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뱀파이어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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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박아설
작품등록일 :
2024.05.0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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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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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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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구내식당

DUMMY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피해 원장은 가운 아래에 카디건과 옷을 겹겹이 껴입었다. 층층이 가운과 카디건을 팔로 꽁꽁 싸매면서도, 잠기운을 이기지 못한 원장은 꾸벅꾸벅 진료실 안에서 존다. 염색하지 못한 머리카락의 뿌리가 하얗게 일어났다. 얼굴이 잔뜩 초췌해 있다. 줄어든 잠만큼이나, 주름이 잔뜩 생기고 피부가 푸석하고 머리숱이 그사이에 사라진 것만 같다.


“그러니까, 바로 왔으면 될 것을 굳이 새벽에 자는 사람 깨워서 전화해서 불러내시면 어떡합니까.”


원장이 한쪽 눈을 치켜뜨고 남은 시간을 재기 위해 수액을 쳐다본다.


똑똑 떨어지는 수액 방울들이 주삿바늘을 타고 현준의 팔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얕은 통증에 잠을 자지 못했던 현준이 쌔근쌔근 편안하게 잠을 자다가도, 한 번씩 다시 깬다.


“응급실 못 가잖아. 잠은 안 오고.”


현준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그윽하게 원장을 바라본다. 힘없는 목소리에 원장은 한숨을 쉰다.


“제가 피부 예민하니까 보호하랬죠. 빡빡 때 밀지 말고요. 제 말을 들으신 겁니까.”


“온종일 수영장 근처에 있었는데 이정도면 꽤 효과가 좋은 거지?”


“아니 그랬으면 바로 전화를 주셨어야죠! 바로 왔어야 했는데, 더 상태도 심각해지고,

어휴 정말 살이 빨갛게 아직도 뜨거운데, 바로 매끈하게 치료는 안 되겠는데요. 좀 오래가겠어요.”


“아 그건 안 되는데. 내가 원장 믿잖아. 잠도 안 자고 치료받으려고 왔는데. 어떻게든 해 봐.”

일부러 더 장난을 치려는 현준의 모습에 의사의 표정이 더욱 진지해진다.


“어제 실외 촬영이었어. 첫 예능이라서 긴장을 많이 했나 봐.”


“그러게 설렁설렁하지 그러셨어요. 실외 활동인 거 몰랐습니까.”


“자꾸 신경 거슬리게 하잖아. 인간이.”


“그냥 내버려 두시지 그랬어요.”

의사는 뻣뻣한 가운에 목이 간지러운지 목을 긁는다.


“내 가오를 건드리잖아.”

“가오가 밥 먹여 줍니까.”

의사는 여전히 20대 후반같이 쌩쌩한 얼굴의 현준을 바라본다.

‘주기적으로 시술 안 받았으면 좀 더 늙었었으려나? 사실 시술 기술이 오히려 현준을 따라간 것일 텐데.’

짙은 어둠 속 졸리는 기운에 원장은 잡생각이 늘어난다.


“응 밥 먹여 주는데?”

원장은 고개를 조용히 도리도리 덜며, 수액이 얼마나 남았는지 고개를 들어 확인해보고 있다. 아직 반이나 남은 수액을 보며 한숨을 푹 쉰다. 오늘은 더 자기 글렀군.


육체적 노화를 이기지 못한 채 피곤함을 떨치지 못한 원장은 의자에 등을 대고 팔꿈치를 끼며 편안히 자려고 자세를 고쳐 잡는다. 눈을 감으려는 찰나, 현준이 묻는다.


“영감 ···. 혹시 어린 시절 기억나?”


“돈 벌고 쉬느라 정신없는데 언제 기억해요.”


“영감 아주 어렸을 때 몇 살에 만났지?”

“일곱 살이었나···. 10살은 안 되었던 거 같은데···.”

쏟아지는 졸음에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사치인 듯, 이마에 짙은 주름이 세 개가 연속으로 생긴다.


“아직 50년도 안 지났는데 기억을 못 하면 어떡해”


꾸벅이는 정수리 사이로 보이는 얕은 머리카락, 숯이 제법 급속도로 적어지는 머리숱을 보며. 현준은 속으로 혀를 찬다.

‘영감도 다 늙었구먼.’


“저는 인간이거든요. 늙는 게 당연하다고요.”

오래 겪은 산자와 죽음의 경계만큼이나 단단하게 무뎌진, 두꺼워진 피부의 두께만큼, 표정의 큰 변화가 없이 덤덤하다.


“그런가. 몸만 늙은 게 아닌가 보네···. 나는 왜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지. 예전에 한국당에서 빵집 할 때 말이야···.”

