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오시리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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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슬로상일
그림/삽화
천슬로상일
작품등록일 :
2024.05.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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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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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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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죽음과 소멸

DUMMY

장영길과 김필립은 오랫동안 무중력에 지친 몸을 이끌고

푹신한 잠자리에 몸을 눕혔다.

가볍고 따뜻한 이부자리의 느낌이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듯했다.


잠자리에 누워 장영길은 생각했다.

궤도에서 내려다보았던 모습보다, 막상 내려와 보니 퓨지티 행성은 더 아름다웠다.

보는 시각에 따라 세상은 이렇게 달리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나 갈릴레이 행성은 익숙한 곳이었다.

익숙한 곳에서는 보이는 것이 예측 가능했기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도감과 함께 피로가 몰려왔다.


장영길은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김필립이었다.


“피곤하셨군요. 10시에 버섯 따러 갈까요?”

“늦잠을 잤습니다. 버섯 좋습니다.”


들판에 나서니 아침 햇살에 이슬이 빛나고 있었다.

“아, 저기 있군요. 이것이 맛있고 향기로운 버섯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에서 버섯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버섯을 딸 때는 이렇게 땅속의 균사가 다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머리만 따는 게 좋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주 능숙하게 잘하시는군요.”

“퓨지티 행성의 버섯은 갈릴레이와 엑소스켈에서도 아주 좋아합니다.”


“미처 몰랐습니다. 퓨지티에서 버섯이 이렇게 많이 나는지.”

“퓨지티 행성은 농산물과 버섯을 팔아서 갈릴레이와 엑소스켈에서 필수품을 사옵니다.”


“엑소스켈에서도 사오나요?”

“네, 상황은 늘 변합니다. 퓨지티 사람들은 유연하게 삽니다.”


버섯이 들어간 요리는 모두 맛있었다.

맛과 향이 어우러진, 멋있게 맛을 낸 예술 작품 같았다.

점심을 마치고 김필립이 장영실에 대해서 말했다.


“적응이 웬만큼 진행되면 언제 장영실 아피스의 묘지에 한번 갈까요?”

“장영실 아피스의 묘지가 퓨지티에 있습니까?”

“네, 제가 만들었습니다.”


“어서 가보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건강상 안 좋을 수도 있으니까요.”

“먼저 일상을 회복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겠군요. 아직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장영길에게 지금의 피로감은 오히려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김필립은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장영길은 포토니움 엔진 개발을 위한 구상에 들어갔다.

퓨지티 행성에서 어떤 목적으로 새로운 포토니움 엔진을 원하는지 조사했다.


장영길이 김필립에게 물었다.

“새로운 포토니움 엔진은 어떤 용도로, 그리고 어느 정도 추진력의 엔진을 필요로 하십니까?”


“글쎄요, 질문이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목적이 전투용이 많겠습니까, 아니면 상업용이 많겠습니까?”


“글쎄요, 상업용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장영길로서는 김필립의 대답이 이해되지 않았다.

엑소스켈과 거래를 하면서 전투용보다 상업용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장영길의 신경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일은 우주선을 타고 퓨지티 행성에 매장된 포토니움에 대한 원격탐사를 나가볼까요?”

“저도 같이 타고요?”

김필립이 되물었다.


“네, 저는 이곳을 잘 모르니까 안내해 주셔야지요.”

“그렇군요.”


두 사람은 장영길의 우주선을 타고 퓨지티 행성의 여러 곳을 비행했다.

“화산 활동이 멈춘 지 오래돼서 그런지, 그렇게 유망한 채굴 후보지가 많지는 않네요.”

“그렇군요. 그럼 포토니움을 구하기 위해서 다른 별로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김필립 님께서는 요즘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십니까?”

“저는 원래가 생물학자였기 때문에 지구에서 구해온 천적용 곤충들에 관해서 연구합니다.”


“이곳 농사에 도움이 많이 되겠네요.”

“하하, 그랬으면 졸겠습니다.”


퓨지티 행성의 짧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

장영길은 김필립의 우주선을 타고 농업 지대에 대한 원격 탐사에 나섰다.

