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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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floorman
그림/삽화
3F
작품등록일 :
2024.04.1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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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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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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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같은 후회, 색 다른 결과

DUMMY

"으으... 물, 물을 좀 다오."



하루동안 아침 해를 두 번 씩이나 경험하게 된 거꾸로 나라 출신의 남자. 잘 정돈된 침대 위에서 그는 고단히도 물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에게 있어 머리 뼈의 단단함을 견주어 보는 일이란 크고 작은 승패의 기록들을 이마 판 위에 바를 정자 흉터로 새겨 놓을 만큼 상당히 익숙하였던 것으로, 소신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자신감을 사내는 분명히 마음 속에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 상대가 가공할 만한 크기의 강도를 지닌 우주 운석이었던 것 만큼은 다양한 맛을 알고 지내던 그의 단련된 두개 또한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들었던 아주 황당한 사건의 경위였으며, 지금에와서야 눕는 말들을 바닥 위에 펼쳐 보이기로 하는 이달의 게으름뱅이께선 널부러진 머리 파편들을 뒤늦게 보자기 속에 주워 담는 것으로 수 많은 골명 들을 하나하나 재붙임 하기로 하였다.


그의 혹 난 이마가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군중들 앞으로 나아와 하찮은 변호를 성토케 하는 시시한 연설 주머니 역을 도맡기로 했으며, 길거리 밤송이들처럼 심히 알차게 들어선 주인의 알짜배기들을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나누고자 지혜를 고심하였던 그의 신실한 관자놀이께서는 잔뜩 짜낸 최후의 땀방울 하나를 놈의 없는 미래를 위하여 땅 속 깊이 장래를 흘러내리기로 하였다.


극히 희박한 확률로 억울한 패배를 등 뒤로 적게 된 심통난 검투사가 승리의 여신께 나아가 앉아 이건 무효지 않느냐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켜보라 떼를 썼던 변변치 못한 자의 영광스러운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요."



대지를 보살핀다는 그들 방랑자로부터 좁은 방 하나를 넷이서 써보시라는 고약한 권유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불평 없이 침묵 하기로 정하였던 투표권 없는 외인들의 우중충한 떠돌이 모임. 그 중 제일 연약한 몸집 하나가 남자의 손을 먼저 붙잡고 나서며 골골 대는 병원 신세 늙은이를 위해 미지근한 꽃잎 차 한잔을 그는 둥근 접시 속에 담아 내기로 한다.


태양의 따님이라 하신 동년배 형제께서 둘째로 맞이하게 된 싸움에 대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기로 한 작금의 시간 동안에는, 병자를 위해 움직여줄 이가 그의 하나 남은 남동생 밖에는 자리를 같이하지 않게 되었음을. 또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방 한 켠에서 틱틱거림을 택하기로 하였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엘프 아가씨의 여전한 얼굴 심보를 통해 세상은 지겨우리 만큼 그들 관계를 계속해 증명해 나가기로 했다.



"아가, 어찌 된 것이냐? 하린 씨는?"



열심히 우려낸 아우의 차 향을 음미할 새도 없이 벌컥 물을 들이켜 보는 남자. 훗날 아내가 봤다면 매우 섭섭한 눈물을 훔쳤을 정도로 외간 여자의 이름을 그는 먼저 찾기 시작했다.



"그녀라면 지금 『대련 쉼터』 라는 곳에 있어요. 서로가 맞서기 전 몸가짐을 바르게 해 놓는 것이 이곳 규칙이라 하니, 해가 수평선에 걸치기 전까지는 반드시 그 장소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하네요."


"그러느냐? 다행히 내가 때를 놓치지는 않았겠구나. 아으, 그 정신 나간 여자! 머리 속에 대체 뭘 박아 두고 사는 것이야? 여자의 어머니가 무슨 물소라도 된다 말을 하더냐? 하마터면 이 소중한 형님 머리통께서 통째로 목이 달아날 뻔 하셨다."


"유리의 어머님이 소님 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구요, 대충 자신은 있었다 라는 말을 제게 하기는 했었지요."


"허, 누구는 자신이 없는 줄 알았나? 아이고, 됐다! 좀 더 똑똑한 이가 말을 그만 하고 말아야지. 나의 동생아? 그 처자와 관련된 말이라면 더는 내 앞에 꺼내 놓지 말거라. 재수 옴 붙으시겠다."


