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뱀파이어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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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설
작품등록일 :
2024.05.0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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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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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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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닭 대신 꿩(1)

DUMMY

“죄송하지만 저는 팬이 아니라 귀여운 척을 하시면 보기 좀 힘듭니다···. 그나저나 이번에 현준 님 혈액을 좀 많이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롭게 발견한 성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의학이 풀지 못한 비밀 한 개가 또 풀리겠군요.”


익숙한 듯 현준은 눈을 감으며 와인잔을 손으로 빙빙 돌린다. 안에 있는 피가 찰랑거린다..


“그런 의미로, 피를 좀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잔 좀 내려놓으시고 팔을 좀 뻗어주시죠.”

고무줄로 시킬 정도로 창백한 피부의 팔을 묶고, 따로 손으로 탁탁 치지 않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파란, 보라색 혈관에 의사를 두꺼운 주사기를 꽂는다. 당겨지는 피스톤을 따라 짙은 붉은 색의 피가 느리게 뽑혀 나온다. 주사기 사이로, 한 통 두통 피들이 주사기를 타고 계속 뽑힌다.,


“이번에 제약회사랑 같이 개발한 제품은 많이 팔렸나?”

“역시 식약처 승인 중이라는 데요. 뭐. 보지 않아도 대박 아니겠습니까.”

“역시 미리 투자해놓기 잘했어. 내 덕에 돈 좀 많이 벌었겠네.”

말의 반은 자기 자랑인 버릇은 어디 안 간 것 같다며, 의사는 주사기에 차오르는 붉은 피만을 바라본다. 시뻘겋게 가득 차는 피를 보며, 마치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열쇠를 얻은 듯 감격에 벅차오른다. 다섯 통의 검붉은 피가 트레이에 가득 차자, 다이아몬드를 옮기듯 조심스럽게 트레이를 벗겨진 피부 조각들 옆으로 옮겨 놓는다. 현준의 팔에 묶인 고무줄을 풀러 주변을 정리한다.


“하 이번에 코 성형설 도는 것 봤어? 이게 의술로 나올 수 있는 코라고 생각하는 건지 원.”

현준은 거울 속에 자신의 높은 콧대를 요리조리 둘러 보며, 콧등을 손으로 튕긴다.

“요즘에 수술 되게 잘 나와서, 현준 님 사진 들고 오는 사람 많습니다”

거울 속에 빠진 현준이 자신을 바라보다 기분이 좋은지 거울을 내려놓는다.


“아휴 잘생긴 게 죄지~”


현준이 다시 윤기가 나고 보들 거리는 자신의 피부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나른하게 말한다.

“네네~ 그럼요~”

의사가 귓등으로 흘려듣는 모습에 현준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나 여기 다닌다고 소문 난 건 아니지?”


“현준 님이 잘생기셔서 우연히 오신 거겠죠. 저희가 먼저 말하겠습니까.”

주위를 정리하던 원장의 손이 현준에게 덥석 잡힌다. 원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눈에 훤히 보인다는 듯 눈을 끔쩍 감아버린다.


“내가 영감 믿는 거 알지?”

광고에서 들을 법한 –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쓰지 않는 – 다디단 현준의 목소리에 영감은 실눈을 뜬다. 현준이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며 빤히 쳐다보고 있다. 자신의 눈을 삼 초간 빤히 바라보던 현준은 한 손으로 입을 지퍼처럼 닫는 동작을 한다.


“비밀이야”

의사가 말없이 끄덕이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현준이 다시 옷을 걸쳐 입는다. 두 팔을 올려 기지개를 마음껏 한 현준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진료실을 나선다. 오늘은 엘리베이터에 마중 나가지 않겠다며, 원장은 현준에게 소심하게 복수를 한다.



진료실 문이 닫히자, 원장이 모은 숨을 몰아쉬며 한숨을 내쉰다.


“저 성질머리는 더 심해져···. 어째”



***



거대한 소파에 누워있는 현준을 뒤로하고 꾀죄죄한 얼굴의 태욱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며칠은 옷을 갈아입지 않은 듯 제법 옷에 생활 주름들이 가득 져 있다, 한껏 광채가 나고 뽀얀 현준의 피부에도 불구하고, 태욱은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뒤진다. 소파 건너의 모습을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현준은 몸을 반쯤 일으켜 태욱을 쳐다본다.


“바깥에서 자는 거 안 추워?”

