를 가지는 도구로 전락이 되었다. 네 말은 곧 이런 뜻이지?"


"도... 왜 하필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꺼내 쓰는 것이냐! 아이를 가진다는 일은 곧 그녀께 크나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정녕 벌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거든 경솔한 소리를 더는 입 밖에 지껄이지 말거라!"


"조용히 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갑자기 큰소리를 친 담? 그새 본인이 꺼낸 말도 까먹으셨나? 우리네들은 당신네 같은 축복 없이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녀들의 벌 같은 건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 하하하! 이거야 원..."



심히 알콩달콩 했던 분위기 속에 어린 신랑의 짝이 지저분한 악마였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 남자. 새 신부가 가졌던 끔찍한 본성에 대하여 재차 마음을 데이게 된 일로 다시금 상처 입은 자신의 영혼을 조일은 그녀, 악마로부터 감춰내기 위해 필사의 헛웃음을 면 바깥에 애써 비춰 보이기로 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대충은 감이 오네. 하지만 그런 오해를 받았었다 라고 하였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살짝만 들려줬어도 금방 풀 수가 있었을 터. 어째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으셨을까, 우리 신랑님께서는?"



엉터리 중재자와의 대화에서 잃어버린 사건의 실마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길을 찾을 수 있었던 악마 측의 세련된 새댁. 고작 이런 일 따위로 홍당무가 된 짝의 귓볼을 너무나 어이없어라 한 그녀의 가늘어진 속눈썹은 꺼내 놓은 신랑이라는 단어가 심히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후 대응에 관하여서 어떠한 이유로 실패를 겪게 되었는지를 사막 모래 폭풍보다 건조하게 그를 향해 몰아쳐 왔다.



"나야 말은 했지, 우린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하린 씨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는걸."


"여기서 말을 듣고 안 듣고가 어디 있담? 남의 관계를 삼자인 제가 정하기라도 하겠다는 말이야?"


"응."


"하, 어이가 없네 정말! 왜? 왜 꼭 그렇게 하셔야만 하시겠대?"


"그녀는 자신이 본 것만 믿겠다며 이런 식으로 말을 해오는 거야. 강적이 주는 공포에 맞설 용기는 제 짝을 지킬 때 빼고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라나? 그럼에도 정 자기 생각을 돌려놓고 싶은 심상이 들겠다고 한다면 그녀의 두 주먹에 맞서 본인의 무릎을 한번 땅 아래로 꿇게 만들어 보래."


"때려서 의지를 꺾어 보아라? 이게 어디 사람 자식이 낼법한 소리인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냥 짐승 새끼가 아니겠냐고!"


"......"


"뭐? 또 할 말이라도 있어? 해 그러면, 짜증 나게 쳐다보지만 말고! 하여튼 약해 빠진 자식들이 뒤에서 콩깍지나 입에 뜯을 줄 알지, 이 하등 쓸모없는 것들!"



흥!


.


.


.




스스로가 꺼낸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아직은 깨닫지 못한 것 같은 하얀 짐승의 뾰루퉁한 토라짐을, 사내들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여전함의 쓴맛을 억지 속에 꿀꺽 삼켜내야만 했다.



'몹쓸 년.'


'나쁜 기지배.'



이러한 일의 반복이 여행 내내 지속 될 것을 예감한 나약한 지혜들의 팽팽 돌아가는 머리 속에는 속 쓰림에 효능이 있다는 약초를 항시 구비해 놓자는 멋진 습관을 자리에서 가지기로 한다.



"......"



원하는 의지와는 관계없이 돌아가는 세 개의 운명 바퀴 사이에 끼이게 된 오랜 마차의 주인은 여전히 침묵할 것을 계속해서 고수하기로 했다. 귀가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걸 맞는 현명함으로 인하여 방금 겪은 남의 운에 대해 가벼이 입을 올리지 않겠다는 성인들의 삶을 그는 본받기로 한다. 이날 또한 먼 과거의 약속처럼 작은 맹세를 지켜내고자 고독히 살아갈 것을 노인은 넓은 하늘에 좁은 관계를 희망 하기로 하였다.



