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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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floorman
그림/삽화
3F
작품등록일 :
2024.04.1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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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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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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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뿌리를 찾아서

DUMMY

중간중간 나타나는 갈라진 틈새가 매력적인 긴 다리 나무 식탁, 그 위를 나란히 마주 앉은 옥색과 푸른색의 한손잡이용 컵.


뭉뚝한 분화구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로운 차 내음을 코 속에 두르 덮어본 크고 작은 크기의 개성 넘치는 입술은, 이순간 아주 분주히도 서로의 대화를 주고 받는 중에 있었다.



"자,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고. 알겠지?"


"예, 그렇게 하기로 해요."



사연 많은 턱수염과 찰랑이는 검은 머리, 60년 전 기록된 낡디 낡은 편지의 정체에 대하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한데 모으기로 결심해낸 이들 지식인들은 빠른 결론 도출을 위한 최상의 상호 존중을 이루어 볼 것을 자리에 선언 하기로 하였다.



"일단 나부터. 내 이름은 '조일' 이고 성은 '마르프라'. 문제의 편지를 맡게 된 '올렌 마르프라' 가 나의 조모 되는 분이시며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티마르 호수', 그 남동쪽에 위치한 '떡갈나무 숲 아디프라' 가 나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현재에도 그곳에 모여 살고 있지."


"아디프라 라... 생각보다 엄청 가까운 곳이었네요. 조일의 할머님께선 그녀가 열 살 되시던 해에 얼마 멀지 않은 땅 아디프라에서 처음으로 문제의 편지를 접하게 되셨다. 그리고, 타계하시기 직전까지도 이것을 어지간한 보물보다도 더 소중히 지키려 많은 애를 써오셨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의 그녀께서 언덕에서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칠 뻔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어느 이름 모를 은인께서 나타나 당시의 조모 님을 위기로부터 구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리 정리 하면 맞게 되겠지요?"


"정확히는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할멈은 은인의 청을 들어 편지를 보관키로 정했던 것이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따위 종잇조각... 진작 버리고도 남았을 게다."


"음, 뭐 그건 그런 걸로 하고요. 은인이라는 분께서는 과연 어떤 이유에서 편지를 할머님께 맡기게 되셨을까요? 이것에 대해 조일은 따로 의견이 있으신가요?"


"글쎄다, 이건 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본인 말로는 당신이 너무나 착실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은인께서 한 눈에 알아봐 주셨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나 참, 노인네 말은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렇다고 치부 하기에는 할머님께선 가시는 그날까지도 약속을 지켜내셨잖아요? 적어도 은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라고 우리는 말해볼 수가 있겠어요. 무엇보다 조모께 남겼다는 은인의 말이란 것이 너무나도 의미심장한 것이었습니다. 「너를 가장 많이 닮은 가족에게 편지를 맡겨주어라.」 라니요? 이것은 거의 예언에 가까운 일이 아니었던가요?"



어린 상대의 예언이라는 말에 반응하기로 한 남자의 굵은 눈썹, 순간 이마 위를 그는 꿈틀대기로 했다. 합당한 논리로 이루어진 뾰족한 진실 만을 꺼내기도 바쁜 작금의 시간에서 예언 따위와 같이 상당히 추상적인 단어를 명제에 올려 놓는 기가 막힌 행위란! 현 자리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못한 예복과 같다 여기었던 그의 강직한 네모 검미가 동료를 향해 선보이는 최초의 불쾌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가 예언이라는 것이지? 내가 꺼낸 말 중에 그가 뭘 예견 하였다 라는 이야기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는데?"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잘 한 번 생각해보세요. 편지라는 것은 결국 누군가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렇, 지?"


"결과적으로 이 편지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요?"


"너."


"예, 맞아요. 이 편지는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편지의 주인께선 이것을 먼 과거, 조모 님께 덜컥 맡겨 두기로 하셨지요. 그것은 어째서 라고 조일은 생각하시나요? 당시에는 저, 심지어 조일의 어머님 조차 세상에 있기 전이 분명한 일인데 은인께선 과연 무엇을 아시고서 제게 편지를 보내기로 하신 것이었을까요?"


