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thirdfloorman
그림/삽화
3F
작품등록일 :
2024.04.15 12:46
최근연재일 :
2024.09.14 01:0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206
추천수 :
0
글자수 :
266,627

작성
24.05.04 01:00
조회
10
추천
0
글자
23쪽

계약은 천천히

DUMMY

"잘 들으세요, 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는 말이지요? 자기 의견을 잘 전달해보겠다고 해서 너무 큰 애를 쓸 필요는 없답니다. 그대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한 가지! 바로, 상대의 말 흐름을 읽기 위한 최선의 노력. 이 이외의 것을 위하여 당신의 노력을 너무 기울이려 들지는 마세요."


"흐름을 읽다니요, 주인님? 그건 무슨 뜻이어요?"


"상대를 보다 면밀하게 살피라는 뜻입니다. 「어떤 말을 해줘야 좋을까?」 하고 그대가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강물처럼 흐르는 말의 흐름을 그대로 쭉 따라갈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곳에는 결국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또, 칸이 꼭 전해야 하는 말 같은 것들이 보기 좋게 한 장소에 모여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예정입니다. 칸은 이제 그것을 골라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 생각을 구하기 보다야 상대 마음을 우선 찾아 보아라.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고 계신 것이 맞아요?"


"네네, 그렇지요!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제, '말을 놓치지 않으려는 세심한 노력' 과 '상대의 배경을 관찰하려는 깊은 주의력' 이 될 것입니다. 어때요? 큰 어려움 없이 잘 해낼 수 있겠어요?"


"걱정 마세요, 주인님. 제가 누군지 아시잖아요! 그 정도 쯤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게 되었으니까요."


"그럼요, 그럼요! 누구 아이인데요? 저는 항상 당신을 믿고 있었답니다."


"에헤헤..."




"......"




"어디가 아픈거야? 아니면 그냥 머리가 나쁜거야? 이 멍청한 수염은 아까부터 왜 이리 말귀를 못 알아 처먹지?"


"너야 말로 뭐가 그렇게 잘나셔서 한참 위 어른에게도 이런 시건방진 태도를 보여 오는 것이냐? 엉덩이를 좀 후들겨 패줘야 예절을 다시금 찾아오시려나?"


"맞아? 누가? 내가? 너한테?"


"『너』 가 아니고 손 『님』 이시다, 요 잡것아! 마을에서 일찍 쫓겨나더니만 말도 배우다가 만 것이야?"


"뭐래, 등신이! 내가 너보다 한참은 더 배웠거든? 예절? 그딴 식으로 생겨 먹어선 대체 어느 누구에게 사람 대접을 받겠다는 거야? 양심은 가지고 있어?"


"칭찬은 못 들어 봤어도 이 얼굴로 어디서 욕 먹고 다닌 적은 없다. 어째서 인지 알아? 너처럼 상판 떼기에 물려 받은 것 하나 없었어도 주둥이를 재수 없게 털고 다닌 적은 없거든!"


"우쭐대지 마라, 짐승아. 네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에 예의를 배울 수 있었을 뿐이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네놈은 진즉 거미줄 마냥 찢겨져 오늘날 들개 이불이 되었을 운명이었다. 낮게 살아가려는 네 본능에나 절을 해라."


"이 동네는 머리 색이랑 마음 생김새가 서로 뒤집어져 사는게 일인가 보지?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속 시커먼 계집은 또 처음이다. 반면, 이 참한 녀석을 좀 봐라. 어떻게 이게 너랑 같은 나이가 될 수 있지? 네년이 정녕 앞으로도 머리 달린 척을 계속할 요령이라면 최소한 네 친구의 반 정도는 따라가려고 노력을 해라. 그것이 그 잘난 주둥이로 떠들어 대는 일말의 양심이란 녀석이 줄곧 해왔던 일일 테니까!"


"너 이새끼..."