적당히 구획이 나누어진 농경지는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장영길 님,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네, 마음이 다 편안해집니다.”


“금년은 기후도 좋았고 병충해 발생도 적어서 수확량이 많을 것 같습니다.”

“천적 곤충들이 열심히 일을 했나요?”

“그러게요, 하하하.”

두 사람은 같이 웃었다.


“포토니움 엔진 개발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설계는 끝났고, 이제 프로토타입 개발에 들어갑니다.”

“벌써요? 역시 전문가십니다.”


“어떻습니까? 장영실 묘지에 한번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네, 그러지요. 개발 일에 빠져있어서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이상하게, 점점 피로감이 가중되는 것 같습니다.”

“오시리스에게 과도한 흥분은 수명을 단축합니다.”

장영길은 김필립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장영실 아피스에 관한 생각으로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장영실 아피스에 관한 생각은 갈릴레이 아피스들에 대한 적개심을 되살아나게 했다.

그날 밤 장영길은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며칠 후, 김필립은 그의 우주선으로 장영길과 같이 장영실 아피스의 묘소를 찾았다.

늦은 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가 멀어져 갔다.


장영길은 가벼운 기침을 하며 침통한 표정으로 묘비를 쳐다보았다.

“장영실 아피스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아피스 암살조의 조준 사격으로 피격을 당한 후 즉시 우주선으로 피했지요.”

“그러나 생명유지장치가 너무 심각하게 파손되어서 손 쓸 틈조차 없었습니다.”


“무슨 말을 남기지는 않았나요?”

“어머니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장영실은 세종 시대에도 출신의 문제로 괴로워하기도 했었지요.”


“그런 장영실을 훌륭하게 키운 사람이 어머니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를 아시나요?”

“알지요.”


“훌륭한 처자였습니다, 내가 흠모했던 적도 있었지요. 허허.”

“네?”


“장영실의 아버지는 나의 동료 오시리스였습니다.”

“네? 정말이요?”


장영길은 말을 잇지 못하고 놀란 얼굴로 김필립을 쳐다봤다.

“그 오시리스는 갈릴레이로 돌아간 후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장영길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 오시리스가 지구 장영실의 아버지였다는 말씀인가요?”


“네, 장영길 님은 오시리스의 자식인 인간 장영실의 그다음 오시리스인 셈입니다.”

“아니 그럼 조선의 장영실이 오시리스의 아들이었고, 저는 그 장영실의 오시리스라는 말입니까?”


장영길의 놀란 가슴은 그 어떤 말도 못하고, 자신을 관장하는 생명유지장치가 한계치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장영실을 줄곧 후원했었고 또 장영길 님, 당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장영실은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뛰어난 오시리스의 자질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장진수는 당신으로부터 훌륭한 자질뿐 아니라 지식까지 이어받았습니다.”

“앞으로 지구인들은 장진수의 지식을 이용해서 엑소스켈과의 전쟁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김필립이 지난 세월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언처럼 말했다.


장영길이 작은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그는 혼돈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주에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필립이 되물었다.


장영길은 대답하지 못했다.


“퓨지티에 사는 오시리스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일을 겪게 되었지요.”

“우리들은 어떤 일이든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갈릴레이이거나 엑소스켈이더라도 부분적으로 무리는 기꺼이 극복하고 계약을 맺습니다.”


장영길의 눈은 왜 그랬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이 순간 장영길은 온몸의 힘이 빠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김필립은 재빨리 장영길을 부축해서 우주선으로 옮겼다.

그의 우주선 안에는 모든 의료용 장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는 또 하나의 눈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장진수가 양자 정보 전송 기술로 보낸 정찰 드론이 현장 상공에 떠 있었다.

그들의 높지 않은 상공에서 지구에서 보낸 양자 정보 드론이 이 장면을 녹화하고 있었다.


장진수가 보낸 정찰 드론은 장영길이 쓰러지는 장면을 목도했다.

그러나 김필립의 우주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장영길은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장영길이 지금 생각하는 것은 죽음과 소멸의 차이였다.

자신이 본디부터 오시리스의 자식이라면 지금 그는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영길은 이제 와서야 자신의 탄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한소희가 말한 무량수가 무엇인지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헛된 생각 같았다.