"......"


"그렇죠? 이상하죠? 비단 사용된 문자 뿐만 아니라 내용 역시 평범한 편지가 아니게 되었어요. 감히 추측하건대 그분이 할머님께 편지를 맡긴 이유는 아마 일종의 조율을 위한 시간 장치가 아니었을까 저는 싶습니다."


"조율? 시간을 맞추기 위한? 네가 태어나 자랄 시간 까지 기다려주기 위해서 그 은인이라는 분은 우리 할멈에게 이 편지를 미리 맡겨둔 것이다? 그 말을 지금 나더러 믿어 달라는 소리냐?"


"단순히 제 추측일 뿐이지만요."


"......"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아디프라 출신의 청년은 평소 습관대로 윗입술을 모아 손 밑에 조물 거리기로 한다. 꽤나 그럴듯한 추측을 내세우는 아이의 동화책 내용 속에는 어른이 느끼기에도 쉽게 지나칠 수 없다는 인상 깊은 구절들이 제법 적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율, 조율이라...'



할멈이 말하는 그 은인이라는 작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핏줄을 어찌 알아내고선 오늘날 편지를 전한다는 그의 뜻을 이토록 이루어 내고 만 것이었을까? 그것도 내용 해석을 위해 손주 녀석이 10년 넘도록 헤맬 것 까지 계산해가면서!



'너를 가장 많이 닮은 가족...'



올렌, 조일을 가장 귀찮게 하던 사람이자 징그럽게도 일을 시켜 대기로 한 성격 고약한 노친네. 여섯이나 되는 믿음직한 아들 · 딸들을 미뤄두고서 어째서 그녀는 한 세대 뒤의 손자 ─그것도 더럽게 말이 통하지 않았던─ , 죽는 날까지 대드는 것이 일상이었던 반항스러운 녀석에게 평생을 중히 보관 하셨다는 고귀한 편지를 감히 맡기겠다 정신 나간 생각을 떠올리게 된 것이었을까?



"......"



손바닥으로 입을 감싼 채 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로 하는 두 세대 밑의 눈동자는 그나마 떠올릴 수 있는 한 가지 길에 답을 도달하기로 한다.



'고집, 인가?'



그녀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봐야 끝까지 떨어지지 않겠다는 이 저주스러운 오기 말고는 더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덕분에 생전 그녀와는 다투기도 정말 많이 다투었으니, 기억나는 추억이라고 해봤자 말싸움 한 것을 제외하고는 더는 떠오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



'망할 노친네가, 이따위 것이나 떠넘기고 말이지.'



그만큼 서로가 물러서지 않는 고집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다른 유순한 가족들에 비해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아 있다는 죽은 여자의 뜻이 그리 틀린 말 만은 아닐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낡은 편지 해석에 10년을 매달릴 정도로 우매하고 독한 녀석이, 말 한마디에 종이 쪼가리를 심장처럼 여길 줄 알았던 아둔한 여인의 핏줄이었다는 것은 오히려 이치에 합당하다 보는 편이 세상의 법칙에는 더 맞아들 일이었다.



"뭐, 좋다 이거야! 편지의 주인이 보는 눈이 좋았다 라는 과거의 일은 네 말이 옳았다 라고 치자고."



오묘한 미소를 띄워 보인 여인의 손자는 대화의 주제를 다시금 예언자 쪽으로 돌려 놓기로 했다. 퍼즐 하나가 풀려나간 지금 이왕이면 수수께끼 전부를 풀어 두고 싶다 라는 것이 남자가 가진 관성적 소망이 되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자는 과연 누구길래 어린 아이 둘에게 심부름을 시키려 드는가' 에 대하여 찾아보는 것. 이것에 관해서 너는 동의를 하겠니?"