"본인이 먼저 물어봐 놓고는... 뭐, 좋아요. 지금은 보다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시기이니 사소한 일은 잠시 뒤로 미루어 보지요."


"중요한 일? 뭔가 대단한 사고를 벌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구나, 우리 아우님아?"


"사고요? 그럼요, 아주 대차게 치셨지요! 우리 아가씨께서 말입니다. 매우 성실히도 그녀를 도왔다, 저쪽에서 보람참을 이야기 해오고 계시답니다."



─ 입 닥쳐, 거기서 뭘 얼마나 더 하라는 거야? 난 할만큼 했어!



"보셨지요? 제 생각엔 하루를 12개로 나눈 시간 중 하나를 채 쓰지 못한 매우 짧은 시간이었는데 벌써 이 정도의 성과를 가져 오셨다 하지 뭡니까? 이건 경사지요, 경사! 저희 일행의 미래가 아주 창창해졌습니다요."


"빌어먹을! 역시 생각대로 흘러 가지는 않는군. 야이, 똥고집아! 그새를 못 참아서 또 일을 그르쳐와? 철창에 갇혀 영원한 보살핌을 받아 봐야 그때 정신을 차리겠어?"



─ 시끄러워! 내 잘못이 아니고 그 여자 머리통이 이상한 거야. 알아들을 만한 소리를 지껄여야 이쪽도 원하는 답을 해줄 것 아니야? 지가 뭘 깨달아야 할 지를 왜 나한테 물어보고 난리람? 내가 그쪽 선생이라도 된다고 해?



"젠장, 어째서 저것을 혼자 보낸 것이냐? 적어도 네가 곁에 있어 줬어야지!"


"저도 그러고는 싶었는데 말이지요? 저이들 대장께서 일대일로 만남을 가지시겠다 하시는 일을 변방의 쇤네가 어찌 돌려 놓겠습니까요? 그저 잘 돼라 잘 돼라, 한 없는 기도 만을 하늘에 올릴 수 밖에요. 불행 중 다행으로, 아가씨의 불경한 행동에 대해 그분께선 크게 개의치 않기로 마음 정하셨나 봅니다. 축축한 지하 감옥이 아닌 사람도 쓸만한 방을 우리에게 이토록 내어 주기로 하셨으니까 말이지요. 아, 방이 비좁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그녀의 의견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루밀 신관을 받드는 다리라는 분께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저희 일행을 이곳으로 안내하셨을 뿐이었지요."


"내 낯이 다 부끄럽구나. 꼭 찾아가서 사죄를 드려야지 아니면 코 뜨거움에 밤잠을 못 이루겠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사죄는 이미 제가 드렸으니까. 저와 몇 마디 나누시곤 나름 만족하시며 돌아가기로 하셨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토록 이해심 깊은 분 앞에서 뭘 어찌 행하였길래 요 모양 요 꼴까지 오게 된 것인지 원..."



─ 흥! 어차피 다음 결과도 마찬가지야. 그 멍청한 소리나 지껄여 대는 아줌마나 그걸 좋다고 따라 다니는 놈들이나. 죄다 한심한 종자 임에는 내일이 와도 틀림이 없을 테니까!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잘난 녀석이 못난 놈들을 향해 따끔한 한 마디 정도는 해 놔야, 내일이란 모습이 썩 달라 지지가 않았겠어?



"보셨죠? 더불어 하린 씨와 빨리 붙으라는 유쾌한 전언까지도 마다 하지 않으셨다 합니다. 비겁한 수 쓸 생각 하지 말고 정정당당히 붙어 오라 하면서 말이에요."


"하지 말라는 짓은 가장 골라서 하는구나!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지. 그래서? 루밀 신관께선 저런 버러지 같은 떠벌림에 차후 어떤 답을 하기로 하셨지?"


"아주 흔쾌히!"



옆구리 팔짱을 꼈던 아우의 오른팔이 서서히 그 몸을 일으켜 세우기로 했다. 그의 작은 검지 손가락 끝은 이제 천장 방향을 가리키기로 한다.