─ 우하하!



주인의 현명함을 닮은 노새 역시 앞서 신나게 찰랑 대는 붉은 털의 좌우 움직임을 쫓아 누구라 일러줄 필요도 없이 스스로의 길잡이에 삼았던 일로, 남은 여생을 그것과 함께 걸어 나가자 약속을 하기로 한다.


벌어진 양 옆의 커다란 눈동자 속에는 앞선 상대가 비추어 오는 구원의 빛을 잠시라도 놓칠세라, 영물이라고도 불리웠던 그의 비상한 머리가 딱딱한 네 발바닥을 바닥 밑에 굴려 주어진 현실 속에 숙명을 이야기 했다.




***




"춥지? 너희 둘은 이렇게 꽁꽁 몸을 싸매면서 밤을 버텨 나가면 된다. 그게 부부 사랑 이라는 것이지."



연인들의 달콤한 신혼 밤을 노숙으로 보내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던 마음씨 착한 하린. 그녀가 가진 강인한 팔의 힘으로 억센 가죽도 순식간에 원으로 엮어버리며 신랑 신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안락한 보금자리를 하린은 솜씨 좋게 자리에서 만들어 보였다. 그리하여, 얼굴만 빼꼼 내밀게 된 두 남녀의 모습은 마치 포 속에 둘러 쌓인 사이 좋은 쌍둥이 아가들을 주변의 눈으로부터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네, 감사합니다..."



서로에 의해 우겨져 오는 몸. 그로 인해 힘겹게 감사 인사를 전하게 된 신랑의 말간한 얼굴에는 환한 모닥불을 최대한 맞닿았음에도 불구하고 짙은 먹구름 색이 잔뜩 이마 밑에 끼어들게 되었다.



"......"



신부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수심으로써 그녀의 민낯을 한가득 꾸며는 보았으나, 여느 때처럼 편히 불만을 토로해 놓기에는 자신의 상황이 썩 여의치 않았음을 여린 주먹 또한 너무나 잘 알 수가 있었기에. 조용히 눈을 감아보기로 하는 그녀의 높다란 자존심은 갑작스레 찾아온 비좁은 고난의 시간 마저 꿋꿋이 인내켜 보자 굳은 마음을 이곳에 정하게 된다.



"킥킥!"



그 모습을 옆에서 쭉 지켜보던 한 명분의 나몰라라, 힘쎈 여인과 마찬가지로 붉은 눈을 가질 수 있었던 행운아의 입술 처마 끝에는 계속해서 구겨지는 중인 하얀 짐승의 종잇장 같은 얼굴짝을 쳐다본 덕에 사라진 줄만 알았던 맑은 웃음기들이 봄의 제비처럼 완연히도 고향 땅을 방문 하게 된다.



"웃지만 말고 좀 도와주세요. 매번 이렇게 잘 수는 없잖아요!"



형님의 코 밑에 걸리게 된 제비 집을 바라보며 반가움은 커녕 더욱 토라져 버리고 마는 어린 동생의 마음은 핏줄을 향한 아쉬운 심정들을 제비 다리에 묶어 휘리릭 날갯짓에 전해 보기로 한다.



"천재지변이 왜 천재지변이라 불리겠느냐. 인간의 뜻으로는 어찌 해볼 수 없다는 뜻 아니더냐? 적당히 받아들여 볼 것이 제일 현명하게 된 길이겠지."


"언제까지,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건데요? 애초에 우린 어딜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냐구요!"


"내가 듣기로, '방랑자들의 땅' 이 우리의 현 목적지 같더구나. 이 땅의 제일 넓은 호수, 아티마르 호수를 수직으로 건너야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는 곳이지. 너와 나의 여행길이 조금은 돌아가는 형세가 되겠으나 어찌보면 좋게 된 일처럼 나는 보이기도 한단다."


"방랑자들의 땅? 거기는 누가 살길래 그리 부르게 되었을까요? 나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어요?"