"그 점에 대해서 라면 짚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 그래? 그것이 대체 무엇이지?"


"그전에, 조일은 혹시 은인의 생김새에 관해서 할머님께 들어본 적 있으세요?"


"있지, 그것도 아주 많이."


"오호라! 그렇다면 그 특징에 대해서 저도 좀 정보를 여쭐 수 있을까요?"


"문제없지! 일단 더럽게 예쁘다 그랬다."


"뭐, 뭐라구요! 더럽게, 예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놈의 할망구가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해대니 괜히 심술이 나서 말이다. 나보고 그런 처자 하나 못 만나고 대체 어디서 뭣하고 사냐 라는 것이 할멈의 입버릇 중 하나였다. 아무리 위기에서 구해준 사이라고 하지만 같은 여자가 상대방의 미모를 칭송 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지 않았겠니? 그러니 생김새는 분명 적당히 반반한 여자가 아니었나 싶어."


"크, 크흠! 말씀을 좀 가려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반반한 여자라니요! 참으로 듣기 민망합니다."



예언이라는 단어에 민감히 반응 하기로 한 것이 그의 검고 굵다란 검미 였다 라고 한다면, 이번에 등장하기로 한 반반하다 에 손을 번쩍 들어 올린 것은 아이의 눈에 놓여진 가지런한 볏 잎이었다. 열심히 헛기침 해대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중이신 그의 알 수 없는 행동은 소년이 줄곧 예의 바른 모습으로 일관해 왔던 것을 확인한 남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이례적인 일처럼 반응이 느껴져 왔다.



"언제 봤다고 갑자기 놈의 편을 들어? 당시의 놈은 우리 할망구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이젠 이 세상 사람도 아닐 터. 그런데도 내게 알지도 못할 그를 위하여 예의를 차려와 달라?"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는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선 차차 말씀 올리도록 할게요. 하오니, 당장은 그분을 향한 모욕적 언사들을 부디 자중해주시길 바랍니다. 꼭 좀 부탁 드릴게요."


"...그래, 일단 알겠다고 하마. 설령 예의를 차려야 하는 상대가 얼굴도 모르는 지하실 유령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썩 내키지 못하던 제안. 그러나,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던 떡갈나무 숲의 다 자란 청년은 예의 바른 상대의 제안을 쉬이 받아 들이기로 마음을 바꿔왔다. 이러한 그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던 시종의 입가에는 찡긋한 눈 웃음과 함께 싱그러운 미소가 만족스레 띄워져 왔다.



"좋습니다. 아, 할머님께선 혹시 은인의 머리 색이 인상 깊다 말씀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제 생각엔 아마 흔한 머리 색은 아니었다 싶은데요."


"그건 어떻게 알고 묻는 것이냐? 구름 가득한 날의 솔잎을 닮은 머리라고 할멈은 말했었다."


"눈은 저와 같은 잿빛에 키는 조일 보다 살짝 작은 정도 라는 말도 같이 하셨겠지요? 여자 키 중에서는 꽤 큰 편에 속한다는?"


"맞다, 어째 우리 할망구 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다는 말투구나. 너도 예언가 비스무리한 종이더냐?"



의심을 띠기 시작하는 그의 뱀 눈. 그 형태가 완성된 얼굴 위에 가늘어짐을 점점 알려오기로 했다. 눈 앞에 앉아 있는 이가 자신보다 어리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생각에 미친 비늘의 정신은 마주 앉은 상대를 향한 위기 태세를 충분히 갖추기로 해, 그의 깊다란 눈을 서서히 번뜩여 보기로 했다.



"아이고, 저는 예언가가 아니구요. 그 은인이라는 분, 어쩐지 저도 아는 사람 같아서 말이어요. 실제로 만난 적도 있답니다."


"만났다니? 그녀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냐?"


"맞습니다, 그것도 엄청 건강하게요."


"이름은?"


"베니 님이요."


"베니, 베니라. 응? 베니? 잠깐만, 그 이름은 분명..."