건방진 꼬맹이 놈의 도발에도 부드러운 미소로 응수 하여오는 미려한 여인의 지조 높은 기개란! 숱한 사내들이 그녀 뒤를 따르게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바탕이 바로, 이 위대한 어머니로부터 나오는 웅대한 포용력이라 할 수 있었다. 세상 만담꾼들로 하여금 지금도 입 모아 여자의 노래를 떠들게 하였던 힘은 과연 그녀의 높으신 위상이 여전한 재잘로 술자리 위에 기쁨을 걸어 놓았기 때문이어라.



"과연 말로만 유명한 분은 아니셨네 그래. 어지간한 사내놈 보다야 확실히 낫군!"



때 아닌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던 허리를 벽 뒤로 편히 기대길 희망하면서, 묘한 미소를 입가에 푹 띄우기로 하는 타지의 굵은 수염쟁이. 이미 만인의 연인이라 할 수 있었던 여인에게 구애의 입이 하나 더 느는 일에 대해 수염은 구태여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불이란 존재는 언제나 다른 무엇보다 빛이 나야만 했다 라는 주인의 격언을 잊은 것은 아니었으나, 타오르는 승리의 경쟁 보다는 내려오는 패자의 경외가 현재 남자의 몸을 더욱 데워 놓을 수가 있었기에. 나무가 유명하다던 마을 출신의 남자는 이처럼 장작거리가 되어 본다는 웃음쏘시개 역할 또한 아주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자처해낼 수가 있었다.



"노을이 질 때가 약속 시간이라 했었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빨리 자리를 일어나야겠어."



창 아래로 흐르는 불그스름한 기운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병실의 두통 환자. 그의 만성 질환도 이겨내가며 새로이 나타난 꿈을 확인하기 위해 빈약한 몸을 서둘러 일으켜 세우기로 한다.


백년 만에 찾은 유성우 쇼를 쏟아지는 잠결에 놓쳤던 그날처럼, 아쉬움의 눈물을 잔뜩 흘려 보이는 것은 열 살 때 겪었으면 이미 충분한 홍역이었다고 여긴 그의 어린 날의 의지가 이제 막 성장통을 일으키기로 한 것이다.



"그 또한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 맞춰 오겠다고 유리가 약속해줬거든요. 여기서 그녀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답니다."


"믿을 수 없는 여인의 말 때문에 언제까지 사랑을 넋 놓고 기다리겠느냐. 길 찾는 일엔 이 형님께서 도를 틔워 놓았으니 우리끼리 먼저 가도록 하자꾸나."


"안타깝지만 형님이 이 땅 최고의 지도꾼이라고 해도, 이번 목표로 한 산에는 절대 도달할 수가 없겠어요. 거긴 허락된 인물만이 출입 가능하다 하였으니까요."


"그러냐? 쯧, 그건 어쩔 수 없게 된 일이군. 하기야, 집행자께서 검 꺼내시는 일에 놀아나는 극인 양 웃음거리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결국 또 원숭이의 손을 빌려야만 하는가."


"원숭이라니요? 말 조심하세요, 형님. 여긴 그들, 방랑자가 주인 된 곳이랍니다. 조일 형님은 정말 유리와는 친하게 지내실 생각이 전혀 없으신 거예요?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는 몸이라구요?"


"지지? 그저 말괄량이 아가씨를 어여삐 여겨주는 것 뿐이겠지. 딸 자식 키우는 일처럼 말이다! 지금처럼 파릇파릇 예쁘실 적에야 허허 하고 웃어 넘겨 주겠다만... 글쎄다? 그 처자는 과연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이 땅의 존중 받는 존재로서 웃음을 남길 수 있었을까? 난 얼마 안 남았다고 본다."


"형님..."



형님의 오랜 고집을 동생의 여린 손으로 빼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착실한 아이의 한숨을 듣고 몰래 문 앞을 찾은 하늘의 푸른 사역께서는 순수함이 간직해온 간절한 바람 하나를 좁은 자리에 감히 이룸을 보고자 했다.



"것 참, 참으로 감사한 충언 일세. 뼈 속까지 울려 버리는 조언이야. 이 속 깊은 가르침에 대한 보답으로 당신은 여기서 조금 더 쉬고 있음을 택해도 좋아. 이 짐승님께서 친히 루밀 신관께 진언을 올릴 터이니 아무쪼록 부담 갖지 말고 본인 몸 돌보는 일에 온전히 힘을 기울이도록 해."


