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뱀파이어 아이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박아설
작품등록일 :
2024.05.08 23:18
최근연재일 :
2024.09.18 18:15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979
추천수 :
10
글자수 :
275,613

작성
24.05.12 21:05
조회
7
추천
0
글자
9쪽

12. 컨셉회의

DUMMY

“헤이 쭌!”


싱글거리는 얼굴의 준영이 피부가 제법 새카만 채로 들어왔다. 흔해 보이지만 절대 없을 것 같은 흔남을 빙자한 훈남인 준영은, 곱상하고 귀여운 얼굴과 달리 운동으로 제법 어깨가 직각으로 탄탄하게 벌어져 있다. 짙은 구릿빛 피부가 남자다운 부분을 묘하게 부여해주는 것 같다.


“남쪽 갔더니 얼굴이 많이 탔네”


“여기 쭌을 위해서 내가 선물 사 왔잖아.”

준영은 구릿빛에 명품 팔찌를 한 손목에 걸린 쇼핑백을 건넨다. 현준이 안을 열어보자, 현준의 취향이 듬뿍 담긴 카페인이 많이 들어간 커피와 꿀이 들어간 티백이 고루 담겨 있었다.


현준은 준영의 몸에 요란하게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근육들을 바라본다. 아니, 정확하게는 요란한 근육들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당겨졌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준영은 벌써 더운지, 에어컨이 켜져 잇는데도 옷을 벗고 민소매를 입는다. 제법 운동을 많이 한 것인지 저절로 자라난 것인지 안 본 사이에 어깨가 더 넓어진 것 같다. 설렁설렁 운동하지만 금방 근육이 붙는 체질이 현준은 7년 만에 처음 부러워졌다.


“너는 뭐 샀어?”


“글쎄 한국보다 위스키가 엄청 저렴하길래 잔뜩 샀지. 내가 이번에 면세점에서 술을 8병이나 샀더니, 글쎄 공항에서 내 캐리어가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돌돌 말려 있었다니까.”


“쇼케이스 하고 깔까?”

마치 이 자리에 위스키병이 있는 듯, 준영은 벌써 취기가 잔뜩 오른 것 같다. 열정 많고 텐션 높은 게 흠은 아니지.


“아냐 겨우 산 거니까. 나중에 해외 콘서트 한창 돌 때 먹자. 잠 잘 자게”


“주목”


스타일리스트와 소속사 식구들이 잔뜩 회의실로 들어온다. 한강이 보이는 높은 건물에서 하얀색 스크린만을 띄워놓는다.


“오늘은 컨셉 정해야 하는 거 알지?”

“당연하죠! 제가 회의 때문에 비행기 표도 땡겼잖아요.”

열정이 솟구쳐 보이는 준영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현준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박스티와 같이 품이 헐렁하고, 숫자와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운동복이 스크린에 띄워진다. 컨셉이 지나간다. 짧은 금발 머리 위로 빨간색 밴드가 놓여 있다.


“이번에는 제복 컨셉 안 해요?”


루키즈라는 이름과 달리 정장, 제복 같은 무거운 컨셉을 많이 소화했다. 아무래도 현준의 화려한 비주얼을 심플한 옷으로 뒷받침하기에는 옷이 수수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상복에서도 댄디남으로 유명한 현준이 한 번도 입지 않았을 법하다.


“별론데”


“요즘에 유행하는 컨셉이야. 지금 남돌들은 다 입었어.” 스타일리스트가 말했다.


“어려 보이고 좋은데?” 옆에서 매니저도 같이 거든다.


“간지가 안 나잖아”

저 옷을 입었을 때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준은 인상을 찌푸린다..


“아~내 식스팩 다 가리면 안 되는데”


준영이 배를 쓰다듬으며 몸에 힘은 준다. 바짝 닭가슴살로 PT를 빡세게 받은 티가 난다. 주위에서 오- 한마디를 한다. 자주 보는 스타일리스트는 아무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다시 슬라이드를 넘긴다.