"네, 저의 주인 되시는 분의 성함이지요."


"...어째서? 어째서 할멈의 은인이 그녀라고, 너는 확신을 하는 것이지? 지금 네 입으로 자기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하였음을 정녕 모르고 하는 소리더냐?"


"인간이 아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드릴 말씀이 없겠네요. 이에 대해서 저는 문제 삼아 본 적이 없거든요. 다만, 주인님의 겉모습이 은인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다는 사실과 함께 할머님께서 남겼다고 하는 「너를 가장 많이 닮은 가족에게 편지를 맡겨주어라.」 와 같은 오묘한 말들을 제 주인님 역시 즐겨 사용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거!"



툭툭.



편지를 한 손에 펼쳐 보인 아이는 남자를 향해 그것의 얇은 표면을 살포시 두드려 왔다.



"편지? 편지가 갑자기 왜?"


"문자 말이에요, 문자! 조일이 말한 이젠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잃어버린 문자! 제가 누구한테 이걸 배워 냈는지 좀 전에 알려 드렸잖아요?"


"그건,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물론, 세상의 모든 이들을 조일이 만나 뵙지는 못하셨겠지요. 그중에 은인이 존재할 가능성도 없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솔잎을 닮은 머리색을 가졌으며 길쭉한 키가 아주 매력적인 잿빛 눈의 여성께서 잃어버린 문자에 대해 꿰뚫고 있을 가능성이란, 문자를 제게 직접 가르쳐 주신 저의 주인님께서 할머님께 편지를 건네준 장본인이 맞다 라는 가설에 비하여 대체 얼마나 있음 직한 사건이 되어줄 수 있었을까요?"


"사실상 없다고 봐야겠지,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하면서 찾았는데. 아아, 그런 일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아! 내 불쌍한 10년을 걸고 증명 할 수 있다."


"좋습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분명 그대와 같은 후자를 선택 하겠지요. 나이를 먹지 않는다 라는 묘한 특이성이 저희를 헤매게 하고는 있었지만 어떤 생명체를 떠올려 본다면 제법 없을 법한 일은 또 아닐 것입니다."


"어떤, 생명체?"


"조일도 만났습니다. 무려 이곳에서 말이지요."


"만났다고? 아, 그 허연 머리의 망할 자식? 근데 걔가 왜?"


"인간보다 명이 긴 존재에 대해 조일은 들어본 적 없으세요? 그 친구는 그런 녀석이었거든요."


"뭐야,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만 놈은 우리를 닮아 있잖아. 설마, 인간과 짐승 사이에서 간혹 태어난다 라는 비윤리적 행태의 결과로써..."


"아니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구요."

(뭐야, 이사람. 인간과 짐승 사이라니?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길래 그런...)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뭔데 그래! 사내놈이라면 뒤에서 쑥덕거리지 말고 나와서 정정당당히 밝혀라, 정정당당히!"



쾅!



크게 흥분한 주먹쥠이 나무 식탁 위를 쿵하고 강하게 내리쳐 왔다. 심장이 말릴 새도 없이 이루어진 말초 신경의 가학적인 행위에서 정정당당이라는 말 속에 담긴 참된 공정함의 뜻을, 상대방 가슴 근처에 의협으로 세워 놓기 보다야 어설픈 손 밑바닥 만을 바닥으로부터 몹시 울려 대기로 한 남자는 탐욕스러웠던 구걸을 그것 대신 하여 성급히 마음 위에 택하기로 했다. 때문에 동시에 추태를 두 번이나 부리게 된 혈족의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달아오른 남자의 귀만이 도덕이 내린 형벌들을 심장 속에 받아들여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혈관의 열들을 홀로 인내하기로 한다.



"엘프 말이에요, 엘프! 지도 왼쪽 모퉁이 위에 모여 산다는 엘프! 엄청 장수 한다는 생명체로 유명하잖아요."


