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숨겨진 기록
김필립은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장영길이 다시 자발적 의지를 표현했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본래의 장영길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장진수의 양자 정보 드론이 나타났다.
“아버님의 상태는 좀 어떠십니까?”
김필립은 얼마 전 준비했던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보는 바와 같이 호전되고 있네. 이제는 지구의 소식도 같이 전해주면 좋겠어요.”
김필립은 조금은 안심이 되는 소식을 지구 행성의 장진수에게 전했다.
한편 쉬라힐리는 그의 우주선 안에서 다시 놀라운 자료를 발견했다고 환호하고 있었다.
600년 전의 인명록에서 장영길 오시리스를 찾았고
그가 얼마 전까지 지구의 갈릴레이 대사로 일했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장영길 대사 또한 현재 유고 상태라고 하는 기사가 있었다.
“쉬라힐리, 이게 뭐야? 지금 무슨 발견을 한 거야? 하하하.”
쉬라힐리 자신은 아피스로서, 장영실 아피스에 대한 연민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을 했는데 이제는 장영실, 장영길, 김필립 3인이 모종의 관계를 갖고 그의 호기심 선상에 나타났다.
쉬라힐리 아피스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쉬라힐리 님께서 좀 나서봐야겠는걸.”
쉬라힐리는 이렇게 말하며 혼자서 크게 웃었다.
쉬라힐리는 우선 김필립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쉬라힐리입니다. 오늘 버섯을 인수하러 방문해도 될까요?”
“좋습니다. 오늘 오후 4시경에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쉬라힐리는 퓨지티에서 대량으로 식량을 사들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구 행성의 희귀 버섯까지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의 판매 구색이 더 강화되는 셈이다.
쉬라힐리는 퓨지티의 픽업트럭을 몰고 김필립의 사무실을 찾았다.
“아, 쉬라힐리 님, 지난번에는 죄송했습니다.”
김필립이 준비한 버섯 박스를 내놓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준비를 잘 해주시고요.”
“그런데 김필립 님께서 타시는 우주선은 상당히 구형이시더군요. 요즘은 귀한 물건입니다. 며칠 전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아직 쓸만합니다. 허허.”
“오래된 우주선을 사용하시니까 좀 여쭤보겠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제가 장영실 아피스와 좀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혹시 장영실 아피스에 대해서 아시는 부분이 있으시면 뭐라도 좋으니 말씀을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순간 김필립은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쉬라힐리도 놓치지 않았다.
“왜 그러시지요?”
김필립이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장영실 아피스와 동료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쉬라힐리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가 갑자기 실종되고 저도 강제 전역이 되어서 지금과 같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 지금의 일에 크게 불만은 없습니다만, 단지 아쉬움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은, 장영실 아피스의 경우는 일반적인 사례와는 다릅니다.”
“기록이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저의 희망 사항이겠지만 그 기록이 저의 강제 전역 조치를 설명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오시리스라서 특별한 정보는 없습니다만.”
“장영실 아피스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실종이라니 이해가 안 갔었습니다.”
“혹시 김필립 님께서는 당시에 장영실의 시술을 담당하시지 않으셨나요?”
“기록을 보았습니다.”
김필립은 놀라면서도 이 자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챘다.
“네, 그렇습니다만,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쉬라힐리는 지금 김필립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필립은 지금 장영실의 우주선을 타고 있으면서 아는 바가 없다 한다고 생각했다.
“쉬라힐리 님께서는 왜 장영실 아피스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글쎄요, 장영실 아피스의 실종 문제를 푸는 것은 장영실과 저에게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시군요. 이곳 퓨지티에서 식량을 구매하시고 다음에는 어디로 가시나요?”
김필립이 말을 돌렸다.
“하하하, 장사꾼에게 그것은 절대 비밀입니다만, 허허.”
“사실은, 갈릴레이 전투함대에 식량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다음 기회에 다시 뵙겠습니다.”
쉬라힐리가 떠나고 김필립은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김필립은 쉬라힐리가 장영실 아피스의 우주선 신호를 수신했고 이미 조사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단지, 쉬라힐리가 장영실 아피스의 실종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점은 장영길의 우주선은 동력을 완전히 차단했기 때문에
우주선의 식별부호 신호가 송출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쉬라힐리는 자신의 우주선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노트북을 열어보았다.