"새끼가 아니고 조일이다, 이 돌대가리 같은 년아! 그래, 어디 한 번 끝까지 해보자. 없어진 주인을 대신해서 내 몇 번이고 다시, 똑 같은 답을 네게 들려주도록 하마."




"......"




대화, 주인에게 배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까지 소년은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아왔다.


• 주인의 뜻에 따라 말의 흐름이란 것을 찾기 위해서, 아이는 상대방의 말을 보다 의식적으로 경청하려는 삶을 살아왔다.


• 주인의 뜻에 따라 대상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 위해서, 아이는 작은 정보도 놓치지 않고자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을 지금껏 들여오기로 했다.


• 주인의 뜻에 따라 상대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이는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 원인 찾는 것에 틈틈이 정보력을 쌓아왔다.


그 결과, 아이는 말을 나눈다는 행위에 있어서 꽤나 큰 자신감을 오늘날에 얻어갈 수가 있었다.



"저기, 두분 모두 진정하시고."



평소처럼 말의 흐름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 아무 문제 없었다! 이 복잡한 상황 역시, 결국에는 자신의 뜻에 따라 일을 점차 움직여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 보기로 한 마을의 작은 고수 님께서는 천천히 심호흡 두 번 삼키는 일로, 폐가 지녔던 모든 흥분들을 바깥에 배출해 보기로 한다. 두 사람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나의 답을 유도하여 놓는 것으로, 달인은 스스로의 판에 대해서 씨름장 모래 위 번쩍이는 무대 장치를 그들 위해 설치할 예정이었다.



"차분히 의견 나누는 시간을 저와 함께 가져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넌 입 닥치고 빠져 있어!"


"끼지마라 아가, 다친다 너?"



다만, 이번 판에 오른다는 양 선수가 보여주신 거친 오락의 성향이란! 어린 고수가 줄곧 상대해왔다는 평온 세계의 양들과는 달리 배려가 전혀 고려되지 못한 아주 순수한 날 것의 감정으로.



"듣자하니 편지를 전했던 일로 네 할 일은 이미 끝이 난 듯 보이는데, 해 떨어지기 전에 어서 마을로 내려가 보는 쪽이 어때? 너의 그 짐승 낯짝을 가려주는 약한 그늘이라도 떠있을 때야 말로 그나마 사냥꾼에게서 화살을 피할 유일한 길이 아니었겠어?"


"날 쫓아내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인데, 아쉽게도 남의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수단이 인간에게는 여럿 지니고 있단다. 아무래도 여긴 쫓겨난 너의 그리운 고향은 아니지 않았겠니? 무척이나 아쉬운 소리로 들릴 수는 있겠으나 내가 저택을 떠나야 할 권한 따위를 너 같은 엘프가 지닐 수는 없게 된 법이란다."


"뭐야? 여기는 내 사람의 집이야, 내 친구의 공간이라고! 난 벌레보다 못한 너를 당장에라도 내쫓을 권리가 있어!"


"멍청하긴! 이곳은 누가 뭐래도 인간이 주인인 마을이야. 당사자가 없는 지금에서야 그녀의 빈자리란 모두가 인정할만한 사람이 대신 대리인 직책을 맡게 되는 것이지."


"대리인? 그게 뭐 어떻다고! 설마하니, 너의 이 잘난 대리인께서 나로부터 널 지켜내기라도 할 성 싶어? 바보 같은 놈! 그 나이 먹도록 위아래 구분도 할 줄 몰랐나? 이 자식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허깨비 같은 놈일 뿐이라고!"


"아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가 고집만 강하기로 한 것은 천 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군! 극의 인기가 여전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 였나? 아주 영원불멸 이시구만, 그래!"


"......"



만약 이 둘을 소개하는 증명서가 현 세상에 존재 했다 라고 한다면, 교육과 관련된 항목은 모두 점수가 매겨지지 않은 채로 하얀 공석으로만 남아 결과 받게 될 양측 부모의 얼굴을 잔뜩 홍조로 물들였을 것이다.