"엘... 그게 정말 있었다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어? 맙소사,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본 적 없어. 그들은 절대 섬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왜 이런 곳에 엘프가 살게 된 것이지?"


"그건 저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 답해 드릴 수가 없어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조일의 말처럼 섬 밖을 나오지 않는 엘프가 어째서 주인님과 함께 살아가게 되었는가 가 더 맞게 되겠지요. 하얀 녀석의 이름은 편지에도 나와있듯 이에티아 라고 합니다. 고향을 벗어나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그녀 역시 아무런 기억을 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어요."


"기억 못한다는 것은 순 거짓말이 아니었나? 성격이 저 모양이니 마을에서 쫓겨난 것이 누가 봐도 분명한 일인데 말이야. 그럴듯한 변명조차 하지 않고 용케도 살아갈 수 있었군 그래."


"......"


"왜? 내 말이 뭐 틀렸어?"


"아뇨, 맞습니다. 너무 맞는 말이라서 그만..."



소녀를 향한 손님의 너무나도 적대적인 태도에 어린 시종은 그만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일. 엘프를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이방인이자 저주를 피할 수 있는 장소에서 살아왔던 자기 자신 밖에는 없게 되겠다며, 내심 확신을 해가던 찰 나의 어린 마음이 이곳에 있었기에. 조금 전 받게 된 심리적 충격에 대하여선 아이의 마음이란 더더욱 안일한 대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어... 어어..."



그로 인해 찾게 된 것은 잠깐 동안의 언어 상실과 통제를 벗어나 버린 팔들의 해괴한 움직임. 그리고,



"에헤헤..."



처음으로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에 벅차오르는 중이신 승천함의 광대들과 흘러내리는 감정으로 속이 가득 차올라 가게 되는 벌렁이는 두 콧방울, 그들 만이 오직 소년의 얼굴 위를 환한 별처럼 빛을 띠어 놓게 되었다. 숨기는 것에 익숙해진 줄만 알았던 그늘 겹친 그의 작은 이마께서 생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생소함의 남자에게서 가려졌던 손을 얼굴로부터 비켜 나게 된 순간, 키우던 개가 보일법한 꼬리의 친밀감을 어리숙한 이의 마음은 상대의 품을 향하여 온몸 달려들기로 마음을 정해본 것이다.



"얘는 또 왜 이래?"



만들어진 강한 애정을 어찌 처리할 줄 몰라 주체하기 어려워진 십대의 순수한 들끓음은, 이렇듯 굉장히 손쉬운 방법으로써 낯선 어른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 그 소중한 전부를 짧은 시간 속에 기어코 내주고야 말았다. 없는 꼬리만 흔들지 못하였을 뿐 완전히 검은 털뭉치가 되어버린 눈 앞의 조숙한 아이 덕분에, 되려 당황함을 느껴야만 했던 이 날의 젊은 손님은 한동안 두 손 어깨 높이 올린 자세로 강아지의 상태를 가만히 눈으로만 지켜 보아야 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이에티아 걔는 진~짜 별로예요. 어떻게 그걸 단박에 아셨데요?"



허리춤을 꼭 껴안은 채 고개만 살짝 올려다 보이는 까만색 털뭉치. 그가 자신의 주인을 향해 동그란 눈을 빛내 오기로 하며 당신의 지혜에 대해 재차 연유를 캐묻기로 했다.



"그야 녀석이 하는 꼴이 그러니까 그렇지. 아가, 엘프에 대한 욕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으니 일단 이 손을 좀 풀고 말하거라. 슬슬 징그러워 지려고 한다."


"안 돼요, 안 돼! 당신도 저주에 걸리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저주? 무슨 저주?"


"엘프의 저주요! 사람들은 모두 엘프를 좋아하게 되거든요. 그녀가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도 모르면서 본인도 모르게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버리고 만다구요."


"그것이라면 걱정하지 말거라.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도 한 번 쓰레기라고 인식 되는 순간 온전히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단다.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어."


