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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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floorman
그림/삽화
3F
작품등록일 :
2024.04.1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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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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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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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붉은 갈기

DUMMY

먼저 길을 나선 성미 급한 귀부인의 뒤를 쫓아 칸과 조일, 두 사람이 열심히 발을 굴려 공터 부근까지 그들의 발자국이 마지막 결승 지점을 향한 최고조에 다다르게 되었을 무렵, 장내는 온통 이미 모여든 구경꾼들이 만들어낸 열기로 후끈 달아 오른 후였다.



"이런!"



축제 때보다 더 빽빽하게 자리 잡은 듯한 군중의 탄탄한 벽, 그것을 코 앞에 마주하며 좋은 자리를 잡기는 글렀구나 라고 뒤늦게 아쉬움을 표해 보는 사내들의 들뜬 마음은 고개를 이곳저곳 기웃 거리는 것으로 적당한 자리라도 찾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기로 한다.



"난 이제 못 보겠어!"



그러던 중 왠 처자 한 명이 벌어지는 참혹함을 더는 견뎌내지 못하여 양 눈을 휙 가리고선 뒤돌아 흐느끼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고, 비슷한 나이 대의 청년 둘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그녀의 부축을 위하겠다 동시에 손을 들고 나서니 상당히 좋은 자리에 위치해있던 세 친구가 한꺼번에 장소를 이탈 한다는 아주 운 좋은 변수가 두 남자 곁을 기어코 찾아오게 됐다.



'옳커니!'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명석한 두 내기꾼들은 섣불리 중심에 나서고 싶지 않아하는 부끄럼쟁이들의 사이를 틈타 좋은 자리를 먼저 선점해 내는 것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성공, 인파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된 행운아의 입에서는 그만 벌어지는 절경 앞에 거짓 없는 감탄 만을 훤히 바깥으로 자아내고야 말았다.



"와..."



내기 상대의 높은 어깨에 얹혀 인간 육체의 벽을 허공 위로 통과하게 된 소년의 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게 된 것은 그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매우 놀라운 경관임이 과연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 이봐, 아가씨. 벌써 끝은 아니겠지? 좀 전의 그 기세는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이야?



적색의 갈기.


호들갑 가득했던 중년 아저씨의 주장만 듣고 적당히 떠올려 냈던 자신의 이 짤막한 단어 하나를 새빨간 불타오름이 허벅지까지 빛나고 있는 낯선 여자의 거대한 태양 마차 모습을 마주한 지금에와서야 아이는 너무나 찰떡 같은 비유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차디찬 눈의 도시 속에서도 소매가 없는 가죽 상의 만을 끝까지 고집하며 호기 넘치는 정신력과 동시에 전신으로 둘러진 것만 같은 짙은 야성미를 가감 없이 뿜어대던 여자. 줄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녀의 강인한 오른 팔뚝은 하얀 털 녀석의 코를 지금처럼 땅 속 깊이 처박아 두기에 가히 충분한 것으로 힘이 여겨져 온다. 무려 한 손만 사용하여 악마를 제압 한다는 멋진 기염을 여인은 군중의 수 많은 눈을 통해 너무나 훌륭히도 증명을 토해내는 중에 있었다.



"대단해..."



덕분에 찰랑이는 붉은 파장으로부터 그의 똘망한 잿빛 눈을 도저히 다른 곳에는 돌려놓을 수 없었던 소년의 미숙한 잠재 의식 속에는 타인을 위해 가질 수 있는 마음 속 공간 한 켠, 그 전부를! 그녀, 붉은 머리카락을 위해 통째로 내어주게 되는 강한 동경의 계기가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기나긴 뿌리를 잔뜩 내려 놓기로 하였다.



─ 이대로 포기하지마, 나를 위해 조금 더 힘을 내란 말이야!



주었던 힘의 압력을 살짝 푸는 것으로 놈의 하얀 뒤통수를 손잡이 삼아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이른바 괴물 같았던 여자. 여전히 한 손만 사용할 것을 고집하던 그녀 괴물은 쓰러진 악마 녀석을 자신의 눈높이 까지 번쩍 집어 들어 어린 상대와의 눈을 과감히 마주 교환하기로 했다.



대롱대롱.