꿈속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 현준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새하얀 천장을 쳐다본다..


“그만. 일 년에 한 번씩만 말하자고 했죠. 저한테 궁금한 게 그렇게 없습니까. 자식들 안부라도 물어보세요.”

똑···. 똑···.

떨어지는 수액의 소리가 현준의 귀에 생생하게 들린다.


“내가 자식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원장은 나이만 허투루 먹은 거 같다며 속으로 생각한다. 어제도 그렇다. 자랑 겸 테스트 겸했던 자외선 치료가 현준을 살렸으리라. 미리 치료하지 않았다면 현준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른다. 현준도 모르겠지.


“흠···. 근데 연예인도 위험···. 한···. 직업···. 이네요···.”


계속 감기는 눈에 눈썹을 최대한 올린다. 하지만 떠지지 않는 눈에 눈썹만 치켜세워지자,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에 기지개한다.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위험하지 않은 직업이 어딨어. 적성에 맞으니 다행이지!”


“돈도 많은데 굳이 왜 일하세요?”


“영감은 그럼 왜 은퇴 안 하는데?”


“저는 아직 몸이 쌩쌩하잖아요.”


“나도 그래.”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에 원장이 한숨을 쉴 때쯤, 나직이 현준이 조용히 혼잣말한다.



“영감.”


“영감 자?”


원장은 규칙적으로 고개를 꾸벅이며 코를 골자, 현준은 등을 돌려 창밖의 밝은 달빛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뭇잎이 바람 소리에 부딪히고 올빼미가 우는 소리가 귓속에 들리는 듯하다.



**




“내가 여기 취업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게 딱 두 번 있는데, 첫 번째는 전복 넣은 라면을 이천 원에 먹을 수 있다는 거고, 두 번째는 예쁜 연애임을 많이 본다는 거야. 뭐, 현준이 이적하면 구경도 못 하는 거지만. 어쨌든 있는 동안에는 눈 호강하련다.”


한강 전망이 보이는 고층 구내식당에서 남자 직원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답게 체크 무늬와 맨투맨, 후드티 각양각색의 옷들이 보인다. 그 와중에 남자 직원들의 시선이 한군데로 쏠리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현준이다. 아 각도를 정확하게 자로 잰다면 현준의 뒤를 따라오는 효민에 남성들의 시선이 꽂힌다.


편하게 파란색 린넨 셔츠를 입은 현준의 등 뒤로 효민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머리 장식 치워라. 여신님 안 보인다.”

직원 A가 직원 B의 머리를 옆으로 한 손으로 치운다.

“아씨 먹는데 왜 건드냐.”

“너는 지금 밥이 들어가냐. 천상계 효민 님이 미천하신 사옥에 친히 강림하였는데. 열 걸음만 걸으면 있는 곳에 있다고. 하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메뉴를 먹다니 신이시여.”

직원 A가 두 손을 모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어쩜 매번 같이 점심 먹는 사람이 달라지는지. 능력자야. 좀 근처에서 먹지.”

직원 C가 시크하게 말한다.

직원 B가 젓가락을 대리고 안경을 다시 고쳐 쓴다. 본격적으로 얼굴을 보려는지, 직원들 얼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효민을 보기 위해 기린처럼 고개를 푹 늘려서 조금이라도 얼굴을 더 보려는 것 같다.


“야. 근데 쟤 엄청 얼음 공주 아니야? 저번에도 몇 명이나 매달렸던 거 같은데. 현준 앞에서 꼼짝도 못 하네. 와 실화인가요”

직원 C가 쓰린 속에 해장을 여전히 하는 것인지 탱글탱글한 라면을 계속 치면서도 말을 한다.


“아~나도 옴므파탈되고 싶다.”

두 손을 무릎 위로 다소곳하게 모은 B가 입을 쩝 대며 아쉬워한다.


“너도 현준 케어 받아봐. 저 거무튀튀한 수염 좀 어떻게 하고”

“이 수염은 멋이거든?!”

짙은 검은색 동그란 뿔테 안경 아래 어제 밤샘으로 샤프심처럼 두툼하게 고루 올라온 턱수염을 B가 어루만지며 발끈한다.

“어련하시겠어요. 그래도 우리 정도면 잘생기지 않았냐?”

B를 바라보지 않고 A는 라면에 놓인 전복을 분리하며 말했다.



멀리서 보이는 한강 풍경에 효민은 제법 감탄사를 뱉는다. 사옥으로 초대해서 약간은 아쉬웠지만, 이 전망을 보니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역시 소문 난 데에는 이유가 있어.’