상대를 뜯어 죽이겠다는 일념 하에 턱을 벌려 대기로 하는 혈기 왕성한 송곳니들의 날이 선 싸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중재를 바라가며 고심 또 고심 중이기로 하신 유일한 이성체 하나. 인간의 아이였자 신의 마지막 남은 작품이라 하던 유약한 그에게서, 두 짐승 사이를 파고 들만한 작은 물러섬을 찾아내기란 눈 밭 떨어진 솜뭉치를 구분했던 시험 만큼이나 그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정 그렇게 확인하고 싶다면 어디 네 귓구멍으로 직접 한 번 들어보지 그래? 야, 와서 네 입으로 떠들어. 이 자식이 앞으로 어찌 될 것 같아?"


"어? 나?"



그럼에도 그를 찾아와 준 천재일우의 기회! 시작은 평소처럼 이나 무척 가볍게, 또 애써 찾은 기회를 흘려 보내지 않기 위하여 마무리는 항상 제안으로 끝 맺음 할 것을 작은 고수는 결코 훈련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글쎄, 네 생각은 좀 어떤데?"


"너무 당연한 것 아니야? 사라져야지! 그것도 최대한 빨리."


"네 마음은 나도 잘 알겠어. 그렇지만 그를 내쫓는다 라는 선택은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는 걸?"


"뭐야?"


"진정해, 진정! 단순히 그를 감싸고자 하는 말은 아니었어. 나는 단지 우리 주인님 때문이라도, 그가 우리 곁을 남아 있어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어."


"베니? 저 지저분한 자식이랑 그녀가 왜! 미리 말해두겠지만, 네놈들 둘이서 떠들어 댄 이야기 중에 제대로 된 내용은 단 한 개도 없었으니까! 조심해서 그 입을 뻐끔 거리는 편이 좋을 거야."


"어디까지, 라고 할 것도 없이 너의 귀라면 분명 우리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을 수 있었겠지. 그래도, 우리가 나눈 마지막 이야기에 관해선 보다 정확한 설명을 자리에 해주었으면 해. 이에티아, 어째서 너는 주인님이 엘프다 라는 나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어?"


"그녀가 얼마를 산 인간이었는지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적어도 엘프는 아니야."


"어째서? 장수 한다는 것은 분명 너희들만이 가진 특징 아니었어?"


"그 망할 특징 중에는 마법을 쓸 수 없다는 점도 있어."


"마법을, 쓸 수 없어?"


"그래, 우리는 천성적으로 마법을 쓸 수 없어. 날 보면 모르겠어?"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우리 주인님 역시..."


"그녀는 마법을 쓸 수 있어! 넌 몰라도 내 눈으로는 직접 확인이 된 사실이야. 그렇기에 그녀는 결코 엘프가 될 수 없어."


"그렇구나. 그래도, 마법사라는 것은 맞았네?"


"이제 됐지? 다음은 네놈 차례야. 저 자식과 베니 사이에는 과연 무슨 연관이 있지?"


"지금은 몰라, 우선 가 봐야지."


"가다니, 어디를?"


"......"



깊게 가라 앉아 가는 소녀의 녹색 눈, 그것을 잠시 들여다 보기로 하는 또래의 속눈썹은 이내 낯선 사람이 서 계시는 곳을 향하여 천천히 그녀의 시선을 안내해 가기로 했다.



(...나?)



아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상대 남성, 진심으로 소년의 의도를 의아해 했던 것으로 멍한 검지 손가락을 얼굴에 가리켜 놓은 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부터 부르튼 입술을 뻥긋 대기로만 하였다.


그에게 떠오른 물음표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는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 만을 슬쩍 띄워 보이기로 한 저택의 어린 대리인은 다시금 소녀 쪽으로 고개를 돌려 둘만의 대화를 재차 이어나가기로 했다.



"구름이 머무는 땅에, 우리더러 그곳에 와 달라고 편지에도 쓰여 있었잖아?"


"거기가 어딘데?"


