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흐르는 눈물
김필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퓨지티 무역부의 카페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쉬라힐리도 주위를 조심하며 들어왔다.
“지금 저에게는 미행이 붙어있을 겁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말씀 가운데 뭔가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세르 사령관이 이곳으로 오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는 장영길 대사를 잡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제가 김필립 님으로부터 구매한 지구 버섯을 내미는 순간 그자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퓨지티에서 식량을 더 구입하겠다며 저를 퓨지티로 가도록 했습니다.”
“물론 감시선을 붙여서 말입니다.”
“김필립 님,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장영실 아피스가 실종되던 때, 김필립 님께서는 어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김필립은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네, 저는 바로 그 현장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쉬라힐리께서는 왜 이 일을 알려고 하십니까?”
“저는 제가 그 일 직후 왜 강제 전역을 당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이 일로 오랫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장영실 아피스는 좀 떨어져 있던 제가 보는 앞에서 누군가로부터 저격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긴급 퇴각 명령이 내려져서 장영실 아피스를 구할 시도조차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이 말을 하는 쉬라힐리의 눈빛이 번뜩했다.
김필립은 이 말을 듣고 바로 그때의 상황을 이어나갔다.
“그러셨군요. 그리고 얼마쯤 후였을 것입니다. 저는 저격당한 장영실 아피스를 전투 현장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때까지 죽지는 않았지만 매우 심각한 중상이었습니다.”
“그를 살려보려고 저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고, 나는 그 우주선을 타고 은신처로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갈릴레이 군의 지속적인 수색을 피해 지구까지 갔던 것입니다.”
“그랬었군요.”
쉬라힐리의 표정에서 김필립에 대한 신뢰가 보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암살자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나세르였습니다.”
김필립도 쉬라힐리의 표정에 응답하듯이 말했다.
“역시 그랬었군요, 나세르 그 인간이!”
“그래서 장영실 아피스와 친했던 나를 강제 전역시키도록 수작을 부렸군요. 교활한 놈.”
“그런데 이런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김필립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전투상황 자동기록장치의 데이터가 우주선의 신경망 장치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순간 주변에서 무기를 소지하고 있던 유일한 자가 나세르였습니다.”
“일단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쉬라힐리는 눈치가 빠른 자였다.
걸으며 쉬라힐리가 물었다.
“그러면 말씀하셨던 김필립 님의 아프다는 친구가 장영길 대사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장영길 대사는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그건 지금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 쪽에서는 섣부르게 움직이기보다는 나세르의 행동을 보아가며 증거 수집에 주안점을 둡시다.”
“알겠습니다. 저는 일단 식량 수집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습니다.”
“우리는 일단 숨어 지내겠습니다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움직여야겠지요.”
“자, 이번에는 나세르에게 당하지 말고 그놈의 악행을 세상에 공개합시다.”
쉬라힐리의 말에 김필립이 동의한다는 듯이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김필립은 쉬라힐리와 헤어진 후 장영길을 찾아갔다.
그에게도 모든 것을 알려주어야 했다.
“장영길 대사님, 쉬라힐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 대사님께 우주선의 조종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사님의 우주선을 당분간 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인증번호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연락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놈은 우리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우주선의 식별부호 수집부터 할 것입니다.”
한편 쉬라힐리는 일부러 이곳저곳을 다니며 식량 거래를 위한 흔적을 남기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유심히 자신에게 따라붙는 미행자의 존재를 관찰했다.
*
나세르 사령관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쉬라힐리의 행적에 관련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장영길 오시리스와 장영실 아피스의 우주선에 관한 내용이 없어서 답답했다.
나세르 사령관은 함대의 합타무 대령에게 퓨지티 행성의 당국을 찾아가서
지구로부터 온 두 대의 갈릴레이 우주선에 대한 기록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합타무 대령은 대원 4명과 즉시 속도가 빠른 전투선을 타고 퓨지티로 향했다.
그 시각 김필립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급하게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진수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장진수 박사에게도 모든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김필림으로서는 이곳에 양자 정보 전송 장치가 없는 것이 너무나 큰 제약이었다.
장진수와 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이곳의 좌표를 알려주고 장진수가 이를 계산해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방안에 갑자기 장진수가 보낸 양자 드론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케플러 기지와의 통신은 성공했습니다. 퓨지티 상황은 어떻습니까?”
“매우 중대한 소식이 있습니다.”
“장영실 아피스를 살해했었고, 장영길 대사와 나를 죽이려 하는 자가 나세르 사령관입니다.”
“장영길 대사가 장영실 아피스의 우주선 신경망과 연결된 후 전투상황 자동기록 데이터에서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다음번에 이 자료를 보여드릴 테니 적절한 시점에 나세르 장군이라는 자의 정체를 전 우주에 알려주기 바랍니다.”
“지금도 나세르는 그의 부대원을 풀어서 우리를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급합니다. 다음번 통신을 가능한 빨리 보내주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현재 우주선의 위치 정보를 보여줬다.