"나쁜 사람? 아니지, 아니지. 오히려 훌륭한 분들이 모여 계시는 곳이다. '방랑자' 라 함은 곧 '수행신관' 의 신분이었음을 의미 하거든."


"수행신관 이요? 잘 모르겠어요, 뭐 하시는 분들이세요?"


"오호라, 이건 네 주인님께도 못 들어 본 것이냐? 나름 유명한 이야기 인데 말이다."


"음... 없어요. 신전에 관한 것이라면 저도 조금은 알고 있는데 수행신관이라는 말은 오늘 처음 들어봐요."


"흐흐, 좋다! 간만에 내가 입 자랑을 좀 해보겠구나."



털썩.



의기양양한 표정과 함께 눈이 동그랗게 떠진 동생의 앞에 거만한 자리를 잡아 보는 수염쟁이 입담꾼. "크흠!" 하고 기침을 내뱉는 것으로 나뭇가지 끝을 활용한 간단한 그림 문양을 그는 바닥 위에 그려 넣기 시작했다.



"...이건?"



어느새 초롱초롱 해진 눈으로 바닥을 들여다보는 구경꾼의 거울. 그 안에 비추게 된 것은 원 속에 그려지는 중이던 모종의 새싹 그림이 되시겠다.



"원래는 이것 저것 더 뻗어져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중요한 몇 가지만 일러 주도록 하마. 봐라, 이 문양은 이제 그들 방랑자를 의미 하겠으며 모든 방랑자들은 이것과 닮은 금색의 징표를 각자 자신의 심장 근처에 증표로써 매달고 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가운데 나는 싹은 신전에서 말하는 '살아있음' 즉 '생' 을 이야기 한다. 이 어린 싹은 커서 점점 나무로 자라날 것이오, 연약했던 몸은 점차 단단해져 그 끝은 결국 넓은 원 안을 가득 메울 정도의 무성한 꽃과 잎들이 수도 없이 걸려 나오게 된다는 것이지.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싹이 뜻하는 바는 이제 시작의 의미를 담게 되는 것이겠고 원이 말하는 것은 곧 그들이 바라는 만개 즉, 하나의 성취를 이야기 하게 된단다."


"성취... 요?"


"그래, 성취! 물론, 그가 무엇을 바랄지는 아무도 모르게 된 일이겠지. 세상 모든 씨가 다 나무로 자라는 것이 아닌 일처럼 말이다. 하여, 땅의 신전 역사상 가장 높게 평가 받고 있는 한 수행신관께선 그녀가 진정 바라고자 하는 바를 찾기 위해 잠시 동안 신의 곁을 떠나 방랑하는 삶을 택하기로 하였단다. 최초의 떠돌이가 되기로 그녀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지."


"하지만 그분은 신전의 신관님... 이잖아요? 무엇이 자신을 위한 삶인 지는 이미 정해둔 것이 아니었나요? 혹, 강제로 신관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는 없지."


"그렇다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일 같아 보이는데 왜 굳이 돌아가는 선택을 그녀는 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시키는 대로만 사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보지. 자신의 신에 대한 충의를 진실로 증명 해보고 싶다 같은 참된 의지처럼 말이야. 모든 것이 소문 뿐이라 정해진 진실은 나 또한 모르겠다만 신을 모신다는 것은 대부분 그러한 것 아니겠느냐?"


"음, 뭐 형님의 말대로 그들의 삶이란 것이 대체로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겠지요. 게다가 무리를 이룰 정도가 현재는 되어 있다고 하니, 그녀와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수행신관들 중에서도 제법 있으셨나 봐요?"


"맞다. 그녀를 존경하던 다른 수행신관들 또한 같이 신분을 내려 두기로 하면서 선구자의 수행에 동참하게 된 것이 바로 오늘날의 방랑자들 인 셈이지."


"그런데요, 형님. 수행신관들이 그렇게 하나 둘 다 떠나가 버리면 신전에 남아 계신 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만 했을까요? 신전은 그대로, 그들을 쉽게 내어주고야 말았어요?"