트레이닝복 위로 실버색 체인 목걸이에 하얀 두건을 쓰고 앉아 있는 사진이 뜬다.


“저거는 집에서나 입는 옷 아냐? 슈퍼 갈 때도 못 입겠다.”

현준이 인상을 찌푸린다.


“저 베이지색이랑 트레이닝복이랑 어울리냐고요.”


“민트색이야.”

준영이 현준의 귀에 속삭인다. 준영의 귀에 작은 링 귀걸이가 찰랑거린다.


“알 게 뭐야. 아무튼, 우리 컨셉이랑 안 어울려”


“애슬레져 룩이라고, 캐쥬얼하면서도 남성적으로 보이지 않아? 무채색으로 옅은 회색이나 검정으로 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안 멋있잖아. 루즈핏 싫어.”


“현준이 옷걸이는 멋있어서 다 잘 어울려”

스타일리스트의 말에 현준이 반사적으로 눈웃음을 지었다.


“화장해도 다 묻혀”

“쓰읍···. 근데···. 이런 옷은 준영이도 잘 안 입는데···.”

고민 끝에 준영이 말한다.


“그러니까 이번에 새롭게 시도해 보는 거야!”


“데뷔 7년 차에 왜 이러세요.”


‘저럴 때만 죽이 잘 맞지. 하여간.’


스타일리스트는 속으로 생각을 삼키며 웃는다. 다른 그룹들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아이돌은 자기가 직접 정성스럽게 컨셉을 제시한다는데, 아니면 조용히 듣기만 하던가. 자신의 월급이 업계치고 높은 이유는 저 불만만 많은 우리 루키즈한테 받는 스트레스 값이라고 생각했다. 너희들 덕분에 나는 아마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걸칠까? 청자켓? 역시 청이 상큼하고 좋지!”


스타일리스트가 다른 아이돌 그룹의 사진을 보여준다. 잔뜩 바래진 청자켓 아래로 청바지가 잔뜩 찢어져 있다.


”저거는 버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오늘따라 현준이 말이 많은 것 같다,


“저거 청자켓 맞아?”

현준이 준영의 귀에 속삭인다.


“연하늘색이라서 그래.”

준영이 현준의 귀에 속삭인다.


“연회색이 아니고?”


“준영이 청자켓이 잘 안 어울리는데”

준영이 크게 투덜댄다.


“비슷한 컨셉 이미 하지 않았어?”

현준이 옆에서 동조한다.


“그랬던 거 같은데. 데뷔 초에 안 했었을 리가 없어.”


“스타일리스트가 이런 컨셉 한두 번 주장했어야지”

스타일리스트의 얼굴이 조금씩 빨개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너무 우리랑 취향이 안 맞는 거 같은데”


“진지하게 대표님이랑 이야기를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현준이 말했다.


“그래 우리 곧 점심 먹기로 하지 않았어?”

준영이 시계를 보더니 크게 하품을 한다. 주위에서 스타일리스트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야 임마!“


스타일리스트는 회의장을 뒤집는다. 7년간의 수련에 충분히 득도한 줄 알았는데, 7년 동안 쌓아둔 화가 한 번에 폭발한다. 아무래도 득도를 한 게 아니라 이날을 위해 에너지를 쌓은 것 같다.


“정장이랑 셔츠랑 주야장천 입었으면 됐지. 이런 컨셉 한 번도 안 했다고. 코디 하는 사람도 재미가 있어야 할 거 아냐! 팬들한테 코디 욕 얻어먹는 게 내 일이지 너네 일이냐!!!”


“내 생각도 한번은 해주라고!”


“저번에 너네가 떼써서 입던 사복 그대로 내보냈다가 코디 교체하라고 댓글 얼마나 달렸던 거 몰라? 한번 옷 잘 못 입히면 블로그랑 유투브에 박제되어서 두고두고 까이는데”


“좀 닥치고 입어라. 전문가 의견 좀 존중해봐!”


쾅. 책상 위에 있던 종이들이 충격을 못 이기고 바닥 위로 떨어진다.