괴물의 아귀에 이끌려 이제는 발 끝이 땅 위보다 높아져 버린 하얀 털의 빛바랜 고개, 어미에게 물려가는 새끼 고양이가 된 것 마냥 힘 없이 축 늘어진 어린 짐승은 태어난 고향을 향해서 그녀의 네 발을 한껏 무너뜨려 온다.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는 무력한 유령 상태가 된 엘프 아가씨 덕에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엇갈려 나타나게 된다.



"맙소사, 신이시여..."



하나는 너무나 앳된 모습의 소녀를 향한 마을 어르신들의 진심 어린 걱정과 안타까움 가득 담긴 사랑의 동정심이었으며,



"핫!"



다른 하나는 본능적으로 터져 나오는 커다란 탄성을 최대한 감추어 보고자 필사의 노력에 들어가기로 작심을 한 열두 살 남자 아이의 인생을 건 마지막 입막음이었다.



'말도 안 돼, 그녀가 졌어?'



도저히 가둘 수 없는 놀라움으로 인하여 벌어지는 해맑음 속의 눈동자. 순수함만 가득했던 그의 작은 구슬 품에는 활 맞은 토끼처럼 늘어져 버린 동거인의 낯선 모습들이 잔뜩 담겨져 여태 느껴보지 못한 심장 박동의 전율을 난생 처음으로 가슴 혈관 틈에 듬뿍 들여놓게 되었다. 이는 자신의 친우를 위협하는 존재를 마주한 일에 대해서 핏물이 고조 되어오는 사내들의 지조 높은 대항심이 아니요, 굳이 따지자면 오랜 기간 괴롭힘 당해온 마을 불량배 녀석을 눈 앞에서 단숨에 제압해버린 이름 모를 협객, 그 찾아온 기연을 맞이하게 된 약자의 선망 쪽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해서, 소년의 올망한 손바닥은 현재 붉은 여인이 여섯 번 좌우 바닥을 향하여 산토끼의 이마를 쿵쿵 내려쳐 올 적마다 마을 처녀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몰아쳐 오는 비명의 숨소리를 손바닥 안 좁은 골짜기 틈 사이에 메아리들로 간신히 묶어두어야만 했다.



─ 커흑...



지저분한 흙 부스러기가 보드라운 뺨과 하얀 머리 사이를 통해 우수수 이삭을 쏟아 내렸다. 인생 첫 마른 고비의 기침을 어린 흰털은 적색 손아귀의 위에서 힘 없이 패배를 토로해 놓았다. 이와 동시에 스스로를 엘프 수호대라 칭하였던 몇몇의 인물들에게서는 "아아..." 하는 절망 어린 탄식과 함께 자리에서 여린 몸을 풀썩 실신하게 된다.



"아이고!"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주위의 마을 사람들. 때문에, 꽤나 흥미롭게 일을 지켜보던 타지 남자의 상관없는 머리 속에도 슬슬 말려야 하지 않겠냐는 중재 여론이 점차 겁 없는 목소리를 세상에 들끓어 오기 시작했다.



"이봐, 곧 네 차례야. 어디 솜씨 한 번 구경 해보자고."



키가 큰 내기꾼 쪽이었던 그가 행사 축제에 푹 빠져버린 작은 내기꾼의 좁다란 등을 툭툭 안쪽으로 떠밀어 내며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오늘의 어린 주역께서는 "아!" 하는 짧은 외침과 함께 이번 무대 중심을 향하여 발걸음을 총총 가볍게 옮겨 나가기로 했다.



"그만, 그만하세요!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지금껏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온 극단의 어린 배우가 드디어 관객들 앞에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소개하는 멋진 데뷔의 순간이 꿈처럼 현실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




"엉? 이건 또 뭐냐?"



자신의 손 안에서 하얀 망아지를 가로채간 검정 강아지의 의미 모를 등장에 빨간 머리카락은 너무 어이가 없던 나머지 그녀의 부산스러운 뒷머리를 벅벅 긁어대야만 했다.


"그만 둬!" 하고 떠들어 대는 것을 보아하니 놈은 분명 쓰러진 망아지를 대신해서 튀어 나온 싸움의 두 번째 참가자. 강적에게 맞서려는 열정적인 둘째 도전자로 그를 경기장 위에 받아들이는 것이 그동안은 옳다고 여기어 왔던 여자의 올 곧은 심판이었다. 그러나,




"하아, 정말 할 맛 안나는 녀석이로군. 누구냐, 넌?"