“1회용 위치 정보입니다. 우리의 위치는 계속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필립은 이 통신을 끝으로 다음 은신처로 이동했다.
만약에 다음 통신 이전에 자신들이 나세르에게 잡힌다면 그의 악행을 고발할 기회는 사라진다.
나세르 사령관이 보낸 합타무 대령은 쉬라힐리의 동선 주변의 전파 정보를 샅샅이 수집했지만, 원하는 우주선 식별부호 신호를 찾지 못했다.
“이 자들이 은신해서 숨도 안 쉬고 있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합타무 대령은 퓨지티에 도착한 우주선에 관한 기록을 찾기 위해서 즉시 퓨지티 당국자를 찾아갔다.
합타무 대령은 퓨지티의 출입국 당국자를 고압적인 자세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시에 두 대의 우주선이 착륙했고, 그중 하나에 김필립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퓨지티에 처음 오는 오시리스가 타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럼 그들의 숙소는 어디였습니까? 숙소를 정해주셨을 것 아닙니까?”
“네,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숙소가 비어 있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가 여기로 올 것을 누군가는 예측했고, 이를 알려줬다는 것 아닙니까?”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희도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릅니다.”
긴장감이 팽팽히 흐르던 이곳에 불쑥 쉬라힐리가 찾아왔다.
들어오던 쉬라힐리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안정을 찾는다.
“아, 쉬라힐리 님이시군요.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당연하지요. 갑자기 갈릴레이 함대의 대령님께서 계시니까요. 퓨지티 분들도 계시는군요.”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네, 저는 나세르 사령관님의 부탁을 받고 지구의 버섯을 구입하기 위해 왔습니다.”
“사실 저번에도 여기서 지구 버섯을 구입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온통 쑥대밭이 됐네요.”
합타무 대령은 퓨지티의 당국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여기 살던 오시리스가 김필립이라고 했지요? 전화해 보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러나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소리의 회신만이 들렸다.
이들은 더 이상의 진척이 없자 각자의 행선지로 향했다.
쉬라힐리는 위기일발이었다.
“음, 이들이 급하게 자리를 옮겼구나... 상황이 급했던 모양이네.”
쉬라힐리도 김필립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앞으로 그들과 연락할 방법이 막막했다.
그러나 쉬라힐리는 낙천적인 면이 있다.
“급하면 전화가 오겠지! 그나저나 나는 식량 매집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세르 사령관은 합타무 대령의 보고서를 받아보았다.
“이런 답답한 친구...”
“부관, 합타무 대령의 현 지점에서 반경 50km 지역에 대하여 정찰비행 실시할 것.”
김필립은 죽은 듯이 하룻밤을 보냈다.
장영길 신경망은 위장된 식별부호로 우주선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장영길 신경망은 놀라운 능력으로 합타무 대령의 이동 사항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었다.
김필립은 아까부터 초조하게 장진수로부터 양자 정보 드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주선의 동력을 켜놓고 있는 것조차도 불안했다.
장영길이 말했다.
“우리 상공에 정찰선이 주기적으로 비행하고 있네요.”
“이러다가 전체 가구 수색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요?”
“장진수 박사의 연락이 먼저 와야 합니다.”
김필립이 초조한 가운데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마침내 장진수 박사의 양자 정보 드론이 우주선 안에 나타났다.
“장 박사 시간이 없어요. 우선 모니터에 비친 이 내용이 당시의 전투상황 자동기록 데이터입니다.”
“그리고 현재 보이는 모니터를 구동하고 조정하는 것은 장영길 대사님의 연결된 신경망입니다.”
“이 내용이 장영실 아피스를 암살의 목적으로 저격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나세르였습니다.”
“이것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구에서 장영길 대사를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납치시도를 하려 했던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금 나세르로부터 추적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마지막 연락이 될지도 모릅니다.”
“장영길 대사님 장진수 박사에게 한 말씀 하시지요.”
김필립이 갑자기 장영길 신경망에게 발언을 권유했다.
“진수야, 내가 이런 모습으로 너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 유감스럽고 슬프지만,”
“꼭, 다시 연락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장영길 오시리스의 신경망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었다.
단지 소박한 소망을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양자정보 드론은 순식간에 퓨지티의 공간에서 사라졌다.
우주 저편 지구의 장진수 박사는 양자 정보 드론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장진수는 비록 신경망만이 남은 아버지이지만 틀림없는 그의 의식이며 목소리였다고 생각했다.
장영길 오시리스의 신경망이 살아서 그의 아들 장진수에게 말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장진수는 자신이 지켜내야 할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 선 고독한 자신을 생각했다.
장영길은 비록 자신에게 남은 것은 다원적 인공지능 신경망밖에 없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그 어떤 방법으로라도, 살아남고 싶었다.
아들 장진수 그리고 며느리 최수진과 손녀 장새롬을 간절히 보고 싶었다.
장영길의 신경망은 이미 의식이 있고, 살아 있는 신경망이었다.
장영길 오시리스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의 신경망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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