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중력장 집속포
장진수 박사는 무사히 귀환한 시험 비행사와 지구 우주선을 보고 퇴근 준비를 했다.
개인 짐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서는데 보안요원 둘이 다가왔다.
“박사님, 오늘 수고 많으셨지요?”
“뭐 늘 그렇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저희가 박사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상부의 지시입니다.”
“넷? 나는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요!”
“박사님은 너무 중요하신 분이라서 모든 위험요소로부터 보호하라는 지시였습니다.”
그때 장진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보안요원들의 안내를 받아주십시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장진수 박사가 모처로 안내되고 나서 지구방위사령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 박사님, 요즘 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박사께서는 대단히 큰 성과를 내고 있으시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위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정보기관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최대한 편의를 보장하겠으니 당분간 저희의 보호를 받아주십시오.”
“그렇지만 이게 보호입니까? 아니면 구금입니까?”
장진수 박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을 위해서 이미 집을 떠나 장기 출장 상태인데 여기에 특별한 보호를 추가하겠다니 장진수 박사로서는 개인적으로 인내를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전투선의 달 왕복 시험 비행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비밀에 부쳐졌다.
엑소스켈 측에 이런 사항이 알려지는 것이 어떠한 위험요소로 돌아올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진수 박사는 더욱 중요한 과제를 부여받게 되었다.
포토니움 엔진을 개발해서 전투용 우주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전투선에 어떠한 무기를 장착할 것인지는 화룡점정과도 같은 일이었다.
장착 무기의 파괴력이 약하다면 그 어떤 적이 이 전투선을 두려워하겠는가?
레이저포의 출력을 높이는 일은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그러나 레이저포로 엑소스켈의 대형 전투함에 결정적인 피해를 주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국소적인 피해를 줄 수는 있지만, 전투선의 광범위한 기능을 상실하게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개념의 우주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면 지구의 우주 전쟁 역량을 비대칭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장진수 박사에 대한 개인적인 보호조치가 강화된 데에는 그의 차기 개발 과제와 관련성이 깊었다.
지구방위사령부에서 평가하기에 포토니움 엔진의 개발은 엑소스켈이나 갈릴레이의 기술을 따라잡는 연구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장진수 박사의 우주 전투선용 신무기의 개발 제안은 포토니움 엔진 개발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부여해야 할 사항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장진수 박사는 포토니움 엔진의 물리학적 원리를 정립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 원리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그가 제안한 무기는 중력장 집속포였다.
순간적으로 중력장을 집중시킴으로써 대상 물체의 내부를 지지하는 구조체들의 균형을 깨트리고 이로 인해 대상 물체를 내부부터 함몰시키는 원리이다.
그리고 중력장 집속포의 또 다른 효과는 중력장의 세기를 특정 주파수로 진동시켜서 대상 물체 내부의 어떤 구성품에 공진 효과를 주어 파괴할 수도 있었다.
중력은 우주의 모든 물질과 물체를 통과할 수 있다.
포토니움 엔진의 구조와 원리를 이용해 중력장 집속포를 개발할 수 있다면 인위적으로 중력장을 집중시키거나 진동시키는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
거대한 우주 전함도 그 내부로부터 붕괴를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지구방위사령부는 중력장 집속포의 아이디어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투선 시험 비행 성공 후 지구 전투선 개발 책임자인 장진수 박사의 인터뷰를 기다렸다.
그는 이미 지구를 구원할 영웅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의 우주와 물리학에 대한 탁월하고 깊은 이해가 지구의 능력 그 자체라는 여론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지구방위사령부에서 장진수 박사는 자신의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는 발표만 있었다.
억측이 난무했지만, 지구방위사령부는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억측은 억측을 낳는다.
장영길로서도 더 이상의 억측을 듣고 있기가 불편했다.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돌리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장영길 대사는 지구방위사령부를 찾아가서 제임스 사령관 면담을 요청했다.
장영길 갈릴레이 대사의 정치적 위상은 이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갖고 있었다.
제임스 사령관은 즉각 면담 요청에 응했다.
“대사님께서 이렇게 소란스러운 곳까지 찾아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무슨 말씀을요, 요사이 정말 바쁘시겠습니다.”
“아닙니다. 대사님께서 직접 찾아주신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하하, 역시 바쁘신 분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장진수 박사에 대한 기대는 지구뿐 아니라 갈릴레이 행성으로서도 주요 관심사입니다.”
“혹시 장진수 박사가 요즘 왜 보이지 않는지 답변을 얻을 수 있을까요?”
“장진수 박사가 갈릴레이 행성에서도 관심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이신지요?”