쬐끄만 녀석을 품에 안고 있는 일 만으로도 다리를 휘청 거리는 검은 녀석의 여리디 여린 모습 속에서 몸집 만한 인형을 가슴 속에 폭 끌어 안고 있는 조막만한 여자아이를 연상시키고 말았던 어머니의 성실한 투지는 모든 의욕을 땅바닥에 내려놓은 채 목동맥에 끓어오른 자식 같은 피들을 서둘러 귀향 길에 오르게 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아이와 같이 살고 있는... 우와앗!"



콰당.



망아지의 무게에 못 이긴 녀석이 결국 소개 말도 끝까지 잇지 못하고는 친구 녀석과 함께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런..."



아직 어린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괴력을 선보이며 자신과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던 좀 전의 드센 아가씨. 그 덕에 조금씩 올려 놓을 수 있었던 여자의 귀한 흥이 일어나는 흙 먼지들과 함께 완전히 소멸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순간이라 할 수 있겠다.



─ 아이고! 저저, 망할 녀석이 진짜!



괴물 여자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탄식들이 구경꾼 곳곳에서부터 봇물처럼 한탄을 터트려 왔다. 본래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녀석이었으나 오늘은 특히나 더 괘씸한 마음이 들었기에, 욕이라도 한 바탕 내뱉어줘야만 했던 그들의 툭 튀어 나온 입은 쓰러진 아이를 향해 강한 야유를 잠시도 멈추지 않아온다.



"야이놈들아, 입 안 다물어? 떠들고 싶으면 앞으로 나와서 떠들으라고 내가 누누히 경고 했지? 누가 거기서 나불대라고 했냐? 어? 죽고 싶어?"



딸꾹.



허나, 이 붉은 재앙으로부터 몸을 피해 놓을 길이 바다 한가운데를 갈라 파이 조각처럼 기적의 땅을 보이지 않는 이상에야 섣불리 마음을 표출할 수도 없었던 것이 바로 이들 구경꾼들의 입장이다.



"아구구, 내 허리..."



그 틈에 천천히 허리를 일으켜본 연약한 강아지께서는,



"헉!"



이번에는 바닥에 앉은 자세 그대로 자신의 친구를 서둘러 품속으로 끌어 들여 놓고서는 곧 방울이 그렁그렁 맺힌 이슬 눈을 치켜 뜨며 여자의 눈을 향해 의미 모를 항변들을 한여름 소나기처럼 쉴새 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그녀를 괴롭혀요? 왜 이 사람을 아프게 하세요?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잘못을 했으면 과연 얼마나 잘못을 했다고... 당신,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어디 사는 누구시길래, 우리 이이에게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엉? 괴롭혀? 내가?"


"그래요, 이렇게 초주검을 만들어 놓고. 설마, 죄가 없다며 내빼실 생각이셨나요?"


"아니, 내가 먼저 시작했어? 난 분명 인사하고 있었는데 저것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내 손가락을 꺾었잖아! 이건... 누가 봐도 한 판 해보자는 뜻 아니야?"


"거짓말 하지 마요, 인사는 무슨 인사! 당신이 사람들에게 말한 거 우리도 다 들을 수 있었어요. 그녀를 잡아가겠다 말을 했다면서요? 그러면서, 어떻게 인사를 권했다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아무튼 방금은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싸움은 이녀석이 먼저 걸어 왔고 난 그걸 받아줬을 뿐. 이게 어떻게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야?"


"당신..."



상대에게는 죄가 없다. 이것은 현명한 시종 또한 어느 정도 예상 하고 있었던 바. 자신의 품에 쓰러져 있는 그녀가 과연 누구인가? 인간 틈에 섞여 사는 최악의 인성 파탄자, 짐승 머리 엘프가 아니던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볼 필요도 없이 엘프 아가씨께 유죄 판결만 땅땅 내려쳐 보아도 9할 9푼이라는 승률을 눈 먼 검사는 쉽게 가져갈 수 있으리라.



"용서할 수 없어요!"



다만, 연출가이자 각본가이기도 했던 그가 오늘 그려보고자 하였던 극의 최종장, 그 높은 경지까지 관객들의 뜬 눈이 기대감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마지막 무대 장치 위를 흥미롭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 여인은 반드시 커다란 악역을 자처해줘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 위대하신 악역이 걷기 위한 넓은 선로를 앞서 깔아주는 것이야 말로 베테랑 배우가 맡았다는 고결한 선역이라, 감독이란 이름의 명장은 가장 큰 중책을 이렇듯 뻔뻔스레 이야기를 해놓겠다.



