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오시리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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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슬로상일
그림/삽화
천슬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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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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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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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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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회상

DUMMY

장영길의 분노는 괴로움을 더해갔다.

갈릴레이의 아피스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폭발했다.

매 순간, 분노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누구인가?’

이런 생각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떠올랐다.


지금의 그리움은 그 옛날 자신에 대한 애착인가?

자신의 분신에 대한 그리움인가?


장영실 아피스가 사라진 후 장영길 오시리스는 공허함에 빠져들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도 장영실 아피스처럼 갈릴레이의 배신에 직면해 있다.


갈릴레이 원로원은 장영길을 그들의 대사로 임명했다.

그러함에도 기습적인 체포를 시도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처사였다.


장영길이 노력했던 지구와의 선린 관계조차도 위선이었다는 말인가?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인가?

가족과의 만남조차 못하고 이렇게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갈릴레이 행성의 총에너지 필요량에서 장영길이 기여하는 부분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들은 왜 나를 버리려 하는가?


도대체 그들의 본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장영길은 자신의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시키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가벼운 운동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이상의 분노 스트레스는 자신을 파괴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장영길은 한소희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했다.

그날 장영길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라는 음악을 좋아하던 시기였다.


장영길은 갈릴레이 행성에서도 무지개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무지개는 이편과 저편을 연결한다고 생각했다.


장영길 오시리스와 장영실 아피스는 구조적으로 기억을 공유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알았고, 서로를 그리워했다.

장영길은 무지개 너머 누군가와 자신이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보로부두르에서 한소희와 연결된 것도 ‘Somewhere Over the Rainbow’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한소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래된 노래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아, 네.”

장영길은 깜짝 놀라서 말을 제대로 못했다.


“네, 올드 뮤직 팬이라서요.”

사실은 장영길도 조금 전부터 한소희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장영길은 왜 한소희가 눈에 들어왔는지 모른다.

같은 한국인의 외모라는 간단한 이유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 떠올랐다.


“한국에서 오셨나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 죄송합니다. 대답이 좀 이상했네요.”


한소희는 재미있다는 듯이 장영길을 쳐다봤다.

쩔쩔매는 그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때 안내원이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차이점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이곳은 북방불교 형식이라고 했다.

보로부두르의 구조는 불교의 만다라를 구현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기단은 욕망의 세계이고 그 위 다섯 층의 테라스는 ‘색’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위의 원형 테라스는 ‘공’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했다.


안내원이 물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을 아느냐고.

무엇인가 순환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정작, 이 말에서 순환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이지?

나 자신이란 말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형 테라스에 올라 수투파를 둘러 보았다.

수투파에는 부처님이 앉아계셨다.

그런데 어떤 수투파에는 부처님이 안 계셨다.


어떤 이유로 망실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저 모습이 ‘공’을 나타내는 것 아닌가?


장영길은 생각했다, 자신의 신경망도 최초에 ‘공’의 상태였다고.

그런 ‘공’에서 자료가 축적되고 수많은 관계가 형성되면서 어떤 추론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색’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장영길은 불교의 이 이야기가 자신의 생각 구조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대화가 떠올랐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세요?”

“그러다가 넘어지시겠어요. 호호호.”

한소희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뭐 하는 분이세요?”

“아, 네. 일종의, 날아다니면서 자원탐사하는 사람입니다.”

“날아다니면서 자원탐사를 한다니 참, 재미있겠네요.”


“여기는 언제 오셨어요?”

“한 달 정도 됐습니다만 오늘은 관광이나 하면서 쉬고 있습니다.”

한소희의 당돌한 말투가 싫지 않았다.


장영길은 이 말을 하며 자신에게 의도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소희와 저녁 식사라도 같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행 오셨나요?”

장영길이 물었다.


“네, 친구들과 여행 왔는데요, 오늘은 족자카르타에서 머뭅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쉐라톤 무스티카에 머물고 있는데요, 그 쪽은...”

“어머나, 같은 호텔이에요.”


이렇게 두 사람은 만났고, 그날 저녁 유쾌한 식사를 했다.

장영길은 그날 비어있는 수투파에 관한 말을 했다.

비어있는 수투파가 자신 같았다고 했다.


한소희가 놀란 듯 장영길을 바라봤다.

“비어있다고 생각하세요?”

“네, 저의 생각은 비어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마음이 비어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생각과 마음이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누군가를 그리워하시나요?”


장영길로서는 그다음 말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날 이후로 장영길에게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날 이후 장영길은 한소희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신의 신경망이 이런 경향을 보여준다는 것에 자신도 놀랍게 생각했다.


한소희가 서울로 돌아가고 그리움은 더 커졌다.

우주선으로 한국까지 가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주선을 타고 서울 하늘에 나타날 수는 없는 일이다.


면밀한 검토 끝에 비교적 한적한 한반도 동해안의 해변을 찾았다.

우주선을 바닷속에 주기해 놓고 필요할 때 탑승하는 방법을 이때 고안했다.


그리고 이어진 한소희와의 만남은 꿈만 같았다.

어느 날 한소희가 말했다.

자기를 안아보라고.


조용히 밀려드는 중력과 같았다.

영원히 우주를 관통할 것 같은 중력과 같았다.

한소희와 장영길은 서로를 원하고 당겼다.


*


그리움은 분노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장영길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퓨지티 행성을 방문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갈릴레이 행성에서는 전략적 계산에 따라서 자신을 수색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장진수의 효용 가치가 커질수록 더욱 자신을 찾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영길을 찾을 이유는 크지 않다.