김필립이 말했다.

“얼마 전부터 당신의 생명은 다른 오시리스들처럼...”

“수명을 다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신이 원한다고 하면,”

“당신의 신경망을 영구 보존 처리할 수 있습니다.”


“보존처리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다른 인간의 몸을 빌려 오시리스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기억의 상당 부분은 잃어버릴 것입니다.”


“나의 육신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장영실의 묘소에 같이 묻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김필립 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었나요?”

“아니요, 하지만 장영실을 장영실 아피스와 장영길 오시리스로 나누는 작업을 한 사람이 저였습니다.”


“네? 아니...”

장영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주에는 옳고 틀린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소멸합니다.”


김필립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장영길이 눈을 감았다.


김필립은 장영길의 신경망 적출 작업을 시작했다.

장영길의 목 부분을 절개하고 전원 스위치를 내렸다.

그리고 안면부로 가는 혈관의 연결을 끊었다.


마지막으로 김필립은 장영길의 신경망이 들어있는 두상을 분리했다.

김필립은 장영길의 두상을 용기에 담아 보존 처리했다.


김필립은 장영길에 관하여 호의를 갖고 있었지만 때로는 자신의 지적 능력과 비교해서 장영길을 부러워하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질투하기도 했었다.

그런 장영길의 머리가 지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이 순간이 김필립의 마음에 만감을 교차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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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제55화 공포 군무 24.09.06 16 0 11쪽
55 제54화 인공신경망 곤충 24.08.30 29 0 12쪽
54 제53화 지구를 향해서 24.06.08 22 1 11쪽
53 제52화 증오 24.06.07 18 0 10쪽
52 제51화 케플러 기습 작전 24.06.06 21 0 11쪽
51 제50화 미끼 24.06.05 17 0 11쪽
50 제49화 발판 24.06.04 1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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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47화 생각하는 존재 24.06.03 18 0 10쪽
47 제46화 음모 24.06.02 18 0 10쪽
46 제45화 배신자 24.06.01 20 0 10쪽
45 제44화 사령관 해임 24.06.01 20 0 10쪽
44 제43화 먹이 상자 +2 24.05.31 20 0 10쪽
43 제42화 뛰는 자와 나는 자 24.05.30 17 0 11쪽
42 제41화 흐르는 눈물 24.05.30 21 0 11쪽
41 제40화 살인자 24.05.29 18 0 11쪽
40 제39화 숨겨진 기록 24.05.29 19 0 10쪽
39 제38화 환생 24.05.28 20 0 11쪽
38 제37화 두상 24.05.28 18 0 10쪽
» 제36화 죽음과 소멸 24.05.27 18 0 10쪽
36 제35화 연결 24.05.27 20 0 10쪽
35 제34화 회상 24.05.26 20 0 10쪽
34 제33화 분노 24.05.25 20 0 11쪽
33 제32화 프로메테우스 24.05.24 23 0 11쪽
32 제31화 장영실 24.05.24 22 0 10쪽
31 제30화 카이퍼 전투 24.05.23 24 0 10쪽
30 제29화 오르트 전투 24.05.23 21 0 11쪽
29 제28화 행성 전쟁 24.05.22 23 0 11쪽
28 제27화 죽음 다음 24.05.22 22 0 11쪽
27 제26화 무량수 24.05.21 22 0 11쪽
26 제25화 중력장 집속포 24.05.21 24 0 11쪽
25 제24화 지구 전투선 24.05.20 21 0 12쪽
24 제23화 초전 24.05.20 21 0 12쪽
23 제22화 은둔의 목적 24.05.19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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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20화 우주선 출현 24.05.18 23 0 10쪽
20 제19화 더듬이 24.05.17 24 0 10쪽
19 제18화 실마리 24.05.17 25 0 10쪽
18 제17화 우주 시대 24.05.16 22 0 10쪽
17 제16화 신인류 24.05.16 25 0 10쪽
16 제15화 나는 인간이다 24.05.15 29 0 11쪽
15 제14화 재회 24.05.14 25 0 10쪽
14 제13화 파도 24.05.14 2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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