효민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입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효민은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려는 듯 제법 달라붙는 랩 원피스를 입으며 자신의 여성스러움을 한껏 과시했다. 짙은 향수 냄새가 현준의 코에 역하게 진동한다.


현준과 똑같이 리코타 치즈가 올라간 샐러드를 먹고 있다. 꽃 모양으로 돌돌 말린 훈제 연어의 향이 진하게 퍼진다.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효민이 물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 컴백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네요.”

“어머. 나중에 컴백하시면 앨범 주실 거죠?”

“네 드릴게요.”

현준이 빙긋이 웃자, 효민은 자신 있게 자신의 몸을 더욱 가까이 현준에게 내민다.


“여기 음식이 정말 맛있네요. 정말 연습할 때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사옥 밥을 많이 안 먹어요. 그래도 맛있어서 가끔 먹어도 좋더라고요.”

“그럼 현준 씨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와인이랑 스테이크요”

“어머 고급지시네요.”

“저도 와인 좋아해요.”

현준은 돌돌 말린 연어를 쳐다보며 말한다. 짙은 향수에 훈제 향이 묻혀, 참을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어떤 걸 좋아하세요?”

“서스팬스랑, 일반 영화 중에는 새드 앤딩 좋아해요.”

“어머 저는 무서운 걸 잘 못 보겠더라고요. 사람 죽이고 하면 너무 징그럽지 않아요?”

“가짜잖아요. 사실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아서 그나마 잘 보는 편인 거 같아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쉴 때는 뭐 하세요?”“집에서 쉬어요. 클래식을 들으면서 쉬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거 같더라고요.”

“연기하는 거 어렵지는 않으세요?”“저는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요. 그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면 때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후련해진다니까요.”


아직 자신과 삶이 비슷한 미녀, 순정만화의 여주인공 캐릭터를 연기한-로맨스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을 들을 정도로 – 효민이 과연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는, 현준은 이해되지 않지만, 눈꼬리를 싱긋 접으며 넘겼다.

“현준 씨는 연기 생각 없으세요?”

“글쎄요···. 아직은 기회가 없네요. 앨범 내고 쉬기도 바빠서요.”

“나중에 같이 연기하면 정말 잘 맞을 거 같아요. 현준 씨는 재벌 3세 하고, 저는 비서로 연기해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효민은 현준의 품에 안겨 있는 상상을 한다. 사실 저번에 자잘하게 탄탄한 팔근육과 등에 자리 잡은 근육들이 생각난다. 저 옷 밑에 있는 단단한 허리 근육이 궁금하다.


현준은 유독 오늘따라 조용한 사옥이 신경 쓰인다. 자신의 주위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지만, 자신들의 음식 페이스에 맞춰 느리게 먹는다.

“제법···. 효민 씨가 오셔서 그런지 주위가 소란스럽네요.”


밥을 다 먹고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들. 친구들과 뜨문뜨문 이어지는 대화들···. 모든 사람이 자신들을 주목하는 것이 보인다.

자신의 등 뒤에 꽂히는 시선들은 아마, 효민 때문이리라.


“아 정말요?”

새삼 자신이 예쁜 것을 아는 사람의 여유처럼, 효민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느리게 칼질을 하고 있다. 길게 늘어뜨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모습이 이 순간을 즐기는 듯 순수한 기쁨이 담겨 있다. 화려한 하얀 백합 같았다. 유독 크고 화려한 꽃만큼이나 숨이 막힐 그것만큼 진한 향기. 단둘이 있게 된다면 방 안에 온통 그 향기를 뿜어내서, 자신을 칭칭 동여맬 것이다. 물을 마시는 현준은 입꼬리가 미묘하게 가라앉는다.


“다 먹었으면 일어날까요?”

파란 풀들을 빼고 다 먹은 효민의 접시를 보며 현준이 웃었다. 효민은 입을 샐쭉하니 현준을 따라 빙긋 따라 웃었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법 마치 다정한 오래된 연인처럼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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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서프라이즈(1) 24.05.14 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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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달빛 산책 24.05.13 6 0 10쪽
13 13. 촬영 24.05.12 7 0 9쪽
12 12. 컨셉회의 24.05.12 7 0 9쪽
» 11. 구내식당 24.05.11 14 0 12쪽
10 10. 회상 24.05.11 9 0 11쪽
9 9. 알레르기 24.05.10 17 0 11쪽
8 8. 닭 대신 꿩(2) 24.05.10 12 0 13쪽
7 7. 닭 대신 꿩(1) 24.05.09 14 0 11쪽
6 6. 틈 24.05.09 23 0 11쪽
5 5. 외출(2) 24.05.08 27 0 10쪽
4 4. 외출(1) 24.05.08 3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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