제임스 사령관은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했다.
“장진수 박사의 활약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인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연구 성과가 지구는 물론이고 갈릴레이 행성의 안전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그렇군요. 장진수 박사의 연구 성과가 갈릴레이 행성 측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말씀인가요?”
장영길은 순간적으로 제임스 장군의 노회한 말솜씨에 걸려들었다는 후회를 했다.
“일반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장진수 박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장진수 박사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장진수 박사를 직접 만나보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건 곤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장영길로서는 점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갈릴레이 행성은 지구의 안전을 위해 포토니움 엔진에 관한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 당사자가 장진수 박사입니다.”
“그러니 저는 장진수 박사와의 직접적인 면담을 요청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대사님 뜻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현재 너무나 절박한 일정 때문에 모든 연구원의 외부 접촉이 금지된 상황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저의 처지를 이해하여 주십시오.”
“이해할 수 없군요. 이런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입니까?”
“저 역시 정확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지구방위사령부를 떠나며 장영길 대사는 불쾌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면담 요청을 거부한 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제임스 사령관의 표정과 태도에서 상대방을 시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영길 대사 자신과 장진수를 의심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장영길은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이렇게 분노를 느끼는 경험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무엇인가가 크게 불일치한다는 점이 자신을 화나게 했다.
장진수와 자신의 만남이 의도적인 이유에 의해서 거부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장영길의 분노는 현재의 상황을 정치적인 이슈로 부각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장영길은 유엔 사무총장 등 산하기관을 돌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지구방위사령부의 운영이 폐쇄적이며 일부 국가에서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불만을 피력했다.
장영길의 이러한 움직임은 언론에도 노출되게 되었으며 인터뷰 요청까지 들어왔다.
장영길이 바라던 바였다.
장영길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갈릴레이 행성으로서는 지구와의 협력을 재고할 수도 있다는 여운까지 표시했다.
지구방위사령부가 일부 국가에 의해서 독단적으로 운영된다는 말은 휘발성이 높았다.
세계 각국의 여론은 다시 분열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구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일부 국가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지구 방위에 관련된 모든 개인의 지대한 관심사이기도 했다.
지성렬 박사는 장진수 박사와 천문대에서부터 같이 근무하던 동료였다.
장진수 박사가 포토니움 엔진 개발팀을 이끌면서 같이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토니움 엔진 개발 과정에서 개발 방향에 관한 견해차로 얼마 전부터는 관계가 서먹해졌다.
어쨌든 포토니움 엔진의 개발은 일단 성공의 길에 접어들었고
지성렬 박사는 다시 소백산 천문대로 복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김필립 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지 박사, 요즘 장진수 박사 만난 적이 있습니까?”
“아니, 웬걸요. 전혀 만나 적이 없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새로운 팀을 만들어서 나갔다는 말이 무성합니다.”
“말이 지구방위사령부지 지금은 특정 국가의 사령부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천문대로 한번 방문해주겠어요? 할 말도 있고.”
10여 일 후 지성렬 박사는 소백산 천문대로 김필립 부장을 만나러 갔다.
“부장님, 건강해 보이십니다.”
“뭔 소리를,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이고, 아직 한창이십니다. 하하하.”
“그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지구의 단합이 깨지게 될 것 같아.”
“게다가 말인데, 장영길 대사의 등장 이후, 자네는 좀 수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사실 내가 장진수 박사와 장영길 대사의 DNA 분석을 해보았는데 참 이상한 결론을 얻었어.”
“아니 어떻게 생체 샘플을 채취하실 수 있었습니까?”
“장진수 박사야 같이 근무했으니까 어렵지 않았고, 장영길 대사는 저번에 천문대 방문 시 채취할 수 있었다네.”
“그래 결과가 어땠습니까?”
“놀라지 말게, 두 사람은 부자지간인 것으로 나타났어.”
“네? 설마요.”
“아니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지성렬은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장진수 박사의 포토니움 엔진에 관한 이론도 사실은 지구의 학문하고는 좀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던가?”
“네,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갈등을 좀 겪었지요.”
“음, 그랬군.”
지성렬 박사는 혼란스러웠다.
장영길과 장진수가 부자지간이라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고,
김필립 부장은 무슨 연유로 두 사람의 DNA를 분석했다는 말인가?
혼란스러워하는 지성렬에게 김필립 부장이 말했다.
“내부적으로 숨겨진 진실이 있다면 과연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일단 개발팀에 돌아가서 일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십시오.”
두 사람은 비슷한 소외자로서, 현상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묘한 의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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