"눈을 속이면요? 빛을 감추면요? 갖은 향신료로 치장하여 눈 웃음 속에 당신을 속이려 들것인데, 조일은 정말이지 그것들을 이겨낼 자신이 있으세요?"


"눈은 속여도 내 영혼은 속이지 못한다. 그리고, 썩은 생선에는 무엇을 뿌려 보아도 그 비릿함을 온전히 치워 놓지는 못해. 난 놈의 어떤 것에도 무릎 꿇지 않을 자신이 있다. 태양을 닮은 내 여신을 걸고 네게 약속을 맹세하도록 하마."


"정말요?"


"그래."

(왜 내가 이런 다짐을 얘한테, 그것도 남자 놈에게 하고 있는 것인지 원...)



대신전 주변에서 지식을 구걸하던 시절, 잃어버린 글자를 열심히 쫓던 과거의 그가 우연히 접하기로 한 꽤나 멋들어진 극단의 로맨틱한 극.


연인을 간절히 바라오던 주인공 남자, 그리고 그의 사랑을 위해 바쳐졌던 달빛 아래의 영혼의 맹세.


본래라면 미래의 아내가 될 여성에게 들려주어야 했던 이 심히 아까운 맹세를 소년은 끝까지 다 듣고 난 후에야 허리 뒤로 낀 깍지 손을 풀어 글썽이는 눈물들과 함께 그의 사랑을 품에서 놓아주기로 했다.



"흠흠."



어색하게 변한 분위기가 너무나 싫었던 극의 주인공께서는 헛기침 두 번을 시작으로 자신의 앞에 서둘러 본론을 이끌어 오기로 했다.



"너가 힘든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이제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저 하자 품이 엘프인 것과 별개로 네 주인이 장수하는 것은 대체 무슨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냐? 할멈 입으로 그녀가 엘프 였다는 소리를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요, 그것은 모르는 일입니다."



검지로 눈가를 살짝 훔치던 그의 작은 연인은 어느새 처음의 이성을 되찾아 온 사람처럼 맑은 빛을 재차 비추고 있었다.



"주인님께선 엘프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까지도 말이지요! 그들과 우리의 생김새는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살짝 튀어나온 귀 정도야 어떻게든 숨기면 그만 아니었겠어요?"


"그래서? 네 주인께선 귀가 뾰족 하기라도 하셨더냐?"


"제가 확인했을 때는 일반적인 사람의 귀였습니다."


"뭐야? 결국 엘프가 아니었다는 소리네?"


"아직 확정 짓기는 일러요? 귀를 숨겨줄 기막힌 방법이야, 훌륭한 녀석이 하나 있었으니까 말이지요."


"훌륭한 녀석? 뭔데, 그게?"


"마법."


"마법?"


"네, 마법. 언젠가 들어봤습니다. 이곳에는 분명 마법이 존재 한다고. 주인님께선 지금까지 마법을 사용해 모두로부터 당신의 귀를 꼭꼭 숨겨왔던 것입니다."


"아가,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지만 말이다? 일단 네 말을 좀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하고자 한다. 우선 첫째, 어째서 너는 그녀가 엘프라 여기게 된 것이지?"


"엘프와 관련된 것을 포함하여 아는 것이 참 많으셨다는 점. 걸어서 다녔다고 말씀 하시기에는 그 장소가 너무 멀고 수 없이 많게 되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에티아가 유일하게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제 주인님이었다는 사실을 저의 근거로 들 수가 있겠네요."


"마지막 내용이 네 근거가 되는 이유는?"


"그녀는 인간을 무척 미워한답니다. 조일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지요. 인간인 당신과 마주하는 것이 그녀는 너무나도 싫은 일이었습니다."


"아아, 그래! 단번에 이해했다. 저 망할 자식은 인간을 탐지해 내는 재주가 있군 그래?"


"그렇죠, 제 아무리 뛰어난 주인님이라 하셔도 엘프의 끔찍한 본능 만큼은 도저히 피해 갈 수 없으셨을 겁니다. 고로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저는 말을 할 수가 있겠어요."