"전하여 듣기를 방랑하는 삶에 그들은 오히려 적극 권장하는 중이라 한다. 신의 곁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기도 했고 무엇보다 수행신관의 성장에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어주고 있는 형편이라고 해."


"나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자라날 수 있다 해도 말인가요?"


"대신관께서 그들에게 직접 이르시기를, 무엇이 되었든 하나의 성취를 이룩하려 노력하라 라는 말을 전하였다고 한다. 이 징표 또한 신전에서 직접 본을 떠 그들에게 내어 준 것이라 하지. 젊은 신관들의 선한 의지를 그들은 한 없이 신뢰하고 있는 것이란다."


"와, 엄청 멋있는 분들이시네요. 무한히 내려주는 신뢰라니! 그 최초의 방랑자라 하는 분께선 정말 대단한 인물이셨나 봐요?"


"『루밀 아리우드.』 누구나 알아주는 소위 끝내주는 여인이다. 수행신관의 또 다른 이름을 '집행자' 라고도 부른다. 법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힘을 구사할 수 있게 끔 신전으로부터 감히 검을 허락 받은 이란 뜻이지."


"법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둘러요? 그들 집행자는 범법자를 즉결 처형 시키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처형이라니... 너는 애가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냐? 생명을 귀히 여기는 그들은 어지간해선 남을 상처 입히지 않는다. 필히 새겨 두거라."


"네네, 알겠습니다. 그래서요? 그 '루밀 아리우드' 란 분은 집행자로서 뭐가 그리 대단하셨는데요? 뭐가 그렇게 끝내주는 사람이었어요?"


"처음에 말하지 않았느냐, 역사상 가장 높게 평가 받는 수행신관이라고. 그녀를 검으로 뛰어넘는 이는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 하린 씨를 포함하여서도 말이지. 왜 있지 않느냐, 그녀가 이르길 괴물 같은 여자가 하나 있다고. 그것이 바로 루밀 신관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예? 그녀가, 하린 씨를 이겼어요?"



시큰둥하게 말을 흘려내고 있었던 아이의 순진한 눈은 하린이란 말이 튀어 나오기가 무섭게 강한 이채를 불빛에 띄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반응을 줄곧 기다려 왔다는 듯 "와하하!" 하고 웃어 제낀 그의 형님께선 본인이 최고 신관이 되기라도 한 양 두 어깨를 매우 으쓱거려 왔다.



"그래, 그래. 너도 이미 알고 있지? 그 하린 씨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단 하린씨 뿐만이 아니다. 루밀 신관에게 또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은..."



무패의 신관과 관련된 자랑스러운 일화 몇 가지를 조일은 본인의 영웅담인 것처럼 어린 상대방을 향해 줄창 자랑을 늘어 놓기로 했다.



"와, 정말요? 어쩜 그렇대요?"



이에 신혼 밤도 잊은 열정적인 꼬마 신랑은 옆에 신부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희들끼리의 세상에만 빠져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 독신의 기쁨을 양껏 누리기로 한다.



"...야."



들썩대며 촐랑이는 하찮은 움직임에 자신의 긴 수염을 도저히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곤히 잠든 월하의 사자. 주변의 짙은 어둠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차가운 분노로 몸을 감싼 냉기의 암사자께선 어리석은 여우 놈을 향해 그가 까먹고 있던 한마디 주요한 충고를 넌지시 날려 두기로 한다.



"그렇게 대단하신 여자가 왜 날 만나겠다고 하는 건데? 그건 생각해 봤어?"


"어?"



그녀의 얼음장 같은 말에 가엾은 여우 신랑은 그만 온 몸이 꽁꽁 얼어붙고야 말았다. 동시에 그의 사이좋은 친구, 거친 들판의 코요태 역시 달아나는 네 다리 모두가 여우 꼬리에 엉켜 친구 녀석의 한심한 곁을 나란히 뒹굴게 된다. 그만큼 암사자가 찔러오는 그녀의 발톱이란 상당히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들어와 사내들의 약점을 향해 쉴틈 없는 유효타를 덤벼 들어왔다.