"나도 몰라, 그러니까 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쟤는, 그곳을 안대?"


"글쎄, 아마 알지 않을까? 저기요, 조일! 혹시 구름이 머무는 땅 이라는 곳에 가보신 적 있어요?"



─ 아니.



"그럼 어딘지는 아세요?"



─ 대충은 알고 있지.



"들었지? 대충은 알고 있다네."


"그래서? 고작 그런 이유 따위로 저 멍청한 자식이랑 몇날 며칠을 같이 다녀야 하겠다고? 내가 왜? 길 찾는 일 쯤이야, 딴 사람도 얼마든지 시킬 수 있어."



─ 나도 반대다. 미쳤다고 내가 너희들 길 안내를 하겠냐? 빨리 가서 침대에 쉬기나 해야지.



"안돼요, 꼭 당신이 있어줘야 해요! 너도 그만해, 이에티아. 우리에겐 그가 전적으로 있어야만 해."


"그러니까, 왜! 왜 저 자식이 꼭 같이 있어야 하는 건데?"


"우린 이미 그에게 도움을 받았잖아."


"도움? 무슨 도움?"


"편지 말이야, 편지! 이거, 주인님이 쓴 것은 맞잖아."


"네 말에 동의한다고 해서 제발 이상한 착각은 하지마. 너의 그 해괴한 추측과는 달리 난 멀쩡한 이유에서 그녀의 편지가 맞았다고 생각하니까."


"멀쩡한 이유? 그게 뭔데?"


"물어보면, 내가 알려 줄 것 같아?"


"...넘어 갈게. 아무튼 주인님이 쓴 편지는 맞다는 소리잖아. 평소에 그녀가 말하기를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전해야만 한다고 했어. 그런데 만약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을 때 주인님께서 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가정을 해봐. 그 다음은, 과연 어떻게 되었겠어?"


"그게 뭐? 무슨 문제가 있다고?"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명목 하에 주인님은 또 한번 바깥을 나설 것이고, 그만큼 저택 안을 계속해서 비우시게 되겠지. 난 그 사실이 참 별로라고 생각해. 넌 그렇지 않아?"


"조금은, 일리가 있는 말이네."



베니,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나이 어린 그들이 여기기에도 심히 정도를 어긋났다 싶을 정도로 상당히 강한 추진력을 가진 여성이었다. "다녀 올게~" 라는 말만 홀라당 남겨 놓는 것으로 할 일이 떠오른 순간 집을 나섰던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행동력의 화신 같은 그녀였기에, "잠깐만!" 하고 붙잡아 오는 검은 머리와 흰 머리 한 쌍의 낮은 장애물들로는 구르는 전차 바퀴를 멈춰 세우는 일이 매순간 역부족이었다.


그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역시 아이들이 가진 힘 만으로는 절대로 막아내지 못하리라 여겼던 것이 소년의 반짝이는 머리 속에서는 너무나도 분명한 그림들이 그려져 왔다. 그만큼 저 악마 같은 소녀와 단 둘이 보내야 했던 영겁의 시간들이 더더욱 불행을 연장해 나갈 예정이었고, 똘똘한 그의 머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 상황 만큼은 피해야겠다 뚜렷한 예지를 가져 보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저택을 떠나있는 것이 싫었다! 이는 고집 센 소녀 역시 그와 의견을 같이 하기로 하는 유일한 공유가 되었다.



"조일이 어디 사는지 듣기도 전에 짐 챙겨 떠나갈 것이 분명해. 아마 대륙 전체를 돌아다닐 가능성도 있어."


"충분히 그렇겠지, 그 사람은 그러고도 남아."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란..."


"사전에 미리 차단해 보는 것이겠지. 큭!"



싫은 내색 역력한 하얀 털 고양이가 그녀의 조막만한 이빨 사이로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살며시 깨물어 왔다.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제안이기는 하였으나 같은 시간을 보내온 그의 정갈한 의견에는 차마 어긋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대로 받아 들여지는 쪽이 스스로에게도 가장 좋은 이익이 되는 수라, 소녀에게도 그것이 정답처럼 여겨져 왔다.