"오호라! 제법 많은 도움이 되는 기능이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하더니만 이런 재주가 또 있었네?"


"생긴 것은 지렁이 쪽에 더 가깝지만요."


"킥킥! 말만 들어도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이 가네. 손발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몸뚱이가 둔해 보인다던가, 아니면 할머니 담요를 두른 것처럼 목이 뭉뚝해졌다던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우히히!"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가려가며 그의 작은 손들은 열심히 아닌 척들을 해보았다. 다만 올라가 계신 양쪽 입꼬리에서는 모처럼의 좋은 기분들을 본 주인 대신 하여 양껏 세상에 표해 보는 중이 되시겠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한 뒷담화의 시간이란 가슴 한 켠에 쌓아둔 것이 많았던 소년에게 있어선 둘도 없는 시간이 되어 주었기에, 이 이상 바랄 것 없는 축복이 되어 그의 영혼을 매우 기쁘게 해주었다. 한 층 밝아진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감정들을 따로 막아낼 이유가 없었던 다자란 턱수염 역시 부드러운 어른의 미소를 선보이며 행복한 아이를 향해 다음 질문을 슬그머니 건네기로 한다.



"자자, 네 주인님이 인간이 아닐 것이다 라는 이야기는 대충 알아 들었으니 이제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너는 왜 그녀가 마법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 평소에 네 주인님이 마법을 즐겨 쓰시던?"


"음, 아쉽게도 마법을 눈 앞에서 목격하진 못하였어요."


"눈 앞에서 보지 못했다 라는 것은 따로 증명 할 방법은 가지고 있다 라는 뜻이더냐?"


"네네! 저희 주인님은 말이지요? 발소리가 거의 없으세요.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눈을 밟을 때마저도 바닥이 꺼지지 않을 정도랍니다? 발자국이 전혀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죠."


"뭐라? 눈 위에 발자국이 남지 않아? 그게 가능한 일이야?"


"저도 처음엔 엄청 신기했어요. 혹시 주인님께선 귀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 까지도 들었다니까요? 그러나 제 주인님의 피부는 물처럼 투명 하지도 또, 얼음처럼 차갑지도 않으신 매우 적절한 체온을 지니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본인의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는 그런 안타까운 어머니가 절대로 아니셨어요. 무엇보다도 매 끼니를 저희와 함께 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녀가 식사를 하셨다는 것만 해도 귀신은 아니었다 라 저는 명확한 답을 드릴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떠올린 것이 바로 이 마법사다? 다시 들으니 제법 그럴 듯 한데?"


"제 말이 정말 맞다니까요? 주인님께서는 분명 '엘프 마법사' 인 것이 분명해요!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들이 모두 가능했겠어요?"


"이제 생각해보니 할멈을 구해주는 이야기도 참 많이 이상했어. 절벽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아이를 힘 없는 여성이 과연 무슨 수로 받아냈었나 싶었는데, 수단이 마법이었다고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 만도 아니야."


"조일 덕에 오늘부로 확정 짓게 되었네요. 제 주인님은 분명 마법을 꿰찬 2000살 가까운 엘..."



─ 정말 멍청한 소리들 하고 앉아 있네.



누구보다도 카랑카랑 했던 목소리, 그것과 함께 흥분으로 가득찬 소년의 주먹을 단칼에 박살 내버리기로 하는 오늘의 진짜 주인공. 하얀 머리의 그녀께서는 잘 차려진 탁자 무대 위를 향하여 자신의 화려한 등장을 속히 이야기 하기로 하셨다.



"저리 좀 비켜줄래? 내 자리는 여기라서 말이야."



천천히 다가와 지는 발소리로 슬며시 식탁 위 뛰어 오르기를 하는 얌전한 암 고양이 한 마리. 두 남자 사이에 본인만의 영역을 떡 하니 잡아 버린 나쁜 버릇의 그녀는 가볍게 두른 천 옷을 과감히 펄럭였던 일로 둘과는 확연히 다른 엘프 만의 존재감을 뻣뻣한 고개 만큼이나 높이 치켜 세워 놓기로 했다.