집 앞마당에는 텐트는 여전히 펼쳐져 있다. 현준의 머리가 제법 다시 길어 짧은 금발 아래로 검은 뿌리가 올라오는 동안에 말이다. 텐트 앞에 제법 식기구들이 어지러이 펼쳐져 있고, 캠핑 의자에 캠프파이어용 화로에 쓰레기통까지 갖춰 뒀다. 이 모든 것이 현준이 누워있는 거실 창문에 눈에 띄게 보여, 저 멀리 보이는 천변과 조용한 산자락의 정경을 가리고 있다.


“응 괜찮던데. 날 시원하잖아. 새소리도 잘 들리고 좋아.”

태욱은 냉장고의 시원한 탄산음료를 페트병째로 콸콸 마신다. 부엌 위 아일랜드 식탁에는 고기, 봉지라면 한 팩, 채소, 조개, 소시지, 만두 대용량, 어묵 봉지 등 살림살이를 모두 다 털어갈 것처럼 잔뜩 올려 두고, 가져온 바구니에 차곡차곡 옮겨 담는다.


호텔과 같이 깨끗했던 부엌이 순식간에 어지럽혀지고, 채소와 소시지 등이 뒤섞인 냄새들이 집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맡아 보는 생활 냄새에 현준은 코를 잠시 막고, 부채로 괜히 공기를 환기한다. 퉁탕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뒤섞여 그동안 유독 넓어 보였던 집안이 한 명으로 비좁아지는 것 같았다.


빗줄기처럼 시원하게 콸콸 수돗물을 틀고, 딸기와 사과를 물 위에 차곡차곡 씻어서 건져 내어 용기 안에 담아 넣는다.


마치 꼬질꼬질한 모습이 맨 처음 만났던 어린 아이시절의 모습이 겹친다. 얼굴, 몸, 옷에 흙이 잔뜩 묻어있고, 오랫동안 감지 않은 듯 머리가 엉겨 있던 아이.

‘그때도 닭이었나 열심히 잡아먹었던 것 같은데···.’

당연한 현실 속에 잊고 싶은 과거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도 식탐이 많았던 거였나? 인간들이 구박할 법도 한 것 같아’

현준이 볼살이 제법 통통해진 태욱을 보며 생각했다.

모든 것을 장바구니에 집어넣은 태욱이 식탁 위에 있는 약통을 손바닥 위로 한 아름 쏟는다. 수십 개의 약이 산처럼 쌓인 수십 개의 약을 태욱은 입안에 턴다. 페트병째로 물을 잔뜩 마신다. 볼이 터질 것 같이 빵빵해진 채로 가만히 있다가 꿀꺽 한 번에 삼킨다.

“어휴 죽을 뻔했네”

“이번에 성능이 좋아져서 한 알만 먹어도 된대.”

“많이 먹어서 나쁠 거 없어. 근데 안 먹을 거야?”

“이번 약은 먹으면 속이 좀 메슥거리는 것 같더라.”


이제 태욱은 오렌지 주스를 500리터 컵에 가득 붓고 있다.

‘저거 맥주잔 아닌가? 언제 맥주잔을 산 거지.’


뭐든지 못 먹는 게 없는 태욱은 약도 맛있게 먹는 듯했다.


‘아마 철근도 먹지 않을까?’ 태욱의 송곳니는 정말 날고기를 먹기 위해 발달했을 것이다.


“혹시 이번 거에 식욕 증진제도 넣었어?”

“아니 피를 오래 안 먹어도 되는 거니까. 식욕억제제인 거 같은데.”

“아니 식욕이 도는 거 아니냐고. 먹고 나니 살이 더 찌는 거 같아.”

“모르겠네. 설명서 읽어봐.”

“그 담배 끊으면 중독성 때문에 더 먹다가 살찌잖아. 이것도 금단 증상, 부작용 그런 거 아냐?”

약통에 쓰여 있는 깨알 같은 글씨를 바라보던 태욱이 갑작스럽게 걱정이 가득한 눈방울로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 두툼해진 손, 허리에 딱 맞게 된 바지가 새삼 걱정스럽다.


“그냥 니가 요즘에 집에만 있어서 그런 거야.”

“먹을 때 행복한 걸 어떡해.”

“그만 먹어. 앞으로 금지야.”

“왜 먹는 거 가지고 그래! 사람이 치사하게.”