추가로 식별된 우주선은 없었다.
쉬라힐리에게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 자신의 갑작스런 전역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상당한 기간을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장영실 아피스의 우주선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어떤 암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조사해본다는 것은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더라도,
장영실을 애도하는 일이 되며, 자신의 억울함도 풀어보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쉬라힐리에게는 낙천적인 면이 있었다.
김필립은 장영실의 우주선으로 가서 장영길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장영길 신경망의 신호는 안정적이지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장영길 님,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십니까?”
“갑갑해서 미치겠습니다. 장진수 박사와는 어떻게 연락하고 있습니까?”
짜증스러운 반응에 김필립은 장영길의 성격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진수 박사의 지식은 이제 양자 정보 전송법까지 확장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거의 갈릴레이 행성의 과학기술 수준까지 근접했다고 보아야겠습니다.”
“아드님의 능력이 정말 뛰어납니다.”
“그래도 신체를 송두리째 전송하는 일을 하면 안 되는데...”
장영길은 지금과 같은 처지에서도 자신의 아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김필립은 같은 오시리스이지만 아들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것을 보고 장영길 특유의 차별적 면모가 느껴졌다.
장영길의 신경망은 일련의 학습 과정을 거치면서 일반 신경망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됐다.
“정말 갑갑합니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가지 일거리를 드리지요.”
“현재는 부분적이지만 이 우주선의 신호계통에 장영길 님의 신경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선의 식별부호가 발신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주십시오.”
“갈릴레이 측 사람들이 이 신호를 식별하는 순간 이곳으로 군인들이 들이닥칠 수 있습니다.”
장영길이 선뜻 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문제가 있었단 말입니까?”
김필립은 장영길이 분명히 조급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 내일 다시 만나도록 하지요.”
“그런데, 아드님과 영상으로 소통해보시겠습니까?”
그 순간 신경망의 신호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장영길의 신경망이 환생하기 직전의 상황과 비슷한 정도로 격렬히 반응했다.
김필립은 매우 당황했지만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만큼은 자제했다.
얼마 후 신호가 다시 안정되기 시작했다.
“나의 이런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괴롭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냥 이제는 정상적인 상태를 찾았다고 하겠습니다.”
“흠, 정상 상태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얼마 후, 장영길 신경망이 물었다.
“우주선의 식별부호를 차단할 방법은 찾으셨습니까?”
“전원을 완전히 내리지 않는 한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식별부호를 변경했습니다.”
“네? 아, 좋은 생각입니다. 그게 가능했나요?”
“식별부호 변경을 우회 경로로 진행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있었군요.”
“내가 이 우주선의 전체 신경망에 접근하는 것을 왜 막고 계십니까?”
장영길이 김필립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단계적인 회복 과정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저를 의심하시는군요.”
“아, 아닙니다.”
“그렇지만 약간은 성격이 변하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나도 겁이 납니다. 내가 변했다고 생각되어서...”
“그러시군요.”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내가 무슨 괴물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있습니다.”
“슬프면서도 괴롭고, 때로는 화가 납니다.”
“장영길 님, 우리 오시리스의 신경망은 학습을 하면서 스스로 발전해갈 수 있습니다.”
“장영길 님이 우수한 오시리스가 된 것도 장영길 님의 자주적 학습의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해보시지요.”
“장영길 님의 신경망은 일부 손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이 손상을 극복하셔야지요.”
“아드님께는 제가 잘 설명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언제쯤 내가 이 우주선의 신경망과 연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
김필립이 말을 못했다.
“어떤 조건이 되면 연결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장영길은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김필립은 장영길의 신경망에 이 우주선의 신경망을 연결했을 때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영길의 신경망은 다원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자의식이 강했다.
이 자의식은 연결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우주선의 신경망을 장악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 이후의 사태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김필립이 걱정하는 일은 바로 이 점이었다.
그러나 기회는 우려 속에서 자라는 법이다.
사건의 돌파구는 멀리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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