"뜬금없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리고, 문 두드리는 예절은 그새 잊어버리신 건가?"


"그렇네. 내 멍, 청, 한, 머리가! 그것까진 차마 고려를 하지 못하였나봐. 아아, 이를 어쩐담? 그래도, 당신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두뇌가 굉~장히 훌륭한 사내 분께서 방안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문 앞을 지켜줄 이 하나 모셔오는 일 정도? 그 정도는 이곳의 말괄량이께서도 당장에 해내실 수 있는 아주 손 쉬운 일이 될 테니까 말이야."


"왠 뚱딴지 같은 소리를 장황하게 늘고 있어? 드디어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그렇다면 어디 몸으로 직접 검증해 보지 그래? 나 유리 나일리아가 이곳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한 깊은 논증을 말이야. 그쪽의 잘나신 머리라면 자정이 지나기 전까지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실 테지. 아, 마침 저기 오시는군. 선배님, 바몬 선배님! 잠시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



하늘을 닮은 그녀의 당찬 부름, 이에 따라 기도 드리던 땅의 순례자가 기다렸다는 충실한 몸을 일으켜 세워온다. 활짝 열렸던 문의 입구는 곧 튼실함을 갖춘 인형 하나에 의하여 직사각형 액자 속을 모두 메워 놓기로 한다.


"무슨 일입니까, 유리?" 하고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창공에서부터 권위를 내려 오기로 하였으나 바몬이라 불린 자의 거대한 키 덕분에 꿀렁 거리는 굵다란 목젖만을 바라보아야 했던 추레한 갈색 머리 남자는 보이지 않는 심연의 공포를 느껴가며 열 살 배기 여자 아이가 된 일처럼 허벅지 위의 천을 양손 바닥에 꼭 부여잡아 보기로 했다.



"별건 아니구요, 여기 계신 일행 분들이 잠시 방을 비우게 되셨는데 몸이 불편한 분이 안쪽에 한 분 계시답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그분을 대신 돌봐주실 수 있으신지요? 아,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주고 받자며 여우 손짓을 해오는 파란 꼬리의 가녀린 행위, 그녀의 요염한 살랑거림에 커다란 갈색 곰은 자신의 통 큰 허리를 순간 앞으로 굽혀오기로 한다.



"히익!"



말 그대로 악의 흉상. 드러난 어둠이란 상상 이상의 거친 얼굴을 충격적으로 보여줘 왔다. 이제는 완전한 두려움에 빠지기로 한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은 어느덧 의젓한 서른 줄이 되어 보이기로 한 수염 친구와 함께 재빨리 이불을 뒤집어 써 오들 거리는 몸을 반대 벽쪽을 향해 돌려 세워왔다.



"이렇게 하시구요, 또 이렇게 해서..."



속닥속닥.



여우 여자와 심연 악마 사이에 주고 받는 말들이 몇 번 더 이어짐을 나타내고, "오!" "오오!" 하고 한 숫자만 외치기로 했던 5의 악마께서 이번 계약에 대해 완전한 이해를 하고 나자 커다란 가슴을 두 번 두드려 오는 걸로 알겠다 하는 고함의 성사를 흔쾌히 질러 놓기로 했다. 둘의 계약 내용을 살짝 들여다보자면 하나는 남자가 머리에 병을 앓고 있는 중증 환자요, 둘은 아픈 그가 치료 받는 것을 두려워해 계속해서 도망을 치려 들 참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외출을 허락하지 말아 달라는 일종의 불출 보호 계약이었다.



"자, 아가씨 도련님께서는 저를 따라 나서시지요. 곧 약속의 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참고로 이곳은 과거, 수행을 위하였던 방인 지라 모든 창들이 튼튼한 철살에 막혀져 있는 형국이오니 행여 그쪽으로 나갈 생각은 미리 접는 것이 좋겠다고 여긴 저의 자그마한 친절 되시겠습니다. 그럼, 부디 안녕히!"



쾅.