"뭐야?"


"아... 아아..."



냉소한 반응의 타지 사람과 달리 현지 사람의 얼굴은 금세 경악으로 가득 차게 되, 고양이 털 색 만큼이나 얼굴이 허옇게 질려 나갔다.



"......"



눈알만 살짝 돌려 귀신 같은 모습으로 희뜩히 친구를 내려다보는 엘프의 눈. 침묵 속에 담긴 그것은 분명 귀가 매우 밝았던 그녀가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으며, 소년이 어떤 말로 저 나이든 수염에게 그녀를 소개 하게 되었는지 그 죄에 대해 차후 엄중 책임을 물어올 것을 강력히 예고해 오고 있었다.



"이제야 낯짝 구경을 좀 하시겠네, 요 망할 굼벵이 녀석이!"


"히익!"



막아볼 새도 없어라 튀어나오는 용감한 이의 첫 인삿말, 때문에 죄인이 지녔던 목구멍 속의 짙은 공포가 한 움큼 밖으로 튀어나와야 했다.



"......"


"......"



말 그대로 차가운 분노를 표출 중이신 백색 고양이 눈과 그럼에도 물러설 마음이 전혀 없는 덥수룩한 턱수염. 서로를 향한 맹렬한 열 교환이 자리에 이루어지기로 하면서 자연스레 조성되어 가는 얼음장 같은 분위기란 겁이 가득 오른 소년의 마음을 박제품으로 만드는 일 따위, 땅콩 껍질을 망치로 깨부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추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땀줄기를 아랫 방향으로 흘려 대기로 한 눈치 없는 소년의 등은 자신의 주인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에 한 몫 더해 보기로 한다.



"으으..."



커다란 두 일각 고래의 싸움 이라는 드라마에서 아이가 맡기로 한 사소함의 역할이란 겨울 바다 새우 라는 이름의 아주 자그마한 단역. 그 작은 몸 하나 숨길 곳 없는 차가운 바다를 부유하게 된 여린 새우의 등은 미리 약속한 대로 둘의 거친 싸움 속에 몸을 끼어들어, 사방팔방 등이 찢겨져 나간다는 가혹한 순서를 유유히 운명처럼 받아 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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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검의 회고록 6 24.09.14 3 0 26쪽
22 검의 회고록 5 24.09.07 4 0 29쪽
21 검의 회고록 4 24.08.31 7 0 26쪽
20 검의 회고록 3 24.08.24 8 0 25쪽
19 검의 회고록 2 24.08.17 8 0 24쪽
18 검의 회고록 1 24.08.10 10 0 24쪽
17 시작된 심판 24.08.03 9 0 25쪽
16 묘한 제안 24.07.27 8 0 34쪽
15 흔들리는 저울 24.07.20 6 0 24쪽
14 얼굴에서 드러나는 진실 24.07.13 7 0 22쪽
13 자매를 찾은 두 번의 패배 24.07.06 5 0 26쪽
12 완벽함의 투우사 24.06.29 8 0 25쪽
11 똑 같은 후회, 색 다른 결과 24.06.22 7 0 24쪽
10 닮아 있는 앙숙 24.06.15 10 0 27쪽
9 산군의 약속 24.06.08 9 0 26쪽
8 어린 신부와 어설픈 신관 24.06.01 9 0 26쪽
7 가짜 부부 24.05.25 8 0 26쪽
6 붉은 갈기 24.05.18 10 0 25쪽
5 산뜻한 시작 24.05.11 11 0 22쪽
4 계약은 천천히 24.05.04 10 0 23쪽
» 편지의 뿌리를 찾아서 24.04.27 9 0 28쪽
2 찾아온 손님 24.04.20 9 0 22쪽
1 남아서 집을 지키는 것 24.04.15 19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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