"흑! 아흑!"



여전히 축 쳐지기만 한 사랑스러운 그이의 작은 어깨. 그것을 꼭 부여 잡아본 어린 부인의 하얀 손등은 하얀 정수리 위에 그녀의 이마를 꼭 맞붙이며 본격적으로 슬픔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보세요... 보세요, 신이시여."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의 질감과 무게를, 나이에 어울리는 탱탱한 피부로 잠시 질량을 파악해보던 그의 사랑. 가장 짙은 무게 감이 실려왔다 느낌이 드는 찰 나의 순간이 오자 노련한 주연 배우께선 관객들을 향해 보란 듯 지조 있는 고개를 높이 치켜 세워왔다.



"아직은, 아직은 어린 사람입니다. 부족한 모습을 보였을 수는 있었으나 이토록 아파야 했던 것은 절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뭐야? 우냐? 사내 새끼 씩이나 된 녀석이 지금 내 앞에서 우는 것이야?"


"사내라고 해서 또, 여인이라고 해서! 슬픔이 지워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왜 이것을, 나보다 오래 사신 당신께서 정녕 모른다 말을 해오십니까?"


"아아, 시끄럽네. 이것이 감히 날 가르치려 들어? 마음에 안 들면 남자답게 그냥 확 덤비란 말이야!"



명 배우가 흘려낸 귀한 감정의 수들이 그저 헛수로 돌아가지 않게. 오늘 처음 호흡을 나눠본 상대 배역은 꽤나 괜찮은 반응들을 찾아오신 손님들께 퍽 의미 있게 나눠주었다.



"여러분, 이곳 셋테이아의 주인들이시여!"



이대로, 이대로 붉은 여인의 역할을 좀 더 깊이 인식 시켜줄 필요성을 느낀 사건의 주역은 그의 넓은 무대 위에 관객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 보기로 한다.



"그녀를 도와주세요! 네? 이에티아를... 제발 이 아이를, 저 악마로부터 지켜낼 수 있게 부디 용기를 나누어 주세요."



─ 저, 저런!



그가 발하는 훌륭한 연기 덕이었을까? 관객석 내부에서는 조금씩 술렁 거리는 움직임이 여럿 포착되어 온다.


이는 분명 소년의 눈물에 감명 받은 인간의 원초적인 인류애. 그의 작은 심장에 동요하면서 나타나게 되는 사람의 감정이란 신이 인간을 설계 하셨다는 오랜 논제의 고결한 증표이자,



─ 저 망할 놈이 지금 뭣 하는 짓이지?



소중한 아가씨와 신나게 몸을 밀착 시키는 중인 지저분한 개자식을 향해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사랑의 적의라 할 수 있겠다.



'안 와? 이래도?'



한껏 껴안은 가녀린 허리를 원 없이 유린해 보는 것으로, 너무나 소중히 길러온 충성스러운 반려견을 마주한 주인처럼 수호단 앞에서 보란 듯 공주님의 뺨을 부비적 대는 흉악한 도적님은 실로 음흉한 미소를 한가득 바깥으로 띄워냈다.



"이 못된 새끼가!"



순간, 타오르는 호승심을 끝내 참지 못한 젊은 수호자 하나가 그의 커다란 발을 서둘러 놈에게 나서 보기로 한다.



"넌 뭐야!"


"히익!"



두 걸음. 단지 두 걸음 나아갔을 뿐이었던 전설적인 남자의 용기는 마을 입구에 불어 닥친 붉은 폭풍을 등 뒤에 직통으로 맞이하였던 것으로, 유일한 동력원을 잃은 채 바닥을 향해 한 없이 젊은 날개를 추락해나갔다. 견디기 힘들었던 그녀의 불경스러운 상황. 그러나, 그보다 더욱 끔찍하게 막고 서있던 것이 바로 눈 앞의 거대한 적색 재앙이었다.


아가씨의 순결을 지키고자 한다면 엘프 수호단들은 이제 자신의 목숨을 담보 삼아 사나운 폭풍을 뚫어내야 하는 참에 들었다. 가시 소용돌이 속을 통과해야 한다는 이들의 커다란 난관은 설사, 설화 속 역전 용사가 내일 당장 이곳에 등장한다 하여도 그리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 일이라 현명한 까치들은 비극의 구전을 후세로 전하겠다.