도망칠 생각은 추어도 하지 말라는 최후 통첩을 날리며 말괄량이 아가씨는 의기양양한 승리의 문을 쾅 소리 내어 닫아왔다. 그의 동생 말대로 이곳은 저들, 떠돌이들의 땅. 이때까지와는 다르게 그와 그녀 라는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입지는 서로가 정정당당히 맞붙게 됐다 라는 그러한 곧은 형세를 장소에 쉬이 드러내지는 않기로 한다.



"흑, 흑..."



때문에 다시는 흘리지 않을 것이라 여기었던 지난날의 아쉬운 별똥별을 남자는 재차 베갯 잎 위에 뜨거움으로 적셔 내고 만다.


기대라는 것은 이처럼 남녀를 불문하여 찾게 되지는 않았으며 또, 노소를 구분할 정도로 형편 좋게 오는 이가 절대로 아니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곳에 오기까지 심심치 않게 신관과 전사 간의 대결을 심장 곁에 두근대 보았던 부풀어 오른 꿈의 낭만 화가께서는 고지식한 후원자의 의지에 따라 여전히 꿈으로만 남기를 종이에 서명하며 덮여진 눈꺼풀 도화지 위에 같은 내용의 상상들을 힘 없이 이어 나가기로 한다.


그에게 백년 후 라는 다음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또 찾아와 줄 것이 분명하였다 라는 큰 누나의 어깨 두드림과는 달리, 위로를 예측 하여줄 따스한 품을 지닌 이가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




첫 만남. 놈과의 처음은 과연 어때했나?


몇 달 전 겪은 패배에 대하여 여자의 직관적인 머리는 모처럼 복기 하기를 갈망하였다.



'아냐, 틀렸어.'



허나, 눈에 비치지 못한 모습을 상상해 내는 일이란 직선적인 불빛에게 있어서는 썩 어울리지 못하였다 라는 추상 속 허울일 뿐. 애꿎은 그의 애검이 바닥을 향해 세 번 머리를 찍게 된 억울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다.



'......'



부족한 생각을 멈추기로 한 여자가 이번에는 거꾸로 잡은 무기의 날 끝을 조용히 응시하여 보기로 했다. 이것을 검날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뭉뚝한 질감만이 울퉁불퉁 튀어 나와 있는 쇳덩이 혹들에게서 잔뜩 전해져 내려 오기로 한 추세. 귀찮다는 이유로 날 한 번을 벼리지 않았으며 무게를 늘리겠다는 뜻으로 괴를 녹여 붙이기만 했던 몹쓸 엄마가, 용광로라는 배에 잉태하기로 한 끔직한 괴물이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었다.



─ 으으, 당장 가지고 사라져!



라고 외치는 무기 담당자의 모욕적인 언사까지 참아내 가며 몇 주 만에 유치장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기로 한 먼지 낀 아들 괴물. 못난 어미 곁으로부터 또 한번의 궂은 일을, 아들은 어미 대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기로 한다. 고결함으로 이루어진다 하던 대련에서 패배 하게 된 사람은 자신의 무기를 여신을 향해 반납하였던 것으로 수달 간 목검 수행만 하기로 하였던 일이 이곳에서의 맞는 규칙이 되었겠으나, 하루 바삐 저 무겁기만 한 못생긴 형체를 내쫓고 싶어했던 창고 주인은 이번 재대결을 핑계로 놈의 목줄을 얼른 주인에게 돌려 놓기를 결정하였다.


결과적으로 무기 담당자의 낮은 성문을 통과해볼 기회가 여인 아들에게는 더이상 통행증이라는 이름 아래 허락을 손에 쥐지는 못할 예정이었다.



"준비는 잘 하고 계셔?"



짤막한 인사 하나 없이 톡 쏘기만 하는 레몬의 신소리. 그 청량함의 주인을, 괴물의 어미는 너무나 잘 알 수가 있었기에.


한동안 가라 앉기만 했던 그녀의 눈은 모처럼의 활기를 띠기로 해 반가운 손님을 향한 즐거움을 서둘러 표시 하기로 했다.



"준비라 할 것이 있나? 수 싸움 할 정도로 머리 좋은 놈은 아니었다는 걸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말이라도 좀 하고 있었다 하시지 그러셔? 벌써부터 진 것이 아니라 한다면 말이야."


"아이고야, 또 잔소리하러 오셨습니까? 도움 될만한 이야기를 집어오신 것은 아니시구요?"