장영길 스스로 이제는 자신의 효용 가치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더 생존할지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신경망에 에너지가 공급되는 한,

자신의 생명유지 장치가 작동하는 한,

장영길의 신체는 생명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과연 언제까지일지는 모른다.

언제까지 살지를 모른다는 것과 무량수는 다르다.


그날 밤 한소희는 말했다.

“‘공’에 대해서 생각하신다면 저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죽음이란 소멸인가요?”

“아니요.”


“마치 ‘공’이 생각의 시작인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죽음이란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소멸과는 다르다는 말씀이시군요.”


“죽음은 태어난 것에 대한 말이지요.”

“그럼 소멸이라는 말이 더 넓은 뜻이겠네요.”

“그렇게 되는군요.”


“저는 소멸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소멸이 두려우신가요?”

“그다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왜 그렇지요?”

“생명을 받았으니 죽음도 받아들여야지요.”


“죽음은 생명과 연결된 말이군요.”

“우주적 소멸 다음에도 생명이 있을까요?”


“당연히 있겠지요.”

장영길은 이 말에 위안을 받았다.


장영길의 신경망은 이때의 위안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우주적 소멸 다음에 생명이 있을지 회의감이 오는 날도 있었다.


장영길은 한소희를 만나고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구에서의 생활은 감정의 폭을 넓혀나가는 바탕이 되었다.


*


지구 연도 2074년 4월 12일, 장영길은 퓨지티 행성으로의 머나먼 길을 날아가고 있다.

오랜 침묵을 깨고 김필립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갈릴레이 전함으로부터 어떤 추격대도 오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생각을 그렇게 하셨습니까?”

“처음에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불타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셨군요.”


“네, 저는 무지개를 좋아합니다.”

“장영실 아피스와 저를 연결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퓨지티 행성에도 무지개가 뜨나요?”

“여름에는 나타납니다.”


“퓨지티 행성은 어떤 곳입니까?”

“당분간은 쉬시고, 그다음의 일은 그때 생각하시지요.”


장영길은 김필립과의 통화 후에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앞으로 그의 앞날과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포토니움 엔진의 개발은 그에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장진수를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소희가 자신에게 남긴 말은 무량수였지만, 한소희의 뜻을 확신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동안 괴롭히던 생각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신경망은 이렇게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우주선 안에는 이미 앞으로 처리해야 할 자료가 풍부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포토니움의 채굴과 이용이다.

자신은 날아다니며 자원을 탐사하는 오시리스였다.

그리고 포토니움 엔진의 개발이 가능한 오시리스이다.


지금 이곳에 한소희는 없지만,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의 미래에 그의 아들 장진수와 며느리, 손녀 장새롬이 있다.


장영길은 다시 일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우주의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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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제55화 공포 군무 24.09.06 16 0 11쪽
55 제54화 인공신경망 곤충 24.08.30 29 0 12쪽
54 제53화 지구를 향해서 24.06.08 22 1 11쪽
53 제52화 증오 24.06.07 18 0 10쪽
52 제51화 케플러 기습 작전 24.06.06 21 0 11쪽
51 제50화 미끼 24.06.05 17 0 11쪽
50 제49화 발판 24.06.04 17 0 10쪽
49 제48화 생태계 24.06.03 17 0 10쪽
48 제47화 생각하는 존재 24.06.03 18 0 10쪽
47 제46화 음모 24.06.02 18 0 10쪽
46 제45화 배신자 24.06.01 19 0 10쪽
45 제44화 사령관 해임 24.06.01 20 0 10쪽
44 제43화 먹이 상자 +2 24.05.31 20 0 10쪽
43 제42화 뛰는 자와 나는 자 24.05.30 17 0 11쪽
42 제41화 흐르는 눈물 24.05.30 21 0 11쪽
41 제40화 살인자 24.05.29 18 0 11쪽
40 제39화 숨겨진 기록 24.05.29 19 0 10쪽
39 제38화 환생 24.05.28 20 0 11쪽
38 제37화 두상 24.05.28 18 0 10쪽
37 제36화 죽음과 소멸 24.05.27 17 0 10쪽
36 제35화 연결 24.05.27 19 0 10쪽
» 제34화 회상 24.05.26 20 0 10쪽
34 제33화 분노 24.05.25 19 0 11쪽
33 제32화 프로메테우스 24.05.24 22 0 11쪽
32 제31화 장영실 24.05.24 22 0 10쪽
31 제30화 카이퍼 전투 24.05.23 24 0 10쪽
30 제29화 오르트 전투 24.05.23 21 0 11쪽
29 제28화 행성 전쟁 24.05.22 23 0 11쪽
28 제27화 죽음 다음 24.05.22 22 0 11쪽
27 제26화 무량수 24.05.21 22 0 11쪽
26 제25화 중력장 집속포 24.05.21 23 0 11쪽
25 제24화 지구 전투선 24.05.20 21 0 12쪽
24 제23화 초전 24.05.20 20 0 12쪽
23 제22화 은둔의 목적 24.05.19 23 0 11쪽
22 제21화 일출봉 우주 회담 24.05.18 24 0 10쪽
21 제20화 우주선 출현 24.05.18 22 0 10쪽
20 제19화 더듬이 24.05.17 24 0 10쪽
19 제18화 실마리 24.05.17 24 0 10쪽
18 제17화 우주 시대 24.05.16 22 0 10쪽
17 제16화 신인류 24.05.16 25 0 10쪽
16 제15화 나는 인간이다 24.05.15 29 0 11쪽
15 제14화 재회 24.05.14 25 0 10쪽
14 제13화 파도 24.05.14 23 0 10쪽
13 제12화 조우 24.05.13 24 0 10쪽
12 제11화 신에너지 24.05.13 2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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