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연결
지구 연도 2074년 10월 26일, 장진수 박사의 나이는 55세, 연구자로서 정점에 와 있었다.
장진수 박사는 그의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양자 정보 전송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다.
지구 연도 2073년, 마침내 장진수 박사는 양자 정보 전송을 이용해서
물체를 공간 이동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단지 물체의 질량이 200g 이내로 제한되는 한계가 있었다.
그 이상의 질량을 보내려면 현재 전 지구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써야 했다.
장진수 박사는 200g 정도의 드론을 전송해서 우주를 탐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퓨지티 행성에 정찰 드론을 전송해서 그곳의 영상 정보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퓨지티 행성으로 간 그의 부친에 대한 흔적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장영길의 생사는 장진수와 지구 행성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한때 지구에서는 장진수 박사가 과연 지구인이냐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지만,
지구 행성으로서는 장진수 박사의 지식과 경험이 매우 절실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도 장진수 박사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은 없었다.
지구와 갈릴레이와의 관계 설정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예상되었기 때문에 장영길 같은 사람의 조정을 필요로 했다.
갈릴레이의 전투 함대는 돌아갔지만 결국 그들과 엑소스켈은 다시 지구로 올 것이다.
장진수 박사는 공간 이동뿐 아니라 시간 이동도 가능한 방법을 연구 중이다.
그러나 시간 이동에는 공간 이동보다 훨씬 큰 에너지 소요량이 예측됐다.
시간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자면, 웬만한 행성의 단위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일로 계산됐다.
따라서 우주에서 시간 이동을 원하는 행성이 있다면 우주 전쟁은 필연적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갈릴레이 행성의 과학 기술 수준은 지구는 물론이고, 엑소스켈보다 앞서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회는 내부적으로 큰 모순에 빠져있다.
갈릴레이에서 생명을 아피스와 오시리스로 나누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며,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시간 이동 작업을 계속한다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장 심각한 내부 모순은 결함 유전자의 확산으로 스스로 치유 불가능한 단계에 빠졌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들 사회의 엄청난 에너지 요구는 우주 전쟁을 촉발시키는 원인이었다.
장진수는 이 단계에서 자신의 연구에 대한 정당성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 갈릴레이 행성과 퓨지티 행성에 대하여 알고 싶었다.
갈릴레이 행성으로 정찰 드론을 보내는 것은 그들의 발달된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발각될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퓨지티 행성으로 가버린 김필립 부장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소형 드론을 퓨지티 행성까지 양자 전송하기 위한 에너지 정도는 그가 맡고 있는 우주 에너지 연구소에서 감내 할 만했다.
그의 아버지 장영길과 김필립 부장이 언제쯤 퓨지티 행성에 도착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장진수는 에너지 비용이 허용되는 한도에서 정찰 드론을 퓨지티에 보내서 퓨지티 행성의 지도를 작성하기로 했다.
만약에 김필립 또는 장영길과의 연락이 닿게 된다면 지도를 이용해서 드론이 스스로 정확한 지점으로 찾아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장진수의 일상은 이렇게 반복되고 있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희망이 살아 있었다.
*
지구 연도 2074년 11월 2일 오전, 장영길과 김필립에게는 긴 여정이 계속되고 있었다.
장영길의 우주선으로 김필립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제 퓨지티 행성 궤도로 들어갑니다. 3시간 후입니다.”
“궤도에서 허가를 기다렸다가 착륙하겠습니다.”
“아, 이제 다 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퓨지티 행성은 지구나 갈릴레이 행성만큼 문명화된 곳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기대됩니다. 물질적 문명화의 결핍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하하하,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저를 받아만 주신다면 저의 행복일 것입니다. 하하하.”
이윽고 두 기의 우주선은 퓨지티 행성의 궤도에 진입해서 착륙 절차를 밟았다.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행성이기 때문에 착륙의 어려움은 없었다.
퓨지티 행성의 대기권으로 들어가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이 조용히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곳의 태양은 적색거성의 단계를 지나서 식어가는 과정이었다.
태양의 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구름층을 뚫고 내려와 광활한 대지 위에 건설된 크지 않은 우주기지로 서서히 감속 비행을 하며 접근해 갔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느릿한 구릉지와 얕은 계곡으로 흐르는 작은 강이 아름다웠다.
넓은 뜨락은 이제 막 촉촉하게 초록빛을 띠기 시작했다.