"넘어오려면 충분히 각오를 다지고 와라. 다리 하나로는 부족 해지려 하니까 말이다."



가고 싶다! 막고 싶다! 그러나 갈 수 없다!


여기까지 계산해낸 것이 바로 어린 도적 알리바바의 빛나는 『진화타겁』 계책 이라!



"헤헤..."



여전히 하얀 망아지와 뺨을 부비적 거리는 것을 즐기던 현대의 어린 책사께서는 오늘 아침에 만나게 된 멋진 여성분께만 그의 속마음을 들키지 못하도록 관객 무리를 향하여 짓궂은 행복들을 한 움큼 선사해왔다. 만약 내부 사정을 잘 몰랐던 이가 이 모습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무리 중심에 있는 두 아이를 보고 너무나 좋은 베필이라 여겼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현재 매우 각별해 보이기 까지 한다.



─ 큽!



스스로의 나약함을 탓하며 아랫 입술을 굳게 물어 뜯는 셋테이아의 엘프 수호단, 오늘 찾아 든 패배에 대해서 그들 머리는 결국 고통을 끝끝내 인내하기로 하였다.



'허.'



관객석에서 유일하게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떡갈나무 숲의 외지인. 어린 책사가 떠올려낸 신선한 계략에 감복하며 유사한 통쾌함을 같이 느끼던 중 속으로 너털 웃음을 그는 짓게 되었다.


현재 남자의 머릿속을 찾는 생각은 딱 두 가지. 하나는 이곳 눈의 마을 사람들이 저기 엎어져 있는 망할 여자 아이 하나 때문에 자신의 참한 동생 녀석을 얼마나 괴롭혀 왔을 지에 대한 때늦은 안타까움이었고, 요 쬐끄만 녀석이 지금껏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 왔길래 이를 악문 어른들 앞에서도 저토록 생글생글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었는지. 그 작은 궁금증이 그의 머리맡 위로 소박한 질문지를 물음표로써 띄워 놓았다.


물론, 그 해답이란 녀석은 환하게 빛나는 동생의 안면만 바라 보고 있어도 쉽게 알 수 있었던 무척이나 간단한 문제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고견이 되었지만서도 말이다.



'아가, 노는 것은 훌륭하다만 뒷일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흐뭇하게 바라보기는 하였지만 똘똘한 아이 뒤에 서 있는 낯선 여자의 얼굴 일그러짐에 대해서 동생의 눈치는 완전히 그 일을 잊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런지... 그의 형님은 조금씩 경험 많은 걱정들이 머리 속에 들기 시작했다.



"......"



아직은 잠자코 지켜보는 중이라 할 수 있었던 상대 여인께선 나름의 행동 규칙이란 것이 야생 늑대들 마냥 본능으로 따로 정해져 있는 모양. 허나, 그녀가 정녕 야생의 늑대라 말을 하였다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맹수가 떠도는 뜰 안에 아이를 풀어 놓는다는 무책임한 방임의 행위를 다 큰 어른에겐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실수 중의 실수라 노인의 지혜는 의견을 표할 수 있겠다.



"보시오, 형제님."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벌어진 이 위협적인 어려움에 대하여 큰 고난 없이 해결 가능케 해준 그의 위대하신 존재, 불의 여신께서 내려준 자애의 축복이 아직은 인간의 눈 속에는 고이 깃들게 되었으니...



"태양의 주인을 섬깁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조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같은 식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뭐야, 동향 사람이냐? 이거 반갑군 그래."



불의 신도, 붉은색의 동일한 눈동자를 지닌 이들에게는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끈끈한 정이라는 것이 진실로 세상에는 존재하게 되었다. 처음 만난 일면식 없는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해 높은 친밀감을 가지게 된 이들 양쪽은 상대의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인정하기로 하며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까지도 가져볼 것을 태어난 직후부터 이미 하늘에 약속해왔다.


방금 전까지도 으르렁 대었던 난폭한 늑대 우두머리 또한 불의 여신 앞에서는 평등히 계단 밑을 내려와 앉아 남들과 똑같은 절을 그녀께 올려 드리는 것으로, 그닥 강해 보이지도 않는 사내를 향해서 먼저 악수를 청한다는 놀라운 권능을 다른 눈동자로 하여금 선명히 목도 시키게 만들었다.