"나한테 뭐 맡겨 놨어? 내가 왜 너를 도와? 웃기네, 정말!"



역시나가, 역시나.


오늘도 마찬가지로 삐죽 대기를 결심한 놈의 입술은 과거, 여자의 어머니께서 그녀를 향하여선 한 대만 마음 놓고 패보고 싶다 라는 분통을 터뜨렸던 건에 대해 딸 아이 마음에 아주 충분한 이해의 심정이 들게 만들었다. 훌륭한 성품을 지녔다던 그녀의 어머니가 맞닥뜨린 상황에 비하자면 하린이란 딸이 맞이한 그나마의 다행은, 저 망할 고슴도치에게서 정 붙이기 전 한번 쯤은 원 없이 패볼 수 있었다 하는 강한 위안 일 것이다.



"그러지 말고 잘 좀 생각해 보셔. 나보다는 우리 아가씨가 훨씬 똑똑하실 것 아니야."



넉살 좋게 웃어 넘긴 다음 세대의 엄마, 그녀의 오랜 단짝도 구석에 밀어낸 채 뾰족 짐승의 몸통을 자신의 품 속에 끌어 당기기로 했다.



"......"



평소라면 놓으라 놓으라 소리쳤을 바늘 아가씨께서도 이제는 여자의 둔탁한 손짓에 그만 망할 버릇이 들고야 말았다. 놈의 다음 순서로는 분명 그녀의 딱딱하게 굳은 뺨을 자신의 하얀 볼을 향해 마구 비벼 댈 차례에 있었으며, 그 다음이란 반드시 귀 뒤쪽에 코를 박아와 거침 없던 숨을 원 없이 들이킬 예정이었다. 이 일륜의 과정들에 대해 수완 좋다 이야기 하던 뾰족 털의 감각은 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순서 모두를 피부에 기억할 수가 있었다.



"감각을 차단 시키는 약을 먹어보는 것은 어때? 꺼내지도 않은 상대의 검이 바닥에 찍히는 소리가 들려 왔을 때, 당신은 아무 이유 없이 바닥으로 쓰러지게 되었다면서? 마법쟁이들이나 쓰는 묘종의 술수를 놈이 부려왔다 라고 가정 해본다면 이것을 삼키는 것 만으로도 대결에 큰 변화가 찾아줄 것이야."


"음, 녀석이 놈들의 재주를 부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는 한데... 일단 속는 셈 치고 한 번 먹어보기로 할까?"


"당연히 그래야지! 백 번이라도 더 속아 나도록 해. 그래야 한 번 쯤은 이겨볼 것 아니겠어?"


"큭큭,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장 먹겠습니다요!"



꿀꺽꿀꺽.



우웩!



호기롭게 들이켜 본 용기에 비하여 내용물의 상당수 대부분은 바닥을 향해 쏟아져 내리게 됐다. 처음 마주한 신기원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녀의 속 목젖은 앞으로도 할 일 많다던 위장 님을 대신하여 마주한 쓰라림을 혼자 경험키로 한 것이다.



"야, 이걸 다 버리면 어떻게 해! 빨리 다시 주워 먹어, 이젠 없단 말이야!"


"우욱! 못 먹어, 못 먹어! 한 달 썩힌 계란도 이거보다는 낫겠어. 누구한테 속았길래 이런 걸 약이라고 돈 바꿔 왔어?"


"속은 것 아니야, 이건 진품이라고! 내가 직접 제조한 거란 말이야!"


"아가씨가 직접? 도대체 언제 이런 재주를 숨기고 있으셨데? 원래 요술쟁이 마을 출신이셨어?"


"내 귀를 봐봐. 어딜 봐서 내가 인간 놈들이랑 겹쳐 살 것처럼 보인다는 거야? 이건 내 친구가 가르쳐 준 것이라고."


"엉? 그 도련님이?"


"미쳤어? 내가 왜 그 자식한테 가르침을 받아? 다시는 그딴 소리 하지마!"


"그래? 그럼 그 친구가 대체 누군데?"


"있어, 그런 사람. 당신은 몰라도 돼!"


"참나... 아무튼 난, 이건 더 못 먹겠다. 몇 방울 속에 삼킨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워."