곧 이곳에 봄이 오고 짧은 여름과 가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주기지에 도착하자 몇 사람이 나와서 김필립을 깊게 포옹했다.
잠시 감격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김필립이 장영길을 그들에게 소개했다.
장영길과 김필립은 머나먼 길을 날아서 드디어 퓨지티 행성에 도착했다.
장영길에게는 새로운 길이며, 김필립에게는 과거와 이어지는 길이었다.
지구 연도 2074년 11월 2일 금요일 정오 무렵, 장진수는 여느 때처럼 정찰 드론을 퓨지티 행성으로 양자 전송하고 약 2시간을 기다렸다.
오후 2시 30분경 퓨지티로 갔던 정찰 드론이 양자 전송으로 회수됐다.
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작업이라 정해진 순서대로 반복해서 같은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회수된 영상 자료에서 퓨지티 행성의 궤도에서 하강하는 우주선의 비행운이 촬영된 것을 발견했다.
영상을 확대해 보니 2기의 우주선이 내려온 비행운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장영길과 김필립의 우주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장진수는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아버지를 찾기 위한 탐색에 나설 수는 없었다.
정찰 드론을 다시 퓨지티 행성에 보내기 위해서는 에너지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막대한 에너지를 통상 전원으로 충당할 수 없어서 에너지 저장장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20세가 된 그의 딸 장새롬이 생일을 맞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장새롬은 여자축구국가대표이며 대학교 체육학과 2학년생이었다.
장진수는 오늘 장새롬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를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는 벌써 맛있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윽고 장새롬과 친구들이 들이닥쳤다.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유쾌함이 세상을 행복하게 했다.
장진수는 주저함 없이 그들과의 대화에 뛰어들었다.
때로는 못 알아듣는 표현도 있었지만 이럴 때마다 장새롬과 친구들은 즐거워했다.
장진수와 최수진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행복감을 느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장진수와 최수진은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어요?”
“허허, 그럼. 이제는 어엿한 성년들이에요.”
장진수가 세수를 하고 나오면서 말했다.
“잘하면 아버님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네? 어떻게요?”
“퓨지티 행성에 우주선 2기가 착륙하는 비행운이 드론에 찍혔어요.”
“2대라면 거의 틀림없을 것이에요.”
장진수는 오랜만에 내일을 기다리며 잠을 청하는 밤이 되었다.
장진수에게 불면증은 일상의 일이었다.
끊임없이 지적 탐험을 하는 그에게 불면증은 받아들여야 할 일이었다,
증진된 능력은 그의 아버지 장영길로부터 받은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밤만큼은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열쇠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그를 편하게 만들었다.
*
지구 연도 2074년 11월 3일, 김필립과 장영길이 퓨지티 행성에 도착하고,
안내되어 간 곳은 작은 언덕에 지어진 아담한 집이었다.
창밖으로 언덕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시야가 탁 트인 곳이었다.
창문 반대편 벽은 언덕에 묻혀서 마치 언덕과 살을 맞댄 것 같은 구조였다.
장영길이 보기에 열 손실을 최소화한 건물이었다.
“장영길 님 퓨지티는 이런 곳입니다. 당분간 편하게 쉬십시오.”
“김필립 님,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별입니다.”
“이곳에 오는 도중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네, 그러셨군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포토니움 채굴과 이용법입니다.”
“포토니움 엔진 개발이 필요하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다.”
장영길은 새로운 행성에서 새로운 의욕을 느끼고 있었다.
“퓨지티 행성은 퓨지티의 태양이 최대로 타오를 때 극심한 환경 변화를 겪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큰 동물과 큰 식물은 모두 멸종했습니다.”
“지금, 이 별에서 번성하고 있는 생물은 초본류와 설치류 그리고 곤충들뿐 입니다.”
“그런데 곤충들이 좀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 그래서 곤충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셨던가 보군요.”
“그런 셈이지요, 엑소스켈도 본래는 곤충에서 진화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습니까? 놀랍군요.”
“자, 일단은 쉬시고 내일 아침에는 버섯이나 따러 나가볼까요?”
“버섯이 많습니까?”
“버섯을 좋아하십니까?”
“봄에 들판에 나가면 버섯이 많이 올라옵니다. 여기에는 독버섯이 없습니다.”
“자 오늘은 가벼운 희망만 담고 편안한 밤을 보내도록 합시다.”
“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입니까.”
두 사람은 머나먼 길을 찾아온 여행자처럼 새 안식처로 운명이 연결되며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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