분노를 참지 못한 스타일리스트는 책상 위를 손으로 크게 내려친다. 스타일리스트는 자신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현준과 눈이 마주친다. 들려진 고개와 여유롭게 턱을 괸 표정을 참을 수 없다. 현준에게 달려가 이마를 알밤으로 콩 때린다.


소리가 요란하게 퍼진다. 준영이는 머리 뒤로 팔짱을 끼고는 자신은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다. 수년 간의 화가 속 시원하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책상 위에 종이가 아직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스타일리스트가 주위를 둘러보자, 여전히 책상과 노트북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후···.‘


개운한 마음도 잠시, 스타일리스트의 손에 식은땀이 돋기 시작한다.



조용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준영과 현준은 여전히 입술을 뾰로통해 있다. 길어진 회의만큼이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대놓고 준영은 손으로 가리고 하품을 자주 한다. 현준은 볼펜을 계속 딸각거리며 스타일리스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자신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 자신의 몸에 화살처럼 박히는 것 같다.



순간 위험했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오늘 밥값은 제대로 했다.


’내일 안 잘려서 천만다행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우리는 이번 노래가 서정적이지만, 노래가 제법 리듬이 있잖아. 청바지 잘 어울리지 않을까?”


“가죽 자켓 어때요? 블루종도 비슷한 느낌 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준영은 손가락을 빳빳이 든다. 탈출을 바라는 듯하다.


“하긴 현준이도 지금 금발에 짧은 머리라 청자켓보다 가죽 자켓이 팬시해 보이고 예뻐 보이겠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스타일리스트도 서두른다.


“저도요! 이번에 머리랑 잘 빼줄 거죠? 이번에 뒷머리만 좀 기를 거에요”


“그래 준영이 이번에 얼굴이 좀 탔으니까, 대신에 머리는 브라운으로 염색하자.”


“얏~호!”

준영이 팔로 잔뜩 파이팅을 외치는 와중에 현준은 조용히 앞을 바라만 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7년차 뱀파이어 아이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33. 피닉스(2) 24.05.26 12 0 8쪽
32 32. 피닉스(1) 24.05.25 14 0 9쪽
31 31. 피(5) 24.05.24 13 0 11쪽
30 30. 피(4) 24.05.23 11 0 9쪽
29 29. 피(3) 24.05.22 12 0 8쪽
28 28. 피(2) 24.05.21 13 0 11쪽
27 27. 피(1) 24.05.20 12 0 9쪽
26 26. 비가 와서(2) 24.05.19 13 0 10쪽
25 25. 비가 와서(1) 24.05.18 14 0 10쪽
24 24. 대표의 꿈(5) 24.05.18 11 0 11쪽
23 23. 대표의 꿈(4) 24.05.17 8 0 9쪽
22 22. 대표의 꿈(3) 24.05.17 9 0 10쪽
21 21. 대표의 꿈(2) 24.05.16 10 0 8쪽
20 20. 대표의 꿈(1) 24.05.16 11 0 10쪽
19 19. 우리 자기 24.05.15 13 0 14쪽
18 18. 서프라이즈(2) +1 24.05.15 8 1 12쪽
17 17. 서프라이즈(1) 24.05.14 9 0 9쪽
16 16. 쇼케이스 24.05.14 10 0 11쪽
15 15. FEVER 24.05.13 8 0 10쪽
14 14. 달빛 산책 24.05.13 7 0 10쪽
13 13. 촬영 24.05.12 7 0 9쪽
» 12. 컨셉회의 24.05.12 8 0 9쪽
11 11. 구내식당 24.05.11 14 0 12쪽
10 10. 회상 24.05.11 9 0 11쪽
9 9. 알레르기 24.05.10 17 0 11쪽
8 8. 닭 대신 꿩(2) 24.05.10 12 0 13쪽
7 7. 닭 대신 꿩(1) 24.05.09 14 0 11쪽
6 6. 틈 24.05.09 23 0 11쪽
5 5. 외출(2) 24.05.08 27 0 10쪽
4 4. 외출(1) 24.05.08 37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