─ 뭘 그리 속닥들 대시나?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네 그래.



기다림에 지친 남자가 비밀을 속삭이는 아이들을 향해서 비아냥 대는 혀와 함께 자신이 공간 속에 존재하였음을 빈 허공을 통해 알려왔다.


앞으로는 그를 어떻게 잡아둘 것인가? 의 문제가 이제는 아이들 머리 위에서부터 물음표들을 게임처럼 장식하게 된 셈이다.



"......"



특히나, 하얀 머리의 고심이란 상당한 주름을 이마 사이에 깊어져 가게 됐다. 저 재수 없는 놈을 떼어 놓자니 후일 찾아올 시간들이 퍽이나 아쉽게만 느껴져 왔고, 그렇다고 녀석과 손을 잡아 보자니...



"쯧!"



앞으로 있게 될 일들이 참으로 막막해졌던 것이, 전형적인 계륵의 진퇴양난 상황이라 그녀는 몰림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툭툭.



결국 이 상황에서 소녀가 가장 형편 좋다 여기기로 했던 타개 방법이란, 멍청히 옆을 서있는 바보 같은 개구리에게서 말랑 거리는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건드려 보는 것. 이렇듯 너무나 손 쉽게 급소를 내주기로 한 터무니 없는 실력의 초록빛 재주꾼께서는 썩 자신 없는 표정을 지어가면서도 "윽!" 하는 소리를 질러, 싫었던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겨 나가기로 하였다.



"왔느냐?"



반면, 의기양양한 얼굴로 상대를 맞이하기로 하는 탁자 건너의 주인. 덥수룩한 수염이 특징적인 오만한 나라의 왕자다.



"맛이, 나쁘지가 않군."



언제 찾아냈는지도 모를 귀한 찻잎을 주인 허락도 없이 꺼내 몰래 오물 대기를 청하였던 버릇 나쁘게 된 왕자, 탱탱한 피부를 지닌 어린 사신이 황궁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신호 삼아서 그는 특유의 거들먹거리는 자세들을 하나 둘 사신을 향해 뽐내기 시작했다.



"저기, 실례가 안된다면 저를 좀...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속 깊이 타 들어가는 목 때문에 좀처럼 우물쭈물 대지 않기로 했던 그의 입도 쩍쩍 가뭄이 갈라져 가기로 했다. 청명하게 들리기만 하였던 개울가의 울음소리는 이제 왕자의 타오르는 눈 앞에서 순식간에 메마름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흠, 너와 함께 그곳을 향한다라... 내게는 분명 그리 어려운 일 만은 아니게 될 테지."



그윽하게 찻잎을 바라보던 그가 탐욕스럽게 그것을 한 입 집어 삼키고 서는, 벌벌 떠는 이를 향하여 긍정하겠다 라는 뜻을 슬쩍 내비쳐 오기로 했다.



"그, 그 말씀은 분명?"



단지, 그가 함께 가기에는 무엇인가 조건이 하나 달려 있다! 왕자의 향기 머금은 입은 현재 그리 말을 건네오는 중이었다.



"너 혼자서만 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당장이라 하여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겠지. 하나, 만약 그것이 아니라 한다면... 모종의 순서가 우리 사이를 요하게 될 일이다."


"모종의 순서라 하심은?"


"알면서 내게 묻는 것이냐, 똑똑한 자야? 나는 모든 것을 주기로 하였으니 결정은 오롯이 그대의 몫이로다."


"후, 후자가 불가능 한 경우에는! 그때는 제가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너와 나, 이렇게 둘만이 길을 떠나게 되겠지."


"하지만 나리! 편지에 적혀 있기로서는 저 말고도 가야 할 사람이 분명 하나 더..."


"그건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닌 것으로 여겨지네만?"


"......"