“너 사람 아냐. 음식 안 먹고도 잘 살았어.”

“나는 피 별로인데. 약 먹고 피 안 먹을래”

“너 뱀파이어라니까.”


소파에 누워있던 현준이 일어나, 냉장고에 잇던 혈액 팩을 잔뜩 꺼낸다. 혈액 팩을 가위로 잘라 와인잔에 붓는다.

태욱이 혈액 팩을 붓는 순간, 인상을 찌푸린다..

“마셔봐”

“으 피 비린내”

“헌혈한 지 얼마 안 된 피야. 진공으로 포장되어서 신선해”

“방금 약 엄청나게 먹었는데, 다음에 먹을게.”

“먹어” 현준이 식료품 방의 열쇠를 꺼내 태욱 앞에 흔들자, 태욱이 눈을 질끔 감으며 먹는다.

“억.”

한참을 삼키다, 태욱은 더 먹지 못하고 반을 남긴다.

“맛이 어때”

“약간 달긴 한데···. 이거를 계속 마시라고? 아냐.”

태욱이 물을 더 마시며 입안을 헹군다.


“너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정신 못 차릴래”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나는 지금이 좋은데 네가 못 받아들이는 거잖아. 내가 유일한 뱀파이어 핏줄이라고, 강요하는 거잖아”

“너도 나는 거 재밌다고 했잖아. 뱀파이어가 뱀파이어라고 사는 게 뭐가 문제인데.”

나가려는 태욱을 가로막고 현준이 말한다.


“그 핏줄이 뭐가 중요해. 왜 아직도 그때에서 구닥다리 생각이야. 좀 세상을 즐겨.”

태욱이 현준의 옆을 돌아서 나가려고 하자, 현준이 다시 태욱의 앞을 가로막는다.


“말 똑바로 해라. 나 아니었으면 너는 이미 3백 년 전에 죽었어. 나 때문에 살아있는 거라고.”

현준은 팔짱을 끼고 태욱을 올려다본다.


“알아. 고마워. 세상이 변한 거 인정하자니까? 너도 좀 바뀌었잖아.”

“그거야 워낙 좁은 데에 사람이 많이 사니까 그런거고”

“아 듣기 싫어. 지금 충분히 힘든데 조금 내버려 두면 안 돼? 친구 죽었다고 내가 엄청나게 징징대고 이해해달라고 한 거 아니잖아. 그냥. 좀 건들지 마.”

태욱이 아래에 있는 현준을 내려다보며, 현준의 어깨를 치고 밖으로 나간다. 우악스러운 힘에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난다.


“미안하다고. 근데 너 그 성격 고쳐!”

현준은 들릴 듯 말 듯 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화가 솟구쳤는지 태욱의 뒤에다 대고 소리친다.


“당분간 꺼져 줄래?”

“형이야말로 집착 좀 그만해.”

마당에서 태욱이 고래고래 현준에게 소리를 지른다. 현관, 거실 창문, 그리고 저 멀리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 위 새들에게도 떠나가라 들릴 정도로 고함이 퍼진다.


현준은 현관문을 쿵 닫고 들어와 바흐의 클래식 전곡을 크게 틀어 놓는다. 현준은 소파 위에 다리를 잔뜩 꼬고 올려 두며, 다리를 손가락으로 탁, 탁 계속 친다. 창문 너머에서도 클래식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태욱이 제법 괘씸했다.


현준은 창문으로 태욱의 뒷모습을 잔뜩 노려 보고 있다. 태욱은 일부러 등을 돌리고 앉아 보란 듯이 장작을 두 팔에 담지 못할 정도로 가져 온다. 불을 붙이고, 저 두툼한 온몸의 근육으로 불을 있는 힘껏 활활 피운다. 작게 피어오르던 불꽅은 곧 모든 것을 잡아먹을 것 같이 태욱을 잡아 먹을 듯이 일렁인다.


태욱은 모를 것이다. 불행과 비슷한 것만을 보아도 미리 걱정하며, 불행이 다시 자신의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뜨릴까 봐,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말이다.


현준은 자신의 눈동자에 일렁이는 저 붉은 불꽃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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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서프라이즈(1) 24.05.14 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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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회상 24.05.11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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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닭 대신 꿩(2) 24.05.10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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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틈 24.05.09 23 0 11쪽
5 5. 외출(2) 24.05.08 27 0 10쪽
4 4. 외출(1) 24.05.08 3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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