"그렇게 똑똑한 척들은 다하시더니 정작 중요한 것은 안건에도 올리지 못하였나봐? 뭐, 좋아. 어차피 신전, 신전. 그 지루한 말을 자꾸 들춰내는 걸 보니 엄청 고지식하고 재미없는 인간이 그 루밀이란 작자가 분명하겠지. 저 하린이란 괴물은 그 죽은 애벌레처럼 사는 여자와 다시 맞붙고 싶었을 뿐이라 말을 하였으니, 도착한 후에야 우리에게는 더는 관계되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루밀에게 맞서게 되는 사람은 이제 너와 너, 그리고 나. 이렇게 셋만이 되겠네? 왜 맞설 생각부터 하냐 라고 묻는 머저리가 설마 이 자리에 남아 있지는 않겠지? 내가 좋은 일을 해서 신전에 불려갈 인물은 절대로 아니었잖아?"


"어, 음, 그래도 너가 죄를 짓고 살지는 않았지 않겠니? 너무 부정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은데. 조, 조일의 생각은 어때요?"


"응? 어어! 그렇지, 그렇지. 엘프는 특별한 존재니까 그냥 한 번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 제길! 미안하다, 동생아. 이건 나도 도저히 모르겠구나. 그들이 엘프와 만나야만 하는 일이라니? 세상에 그런 일이 대체 어디에 있겠냐고!"


"네? 하지만, 어휴..."



공사가 다망한 영예로운 수행신관들의 대표께서 가벼운 만남을 가지자 엘프와 함께 차를 찾는 일 따위란! 최선을 다해 뇌 속 정보 바다를 모조리 뒤엎어 보아도 문명 세계에서 살다 온 신랑의 머리는 답을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악마.


그녀를 뜻하는 위 단어가 신전에 방문하는 일로 받게 될 심판의 내용이란 세 살 아이도 찾아낼 만큼 너무나 당연한 약속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꾀를 내어 신의 눈을 속여내야만 하는 것이 오늘 밤 여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되겠다.



"아우... 아우..."



이렇듯 밤만 되면 깊어지는 사내들의 고민이란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들의 꾸준한 울음소리를 항시 모방하게 되었고, 서서히 멀어지는 허공의 파동처럼 그들의 의식 속을 점차 잠식해 나가기로 한 밤은 그릇된 빛을 왜곡된 세상에 널리 펼쳐 놓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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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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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검의 회고록 6 24.09.14 3 0 26쪽
22 검의 회고록 5 24.09.07 4 0 29쪽
21 검의 회고록 4 24.08.31 7 0 26쪽
20 검의 회고록 3 24.08.24 8 0 25쪽
19 검의 회고록 2 24.08.17 8 0 24쪽
18 검의 회고록 1 24.08.10 11 0 24쪽
17 시작된 심판 24.08.03 9 0 25쪽
16 묘한 제안 24.07.27 8 0 34쪽
15 흔들리는 저울 24.07.20 7 0 24쪽
14 얼굴에서 드러나는 진실 24.07.13 7 0 22쪽
13 자매를 찾은 두 번의 패배 24.07.06 5 0 26쪽
12 완벽함의 투우사 24.06.29 8 0 25쪽
11 똑 같은 후회, 색 다른 결과 24.06.22 7 0 24쪽
10 닮아 있는 앙숙 24.06.15 10 0 27쪽
9 산군의 약속 24.06.08 9 0 26쪽
8 어린 신부와 어설픈 신관 24.06.01 9 0 26쪽
» 가짜 부부 24.05.25 9 0 26쪽
6 붉은 갈기 24.05.18 10 0 25쪽
5 산뜻한 시작 24.05.11 12 0 22쪽
4 계약은 천천히 24.05.04 10 0 23쪽
3 편지의 뿌리를 찾아서 24.04.27 9 0 28쪽
2 찾아온 손님 24.04.20 10 0 22쪽
1 남아서 집을 지키는 것 24.04.15 20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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