"아이고야,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게나 현명한 이여. 이것은 아주 단순한 일이 아니었는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머리가 간지럽다면 긁으면 되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 투성이야! 누군가 혹 실수를 범하였다고 가정해 봅세. 잠시 앞으로 나와 고개 숙이고 가면 될 일 아니겠는가?"


"저, 정명 하신 분의 뜻은 미천한 소인도 충분히 알아 들었사오나, 부디 못난이의 사정을 굽어 살피시어 부디 다른 조건 하나를 더 내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소인의 손으로는 차마 그 일을 해내기가 심히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허허, 이토록 쉬운 일도 어렵다 말을 하니 내 입이 다 민망하도다!"



말을 끝마치겠다는 왕자, 그대로 반대 방향을 향하여 고결했던 고개를 슥 돌려 놓기로 한다. 이 이상 어린 사신과는 나눌 이야기가 없음을 보다 명확히 하기로 한 것이었다.



"에휴..."



그렇기에 바닥을 향해 한숨 푹 크게 내쉬어야 했던 이국의 검은 머리 사신은 걱정 가득한 눈길로 여왕의 옥안을 살피고자, 내리 깔았던 시선을 다시 옥좌 위로 들어 올리기로 했다.



(뭐?)



희망적인 기대를 걸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절망을 재차 확인한 것 만으로도 그의 작은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기에는 매우 충분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저기, 일단은 한 번 사과를 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니? 가벼운 오해였을 뿐이잖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으니까, 서로 없던 일로 하는 셈 치고! 아주 잠깐만, 아주 잠깐만 저분에게 같이 인사 드리는 시간을 좀 가져보도록 할까, 요?"



─ 사과? 내가?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사과를 네가 직접 할 필요는 없이, 잠깐 가서 나랑 인사만 좀..."



─ 미쳤어? 절대 안 해!



"...그렇대요."



마지막 찬스가 한 번 더 주어졌음에도 여왕의 하나 뿐인 충신은 이국 왕자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일에 다시 한번 실패하고 만다.



"허허, 손을 내밀어 준 은인을 할퀴는 것이 가히 설산의 삵이로다! 보아하니 하늘이 내려준 우리의 연은 과연 여기까지가 맞는가 보오. 자, 이제는 안내 하시게. 내 그녀의 뜻대로, 이만 이곳을 내려 가리다."


"아이고! 제발요, 나리! 제발 그러지 마세요! 불쌍한 저를 좀 봐서라도... 예? 어떻게, 좀 안될까요?"


"뭘 이렇게 까지 붙잡고 서는! 나 참, 이를 어쩐다? 저쪽을 보면 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시는데 말이야."


"시키는 일은 제가 다 할게요! 예? 제발 한 번만 좀 도와주세요!"


"오오, 내 고향 동산의 가락새야!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더냐? 나를 바라는 이도, 나를 미워하는 이도 자리에 함께 하고 있으니! 도무지 길이란 것이 나타나질 않게 되는구나."


"아이고! 아이고, 나리!"



나리, 나리!


자꾸만 그것을 외쳐 대기로 한 불쌍한 나라의 신하는 왕자의 다리를 본격적으로 붙들어 매어 앉은 자리에서 꺼흑 울어 대기를 청하였다. 시종의 필사적인 모습을 눈 밑으로 확인한 그의 나리께서도 더는 감추던 것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여기셨는지, 거리낌 없이 올라가는 입꼬리 속에 비릿하였던 웃음들을 슬며시 미소 흘려내기로 한다.


조금 전, 아이들끼리 속닥 거릴 당시 모처럼 떠오르게 된 산뜻한 계획 하나가 그의 손바닥 위에서 대업을 이루고자 하는 순간이 효웅의 시간으로부터 출진의 때를 알맞게 찾아 온 것이다.



"그대의 사정이 정 그런 것이라면... 어떻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겠지! 정말로 내가 시키는 일을 하나 해볼 참이더냐?"


"할게요, 두 번이라도 할게요!"