"여기는 죄다 애기 똥만 가득해서 역시나 그런가 싶었는데, 가뭄에 콩 난 것을 보니 기분이 썩 괜찮아지네 그려! 그래, 형제는 여기 어쩐 일로 왔는 감?"


"허허, 그런 표현은 땅을 모시는 이들께 너무 실례되지 않습니까. 우리끼리 있을 때에만 그리 말을 하셨어야지요. 하하하!"


"우하하하!"



땅의 여신과 불의 여신.


규모로만 놓고 따지자면 도시와 부락으로 구분 될 정도로 불의 신도는 그 숫자가 땅의 신도에 비해서 한참은 뒤떨어져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지닌 자존심이 정수리 위에 빛나는 가장 큰 별 못지 않게 주인의 뜨거운 성향을 잔뜩 닮아낸 이들의 타오르는 불굴의 정신은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그 고개 만큼은 절대로 숙이지 않겠다고 과거에 단단히 정해둔 바가 있었다.



'......'



붉음의 말캉한 비웃음 속에도 땅의 신도들이 저토록 입을 꾹 버텨내는 이유가 비단 자존심이 부족해서 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는 이곳에 볼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늘 마침 그 일이 끝나게 되었기에 이렇듯 마을을 뜰까 결심을 했던 참이고요."



쏟아지는 웃음을 다 흘려내고 난 후에야 남자는 비로소 자신의 목적을 그녀에게 일러 놓기로 했다.



"아아, 그렇군! 나도 마찬가지야. 저 계집을 찾아내는 일만 뺀다면 이런 춥기 만한 촌구석에 따로 볼일은 없어."


"계집이라 하심은 저기 엎어져 있는 저 허옇게 못 돼 처먹은 년을 말하는 겁니까?"


"맞아, 난 저것을 잠깐 어디로 데려가야만 하고."


"음, 그것 참 우연입니다. 저는 저기 앉아있는 남자 아이에게 여태 볼일이 있었습니다. 둘은 지금 같은 집에서 지내고 있지요."


"엉? 저 똥강아지가? 오호라, 그런것이었구만. 어쩐지 별 놈이 튀어나왔다 싶었더니 그런 숨은 이유가 또 있었어. 우하하하!"



또 한번의 호쾌한 웃음을 태양의 저주와 닮았던 여자는 서있는 자리에서 양껏 폭발음을 터트려 왔다. 조용히 상황 파악에 들어가기로 한 길바닥의 작은 똥강아지께선 낯선 괴물이 현재 그의 형님과 아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하여 작은 안도감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론 여인의 말 속에 숨어있는 왠지 모를 위화감 때문에 이유 모를 불안들을 그의 손 안에 꼭 쥐어 놓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좀 더 주의 깊게 듣고자 하였던 자리의 땅강아지는 쫑긋 세워 올린 그의 삼각 귀를 형님 쪽을 향하여 최대한 크게 나비 날개처럼 활짝 벌려두기로 한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것인데 저 망할 녀석을 대체 어디로 데려갈 작정이십니까? 겉 모습은 참해 보일지 모르나 속은 영 별로 인 계집입니다. 웃돈 받고 좋은 집안에 신붓감으로 넘기실 생각이시라면 그리 추천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받은 돈을 다시 토해내라며 남편의 시어머니께서 씩씩 대고 찾을 것이 매우 분명하니까요."


"응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런 흉악한 것은 돈을 주고 넘기는 것이 훨씬 더 맞게 된 일이겠지. 다행히 난 노총각의 결혼식에 아직은 관심이 없어서 말이야. 그런 걱정은 따로 하지 않아도 돼, 형제."


"그것 참 다행이군요.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 데려가고자 하심이 더욱 어려워 지고 말았습니다. 인간도 아닌 녀석을 과연 어디에 쓰실 요령이십니까?"


"맞다, 맞다! 이 녀석, 인간이 아니라고 했지? 아가씨가 뭔 힘이 이리 드센가 싶더니만 내가 그 사실을 그만 깜빡 잊고 있었네 그려."


"특별히 그녀에 대해 알고 오신 것은 아니시군요? 별로 관심도 없으셨던 것 같고...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 말이 맞아. 난 이 녀석한테는 딱히 관심이 없어. 단지, 내가 한 판 더 떠보고 싶은 년이 저 밑에 하나 계시는데 말이야. 그 여자가 글쎄 요것을 데려오면 그제서야 날 다시 만나주겠다 하지 뭐야? 그러니 어쩌겠어? 나는 고년 말대로 요것을 모셔 가야지 뭐."