"망할 놈, 져 놓고 또 칭얼대기나 해봐. 그때는 정말 본때를 보여주고야 말겠어!"


"아유, 그러십니까? 그것 참 화풀이로는 충분 하겠습니... 우욱!"



찌그러지는 아이의 얼굴을 향해 키득 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였던 것도 잠시, 불쌍한 임상 실험자께선 거슬러 올라오는 독향기에 같은 느낌의 구역질을 바닥 근처에 뱉고야 만다.



"그나마 남은 놈은 속까지 잘 들어간 모양이네. 어때, 감각이 좀 줄어오는 것 같아?"



용한 의사나 내뱉을 법한 말을 지껄이는 하얀 머리 연금술사는 조금이라도 약효가 나타난 것에 대해 약간의 안도감을 표하기로 한다. 그녀의 절친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처음으로 내주게 된 아주 의미 있는 선물이기에, 아무리 당찬 소녀의 기세라 할지라도 담긴 정성이 바닥에 버려지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되진 못하였다.



"으으, 그래. 아주 핑핑 도는구만! 이게 제대로 된 효과가 나타난 건가?"


"원래라면 픽 쓰러진 후에 멀쩡히 다시 일어났어야 하는데.... 희석되어 나타나는 기현상인 것 같아. 그래도 조만간 나아질 거야, 아마도."


"......"



상대방에 대한 믿음. 아니, 이기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함. 본인과 어울리지 않던 그 소망함이 오늘날 찾게 된 루밀과의 재대결 기회를 이처럼 뻥 날려버리게 된 것은 아닐런지... 몽롱해지는 의식의 뒤편에서 하린은 소녀의 말을 듣게 된 것을 몰래 후회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부족한 여자의 소견과는 달리 소녀가 보여준 연금술이란 상당히 훌륭한 실력으로써 객관적 평가를 받을 수는 있는 정도가 되어 주었고, 약효 또한 꽤나 유효하리 만큼 여인의 몸에 작용되는 중에 있었다.


물론, 이런 작은 밑천 하나만 가지고 서는 사상 최강이라 불리는 자의 검과 맞붙이기엔 질적인 측면에서 턱 없이 부족하였다 라는 것이 붉은 머리 측의 패배를 예상케 하는 관중들의 가장 큰 관점 거리였으며, 다만 혼자서 였다면 절대 떠올릴 수 없는 특별한 방법 하나를 구해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번 대결은 꿋꿋한 도전자에게 있어 상당히 주요한 의미를 두게 만드는 아주 색다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정성 들여 만든 소녀의 묘약이 어떤 효험을 보게 되었는 지는 잠시 후의 대결에서 천천히 길을 만나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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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심부름(두 아이의 이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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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검의 회고록 6 24.09.14 3 0 26쪽
22 검의 회고록 5 24.09.07 4 0 29쪽
21 검의 회고록 4 24.08.31 7 0 26쪽
20 검의 회고록 3 24.08.24 8 0 25쪽
19 검의 회고록 2 24.08.17 8 0 24쪽
18 검의 회고록 1 24.08.10 11 0 24쪽
17 시작된 심판 24.08.03 9 0 25쪽
16 묘한 제안 24.07.27 8 0 34쪽
15 흔들리는 저울 24.07.20 7 0 24쪽
14 얼굴에서 드러나는 진실 24.07.13 7 0 22쪽
13 자매를 찾은 두 번의 패배 24.07.06 5 0 26쪽
12 완벽함의 투우사 24.06.29 8 0 25쪽
» 똑 같은 후회, 색 다른 결과 24.06.22 8 0 24쪽
10 닮아 있는 앙숙 24.06.15 10 0 27쪽
9 산군의 약속 24.06.08 9 0 26쪽
8 어린 신부와 어설픈 신관 24.06.01 9 0 26쪽
7 가짜 부부 24.05.25 9 0 26쪽
6 붉은 갈기 24.05.18 10 0 25쪽
5 산뜻한 시작 24.05.11 12 0 22쪽
4 계약은 천천히 24.05.04 10 0 23쪽
3 편지의 뿌리를 찾아서 24.04.27 9 0 28쪽
2 찾아온 손님 24.04.20 10 0 22쪽
1 남아서 집을 지키는 것 24.04.15 20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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