"너에겐 꽤나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었는데? 중간에 도망이라도 가면 그때의 나는 과연 어쩌면 좋지?"


"당신께서 불의 여신을 걸고 맹세한 것처럼, 저 역시 제 주인님을 걸고 맹세하면 되잖아요!"


"오호라, 그 정도 맹세면 충분히 믿어도 되는 것일까? 좋다, 그렇다면 이 악수를 한 번 받아 보거라. 그리하면 우리는 앞으로 운명을 함께할 형제가 될 것이요, 누가 뭐래도 형제끼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법. 나는 너를 위해 그녀를 찾아줄 것을, 너는 나를 위해 한 가지 약속을 이행하여 줄 것을. 지금 서있게 된 자리에서 다같이 맹세하여 보는 것이다. 알겠느냐?"


"할게요, 얼마든지 할게요!"



덥석.



거칠어진 손바닥과 맞닿은 아이의 고운 보자기가 위아래, 거듭 펄럭이기로 하면서. 돌이킬 수 없다 라는 계약의 서명이 소년의 의지로 하여금 한 가득 잉크 촉을 써 내려갔다. 평소의 그였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갔을 법한 명시되지 않은 불공정한 항목 역시, 엘프에게 사과를 받지 않겠다는 강렬한 문구 밑에 가려지어 모든 것이 온전한 상태에서 그의 성문을 쉬이 통과하기로 한 것이었다.


숨어있던 악의 씨앗들이 성 주인의 안중에도 들지 못하였다는 그야말로 최상의 육성 상황을, 거리낌 없이 줄기를 뻗쳐 댔던 것으로 그의 운명선 근처까지 자리를 잡게 된 이들 잔혹한 뿌리는 몸집을 점차 부풀려 나가 남의 땅에서 빼앗은 양식을 양분 삼아서 그들이 가진 병사의 세를 조금씩 키워 나가기로 했다.



"이것으로 끝. 너나 나나, 앞으로 두말하기 없기다?"


"네!"



훗날의 일을 전혀 깨닫지 못한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에는 방긋했던 미소가 만연한 꽃들 대신 하여 때 이른 봄의 시간을 저택 안에 몰고 오기로 했다. 그 철없는 부드러움 만이 방 안에 향으로써 가득 남기로 하여, 철부지의 입가에는 이처럼 명량한 기쁨들로 4월의 벚꽃을 행복에 피워내기로 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검의 회고록 6 24.09.14 3 0 26쪽
22 검의 회고록 5 24.09.07 4 0 29쪽
21 검의 회고록 4 24.08.31 7 0 26쪽
20 검의 회고록 3 24.08.24 8 0 25쪽
19 검의 회고록 2 24.08.17 9 0 24쪽
18 검의 회고록 1 24.08.10 11 0 24쪽
17 시작된 심판 24.08.03 10 0 25쪽
16 묘한 제안 24.07.27 9 0 34쪽
15 흔들리는 저울 24.07.20 7 0 24쪽
14 얼굴에서 드러나는 진실 24.07.13 7 0 22쪽
13 자매를 찾은 두 번의 패배 24.07.06 5 0 26쪽
12 완벽함의 투우사 24.06.29 9 0 25쪽
11 똑 같은 후회, 색 다른 결과 24.06.22 8 0 24쪽
10 닮아 있는 앙숙 24.06.15 10 0 27쪽
9 산군의 약속 24.06.08 9 0 26쪽
8 어린 신부와 어설픈 신관 24.06.01 9 0 26쪽
7 가짜 부부 24.05.25 9 0 26쪽
6 붉은 갈기 24.05.18 10 0 25쪽
5 산뜻한 시작 24.05.11 12 0 22쪽
» 계약은 천천히 24.05.04 11 0 23쪽
3 편지의 뿌리를 찾아서 24.04.27 9 0 28쪽
2 찾아온 손님 24.04.20 10 0 22쪽
1 남아서 집을 지키는 것 24.04.15 21 0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