"아니, 지셨다구요? 형제께서요? 그것도 여인에게? 저로서는 굉장히 믿기 힘든 일 입니다?"


"말도 마시오, 고것은 제대로 된 괴물이라오. 나 또한 손 하나 까딱 못하고 대결의 끝을 맞이하게 됐으니 말이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해서가 아닌 도대체 어떻게 지게 된 것인지가 너무나도 궁금해서 다시 요놈을 찾았을 뿐이라오."


"허허..."



숨김 없이 들려주는 상대의 진실된 고백에 남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여 오래된 습관으로 입을 손 밑에 감싸 안았다.



'말도 안 돼! 괴물 위에 더 괴물이 있다고?'



몰래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쫑긋 세운 귀에게도 역시 여자가 해온 고백의 내용이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체격은 성인 남자와 견줄 정도로 무척이나 건장하였음이 분명했고 그 힘은 무려 엘프 보다도 강인한 상태였다. 그런 괴물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상대가 세상에는 또 존재한다? 문명에서 발달된 소년의 뇌가 사실로써 이것을 받아들이기엔 심히 허무맹랑한 전설처럼 느껴졌던 것이 현재 그녀가 겪었다 주장하는 술꾼의 영웅담이었다.



"거짓말! 당신은 또 거짓말을 하고 있네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누굴 바보로 아는 거예요?"



굳이 짚어냈어야 했을까 싶은 어리숙한 연구원의 그릇된 탐구심과 동시에 반드시 사실을 밝혀 내겠다 다짐하는 미숙한 경찰의 목적 없는 호승심이 불쏘시개를 자처 하면서 강아지의 철 없는 가슴 팍은 가을의 낙엽처럼 상당히 쉽게 화마의 발화를 일으켰다.



"엉?"


"그녀를 나에게서 앗아가기 위해 애써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을 뿐이지요?"



형님과의 순탄한 대화 속에서 상대가 누구였는지를 잠시 잊은 듯한 동생의 날카로운 돌발 행동은 어떤 의미에선 최고의 한 수로 이번 판 내내 작용 하게 되어 돌이키지 못할 쑥스러운 결과를 본인 스스로가 낳게 되는 가장 큰 절망의 원인이 되어 주었다.


불행의 어머니가 지하 신을 향해 갈구해오던 소중한 씨의 제공자가 되어 주는 일. 그 그릇된 유혹에 쌍 수 들고 환영하는 바보 같은 짓거리를 승리의 기쁨에 취해버린 나머지 어린 장군님께서는 그만 하룻밤 사이의 어처구니 없는 불 장난을 이렇듯 한탄스럽게 저질러내고야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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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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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검의 회고록 6 24.09.14 3 0 26쪽
22 검의 회고록 5 24.09.07 4 0 29쪽
21 검의 회고록 4 24.08.31 6 0 26쪽
20 검의 회고록 3 24.08.24 8 0 25쪽
19 검의 회고록 2 24.08.17 8 0 24쪽
18 검의 회고록 1 24.08.10 10 0 24쪽
17 시작된 심판 24.08.03 9 0 25쪽
16 묘한 제안 24.07.27 8 0 34쪽
15 흔들리는 저울 24.07.20 6 0 24쪽
14 얼굴에서 드러나는 진실 24.07.13 7 0 22쪽
13 자매를 찾은 두 번의 패배 24.07.06 5 0 26쪽
12 완벽함의 투우사 24.06.29 8 0 25쪽
11 똑 같은 후회, 색 다른 결과 24.06.22 7 0 24쪽
10 닮아 있는 앙숙 24.06.15 9 0 27쪽
9 산군의 약속 24.06.08 9 0 26쪽
8 어린 신부와 어설픈 신관 24.06.01 9 0 26쪽
7 가짜 부부 24.05.25 8 0 26쪽
» 붉은 갈기 24.05.18 10 0 25쪽
5 산뜻한 시작 24.05.11 11 0 22쪽
4 계약은 천천히 24.05.04 10 0 23쪽
3 편지의 뿌리를 찾아서 24.04.27 8 0 28쪽
2 찾아온 손님 24.04.20 9 0 22쪽
1 남아서 집을 지키는 것 24.04.15 19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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